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고속도로 섬강교 버스 추락 사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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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피해==
버스에 탑승하였던 29명의 인원 가운데 버스 기사를 포함하여 25명이 사망하고 단지 4명만 버스를 빠져나와 구조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생존자들은 모두 버스 뒷자석 부근에 탑승했던 10~20대 승객들이며 간신히 버스 유리창이 깨진 틈을 발견하여 차량을 탈출할 수 있었다. 강물에 빠진 버스는 당시 집중호우로 불어난 강물의 급류에 휩쓸리며 하류로 약 700 미터 가량을 떠내려가다 강바닥의 모래톱에 걸리며 가까스로 멈췄다. 당시 안전벨트를 착용한 버스 기사와 일부 승객<ref>사고 당시 버스 안에서 안전벨트를 맨 버스 기사와 승객 2명의 시신이 수습되었다.</ref>을 제외하고 대다수 승객들은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바람에 구조가 쉽지 않았다.  
버스에 탑승하였던 29명의 인원 가운데 버스 기사를 포함하여 25명이 사망하고 단지 4명만 버스를 빠져나와 구조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생존자들은 모두 버스 뒷좌석 부근에 탑승했던 10~20대 승객들이며 간신히 버스 유리창이 깨진 틈을 발견하여 차량을 탈출할 수 있었다. 강물에 빠진 버스는 당시 집중호우로 불어난 강물의 급류에 휩쓸리며 하류로 약 700 미터 가량을 떠내려가다 강바닥의 모래톱에 걸리며 가까스로 멈췄다. 당시 안전벨트를 착용한 버스 기사와 일부 승객<ref>사고 당시 버스 안에서 안전벨트를 맨 버스 기사와 승객 2명의 시신이 수습되었다.</ref>을 제외하고 대다수 승객들은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바람에 구조가 쉽지 않았다.  


워낙 인명피해가 크고 실종자가 많이 발생한 사고여서 관계부처는 사고대책반을 꾸려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그러나 사고 당일 불어난 강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으며 본격적인 수색은 강물이 잠잠해진 [[9월 3일]]부터 시작되었다. [[9월 6일]] 경에는 총 21구의 시신을 수습하였으며, 남은 3명에 대한 수색을 지속하였다. 마지막 실종자였던 장호(당시 4세) 군의 시신이 사고 발생 13일만인 [[9월 14일]], 사고장소에서 수백 km 떨어진 [[강화도]] 인근 한강 하구에서 어부에 의해 발견되며 모든 사망/실종자의 시신이 수습되었다.
워낙 인명피해가 크고 실종자가 많이 발생한 사고여서 관계부처는 사고대책반을 꾸려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그러나 사고 당일 불어난 강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으며 본격적인 수색은 강물이 잠잠해진 [[9월 3일]]부터 시작되었다. [[9월 6일]] 경에는 총 21구의 시신을 수습하였으며, 남은 3명에 대한 수색을 지속하였다. 마지막 실종자였던 장호(당시 4세) 군의 시신이 사고 발생 13일만인 [[9월 14일]], 사고장소에서 수백 km 떨어진 [[강화도]] 인근 한강 하구에서 어부에 의해 발견되며 모든 사망/실종자의 시신이 수습되었다.

2020년 9월 23일 (수) 16:2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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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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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발생했던 섬강교의 현재 모습[1]

1990년 9월 1일 오후 2시 45분 경기도 여주군[2] 강천면 부평리 인근 영동고속도로 상행선, 당시 서울기점 62 km 지점인 섬강교 구간에서 승객 28명을 태운 강릉발 서울행 시외버스가 다리 아래 섬강으로 추락하여 대규모 인명피해를 불러온 사고이다.

사고 과정

사고 버스는 강원여객 소속 시외버스로, 사고 당일 강릉을 출발하여 홍천을 거쳐 동서울터미널로 운행하는 노선이었다. 홍천을 거쳐 승객 28명(버스기사 포함 총 29명)이 탑승한 상태에서 영동고속도로에 진입하여 남한강의 지류인 섬강을 가로지르는 섬강교 구간에 접어들었다. 커브 구간을 지나 교량에 진입한 버스는 앞서가던 승용차를 추월하려고 속력을 내다가 빗길에 미끄러지며 중앙선을 침범한 후, 반대편 다리 난간을 뚫고 그대로 약 19미터 아래 섬강으로 추락했다.

사고 원인

당시 날씨는 집중호우로 인해 많은 비가 내렸으며, 빗길에 앞서가던 승용차를 추월하기 위해 버스가 속도를 높이는 도중 빗길에 바퀴가 미끄러지며[3] 그대로 통제를 상실하고 중앙선을 가로질러 맞은편 철제 난간을 뚫고 그대로 추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즉 빗길에 감속운전과 안전거리 확보 등 안전운행 규칙을 무시한 체 무리한 앞지르기를 하려한 버스 기사의 과실이다.

