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사회체계이론 알기

이제 나무위키랑 루만 입문서를 안봐도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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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라스 루만은 일찍이 자신의 사회와 법에서 트롤질을 남겼습니다. '사회은 복잡하고, 이렇게 복잡한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이론이 필요하다', 즉 이런 말을 던졌으나, 우리는 이 복잡한 사회에서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체계이론을 알아야 겠습니다. 그래서 리브레의 사회체계이론 알기에서는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체계이론을 다루며, 복잡성은 매우 떨어져 있는 상태로 제공됩니다. 이 글의 타겟은 루만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닌, 루만의 사회체계이론이 어떻게 동작하는가에 대해서 안목을 기르기 위한 글입니다. 복잡성이 어느 정도 살아있는 정보를 원하시는 분들은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의 사회라던가, 사회체계입문 같은 저서를 빌려보심을 추천드립니다.

간단하게 왜 루만이 이렇게 복잡한 걸 들고왔냐... 간단합니다. 사회학의 밑뿌리에서부터 확 뒤집어 올리기 위해서지요

목차[편집 | 원본 편집]

준비물[편집 | 원본 편집]

루만의 이론을 간단하게 알기 위해선 몇가지 도구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도구들은 문과를 위해서 만들어진게 아닙니다. 즉 이과들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를 사회학에 들고온 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수 있습니다.

사이버네틱스[편집 | 원본 편집]

사이버네틱스는 노버트 위너가 만든 학문으로, 메시지 전달에 대한 학문을 가리킵니다. 즉 사이버네틱스는 메시지 전달을 하면서 사람들은 계속 피드백을 날리고 그 피드백이 쌓인다는 것에 전제를 두고 있습니다. 루만의 책에서 말하는 2차적 사이버네틱스는 이 1차적 사이버네틱스를 관찰한 사이버네틱스(즉, 자기준거)를 가리키는 말이며, 이 자기 준거는 다시 스펜서-브라운의 재돌입으로 다시 체계로 돌아갑니다.

자기생산적 사회체계 이론[편집 | 원본 편집]

칠레의 움베르토 마투라나의 자기 생산 이론(autopoiesis)를 사회체계이론에 도입했습니다. 자기생산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포괄합니다.

  1. 자기생산 체계는 자기구성 요소로부터 자기구성 요소를 재생산한다.
  2. 자기생산 체계는 스스로 환경과 경계를 긋는다.
  3. 자기생산 체계는 자기구성 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변형해나가며(자기준거), 다음 단계에서 변형한 지점이나 상태로 진입한다(재돌입)

사회체게이론에서는 사회는 전체보다 더 큰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1] 이런 사회는 이런 부분들로 이뤄진 체계(System)들로 이뤄져 있으며, 이런 체계들은 오직 소통(Kommunikation)[2]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소통을 통한 피드백으로 진화합니다. 즉, 인간이 중심이 된 이론이 아니라 체계와 체계가 주고받는 소통이 중심인 이론입니다. 인간은 여기서 여러 체계에 교집합을 가진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이런 사회체계들은 체계와 환경간의 경계를 구성하고 나아가 환경의 우연적 가능성들과 체계 자신의 우연성들 간의 차이를 안정화 시킵니다.

간단하게 보자면 사회체계 및 포괄적 사회는 집단들로 이루어져 있다기 보다는 행위(내지는 소통)체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실수 있습니다.

루만의 이론은 거시적 이론으로, 이 이론에서 '인간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체계와 소통만 존재합니다.'

소통[편집 | 원본 편집]

그리고 이런 소통으로 인해서 이 체계들은 차츰차츰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해 나갑니다. 이런 체계들은 어떤 고정된 사물이 아니라 '작동'에 의해 스스로를 생산하고 또 재생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루만의 이론에서 소통은 정보 - 통지 - 이해 3가지가 포함되어 있어야 소통으로 봅니다. 이런 체제를 형성시키고 체계와 환경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결정적인 과정은 체제의 작동 방식입니다. 체계는 작동의 연결과 작동 사이의 추론 관계, 즉 다음번 인식이 무엇이 될 것이며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등을 항상 체계 내부에서 찾아야만 합니다. 즉 체계는 전적으로 그리고 완벽하게 내재적 작동에 기초하고 있지요.

