영의 이중슬릿 실험

Mykim5902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8월 22일 (목) 20:33 판 (193.108.118.88(토론)의 편집을 Pectus Solentis의 마지막 판으로 되돌림)

과학사적으로 기념비적인 물리학 실험

이 실험의 의의는, (상대성 이론양자역학 대두 이전의) 고전물리학에서 벌어지던 광자설과 광파설 사이의 논쟁을 아주 깔끔한 단 하나의 실험으로 (광파설의 완승으로) 종결 낸 실험이라는 점이다. 물리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험 중 하나라는 평.

광자설의 명쾌한 증명인 광전 효과 논문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을 보아, 이 실험 역시도 노벨상이 있었을 때 수행되었다면 어렵지 않게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실험을 수행한 토마스 영[1]이 노벨상이 만들어지기 전[2]에 사망했다는 것만이 이 실험이 노벨상을 받지 못한 유일한 이유인 셈이다.

과학사적 배경

물리학은 분명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으므로 엄연한 자연 현상 중 하나인 역시도 물리학이 설명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어야 했다. 아이작 뉴턴이 현역으로 뛰고 있었을 시절에는, 그 전까지는 영원히 신비의 영역일 것 같았던 천체의 운동이 인간의 계산으로 설명이 되고 심지어 천체 운동을 예측하는 것과 지상의 운동을 예측하는 것이 동일한 법칙에 의해서 이뤄졌음이 밝혀졌으므로[3], 이 기세대로라면 자연의 법칙을 설명함에 있어서 종교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인간의 지성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4]

그런 분위기였으므로, 그전까지는 존재 자체가 의 영접쯤으로 느껴지던 이란 현상도 물리학자들이 자연 법칙의 테두리 안에서 설명하고 싶어했던 것은 당연하다. 일단 아이작 뉴턴 본인부터가 빛을 건드렸고, 빛의 속도를 측정하려는 실험은 갈릴레오 갈릴레이 때 이미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대의 장비 수준으로는 빛의 속도를 실제로 측정할 수는 없었다.)

아이작 뉴턴은 빛을 입자라고 주장했고, 굴절 현상은 빛이 한 매질에서 다른 매질로 넘어갈 때 매질의 경계면에서 인력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이겐스와 같은 학자들은 이에 반대했으나, 뉴턴 당대에는 뉴턴의 이 주장을 검증할 방법도 반증할 방법도 없어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묻혀졌다.

하지만 광학이 더 발전하면서 뉴턴의 설명은 틀렸다는 것이 밝혀졌다. 뉴턴의 설명대로라면 굴절률이 큰 매질로 빛이 들어갈 때는 (빛이 인력을 받아서 법선[5]과 이루는 각이 벌어지니까) 빛의 파장이 빨라져야 하는데,[6] 실제 파동의 행동을 보면 굴절률이 큰 매질로 빛이 들어가면 파장은 오히려 짧아진다. 따라서 뉴턴의 설명은 틀린 설명이라는 것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빛이 입자인지 파동인지를 말끔히 증명하기는 힘들었다. 거시적인 세계에서 뉴턴의 운동 법칙을 만족시키지 않는 것으로 밝혀진 빛이 (간단하게, 거울이 빛을 반사할 때 그 반동으로 거울이 뒤로 밀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거울이 뉴턴의 운동 법칙을 따르는 입자라면, 거울이 빛을 반사할 때 거울 역시도 그 반작용으로 뒤로 밀려나던지 충격을 받던지 해야 한다. 하지만 거시 세계에서는 그런 현상은 전혀 관측된 바가 없다.)[7] 입자라고 보기는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빛이 입자가 아니면 파동이라는 명쾌한 증거 역시도 나와 있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니면 빛은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닌 제3의 존재라는 가정도 해볼만한 가정이었는데, 이미 그 당대에도 호이겐스의 원리나 페르마의 최소 시간의 원리 등, 빛이 파동일 수 있다는 정황증거는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토마스 영이라는 천재 물리학자[8]가 튀어나와서 빛이 파동의 일종이라는 것을 매우 말끔하게 증명을 한다.

