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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인도 제도에 있었던 원양항해가 가능한 군함은 ''HNLMS Soerabaja''로 함명을 변경한 [[드 지벤 프로시비엔급 연안방위함]], 세 척의 순양함과 여러 척의 구축함 그리고 섬의 방어를 위해 존재한 잠수함 함대뿐이었다.
하지만, 동인도 제도에 있었던 원양항해가 가능한 군함은 ''HNLMS Soerabaja''로 함명을 변경한 [[드 지벤 프로시비엔급 연안방위함]], 세 척의 순양함과 여러 척의 구축함 그리고 섬의 방어를 위해 존재한 잠수함 함대뿐이었다.


네덜란드 당국은 전쟁이 발발하면 일본의 주력함들은 [[미국]]과 [[영국]]의 견제를 위해 빠지게 되면서 일본이 동인도 제도를 공격할 때에는 순양함들로만 공격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하지만, 순양함들만 남았다 하더라도 일본의 전력은 네덜란드가 이기기에는 화력과 물량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1944년을 기준으로, 네덜란드 순양함 5척으로 일본의 중순양함 18척과 경순양함 27척을 상대해야할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네덜란드 당국은 전쟁이 발발하면 일본의 주력함들은 [[미국]]과 [[영국]]의 견제를 위해 빠지게 되면서 일본이 동인도 제도를 공격할 때에는 순양함들로만 공격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하지만, 순양함들만 남았다 하더라도 일본의 전력은 네덜란드가 이기기에는 수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1944년을 기준으로, 네덜란드 순양함 5척으로 일본의 중순양함 18척과 경순양함 27척을 상대해야할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네덜란드 해군에 더 강력한 군함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 일본의 순양함 전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3척의 ''Super Cruiser''를 건조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체결된 워싱턴 해군 조약과 런던 해군 조약에 따르면 조약 체결 이후 건조되는 순양함은 1만톤 이하의 배수량과 8인치 미만의 함포 구경을 지니게 제한이 가해졌는데 비교적 규모가 작은 네덜란드 해군에 있어서 조약의 내용에 간섭 받을 일은 없었다. 이후, 네덜란드 해군 소속의 정보요원은 일본의 순양함이 주력함 함대에 합류하는 대신 수상기 모함과 함께 움직인다는 정보를 전했다.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네덜란드 당국은 순양전함에 대한 함재기의 공습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게다가 새로운 순양전함을 통해 동인도 제도의 네덜란드 함대를 지원하여 적들의 강습상륙이나 적군 구축함의 습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네덜란드 해군에 더 강력한 군함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 일본의 순양함 전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3척의 ''Super Cruiser''를 건조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체결된 워싱턴 해군 조약과 런던 해군 조약에 따르면 조약 체결 이후 건조되는 순양함은 1만톤 이하의 배수량과 8인치 미만의 함포 구경을 지니게 제한이 가해졌는데 비교적 규모가 작은 네덜란드 해군에 있어서 조약의 내용에 간섭 받을 일은 없었다. 이후, 네덜란드 해군 소속의 정보요원은 일본의 순양함이 주력함 함대에 합류하는 대신 수상기 모함과 함께 움직인다는 정보를 전했다.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네덜란드 당국은 순양전함에 대한 함재기의 공습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게다가 새로운 순양전함을 통해 동인도 제도의 네덜란드 함대를 지원하여 적들의 강습상륙이나 적군 구축함의 습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2016년 3월 6일 (일) 17:1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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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장1 - 설계안 1047 순양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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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안 1047(Design 1047) (또는 1047 계획(Project 1047)) 순양전함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네덜란드에서 설계된 순양전함으로 일본 제국의 동인도 제도 식민지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설계가 시작되었다. 당시 네덜란드의 정보요원들은 일본 해군이 적국인 미국영국에 대응하기 위해 군함 배치의 변경이 있을 것이라는 첩보를 얻고 그에 맞춰 함대를 이뤄 싸울 수 있는 순양전함을 설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결정에 맞춰 네달란드 국방부장관은 2~3가지의 순양전함 설계를 주문하였지만, 네덜란드는 이전까지 근대적인 주력함을 설계한 적이 없었기에 순양전함의 설계는 전적으로 공개된 문헌과 제인연감(Jane's Fighting Ships) 같은 간접적인 방식에 의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는 괜찮은 결과를 얻을 수 없었고, 다른 예비 설계안이 1939년 7월 11일에 완성이 되었다. 하지만, 예비 설계안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적인 전함의 설계방식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었고 특히 장갑구조에 있어서는 매우 뒤처진 설계였다.

