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

사무라이((さむらい))는 일본 봉건시대의 무사 신분으로, 일본 역사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회 계급이다. 국왕[1]이 직접 통치했던 고대~중세[2] 이후의 일본 역사는 대부분 사무라이들에 의해 전개되었다.

정의[편집 | 원본 편집]

원래 무사와 사무라이는 계급이 다르지만 사무라이가 무사(부시, 모노노후)를 포함하는 말이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사무라이나 부시나 사무라이라고 부르면 그만. 모노노후가 무사를 가리키는 말로는 상대적으로 더 오래된 말이다.

일본이 실제로 무를 중시했던 사회이기에 주로 '사무라이=무사'라는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지만, 더 자세히 말하자면 중산층 정도의 계급이었던, '출신성분'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한다.[3] 사실 실제로도 대부분이 무사같은 직종에 몸 담았기에 이런 오해가 생긴 듯 하다. 주를 차지했던 무인들은 경호원이나 용병처럼 타인에게 고용되는 일을 통해 먹고 살았지만 높은 지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사무라이들은 무장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본래는 시종이라 무사가 아닌 사무라이들[4]도 있었으나 그래도 대부분 교양으로 검술을 배웠다. 다른 국가의 역사에 비유해보자면 문반무반이 같이 있던 양반이나, 유럽 역사에서는 란츠크네히트(경호원 및 용병)+젠트리(중산층)[5] 비슷한 계급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비슷한 계급 투쟁을 훨씬 옛날에 시작한 탓에 젠트리보단 약간 격이 높거나 귀족 이상인 사무라이[6]들도 많았다.

무사(부시)인 모노노후들이 일반인이 생각하는 사무라이이며 이들은 일본의 군사 귀족들을 대체한 후에도 표면적으로는 공가[7]를 섬기며 천황에게 충성했다. 칼이 유명하나 막상 사무라이들은 창은 물론 활 그리고 기마술도 중시했다.

무사인 사무라이들에겐 평민에 대한 살인 면허도 있었다. 이에 대한 이름이 '기리스테고멘'이다. 그래서 범죄 집단이나 평민 용병들이 전근대 이전에는 좀 낮은 직위였던 일본의 경찰[8][9][10]보다 사무라이들[11]을 더 두려워했다. 무사가 아닌 사무라이들은 온갖 일에 종사했고 일반인에 비해 지체 높은 전문직이 되기도 했다.

쇼군(정이대장군)은 무사이긴 하나 사무라이[12]가 아니었다. 이유는 사무라이는 시종인데 쇼군은 시종이 아니기 때문. 사무라이 시대 이전 무신 귀족 대우[13]였다고 보면 된다. 다이묘[14]도 쇼군과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사무라이의 어원 논란[편집 | 원본 편집]

한국에는 사무라이는 본래 고구려어의 '싸울아비'라는 단어가 일본으로 전해져 사무라이가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학계에서는 널리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싸울아비라는 단어는 실제로 근현대에 나온 말이며 사무라이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대중매체에서[편집 | 원본 편집]

편견[편집 | 원본 편집]

아무래도 닌자와 함께 일본의 문화를 대표하는 존재 중 하나로 묘사되는 존재다보니까 여러 곳에서 나온다. 어떤 건 너무 환상에 젖은 나머지 진짜 오리엔탈리즘의 끝판왕을 보여주기도. 아래는 실제로 세간에 존재하는 편견이다.

  • 사무라이는 무조건 무사들만 있고, 전투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 정확히는 대부분이 무사였다고 한다. 전투로 먹고 사는 사람들도 맞았지만 문인들도 존재했다. 앞서 말했듯 사무라이는 한국의 양반이나 '중산층 계급'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 매일 자아성찰을 하거나 명상하고 다니고, 조용한 곳에서 검술 수련을 하며, 명예를 걸고 결투하는 것 등의 행동을 한다.

작품 및 캐릭터 목록[편집 | 원본 편집]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왜 국왕으로 적었냐면 천황은 고유 명사이고, 고대엔 천황이 아닌 대왕이나 왕이었으므로
  2. 고훈시대(?),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쇼토쿠 태자의 아스카시대, 나라시대
  3. 과대포장된 일본 무사도의 허상을 파헤치다
  4. 무사(武士)와 무사가 아닌 사무라이(侍)는 엄격한 구분이 있었다. 특별한 게 없다면 일반적으로 전자가 위인 느낌.
  5. 이들은 일반적인 부르주아와 달리 준귀족이었다.
  6. 엄밀하게 보자면 사무라이들과 어울리고 그 역할을 했을 뿐이지 일반 사무라이 취급이 아니긴 했다.
  7. 이들은 나중에는 교황조차 이탈리아 소국의 가문이 영향력을 발휘하여 차지하기도 하는 유럽의 성직자처럼 명목상으로만 대단한 존재였다. 물론 명목도 없는 것보단 나으니 얻어서 나쁠 것도 없었고 괜히 개겨서 좋을 건 없었다.
  8. 중급 무사까지가 최고 직책을 맡았으며 일반 경찰인 고요키키에는 범죄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야쿠자의 조상인 얏코 같은 사람들은 고요키키는 아무렇지 않게 죽이기도 했다.
  9. 가끔 고요키키를 사무라이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이들은 평민이라 사무라이처럼 무장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서 무기 대신 짓테를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래서 범죄 집단이 작정하고 나오면 발리기도 했다.
  10. 사실 이런 경찰 숫자는 생각보다 별로 없었는데, 사무라이들이 알아서 치안을 확보하고 다닌 탓도 있다.
  11. 죽여도 되는 이유가 있다면 죽여도 되기 때문. 실제로 사무라이가 닌자, 야쿠자를 습격하는 일도 있어서 이런 집단도 사무라이들을 피해 다녔다. 닌자들은 결국 사무라이들에게 굴복해서 밑으로 들어갔고 야쿠자들은 정식으로는 사무라이들의 졸개가 되지 않았으나 이게 나중에 큰 차이를 만들었다.
  12. 계급으로서의 무사
  13. それでも形式上の権威は圧倒的で、高みから全ての大名や幕臣を平伏させる存在であった。실제로 다이묘 등 일반적인 사무라이들과는 격이 다르다고 표현하고 있으며 혈통도 따졌다. 그래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신 관백을 차지하긴 했으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달리 쇼군에 오를 수 없었다. 관백은 명목상으론 쇼군보다도 대단한 지위이나 실질적인 위상은 부족했다.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도 영향력이 없어졌다가 오히려 도요토미부터 영향력을 회복해 에도 막부 시대에 조정 내에서는 중요한 지위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무라이가 힘이 있어도 귀족들을 모욕하면 심하면 자살까지 했어야 했다.
  14. 고쿠다카 1만 석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