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라

(隋)는 581년부터 619년까지 존재하였던 중국의 통일 왕조이다. 진나라 다음으로 짧은 중국의 통일 왕조이며 남북조시대를 종결시켰으나 무리한 고구려 침공과 대규모 운하 건설 등의 토목 공사로 인해 나라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37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어이구

그러나 이것은 당나라에 의해 과장된 면도 있었을 수 있다. 수나라가 망하는 과정은 통계적으로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수나라의 전성기 때에 경작 면적은 당나라는 물론 인구 등이 더 많았던 후대의 왕조도 능가했다가 당나라 때 딱 적당한 수준[1]으로 떨어진다.

위의 자료를 보면 수양제 때 청나라에 맞먹을 정도로 경작지가 뻥튀기가 되며 당나라 때 나름대로 적정 수준으로 감소한다. 당의 입장에서 기록된 사서에는 수양제가 저능아처럼 묘사되는 면이 있고 실제로는 폭군이긴 해도 능력은 뛰어났을 수도 있다. 실제로 수양제는 유독 고구려에서 실패했으나 대부분 원정을 성공했다. 내전 때도 당나라는 양제처럼 하면 망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묘사했으나 상황만 보면 생각보다 잘 대응하고 있었다. 고구려 원정[2]이 망한 후에 고구려 원정에 참여하거나 그럴 예정이던 군대[3]부터가 반란을 일으키고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나도 수나라 정부는 꽤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군사력만 보면 최강자 라인[4]이라 이밀[5][6][7]에게 숙이던 이연이 수나라를 흡수하고 얻게 된 20만 대군을 기반으로 결국 중국을 통일했다.

각주

  1. 당나라 건국 세력이 수나라가 정치를 같이 해서 엄청난 부귀를 다 말아먹었다고 선전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2. 일본서기의 고구려 사신에 의하면 보급까지 포함해 최대 330만 명을 한 번에 고구려에서 잃었다는 당나라가 한 기록과 다른데 고구려-수나라 전쟁도 고구려-당나라 전쟁처럼 대군이 연속해서 공격했었을 수도 있다.
  3. 그들은 성과없이 고구려와 계속되는 전쟁에 불만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4. 수양제는 외부 세력에 의한 군사적 패배가 아니라 내부에서 통수 맞고 뒤졌다.
  5. 20만 대군을 가지고 있어 숫적으론 가장 강했고 이연도 거짓으로 신하가 되겠다고 항복했을 정도이나 10만 대군을 가지고 있던 왕세충에게 10만 vs 5만으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다 일방적인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당하여 남은 세력을 가지고 수나라 세력을 장악한 이연에게 항복한다.
  6. 보병 지휘관으로 뛰어난 편이었으나 다른 주요 라이벌들에 비해 유목 세력과 인연이 없어서 기병이 약했고 그것이 결국은 결정적인 패인으로 작용했다. 당나라도 이밀의 부하였으나 유목민들을 항복시켜서 기병 전력을 얻게 한 이세적을 이밀보다도 실질적으로 더 대우했다.
  7. 중국 역사상 중국 대륙 전체를 통일한 국가 중에 기병 전력이 라이벌에 비해 약했던 나라는 한과 명밖에 없으며 그나마 한나라는 유목민에 대한 대우 등에서 기병 전력을 중시하는 모습이 보이고 한족 왕조로서는 말도 안 되는 기병 전력을 보유하기도 했다. 중국 통일 왕조 중에서 기병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별로 안 좋았던 나라는 명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