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

틀:학문 관련 정보 養子量子力學

기본입자 크기의 미시적인 세계를 다루는 학문이다.

Quantum Machanics

양자역학이란 학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Quantum)이란 단어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본래 이 개념은 광전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으로, 에너지라는 이 연속체가 아닌 어떤 종류의 입자로서 행동하는 것 같더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나온 개념이다.

양자역학에서 다루는 주제는 원자보다 작은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이다. 양자역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렇게 작은 미시세계에서도 모든 것이 연속일 줄 알았으나, 이론으로 예측하고 실험으로 관찰되어 입증되는 물리량이 연속적이지 않고 뚝뚝 끊어지는 양자화(Quantization)된 값으로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과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왔으며, 이후 현대 인문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양자론 그리고 불연속적

불연속적?

자, 그럼 떠올려보자. 빛이 입자로 돼 있다면 빛의 밝기를 나타내는 숫자들은 불연속적이 된다. 광자 1개가 1만큼의 밝기라 한다면 1, 2, 3 같은 딱딱 떨어지는 밝기만 나올 수 있지 0.69나 0.74 같은 사이의 숫자들은 있을 수가 없다. 이걸 머리 좋은 우리들은 불연속적이라고 한다. 인공위성의 궤도를 떠올려보자. 궤도를 변경할 때 1000km, 1818km 등 자유롭게 궤도를 취할 수 있지만 우리 불쌍한 미시세계의 전자들은 자유로운 궤도를 취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플랑크의 양자가설

고온의 물체에서는 빛이 나오지만 그 그래프를 그려보니 기존의 물리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플랑크는 직접 식을 써서 양자 가설이라 불리는 문명을 진보시킨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그의 양자가설이란 '빛을 내는 입자의 진동에너지는 띄엄띄엄한 불연속적인 값만 취한다'이다.

아인슈타인의 광양자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하나의 혁신적인 빛은 입자로 돼 있다는 주장을 한다. 밤에 손장난할 시간 아껴서 하늘을 바라봐 보자. 서울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밤하늘은 별로 가득 차 있다. 이때 빛이 파동이라면 서로 상쇄되어 지구에 도착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입자라면 빛의 에너지는 무한히 약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빛은 광자로 이루어져 있다 할 수 있다.

다른 증거로는 광전 효과가 있다. 광전 효과란 금속에다가 빛을 쬐었을 때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인데, 빛을 파동으로 보는 기존의 이론에 따르면 금속에 빛을 쪼였을 때 튀어나오는 전자의 개수(전류로 측정됨)와 전자의 운동에너지(전압으로 측정됨) 모두가 진동수의 제곱 곱하기 진폭의 제곱에 비례해야 하지만, 실제 실험 결과에서는 빛의 진동수가 일정 수치 이상을 찍지 않으면 빛의 세기가 아무리 세도 전자가 튀어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 현상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빛을 "플랑크 상수 곱하기 진동수"만큼의 에너지를 갖는 입자 알갱이로 보는 관점을 제시하여 말끔히 설명해 내고 노벨상을 거머쥔다.

'빛은 E = hν인 입자 알갱이로서 존재한다'라는 아인슈타인의 가설은 후대에 콤프턴 효과로 증명된다. 정말 간단히 서술하면 광자랑 전자 알갱이를 가지고 당구를 쳤다는 실험인데, 말인즉슨 광자 알갱이에 대해서 아인슈타인의 공식대로 운동량을 매겼을 때 그대로 운동량 보존의 법칙이 성립했다는 뜻이다. 자세한 설명은 전공충 등판 요청함.

투페이스의 빛

그런데 영의 이중슬릿 실험에 의해 그 전까지의 빛은 파동으로 취급되었고 문제없이 주변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 예로 우거진 수풀에서 나뭇잎의 틈새를 통과한 햇빛이 둥그렇게 찍히는데, 그 이유가 빛이 나뭇잎 틈새에서 회절하기 때문이다.

영의 이중슬릿 실험도 참이고 광전효과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설명도 참이라는 것은, 결국 빛은 파동의 성질과 입자의 성질을 동시에 갖는다는 말이 된다. 아인슈타인의 주장도 당시에는 지지되지 못했고 아인슈타인 자신도 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보어의 원자 모델

당시 물리학계에는 또 하나의 수수께끼가 있었다. 원자가 들뜬 상태에서 바닥 상태가 되면 빛을 방출하게 되는데 이때 방출되는 빛의 파장이 불연속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보어는 전자가 가진 에너지는 불연속적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원자 모델을 만든다. 그리고 고찰한 결과 전자의 궤도는 불연속적이면 문제가 풀린다는 것을 알아냈다. 전자가 바깥 궤도에서 안쪽의 궤도로 이동할 때 전자가 가지고 있던 에너지가 빛 에너지로 바뀌어 방출되는데(더 높은 궤도에 있으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더 낮은 궤도는 에너지가 덜 필요하게 때문에 낮은 궤도로 이동시 에너지를 방출한다), 궤도가 불연속적이니 빛의 파장도 불연속적이었던 것이다!!!