즉 체계는 오로지 자신의 고유한 작동만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체계 내에는 오로지 체계 자신의 작동(Operation)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 작동은 단 두 가지를 위해 이뤄집니다. 체계 나름의 구조를 형성하고, 또한 체계의 역사적 상태를 규정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의 작동만 사용합니다. 또한 소통은 완벽한 배제를 함으로서 재생산 될수 있는 도구가 됩니다. 즉, 소통으로 다시 재생산 하는 건 기타 잡다한 것들을 다 빼버려야(배제) 가능하지요. 루만의 재귀준거개념은 어떤 단위가 자기자신에 대한 요소이자 과정인 동시에 체계로서도 존재하는 단위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서 경제 체제 혹은 경제 시스템에서는 화폐를 소통매체로 사용하고, 제가 이 에스프레소를 마시겠다는 것도 이렇게 표현됩니다.

  • 정보 - 이 커피는 5000원인데 커피값이 있나?
  • 통지 - 이 커피는 5000원 이구나...
  • 이해 - 5000원이 없다면 거부되는 것이고, 5천원이 있다면 커피를 사는 것입니다.

즉, 커피값이 있으면 이게 정보가 됩니다. 이를 양가적(커피값이 있다 / 커피값이 없다)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정보가 알려지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지라고 합니다. 이렇게 알려진다음 이해를 하게 됩니다. 즉, 커피 값이 있으면 거부되는 것이고, 커피 값이 있다면 커피를 사는 것이지요. 여기서 한 가지 더 보자면, 커피값이 있어서 커피를 사는 것도 소통이지만, 커피 값이 없어서 커피를 못사는 경우, 혹은 커피를 안사는 것도 소통이 됩니다. 덤으로, 커피를 먹겠다/안사겠다/에잉 버려 등등 하는 선택은 주체가 없는 과정으로서, 분화를 정립하는데 야기되는 연산작동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덤으로 이런 정보의 선별성이 없다면 어떤 소통 과정도 성립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누군가는 이 정보를 통보해주는 행동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Kommunikation 을 가리켜 의사소통이라고 읽는 건 이 사회체계이론에서 빵점 혹은 정보를 잘못 이해했다는 것이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튼, 이런 환경에서 커피를 사먹다가 커피만으론 그러니까 디저트 체제가 나올수도 있습니다. 즉, 이렇게 기능적 분화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기능적(Functional) 분화는 사회에서 의미 형성의 세 가지 차원을 서로 독립시켜 소통의 기초적인 맥락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즉, 소통을 새로 생성하는 것이지요. 또한 독립분화된 체계(환경이 아닙니다)가 전체체계를 위해 충족하는 기능이라는 통일성 관점 아래 체계와 환경의 차이가 독립 분화되어 있다는걸 뜻합니다.

이런 환경과의 소통을 계속하다보면 사회는 진화하게 됩니다. 네 사회진화론이지요. 지그문트 바우만은 루만이 사회학에 미친 영향으로 이 자기생산 요소를 가져왔다는걸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복잡성[편집 | 원본 편집]

일단 환경은 엄청나게 큰 집단이고, 인간의 머리속으로는 계산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루만은 복잡성을 '가능한 사건들의 총합'으로 이해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런 복잡성을 줄여서 인간의 인지 능력간의 간극을 메우는 것을 가리켜 체계라고 부릅니다. 인터넷은 넓고, 리브레 위키라는 사이트가 있으면, 리브레위키는 하나의 체계입니다. 리브레위키는 복잡성을 줄이면서 또한 환경에 대한 정보도 인지능력의 부재로 인해 날리게 되면서 알맞은 소통 매체, 즉 '문서'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런 소통매체, 즉 리브레위키는 사회적 연관들의 증가된 복잡성을 다시 체계 내적인 맥락에서 축소하는데 기여하고, 그로써 우연성에도 불구하고 행위의 지속성을 보장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소통매체는 일반적으로 루만이 언급한 기능적 분화를 통해 또는 기든스가 언급한 탈지역화를 통해 체계의 복잡성을 증가시키고, 나아가 전체 사회의 복잡성 증가를 촉진시키게 됩니다.

