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즈 다카코


시마즈 다카코
島津貴子
인물 정보
다른이름 스가노미야 다카코(결혼 전 이름)
출생 1939년 3월 2일 (85세)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고쿄(왕궁)
국적 일본
학력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영문과(중퇴)
직업 왕족(공주) → 일반인
종교 신토
배우자 시마즈 히사나가
가족 할아버지 다이쇼 일왕, 할머니 데이메이왕후(사다코)
아버지 쇼와(히로히토) 일왕, 어머니 고준왕후(나가코)
첫째 언니 히가시쿠니 시게코, 둘째 언니 히사노미야 사치코 공주, 셋째 언니 다카츠카사 가즈코, 넷째 언니 이케다 아츠코, 큰오빠 아키히토 상왕, 작은오빠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왕자
아들 시마즈 요시히사, 며느리(캐나다인), 손자 1명, 손녀 1명
활동기간 1960년 결혼으로 왕족 신분 이탈

일본의 前 왕족(공주). 나루히토 일왕의 막내 고모. 오시루시이다.

출생과 성장[편집 | 원본 편집]

1939년 3월 2일, 히로히토(쇼와) 당시 일왕과 나가코 왕비(고준왕후)의 2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칭호는 ‘스가노미야(淸宮)’, 이름은 ‘다카코(貴子)’로 지어졌다. 훗날 그녀는 ‘오스타짱(おスタちゃん)’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어칭호 스가노미야에서 ‘스’를, 이름 다카코에서 ‘다(타)’를 따서 지어진 것이다.

첫째부터 넷째까지 줄줄이 딸만 낳아서 구박을 받던 나가코 왕비는 마침내 다섯째와 여섯째로 아들을 낳아서 한숨 돌릴 수 있었고, 덕분에 스가노미야 다카코 공주는 어머니의 마음이 한결 편안할 때 태어나 언니들보다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다카코 공주는 일본 왕실의 전통에 따라 친부모와 떨어져 언니들과 함께 공주들을 위한 거처인 쿠레타케료(烏竹寮)에서 유모와 담당 시녀들에 의해 양육되었는데, 바로 위의 언니인 요리노미야 아츠코 공주보다도 8살이나 어려서 많은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났다. (큰오빠 쓰구노미야 아키히토 왕자와 작은오빠 요시노미야 마사히토 왕자는 다른 처소에서 생활했다.) 히로히토 일왕 내외와 7남매는 주말에나 모두 모일 수 있었는데, 여기서도 막내인 다카코 공주는 부모와 언니들과 오빠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이러한 성장 배경 덕분에 형제들과 달리 다카코 공주는 밝고 명랑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화려한 언동으로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것을 좋아했다.

결혼[편집 | 원본 편집]

맏언니 데루노미야 시게코 공주는 1943년에, 셋째 언니 다카노미야 가즈코 공주는 1950년에, 넷째 언니 요리노미야 아츠코 공주는 1952년에 시집갔고, 쿠레타케료에는 다카코 공주만 남게 되었다.[1]

시게코 공주는 방계 왕족에게 시집가서 결혼 후로도 왕족 신분을 유지했지만,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하고 2년이 지난 1947년에 이루어진 대규모 신적강하로 방계 왕족들과 화족(귀족)들은 모두 평민으로 강등되었다. 시게코 공주 역시 평민 히가시쿠니 시게코로 신분이 바뀌었고, 그녀의 여동생들은 결혼하면 왕실을 떠나 평민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왕실에서 정해준 공주들의 결혼 상대는 말이 평민이지, 다들 (신적강하 이전) 옛 화족 가문의 아들이었다.

다카코 공주의 남편이 된 시마즈 히사나가(島津久永)는 일본수출입은행 직원으로, 아키히토 왕세자의 가쿠슈인 동창이며 친한 친구였다. 또한 시아버지 시마즈 히사노리(島津久範)는 다카코 공주의 외할머니인 구니 치카코(久邇俔子)의 남동생으로, 다카코 공주의 어머니인 나가코 왕비에게는 외삼촌이 된다. 즉 (맏언니 히가시쿠니 시게코와 마찬가지로) 다카코 공주는 5촌 당숙과 결혼한 것이다.