결국, 네덜란드는 독일과 협정을 체결하여 독일의 순양전함 개념을 반영시킨 설계안을 받는 대신, 모든 장비의 제작은 독일 회사가 맡게끔 하였다. 1940년 2월에는 구체적인 설계안에 등장했고, 이탈리아에 방문한 이후인 1940년 4월 19일에는 함선 내부 설계를 재구상하였다. 해당 설계 계획은 독일의 네덜란드 침공과 점령기간 동안 진행되었지만 실제 건조로 이어지지 않았다.

제원

  • 배수량 : 27988톤
  • 전장 : 241.2m
  • 선폭 : 30.85m
  • 흘수 : 7.8m
  • 출력 : 4축 기어터빈, 보일러 8기로 추정 (160,000마력 또는 180,000마력)
  • 속도 : 최대 34노트
  • 무장
    • 3연장 283mm 포탑 3기
    • 2연장 120mm 45구경장 포 6기
    • 2연장 40mm 보포스 대공포 7기
    • 20mm 오리콘 대공포 8기
  • 장갑
    • 선측
      • 주선측 : 9인치(225mm), 72도 경사
      • 상부 : 1.6인치(40mm)
    • 세로방뢰격벽 : 1.6인치(40mm)
    • 갑판
    • 상갑판 : 0.79인치(20mm)
    • 장갑갑판 : 0.59인치(15mm) + 4인치(100mm)
    • 하갑판 : 1인치 (30mm)
    • 보일러실 상부
      • 주갑판 : 8.9인치(225mm) 격자
      • 하갑판 : 3인치(75mm)
    • 사령탑 : 5.9인치(150mm)
    • 조타실 : 5.9인치(150mm)
    • 주포탑 바벳 : 10인치(250mm)
    • 부포탑 바벳 : 3인치(75mm)

배경

1931년, 일본이 만주 침략을 감행하게 되면서 네덜란드 당국은 동인도 제도 식민지의 방어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동인도 제도 식민지로 자바, 수마트라, 보르네오, 그리고 뉴기니 제도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해당 식민지에는 네덜란드인 50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고무와 석유 같은 천연자원의 공급지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동인도 제도에 있었던 원양항해가 가능한 군함은 HNLMS Soerabaja로 함명을 변경한 드 지벤 프로시비엔급 연안방위함, 세 척의 순양함과 여러 척의 구축함 그리고 섬의 방어를 위해 존재한 잠수함 함대뿐이었다.

네덜란드 당국은 전쟁이 발발하면 일본의 주력함들은 미국영국의 견제를 위해 빠지게 되면서 일본이 동인도 제도를 공격할 때에는 순양함들로만 공격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하지만, 순양함들만 남았다 하더라도 일본의 전력은 네덜란드가 이기기에는 수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1944년을 기준으로, 네덜란드 순양함 5척으로 일본의 중순양함 18척과 경순양함 27척을 상대해야할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네덜란드 해군에 더 강력한 군함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 일본의 순양함 전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3척의 Super Cruiser를 건조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체결된 워싱턴 해군 조약과 런던 해군 조약에 따르면 조약 체결 이후 건조되는 순양함은 1만톤 이하의 배수량과 8인치 미만의 함포 구경을 지니게 제한이 가해졌는데 비교적 규모가 작은 네덜란드 해군에 있어서 조약의 내용에 간섭 받을 일은 없었다. 이후, 네덜란드 해군 소속의 정보요원은 일본의 순양함이 주력함 함대에 합류하는 대신 수상기 모함과 함께 움직인다는 정보를 전했다.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네덜란드 당국은 순양전함에 대한 함재기의 공습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게다가 새로운 순양전함을 통해 동인도 제도의 네덜란드 함대를 지원하여 적들의 강습상륙이나 적군 구축함의 습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설계

1938년, 네덜란드 해군의 고위관료는 해군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였고 논의 끝에 네덜란드 국방부는 1939년 2월 18일, 2척 또는 3척의 순양전함 설계를 주문하였다.

설계 조건으로는 12시간동안 32노트로 항해가 가능해야하며, 20노트에서 4500해리 수준의 항속거리, 흘수선 높이는 9m 이하, 20노트에서 30노트로 속도를 변경하는데 15분 이내로 걸려야하며 엔진실이 피격되어도 속도에 변화가 없을 정도의 방호력을 내세웠다. 무장으로는 (각 함포별로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280mm 함포 9문을 3연장 포탑에 장비하였다. 부무장으로 2연장 120mm 양용포 4기, 대공무장으로는 집중형 사격통제장치를 장비한 40mm 보포스 대공포 14기를 배치하였다. 함재기로는 전투기 2기와 정찰기 2기를 장비하게 하였고 방어의 경우, 어뢰와 기뢰 방어에 신경을 쓰고, 28cm 함포의 탄환과 300kg의 폭탄의 방호가 가능한 점이 있었다.

