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성씨)

(安, 顔)씨는 한국의 성씨 및 중국의 성씨다.

한국

(安)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서 637,786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8위이다. 본관은 문헌에 109본이 전해지나, 현존하는 본관은 순흥(順興)·죽산(竹山)·광주(廣州)·탐진(耽津)·신죽산(新竹山)·경주(慶州)·안동(安東)·수원(水原)·평안(平安)·순천(順川)·공산(公山)·태원(太原) 등 35본이며, 이 중에서 시조와 유래를 알 수 있는 본관은 10본이다. 순흥·죽산·광주의 3본이 대본이며, 순흥 안씨가 전체 안씨 인구의 과반수를 상회한다.

  • 광주 안씨(廣州安氏) 시조 안방걸(安邦傑)은 고려 태조 때 광주(廣州)의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대장군에 오르며 광주군에 봉해졌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 유력자들에게 성씨를 갖게 하는 정책에 따라 안(安)씨 성을 갖게 되었다. 2000년 인구는 43,609명이다.
  • 순흥 안씨(順興安氏) 시조 안자미(安子美)는 고려 신종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역임하고 신호위상호군(神虎衛 護軍)에 추봉되었다.[1] 안자미의 증손 안향(安珦)이 충렬왕 때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에 올랐다. 2000년 인구는 468,827명이다.
  • 구 죽산 안씨(竹山安氏)는 안준(安濬)과 안영의(安令儀)를 1세조로 하는 두 계통이 있다. 안영의(安令儀)의 증손 안전(安戩)이 고려 충렬왕 때 도지휘사(都指揮使)를 지냈다. 후손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안방준(安邦俊)이다.
  • 신 죽산 안씨(新竹山安氏)의 시조 안원형(安元衡)은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면서 나라에 공을 세워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 탐진 안씨(耽津安氏) 시조 안우(安祐)는 고려 공민왕 때 중서평장정사(中書平章政事)·추충절의정란공신(推忠節義定亂功臣)에 올랐다.[2] 2000년 인구는 23,282명이다.
  • 공산 안씨(公山安氏) 시조 안익(安翊)은 고려 때 찬성사(贊成事)를 지냈다. 2000년 인구는 1,678명이다.
  • 안산 안씨(安山安氏) 시조 안자유(安子由)는 고려 충목왕 때 첨의평리(僉議評理)를 지냈다. 2000년 인구는 872명이다.
  • 제천 안씨(堤川安氏) 시조 안적재(安迪材)는 고려시대 평리(評理)를 지냈다. 2000년 인구는 252명이다.
  • 주천 안씨(酒泉安氏) 시조 안정방(安挺方)은 고려 때 호장(戶長)을 지냈다. 2000년 인구는 308명이다.
  • 태원 안씨(太原安氏) 시조 안만세(安萬世)는 원나라 전서를 지냈다. 노국공주가 고려에 올 때 같이 와서 정착하여 공민왕 때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냈다. 2000년 인구는 1396명이다.

논란

  • 1999년에 편찬된 죽산안씨대동보에 따르면, 구 죽산 안씨의 시조로 알려지는 안방준(安邦俊)은 당나라 종실(宗室) 이국정(李國貞)의 아들인 이원(李瑗)의 장남 이지춘(李枝春)이며, 그는 864년(신라 경문왕 4년)에 이엽춘(李葉春), 이화춘(李花春) 형제와 왜구토벌에 큰 공을 세우자 안국지신(安國之臣)이라는 뜻에서 안씨(安氏) 성을 받았고, 이 때에 안방준으로 개명하고 죽산군(竹山君)에 봉해졌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신당서 70권의 당나라 종실 세계에는 이국정의 아들 중에 이원(李瑗)이라는 인물이 없다. 따라서 이국정 - 이원 - 이지춘으로 이어지는 1999년 죽산안씨대동보의 세계는 근거가 없다. 씨족원류 등의 옛 문헌에서 죽산 안씨의 맨 윗대로 언급되는 사람은 안준(安濬)과 안영의(安令儀)이다. 1919년 이후 모화사상의 영향으로 죽산 안씨 문중이 항간에 떠돌던 『농서이씨동래설(隴西李氏東來說)』이나 『죽산안씨 同源譜』라는 설(說)을 범례(凡例) 또는 별록(別錄)으로 기록하면서 “믿지 못한다 (尙難徵信)“라고 스스로 기록하였다.
  • 순흥 안씨 측에서는 시조 안자미(安子美)부터 안향(安珦)의 증손자인 안원숭(安元崇)까지 7세가 줄곤 독자(獨子)였기 때문에 신 죽산 안씨와 탐진 안씨가 시조라고 주장하는 안원형과 안원린은 순흥 안씨와의 계대를 짜맞추기 위한 가상 인물이라고 한다.[3]