실험 설계

당대 물리학계의 지식에서도 파동은 굴절, 반사, 간섭, 회절의 성질을 갖는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다. 여기서 굴절이나 반사는 조건이 맞으면 입자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간섭과 회절은 물질 입자는 절대로 일으킬 수 없는 성질임이 당대에도 이미 증명되어 있었다. 뉴턴의 운동 법칙을 따르는 물질 입자가 아닌, 호이겐스의 원리를 따르는 파동만이 간섭과 회절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빛이 입자냐 파동이냐 라는 논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빛이 간섭과 회절을 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빛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이면 되는 일이었다. 빛이 파동이 맞다면 그 장치 안에서 빛은 훌륭하게 간섭과 회절을 할 것이고, 빛이 파동이 아니라면 그 장치 안에서 빛이 간섭과 회절을 했다는 증거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 대한 아이디어를 아주 간단한 개념도로 수립하고 실제 장치로 제작한 것이 바로 토마스 영의 업적인 것이다.

파일:Young's experiment.png
물리학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실험 개념도 중 하나로 꼽히는 그림. 얼마나 아름다운 실험이었으면, 저 실험이 나온 지 200년은 족히 지났을 지금까지도 수능 물리과목 문제에서 저 그림 자체가 문제로 그렇게나 자주 출제된다.

위의 그림은 토마스 영이 설계한 장치를 위에서 바라본 것이다. 첫 번째 슬릿(S1)에서는 할 수 있을만큼 가장 얇고 길게 면도칼 자국[9]을 내서 빛이 그 칼자국 틈새 안에서 회절하도록 만든다. 호이겐스의 원리에 따라서 이렇게 "충분히 얇고 긴" 칼자국을 통과하여 회절된 빛은 슬릿을 기둥의 심으로 하는 원기둥 모양의[10] 새로운 파동을 형성한다. 이 원기둥에서는, (호이겐스의 원리 그 자체에 의해) 면도칼 자국에서 같은 거리만큼을 떨어져 있는 반원형의 질점 모두가 같은 위상을 갖게 된다. (이걸 '결이 맞는다'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한 다음에, S1에서 약간 떨어진 위치에 S1과 서로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2개의 칼자국을 또 긋는다. (이 2개의 칼자국을 S2라고 한다.) S2에서의 두 칼자국이 S1의 칼자국에서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면, S1에서 결맞음을 확보한 빛은 S2의 두 칼자국에 들어갈 때도 같은 위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S2에 들어간 빛은, S2의 각각의 칼자국에서 S1에서처럼 또다시 회절하며, 원기둥 모양의 또 다른 파동 2개를 형성한다.

(레이저를 쓸 수 있었던 시대라면 이렇게 번거롭게 결맞음을 확보할 필요 없이 그냥 레이저를 대구경으로 만들어서 두 슬릿에 모두 들어가도록 쏘면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영은 19세기 사람이었고, 그 시대에는 당연히 레이저가 없었다.)

이렇게 S2를 통과한 두 빛은 멀리 떨어져 있는 스크린 F에 상으로 맺힌다. (실제 이 실험을 재현할 때, S1과 S2 사이의 거리를 10cm 정도로 놓고 각각의 칼자국의 길이를 몇cm 정도로 놓는다면 S2에서 F까지의 거리는 최소 1m로 놓는 게 보통이다.) 이때 스크린 F에는 S2에서의 두 슬릿의 가운데 위치(이자 맨 처음의 S1의 위치)에서 빛이 밝게 비추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빛이 밝게 비추는 부분과 빛이 전혀 비추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일정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데, 그게 바로 스크린 F에서 S2에서 나온 두 빛이 간섭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11]

이로써 토마스 영은 저 간단한 장치 하나만으로 빛이 간섭과 회절을 모두 일으킨다는 사실을 한번에 증명해 버리고, 빛은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라는 사실에 대해 모든 반박을 봉쇄한다.

이렇게 빛은 이견의 여지 없이 파동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듯하였다.