예비 설계안

당시, 네덜란드는 대형 군함을 만든 경험이 없었으며, 근대적인 함선 설계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안도 (제인 연감과 같은 공개된 자료말고는) 없다시피 했다. 결국, 네덜란드는 외국으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원래 네덜란드는 됭게르크급 전함을 만드는 것에 맞춰 프랑스로부터 설계를 받아오기를 희망했지만, 실제 협상은 독일과 진행하였다. 1939년 4월 24일에서 25일에 걸쳐 베를린에서 협의가 진행되었고 독일이 사른호르스트급 전함 계획을 완료하는 것에 맞춰 양국은 순양전함 제작에 있어 필수적인 장비들은 전적으로 독일이 제작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1939년 7월 11일에는 네덜란드에서 독자적으로 진행된 설계가 완성되었지만, 해당 설계안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군함 제작과 관련된 개선점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으며 특히 장갑 구조에 있어서는 빈약한 갑판 장갑과 수중 방호력을 지닌 구식 구조에 해당됐다. (당시 선진설계가 반영된 전함과 비교하면 20~25년 가량 뒤쳐진 것이었다.)

독일은 네덜란드의 순양전함 건함 계획에 호의적이었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두 가지 부분이 존재하였다. 이에 대해 독일 대표단은 주문 지역을 독일내 조선소로 하는 것과 네덜란드측에서 건조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 독일 회사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보장해달라고 주장하였고 그에 맞춰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설계 공개를 거부하였다. 네덜란드 당국은 협상 조건을 맞추기 위해 1939년 여름 내내 어떠한 협의도 개최하지 못하였다.

공식적인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네달란드는 좀 더 앞서나가기로 하여 Ferrostaal A.G. Essen의 계획안을 계약하고, 1939년 5월 15일에는 독일 측에서 제출한 청구서를 지불하였다. 약 2개월 뒤, 브레멘(7월 13일)과 베를린(7월 31일)에서 진행된 협상을 통해 독일로부터 자국의 전함 계획안과 설계도의 공개를 확인받았다. 비록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설계를 그대로 받아오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네덜란드보다 훨씬 선진적인 독일의 건함 지식과 기술이 반영된 설계에 해당되었다. 독일의 설계안은 당해 8월 21일에 네덜란드로 양도 되었다. 1939년 10월 4일, 양국 해군간의 연락 담당으로 임명된 독일 해군 제독으로부터 독일 당국이 납품일을 지키는 것은 보장하기 어려우며, 이는 네덜란드에 있어 계약날짜와 관련하여 회사측에 압력을 넣는 것을 보장하고, 동시에 독일측은 그 회사에 대한 간섭을 할 수 없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한달 뒤, 네덜란드는 Ferrostaal A.G. Essen을 네덜란드측 대리인으로 공식 임명하고 독일과의 교섭을 진행하게 하였다.

무장과 관련하여 독일 기업 Krupp Germaniawerft와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1939년 7월 31일, 네덜란드는 Krupp Germaniawerft와 접촉하였고 포탑의 장갑, 함포의 상하포각(유압식을 통해 작동, 10~45도의 상하포각)과 초구포속(850~900m/s) 등이 포함된 조건 사항들을 명시하였다. 부무장의 경우, 10도에서 80도 사이의 상하포각과 대략적인 장갑 수준(전면 80mm, 상부 150mm, 측면 50mm)을 제시하였다. 사격 통제 장비의 경우, 1939년 11월 6일 네덜란드 기업 NV Hazemeyer Signaal Apparatenfabriek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때까지 줄력 기관의 경우, 네덜란드 내에서 제작하는 것으로 정해진 상태에서 대략적인 특징들이 나타났는데, 1939년 8월에 8기의 보일러실과 4기의 기어터빈, 그리고 18만 마력을 낼 수 있게 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후, 네덜란드의 Nevesbu와 두 개의 독일 기업에 예비 설계를 구상하여 서로 다른 2가지의 설계구상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네덜란드의 Nevesbu, 나머지 하나는 NV Ingenieurskantoor voor Scheepsbouw(이하, IvS)[1]가 담당한 것이었다. 이들의 설계는 독일 해군 내 건함 부서에서 구상한 계획들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8월 31일에 네덜란드로 양도되었다. 해당 설계는 출력 기관들을 넣기에는 너무 공간이 적었고 탄약고 공간을 추가하기 힘들었지만, 네덜란드 내에서 논의가 이루어져 7월 11월에 구상된 설계와 합쳐졌다. IvS는 1940년 3월 11일, 다른 계획을 진행하여 당해 4월까지 네덜란드와 상의하였다.