중국

편안할 안 安

(安)씨 중국 성씨로 계통이 소수 민족 포함하여 10가지 정도의 계통이 있다. 중국에서는 우즈베키스탄/위구르족 지역을 안식국으로 불러 이 지역 사람들이 안씨가 되었지만 계별적으로 출신은 다르다. 당나라 무렵에 소그디아 안에는 안(安)국과 강(康)국이 있었다. 안씨에는 북위 선비족도 계통도 있으며, 선비 복성 가운데도 안지(安迟)라는 성이 있어서 줄였다고 한다.

  • 안세고(安世高)는 한나라 무렵에 파르티아/우즈베키스탄 왕족의 출신 승려로 후한에서 불교을 전파하였다.
  • 안현(安玄)은 안세고을 따라 온 승려 인데 안국 출신이라 안씨가 되었지만, 안세고와 같은 가계는 아니다.
  • 안지(安迟)는 북위 선비족 복성이다.
  • 안연언(安延偃)은 당나라 현종 때 소그디아 출신의 이란계 무장이다. 안록산의 양아버지이다.
  • '안록산" 당나라시절 안사의난을 일으킨 군사무장인 안록산(安祿山)의 친부는 소그디아 강(康)국 출신으로는 소그드인 강씨였다. 안연언의 양아들이 되어 안씨가 되었다. 어머니는 돌궐족이다.
  • 안중회(安重誨)는 후당의 총리였다. 후당 황제 이종후, 군권을 맡은 주홍소(朱弘昭)는 위구르족 출신이었다. 안중회 가문은 이종후와 주사적심과 가까운 인척 관계이다. 중국 기록에 의하면 설연타/셀렝가 출신의 위구르족 들이 당나라에 귀화하여 안씨가 되었다고 한다.
  • 중국 소수 민족 이족이 명나라 때 안씨로 창성하였다.
  • 청나라 때 몽골족다우르족이 안씨로 병경하였다.
  • 기타 당나라 때 선비족으로 전하는 해인(奚人)이라는 사람이 안씨로 변성했다고 한다. 또한 안씨에는 출신을 알 수 없는 외국 사람도 많다고 한다.
顔 낯 안

(顔)씨는 공자의 제자 였던 안회(顔回)에 연원을 둔다. 인물로는 후한원소 진영의 무장 안량, 당나라 현종 때 서예가 안진경(顔眞卿)이 있다. 안진경(顔眞卿)은 당나라 현종안녹산(安祿山)의 반란을 방어하였다. 이들은 당나라 리왕조와 매우 친화적인 가문이다.

안씨 성을 가진 인물

각주

  1.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69〉안씨(安氏)·순흥안씨(順興安氏) 토속 성씨 순흥안씨, 고려 때 시조 증손 안향 이후 크게 번성, 세계일보, 2014년 3월 11일
  2.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72080 『高麗史』 卷 一百十三, 列傳 二十六]
  3. 안재홍 (2009년 7월 21일). 《순흥 안가는 없다》. 다락방. ISBN 978897858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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