후일담

하지만 편광 현상의 발견으로 인해 빛이 파동이라면 종파가 아닌 횡파임이 밝혀졌는데, 물리학의 상식에 따르면 횡파는 고체 속에서만 전달될 수 있다.[12] 그런데 빈 공간을 멀쩡히 날아다니는 빛이 횡파라는 것은, 우리가 멀쩡히 숨을 쉬고 돌아다니는 공간이 고체로 가득 차 있다는 이야기로밖에는 설명이 안 되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빛이 파동인 것으로 밝혀졌다는 저 멀쩡한 실험결과를 버릴 수도 없었기 때문에, "사실 인간들이 못 느끼고 있다뿐이지 원래 우주는 고체로 가득 차 있는 게 맞음"이라는 이론을 내게 되었고, 공기중과 진공을 포함해서 우주의 어느 곳에도 예외없이 꽉꽉 들어차 있다는 그 가상의 고체 매질에테르(Aether)라고 이름까지 붙여 놓는다.

하지만 그런 임시변통식 설명으로는 도저히 설명을 할 수 없는 괴현상이 2개가 발견되었으니, 하나는 광전 효과[13]고 하나는 마이컬슨-몰리 실험의 실패로 밝혀진 광속도 불변의 법칙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저런 역대급 괴현상을 말끔하게 설명해낸 것으로 물리학계에 이름을 처음 알리기 시작한다.

기타

카카오톡의 유료 이모티콘 중 하나인 '이과티콘3'에, 영의 이중슬릿 조감도에서 2번째 슬릿을 틀어막는 장면을 보여주며 "간섭하지마"라고 말하는 이모티콘이 있다. (...)

각주

  1. 1773년 6월 13일~1829년 5월 10일.
  2.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은 1901년에 있었다.
  3. 이걸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 바로 핼리 혜성의 발견이었다.
  4. 엄밀히 말하면 진짜로 과학계가 그런 자신감에 가득 차게 되는 시기는 19세기 말엽이지만, 뉴턴역학의 완성도 과학사적 의의에서는 저런 문구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대사건이었다.
  5. 입사평면에서 수직한 방향으로 그은 선
  6. 파동의 속도는 진동수 곱하기 파장으로 계산할 수 있는데, 상식적으로 진동수는 파동이 일단 형성되고 나면 절대 바뀔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파장의 변화를 측정하면 빛의 속도의 변화는 측정할 수 있다. 빛이 빨주노초파남보의 스펙트럼 순서대로 파장이 짧아진다는 현상 자체는 사실 꽤나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7. 물론 미시 세계에서는 빛이 광자로서 행동할 때는 뉴턴의 운동 법칙을 만족시키는 것이 맞다. (콤프턴 효과광전 효과 등등으로 실험적으로 증명된 사실) 하지만 당대 과학에서는 빛의 미시적 성질을 연구할 수 있는 여력은 없었고, 물질-파동의 이중성은 해당 '물체'가 물질로서 행동할 때는 파동의 성질을 전혀 보이지 않고, 파동으로서 행동할 때는 물질의 성질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가 애초의 내용이다.
  8. 사실 이 사람은 물리학자라는 수식어로 한정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 초등학교 시절에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포함한 수많은 언어를 마스터하고, 로제타 석의 해석에도 기여하였으며, 본 전공은 의학인 먼치킨형 천재였다. (...)
  9. 사실은 칼자국을 슬릿이라고 부른다.
  10. 실제로는 슬릿의 양끝 질점에서 발생한 파동은 각각의 끝 방향으로 구면파를 형성한다. 하지만 그쪽 부분은 오차 요소로 trim되는 부분이므로, 거길 빼고 생각한다면 여기서 발생하는 파동은 원기둥 모양이 맞다.
  11. 이렇게 스크린에 줄무늬 생기는 게 "왜" 빛의 간섭에 대한 증거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시리즈:심오한 파동의 세계 참조.
  12. 중1 때 지구의 구조에 대해서 배울 때 지진파의 종류에는 종파인 P파와 횡파인 S파가 있는데 여기서 횡파인 S파가 전달되지 않는 지점이 있더라 라는 실험 결과에서 외핵이 액체 상태임을 알아냈다는 이야기는 다들 들어보셨을 것이다.
  13. 빛이 입자의 성질을 띠는 것을 증명하는 실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