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Log7^7jkay

Log7^7jkay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11월 5일 (목) 00:38 판 (새 문서: 지금은 타이완만 통치하는 국민당의 초대 총통. 개석(介石)은 자(字)이며 실제 본명은 중정(中正)이다. 학명(學名)은 지청(志淸),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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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타이완만 통치하는 국민당의 초대 총통. 개석(介石)은 자(字)이며 실제 본명은 중정(中正)이다. 학명(學名)은 지청(志淸), 장씨 족보에선 장주태(將周泰)로 적혀있다. 본명보단 자인 장개석으로 유명하며 실제 중국 본토에서도 장개석의 현지 발음인 장제스(Jiang Jieshi)라 부른다.

상세

유년기엔 일본으로 유학하여 군관학교를 졸업했고 1912년 본토에서 제정을 폐지시키는 신해혁명에 가담했으나 손문을 속이고 황제를 선포한 원세개의 축출엔 실패하여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다음, 그곳에서 전전하다 중국으로 돌아와 황포군관학교를 세워 자신만의 기반을 만든다. 이후 스승인 손문이 사망하자 중산함 사건을 계기로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내에서 힘이 강했던 왕정위를 몰아낸 다음 국민당 1인자가 되어 북벌을 감행해 원세개 이후 중국의 마지막 전국시대인 근대 군벌시대를 종식시켜갔고, 최종적으론 봉천군벌[1]의 장학량이 일본의 압박으로 국민당에 투항하자 중국을 다시 통일했으며 법 제정의 통과를 두고 그것에 반대한 염석산, 풍옥상의 반란을 진압해 1인자의 입지를 다졌으나 곧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장학량의 만주를 빼앗고 그곳에 전(前) 청나라의 황제였던 선통제를 꼭두각시 황제로 세워 만주국을 선포, 중국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소멸 직전의 공산당을 치기 위해 서안(西安)까지 이동하여 국민당군을 지휘하려 했으나 빼앗긴 만주 수복이 아닌 공산당 축출만을 앞장서는 장개석에 반감을 품은 장학량이 그를 감금하여 강제로 항일을 목적으로 하는 국공 합작을 체결시킨다. 곧 노구교 사건이 일어났고, 일제가 이를 빌미삼아 중국을 본격적으로 침략하자[2] 낙후된 인프라, 미발달된 농업 국가, 보급의 한계에 부딪혀 화북, 수도인 난징까지 빼앗겨 난징대학살이란 피해까지 겪었으나 약 8년간의 긴 항쟁에 일본이 연합국에게 항복하여 중국 보존에 성공한다.

한편 국공합작 당시 국민당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한 공산당은 중일전이 끝나자 마자 다시 내전을 재개해 국민당을 공격했다. 이전 중일전쟁의 후유증과 여러 개혁정책의 실패로 인한 민심 하락은 국민당을 약화시키게 했고 공산당에게 처참하게 밀리는 모습을 본 미국마저 지원을 중단하기까지 이른다. 서서히 대륙을 상실하자 마지막엔 대북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본토 수복을 꾀한다. 하지만 수복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대만으로 이동한 후 자신에게 반발하는 원주민들을 학살해 자신의 독재를 강화했다.

비록 커다란 대륙을 잃고 국가적 위신마저 실추당하기까지 했으나 본토 수복과 명(命)을 보존한 국민당의 발전을 위해 경제 성장, 문맹 퇴치, 부정부패 척결을 실시, 성공했고 대만을 용(龍)의 반열에 올리기까지 하는 대업을 이루기도 했다. 대만을 통치하던 장개석은 1975년 89세로 사망하였다.

생애

초년

  1. 만주 일대를 장악했다.
  2.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일부.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