피해

버스에 탑승하였던 29명의 인원 가운데 버스 기사를 포함하여 25명이 사망하고 단지 4명만 버스를 빠져나와 구조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생존자들은 모두 버스 뒷좌석 부근에 탑승했던 10~20대 승객들이며 간신히 버스 유리창이 깨진 틈을 발견하여 차량을 탈출할 수 있었다. 강물에 빠진 버스는 당시 집중호우로 불어난 강물의 급류에 휩쓸리며 하류로 약 700 미터 가량을 떠내려가다 강바닥의 모래톱에 걸리며 가까스로 멈췄다. 당시 안전벨트를 착용한 버스 기사와 일부 승객[4]을 제외하고 대다수 승객들은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바람에 구조가 쉽지 않았다.

워낙 인명피해가 크고 실종자가 많이 발생한 사고여서 관계부처는 사고대책반을 꾸려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그러나 사고 당일 불어난 강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으며 본격적인 수색은 강물이 잠잠해진 9월 3일부터 시작되었다. 9월 6일 경에는 총 21구의 시신을 수습하였으며, 남은 3명에 대한 수색을 지속하였다. 마지막 실종자였던 장호(당시 4세) 군의 시신이 사고 발생 13일만인 9월 14일, 사고장소에서 수백 km 떨어진 강화도 인근 한강 하구에서 어부에 의해 발견되며 모든 사망/실종자의 시신이 수습되었다.

비극

사고 당시 버스에 탑승하였던 이들 가운데 어느 주말부부 교사의 사연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서울 덕수상업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중이던 남편 장재인(당시 31세)과 강원도 홍천 내면고등학교 프랑스어교사로 재직중이던 부인 최영애(당시 30세)와 그 아들 장호(당시 4세)의 사연으로, 각자 발령지가 달라 주말부부 생활을 하였다. 당시 서울에 있는 남편을 보기 위해 주말을 이용하여 사고 버스에 탑승한 최영애와 그 아들은 불행히도 사고로 인해 변을 당하고 말았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현장으로 달려온 남편 장재인은 결국 사고지점 인근에서 아내의 시신을 발견하였으며, 아들 장호의 시신은 사고 13일이 지난 후, 저멀리 강화도에서 어부에 의해 발견되어 수습되었다. 아내 최영애는 사고 당시 버스를 빠져나와 생존했었지만 곧 사라진 아들을 찾으려 다시 강물로 뛰어들었다고 전해진다. 장재인은 9월 14일, 아내와 아들의 시신이 안치되었던 경기도 여주읍 고려대학교 부속병원 뒷길 전신주에 스스로 목을 매 생을 마감하였다. 당시 장재인의 바지 주머니 속에서 유서가 발견되었는데 아내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묘사했다.

(전략)
세상을 붙잡으려다 처자를 버리고 이제는 처자를 부여안기 위해 세상을 버리려고 합니다.
불행한 사람의 삶에 뛰어들어 고생만 하던 고마운 아내, 아들의 뒤를 따라 다시 강으로 뛰어들었다는 아내처럼 저도 처자를 찾아 떠나려고 합니다.
(중략)
처자를 따라간 저의 죽음을 애통해 하지 말 것을 당부드리며, 오히려 세 식구의 하늘나라에서의 다시는 헤어짐 없는 만남과 행복을 기원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살아계신 분들은 제가 없어도 능히 견딜 수 있지만 저희 세 사람은 함께 있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략)
사랑스런 아내와 자랑스런 아들을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하니 더 없이 평온하고 즐겁습니다.
— 장재인의 유서 내용중 일부, 출처

소설가이자 시인인 조해인은 이 부부의 사연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섬강에서 하늘까지라는 제목의 소설을 통해 이 부부의 삶과 사랑을 묘사하였다. 이후 이 소설을 바탕으로 유진선 감독, 이경영, 김미현 주연의 동명의 영화, 섬강에서 하늘까지가 개봉하였다.

여담

  • 사고 당시 영동고속도로는 왕복 2차선의 도로였으며, 곳곳에 평면교차로 형태의 나들목이 산재해 있었다. 이후 해당구간은 왕복 4차로에 직선화 개량이 이뤄지며 사고당시 사용되었던 구간은 통째로 근처에 새로 건설된 교량으로 이전되었다. 현재 이 구간은 섬강로라는 명칭의 일반도로로 격하되어 유지되고 있으며 많은 자전거 동호인들이 찾고 있다. 이 다리 근처에는 캠핑장도 존재한다.
  • 이 사고가 일어난지 10년 1개월 반이 지난 2000년 10월에는 당시의 영동고속도로처럼 왕복 2차선으로 된 88올림픽고속도로(현재의 광주대구고속도로)에서 트레일러가 무리한 추월을 하다 버스와 충돌하는 사고를 낸 대형참사가 일어난 적이 있다.

틀:대한민국의 도로 사고

각주

  1. 사진 좌측에 보이는 커다란 다리가 4차선 확장 및 직선화 개량된 현재의 영동고속도로이다. 사고는 사진에 보이는 옛 영동고속도로 구간에 포함되었던 섬강교에서 발생하였다.
  2. 당시에는 여주시로 승격되기 이전
  3. 빗길에는 도로와 타이어 사이에 물이 들어가 얇은 막을 형성하는 수막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 수막현상은 차량의 제동력을 크게 감소시키며, 속도가 높은 상태에서는 빙판길을 달리는 것과 비슷하게 차량이 미끄러지기 쉽다.
  4. 사고 당시 버스 안에서 안전벨트를 맨 버스 기사와 승객 2명의 시신이 수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