전자 또한 투페이스다

루이 드브로이는 전자도 빛처럼 이중성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 때문에 궤도가 불연속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을 들여다보자. 전자에 파장이 있다 생각했을 때 궤도의 둘레가 전자의 파장의 정수 배일 때만 궤도는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정수 배가 아니라면 파장의 끝과 끝이 맞지 않을 것이다(전자의 궤도가 원 모양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머릿속에 그려보자. 위키러들은 똑똑하니까 할 수 있다). 이때 끝과 끝이 맞지 않는 궤도들은 안정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궤도가 불연속적인 이유가 된다.

전자가 파동이면 이렇게 돼 버리는데?

개소리의 시작

입자는 한 점에 존재하지만 파동은 면 또는 공간에 걸쳐서 존재한다. 따라서 전자가 파동이라면 전자는 그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거다. 하나라며? 그러니까 하나가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한다고. 개소리의 서막이 올랐다.

실제로 닐스 보어를 위시한 당대의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데 듣는 사람이 빡치지를 않으면 당신이 잘못 설명한 거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때 과학자들은 파동이 발견 확률을 나타낸다 생각했다. 마루나 골 부분이 존재 확률이 가장 높고 축과 만나는 부분에서는 확률이 0이 된다. 그래도 여전히 전자는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가 전자를 관측하게 되면 전자는 한 곳에만 존재하게 된다. 이를 과학자들은 파동이 수축(파동이 마루 하나, 나머지 부분은 모두 축과 맞닿아 있는 상태)한다고 설명했다(코펜하겐 해석으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이지만 이견이 있다.). 결국 우리가 이 문단에서 알아가야 할 사실은 '관측 전의 전자는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하며 어디에 나타날지는 확률로만 예측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전자는 처음부터 거기에 있던 게 아니라 우리가 관측해서 그곳에 존재함이 확정되는 것이라는 소리다.

한술 더 떠 리처드 파인만은, 아예 당신이 전자를 관측해서 위치를 결정하기 전에 전자는 자기가 있을 수 있는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라는 이론을 세워버린다. 이게 양자역학에서의 계산 수요를 놀랍도록 줄여버린 경로적분 기법의 핵심 가정이라고.

그리고 슈뢰딩거 방정식

이 글을 고양이들이 싫어합니다

지금까지 들은 소리가 당신의 뇌를 주물럭거리느니 차라리 전자가 입자일 때가 낫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만두어라. 전자가 파동이어야만 불연속적인 궤도가 설명된다.

그리고 이 전자의 파동을 수학적으로 나타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슈뢰딩거이다. 파동으로서의 전자의 움직임을 나타낸 것이 파동함수이고 전자의 파동함수가 원자 내에서 어떠한 모습인가를 유도하기 위한 식이 그 유명한 슈뢰딩거 방정식이다(수식을 쓰는 법을 글쓴이가 모르므로 추가바람). 이 방정식 한 줄로 원자, 분자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불확정성의 원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도입한 가정이다. 양자 세계에서는 그 어떤 입자라도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그 이야기.

앞에서 말한 대로 관측 전의 위치는 불확실하다. 그런데 전자는 운동량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운동량도 불확실하다(밑에서부터는 불확실하다는 소리를 요동한다고 표현하겠다). 그리고 운동량의 요동이 증가할수록 위치의 요동이 감소하고 위치의 요동이 증가할수록 운동량의 요동이 감소한다. 즉 위치의 요동과 운동량의 요동의 곱이 일정 값보다 작을 수 없다는 거다(불확정성 원리 식 추가바람). 왜 그럴까? 전자가 파동이라 생각하고 넓은 슬릿과 좁은 슬릿에 빛을 쏜다고 생각해보자. 전자가 넓은 슬릿을 지날 때는 어디를 통해 갔는지 정확하게 알기가 힘들어진다(위치의 요동이 크다). 하지만 구멍의 크기가 커질수록 회절하는 정도는 줄어들기 때문에 운동량의 요동은 작다. 반대로 좁은 슬릿을 전자가 지나갔을 때 구멍의 크기가 작으므로 회절하는 정도가 크다. 대신 위치의 요동은 작다(지나갈 곳이 한 곳밖에 없으니까 거기로 지나간다고 생각해보아라). 슬릿의 크기를 조정하는 과정은 위치의 요동을 정확하게 하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운동량이 정확해질수록 위치의 불확실함은 커지고, 위치가 정확해질수록 운동량의 불확실함이 커진다는 말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불확실하다는 표현은 그냥 어디로 갈지, 있는지 모른다는 게 아니라 여러 상태가 공존하고 있어 우리가 어떤 모습을 보게 될지 확률적으로밖에 정하지 못한다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