새로운 설계 구상

1939년 12월, 두가지 구상안에 대해서 생산 제안이 들어왔다. 두 구상안 모두 18만 마력을 낼 수 있고 유사한 보일러 시설을 지녔지만, 네덜란드의 설계는 독일보다 199㎡정도 더 컸다. 이는 같은 규모에서 독일의 설계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렇지만, 네덜란드측에서는 실제 작동중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의심하였고 계획의 신뢰성에 논쟁으로 이어졌다. 원래, 출력 기관을 위한 공간으로 84m 정도의 길이를 예측하였는데 실제로 탄약고 배치를 감안하면 길이 72.8m 이하의 공간이 필요했고 독일의 설계안을 따르면 74m, 네덜란드의 설계안을 따르면 78m 정도가 필요로했다.

이는 순양전함 계획에 대한 의심을 제기하기에 충분했고 새로 임명된 해군 장관은 구형 장갑 순양함을 현대화한 방식의 군함을 보유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려하였다. 변경된 계획안을 따르면 최대 29노트, 배수량 16000톤, 9기의 24cm(9.4인치) 함포와 175mm(6.9인치)의 선측장갑, 75mm(3인치)의 갑판장갑을 지닌 군함에 해당되는데 이는 조약형 순양함을 초과한 규모였지만 처음 계획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축소된 것이었다. 선측과 갑판의 장갑수준은 부족한 편이었지만, 순양전함 계획에서 구상하려된 장갑수준을 충족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변경된 계획안은 순양전함으로서의 기동성을 얻을 수 없었고 이러한 이유로 계획자체가 폐기되었다.

1940년 2월, 네덜란드는 신형 경순양함 2척과 함께 순양전함 3척의 건함 계획을 다시 세웠다. 신형 경순양함은 기존의 자바급 경순양함을 대체하기 위함이었다. 건함계획에 맞춰 4만톤 수준의 플로팅 독을 수라바야 섬 해군항에 건설하기로 하였다.

독일이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구체적인 설계 공개를 거부하면서 네덜란드는 흘수선 아랫부분의 구상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네덜란드의 기술력으로는 함급에 걸맞는 수중방호개념을 구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1940년 2월, 네덜란드는 기술자와 해군 관계자들을 이끌고 이탈리아를 방문하였다. 비록 네덜란드 대표단은 구체적인 설계도를 구하거나 기밀로 부쳐진 이탈리아의 Pugliese 방뢰시스템을 얻어올 수 없었지만, 비토리오 베네토급 전함 비토리오 베네토를 방문하고, 군항을 둘러보거나 1등 조선 기사(Chief Constructor)와의 면담을 진행할 수 있었고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이탈리아를 통해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에 관한 더 구체적인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 설계진들은 출력기관 설계와 관련된 정보를 얻기 원했지만, 대표단은 이탈리아 당국의 비협조로 인해 이탈리아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네덜란드측의 이탈리아 방문으로 네덜란드 설계진들은 순양전함의 내부 구획을 과감하게 재조정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전까지 존재하였던 중앙 세로격벽을 제거하고 어뢰 방호를 위해 이중저 구조를 시도하기도 하였지만, 낮은 흘수로 인해 이러한 시도는 불발로 그쳤다.

최종 설계안

다른 대표단을 독일로 파견하여 협상을 진행할 때, 네덜란드는 순양전함 설계를 개선하기로 하였다. 설계진은 1940년 4월 19일, 독일이 네덜란드 침공을 감행하는 와중에 최종 설계를 완성시켰다. 기준배수량은 28482톤 정도로 예상하였고 출력기관은 완성시키지는 못했지만 1940년 3월, 16만 마력을 무난히 생산할 때, 열대지역에서는 18만 마력, 북방지역에서는 약 20만 마력의 동력을 낼 수 있어야한다는 점을 재확인하였다. 요구사항이 상향됨에 따라, 8기의 Yarrow 보일러를 4기의 보일러실에 나눠 배치하고 4기의 파슨스 기어터빈은 2개의 엔진실에 나누어 배치하게하였다. 4기의 프로펠러는 각각 40000 또는 45000마력을 전달받을 수 있게 하였다. 선체에서 출력기관이 차지하는 길이는 바뀌었는데 1940년 3월 초와 4월 20일에 변경이 이뤄어져 결국, 79.5m로 변경되었다.