약혼 발표 기자회견 당시 다카코 공주는 밝고 명랑한 태도로 “내가 선택한 신랑을 보세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물론 그녀의 신랑은 왕실에서 골라준 상대였지만, (맏언니 시게코와 달리) 결혼 전에 일정 기간 만나며 교제를 해보았기 때문이다.[2] 다카코 공주의 이 발언을 계기로, 당시 일본에서는 연애결혼이 더욱 증가했다고 한다.

1960년 3월 10일,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21세의 다카코 공주는 학교를 중퇴하고 히사나가와 결혼했다.[3] 그녀는 이제 평민 시마즈 다카코가 되어 왕족 신분을 이탈했다. 작년 4월 쇼다 미치코와 결혼한 큰오빠 아키히토 왕세자가 2월 23일 첫아이 히로노미야 나루히토 왕자를 낳은 데 이어 다카코의 결혼까지, 일본에는 경사가 겹쳤다. 하지만 불과 1년 후에 맏언니 히가시쿠니 시게코가 만 35세의 젊은 나이에 어린 3남 2녀를 두고 병으로 죽었고, 1965년부터는 넷째 언니 이케다 아츠코가 장기간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투병했고, 1966년에는 셋째 언니 다카츠카사 가즈코가 남편의 불륜과 사별을 겪는 등, 연이어 불행이 이어졌다. 천벌

결혼 이후의 생활[편집 | 원본 편집]

결혼 이후로도 다카코는 화려한 언동과 생활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이러한 행보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가 남편과 함께 여행한 지역이 인기 여행지로 떠오르기도 했고, 큰올케 미치코 왕세자비가 그랬던 것처럼 다카코의 패션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미치코 왕세자비 및 당대의 여배우들과 함께 세련된 패션으로 이름을 날렸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미국호주 등의 외국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1970년에는 인테리어 코디네이터 자격을 취득하여 도쿄 프린스호텔 내부의 ‘피사’라는 쇼핑몰에 취직했다. 왕족 출신이 민간 기업체에 취업한 것은 처음이라서 화제가 되었다. 다카코는 나름대로 직장생활을 즐겼고, 프린스호텔에서 명예임원까지 지냈다.

TV와 라디오에 출연하고, 신문 및 잡지와도 인터뷰하는 등, 각종 매체와의 접촉도 꾸준했다. 2005년 큰오빠 아키히토 일왕의 딸 노리노미야 사야코 공주가 구로다 요시키(黑田慶樹)에게 시집갈 때도, 막내 고모인 다카코는 각종 방송에 게스트로서 출연하여 왕실의 생활 및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납치 미수 사건[편집 | 원본 편집]

1963년 10월 26일, 다카코를 납치하여 몸값 5,000만 엔을 요구하려고 했던 남성이 체포되었다. 1970년에도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다. 다카코뿐 아니라 사별하여 혼자서 생활하던 셋째 언니 다카츠카사 가즈코도 강도의 습격을 받았고, 이후 친정(왕궁)으로 돌아가 1989년 사망할 때까지 살았다. 연이어 시집간 공주들에게서 사고가 발생하여, 이후부터 일본 왕실에서는 시집가서 평민이 된 공주들에게도 경호를 해주고 있다.

자녀[편집 | 원본 편집]

외아들 시마즈 요시히사(島津禎久)는 1962년 4월 5일 (62세)생이다. 부모를 따라 미국호주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이후 미국과 이탈리아에서도 공부하여 사진작가가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평화, 환경, 빈곤, 사회문제 등을 주제로 작업했고, 노인과 장애인에 관한 사진들도 촬영했다.

현재 그는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고, 1990년대에 결혼한 캐나다인 아내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고 있다.

각주

  1. 둘째 언니 히사노미야 사치코(久宮祐子) 공주는 생후 6개월이던 1928년 3월에 병으로 요절했다.
  2. 히가시쿠니 시게코가 맞선 한 번 없이 어른들이 정해준 사람과 결혼하여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기에, 이후 일본 왕실에서는 공주들을 시집보낼 때 (형식적으로나마) 맞선과 데이트 등의 교제 과정을 거치도록 했다.
  3. 당시 일본에서는 결혼을 위해 학교를 중퇴한 사람도 졸업생으로 취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