이과적으로 다시 봅시다. 이과에서는 엔트로피와 네겐트로피란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체계는 무질서도를 낮추는 네겐트로피적 행동을 취합니다. 그리고 네겐트로피적 소통을 하고 말이죠. 이런 복잡성을 줄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술책들이 나오는데 물론 이런 복잡성을 줄이면 메시지가 더 잘 전달될수 있게 되겠지요. 앞서 설명했지만 모든 소통에는 응답거부 도 소통에 포함됩니다. 이런 응답거부가 체계안의 엔트로피를 다시 만드는 것이지요. 루만은 여기서 '신뢰'를 복잡성 해소 도구의 하나로 봤습니다. 즉, '너의 소통은 언젠간 틀릴수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옳다고 받아들여진다' 를 늘린거라고 볼수 있습니다.

루만의 이 소통 개념은 관련 책이 영어로 번역되면서 사회학에서 신뢰 연구가 본격화 되게 되었습니다.

체계의 자기준거와 타자준거[편집 | 원본 편집]

위에서도 말했지만, 소통은 단순한게 아닙니다. 체계는 소통을 거치면서 자기준거를 거칩니다. 이런 자기준거는 작동적 층위에서 체계들 자신들의 고유한 작동들을 모든 다른 것과 구별할 수 있음을 뜻하며, 체계 층위에서는 그 체계가 내적으로 체계와 환경의 구별을 갖고 있음을 뜻합니다. 여기서 자기준거를 통보라고 볼수 있고, 타자준거를 가리켜 정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설명하자면, 사회체계이론 정보의 핵심을 다른 곳에서 가져와서(타자준거), 이 리브레위키의 체계에 맞게 맞추는 것이 자기준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자기준거와 타자준거는 스펜서 브라운의 재돌입을 하게 됩니다. 좀 여기부터 말이 어려운데, 소통을 하면서 관찰에 대한 관찰을 하는 2차적 사이버네틱스 단계로 넘어가고, 여기서 소통은 체계로 다시 재진입하게 됩니다. 여기서 나가는 소통과 내부로 다시 들어오는(Retry) 소통은 다른게 없습니다. 서로 같은 소통이니까요. 재귀준거개념은 어떤 단위가 자기자신에 대한 요소이자 과정인 동시에 체계로서도 존재하는 그런 단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후 특정한 유형의 작동이 시작되고, 그것을 뒤따르는 다음 작동이 일어난다면, 즉, 다시 말해서 작동이 연결 가능성을 가지고 동일한 유형의 작동이 뒤따르는 결과를 나타내면 체계가 성립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프로그램이 하나 등장합니다. 즉, 특정한 유형의 작동이 시작되고 다음 작동으로 연결해주는 장치죠.

또한 복합적인 사회체계에서 일어나는 소통은 이미 전제된 구조와의 타자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준거에 의해서 작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루만은 이 소통의 자기준거를, 특히 결정 형식에 의해 '현재의 미래'와 '미래의 현재'의 차이로 전환합니다.

프로그램 / 코드[편집 | 원본 편집]

체계에는 프로그램이 존재합니다. 이런 프로그램은 소통으로 일어난 행위에 대해서 일종의 면역기능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처음 드립하는 이런 사회체계이론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던지면, 그 사람의 인식체계는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방어적으로 소통하게 됩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은 일종의 판단기능을 수행합니다. 즉, 이 소통이 관련 소통체계의 언어가 아니라면 버리고, 관련 소통체계의 언어를 가져옵니다. 만약 두개가 필요한데 없다면? 기능적 분화를 하여 그 둘을 연결하는 새로운 체계를 만듭니다. 즉, 프로그램은 체계의 뇌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참고 문헌[편집 | 원본 편집]

  • 니클라스 루만, 체계이론 입문
  • 니클라스 루만, 사회이론 입문
  • 노진철, 불확실성의 시대의 위험 사회학

각주

  1. 기존 사회학에서는 부분은 전체의 집합보다 작다라고 합니다
  2.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과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루만의 소통은 말로 하는 소통 뿐만 아니라 모든 행위에 대한 소통을 포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