무장

1940년 4월 19일, Jurrien S. Noot 대위에 의해 제공된 성능표에서는 무장에 관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1940년 2월 16일에 설계된 무장 수준을 따르기로 하였다. 해당 설계를 따르면 주무장에는 283mm 함포 9문, 부무장으로는 120mm 양용포 12문, 대공무장으로는 14기의 보포스 대공포와 8기의 오리콘 대공포를 장비할 계획이었다.

함포의 제조는 Krupp Germaniawerft에 의해 진행되었는데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28 cm SK C/34를 기반으로 하였다. 해당 함포는 315kg의 피모철갑탄을 900m/s로 발사할 수 있었고 최대 사거리는 42600m 정도였다. 각 포신별로는 120발의 탄을 적재하였으며 분당 2.5발을 발사할 수 있었다. 상하포각의 경우, 최대 45도 각도로 포신을 올릴 수 있었고 2도 각도에서 장전이 진행되었다.

부무장으로는 보포스 120mm 양용포 12문을 2연장으로 배치하였는데 해당 양용포가 구형인지 신형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1940년대 새로운 포가 개발되었으며, 그마저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군함용으로 배치하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구형 120mm 포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양용포의 구체적인 사거리나 발사속도는 알 수 없었지만, 기존의 구형 120mm 포보다 개선점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공무장으로 1930년대 개발되어 여러 나라에서 사용중이었던 40mm 보포스 대공포를 장비하였는데, 네덜란드에서는 1934년에서 35년에 걸쳐 자바급 경순양함 HMNLS 자바HMNLS 수마트라에 최초로 배치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독일의 Siemens & Halske의 네덜란드 자회사인 Hazemeyer에서 3축 마운팅과 시거측량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이후, 1940년대에는 소해정 Willem van der Zaan를 이용해 영국으로부터 2연장 적재방식을 복제하였다. 설계안 1047 순양전함의 대공사격통제 시스템과 관련해서는 1939년 11월 6일에 40mm 대공포를 각 위치에서 독자적으로 조종한다라는 서술이 있어 Hazemeyer식 시스템과의 연관성을 알 수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였다.

전쟁 전, 네덜란드 해군은 하스파노 수이자 20mm 대공포를 군함들에 장비하였는데 하스파노 기관포의 20x110 탄은 오리콘 대공포와 탄이 유사하였지만 오리콘 대공포보다 연사속도와 포속에서 더 유리했다. 하지만, 하스파노 기관포는 군함용 대공무장으로 쓰기에는 내구성에서 매우 불리했다.

최후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대부분의 설계 작업은 중단되었다. 그렇지만, 독일이 네덜란드를 침공할 때까지는 Krupp Germaniawerft에 의해 포탑과 함포의 제작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44년에 첫번째 '설계안 1047 순양전함'의 설계가 완료되었지만, 일본의 동인도 제도 침공을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최종 계획은 완료되지 못하였고 실제 건조로도 이어지지 못하였다.

기타

샤른호르스트급 전함과의 비교

겉모습은 샤른호르스트급 전함과 비슷하였지만 사실상 다른 부분이 많았다. 설계안 1047 순양전함의 경우, 전반적인 장갑 수준이 샤른호르스트급 전함보다 열세에 놓였다. 하지만, 함포의 포각을 5도 정도 더 높일 수 있었다는 점과 강화된 방뢰체계, 갑판 장갑이 더 두꺼운 점, 문제가 있었던 독일식 출력 체계를 따르지 않은 점은 설계안 1047 순양전함이 샤른호르스트급 전함보다 더 나은 부분이었다. 또한, 설계안 1047 순양전함은 샤른호르스트급 전함보다 대공무장이 더 강화되었는데 독일이 150mm 대함용 부포와 105mm 대공포를 장비하여 부포를 분리시켰을 때, 네덜란드는 120mm 양용포 12기를 배치하여 부포를 통합하였다. 부포 체계를 하나로 합침으로써 부포 탄약고의 크기를 줄일 수 있었고 이는 함선 전체의 공간 절약과 배수량 축소로 이어졌다.

각주

  1. IvS는 네덜란드와 독일의 기술자들이 연대한 네덜란드 회사로 알려져있지만, 실제로는 독일의 이해관계에 따라 설립된 표면상 기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