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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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구식 차량을 되는대로 충당했던 걸로 추정된다. 이른바 다형차라 불리는 구 3등객차 차량이 비둘기호 등급에 주로 충당되었다. 덕분에 차내 설비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구식에 빈약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출입문은 모두 수동식으로, 역에 정차했을때 [[역무원]]이나 [[열차 승무원]]이 열어주거나, 승객이 스스로 열고 닫아 타고 내리는 수준이었다. 운행구간에 따라 승강 계단을 막는 덮개를 닫아 다니기도 했는데 이 역시 수동식으로, 입석 이용자들은 닫아놓은 덮개를 일부러 열고 계단에 걸터 앉아 다니기도 했다.  
주로 구식 차량을 되는대로 충당했던 걸로 추정된다. 이른바 다형차라 불리는 구 3등객차 차량이 비둘기호 등급에 주로 충당되었다. 덕분에 차내 설비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구식에 빈약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출입문은 모두 수동식으로, 역에 정차했을때 [[역무원]]이나 [[열차 승무원]]이 열어주거나, 승객이 스스로 열고 닫아 타고 내리는 수준이었다. 운행구간에 따라 승강 계단을 막는 덮개를 닫아 다니기도 했는데 이 역시 수동식으로, 입석 이용자들은 닫아놓은 덮개를 일부러 열고 계단에 걸터 앉아 다니기도 했다.  
[[파일:비둘기호 객차 좌석.jpg|400px|오른쪽]]
 
당연한 이야기지만 [[에어컨]] 같은 공조장치는 전혀 달려있지 않았으며 유일하게 차축 발전기와 배터리 전력으로 가동하는 선풍기가 전부였다. 난방 또한 지금의 전기난방식이 아닌 증기식 난방장치로 [[난방차]]의 보일러 증기로 구동하였으며, 성능이 불충분하고 난방차에서 먼 객실은 거의 난방효과가 들지 않아 겨울철에는 그야말로 냉장고 수준이었다. 좌석은 직각의 박스 시트 또는 [[전동차]]의 그것과 같은 롱 시트로, 기울어지지도 않고 방향에 따라 전환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화장실은 선로에 바로 쏟아내는 비산식으로 역 정차중에는 사용할 수 없었고, [[대차]] 및 서스펜션 또한 구식의 판스프링 식으로 흔들림이 심하고 완충효과가 적어 안그대로 느린 열차가 승차감까지 나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에어컨]] 같은 공조장치는 전혀 달려있지 않았으며 유일하게 차축 발전기와 배터리 전력으로 가동하는 선풍기가 전부였다. 난방 또한 지금의 전기난방식이 아닌 증기식 난방장치로 [[난방차]]의 보일러 증기로 구동하였으며, 성능이 불충분하고 난방차에서 먼 객실은 거의 난방효과가 들지 않아 겨울철에는 그야말로 냉장고 수준이었다. 좌석은 직각의 박스 시트 또는 [[전동차]]의 그것과 같은 롱 시트로, 기울어지지도 않고 방향에 따라 전환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화장실은 선로에 바로 쏟아내는 비산식으로 역 정차중에는 사용할 수 없었고, [[대차]] 및 서스펜션 또한 구식의 판스프링 식으로 흔들림이 심하고 완충효과가 적어 안그대로 느린 열차가 승차감까지 나빴다.  



2019년 5월 10일 (금) 02:10 판

비둘기호는 과거 존재했던 특급열차의 이름이자, 1984년부터 2000년 까지 존재했던 철도청의 열차 등급이다.

개요

비둘기호는 열차 등급의 하나로 열차 등급 중 최하위에 해당하는 보통열차에 상당하는 열차의 명칭이다. 실질적으로 수도권 전철 운행이 이루어지지 않는 구간에서 가장 기본적인 열차로 운행되었으며, 실질적으로 여객 영업을 실시하던 철도 노선에서는 반드시 1왕복이라도 정기 운행을 실시하였던 열차였다.

비둘기호라는 명칭 자체는 1967년 9월 1일 최초 운행하였던, 서울~부산진 간에 설정되었던 특급열차의 이름이 기원이다. 비둘기호라는 이름은 당시 특급열차 명명의 관행에 따라 월남에 파병되었던 한국군사원조단인 비둘기 부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으로, 최초 운행을 기념하는 행사에 초대 비둘기부대장이 참석하고, 명명패를 주월 비둘기부대에 기증하는 등의 행사를 했었다.[1]

운영

기본적으로 액압 디젤 동차를 사용한 동차형 열차와 객차 편성으로 구성된 열차가 존재하였다. 어지간한 노선에는 전부 열차가 설정되어 있었으나 보통열차라는 이름과 달리 주요 노선에서의 운행 빈도는 그리 빈번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등급이 낮기 때문에 대피가 매우 잦았으며, 덕분에 운행시간은 그야말로 답이 없는 수준에 이를 지경이었다. 또한, 최하위의 열차다 보니 우편차소화물차를 연결해서 운행하는 경우도 잦았으며, 때문에 운행시간대가 심야나 새벽시간대에 몰려있는 경향까지 있었다.

다만 보통열차로서 구간 운행을 주로 하는 편이었지만, 경부선 등의 간선을 거의 전구간 운행하는 열차들도 존재했다. 물론 운행시간은 그야말로 답이 없는 수준이었다. 일례로 1984년 9월 시각표 상의 용산부산진행 비둘기호 제421열차의 경우 21시 25분에 출발해서 다음날 새벽 6시 35분에 도착하도록 계획되어 있었는데, 도중 통과역이 일부 설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 9시간 10분이 소요되는 느림보 열차였다. 그나마도 심야운행에 따른 승하차 지연이나 대피취급, 도중입환, 그리고 보선작업 등의 영향으로 지연이 일상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열차라도 영업이 잘 되면 다행이겠지만 적자의 주범으로 비난받았으며, 설비가 노후화된데다 횟수나 소요시간, 시간대 조차 편리하지 않아 싼맛에 타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용객의 외면을 받았다. 심지어 비둘기호 승차권은 전산발매의 대상이 되지도 않아 운행구간 역에서의 발매로만 이용할 수 있었다.

차량

주로 구식 차량을 되는대로 충당했던 걸로 추정된다. 이른바 다형차라 불리는 구 3등객차 차량이 비둘기호 등급에 주로 충당되었다. 덕분에 차내 설비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구식에 빈약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출입문은 모두 수동식으로, 역에 정차했을때 역무원이나 열차 승무원이 열어주거나, 승객이 스스로 열고 닫아 타고 내리는 수준이었다. 운행구간에 따라 승강 계단을 막는 덮개를 닫아 다니기도 했는데 이 역시 수동식으로, 입석 이용자들은 닫아놓은 덮개를 일부러 열고 계단에 걸터 앉아 다니기도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에어컨 같은 공조장치는 전혀 달려있지 않았으며 유일하게 차축 발전기와 배터리 전력으로 가동하는 선풍기가 전부였다. 난방 또한 지금의 전기난방식이 아닌 증기식 난방장치로 난방차의 보일러 증기로 구동하였으며, 성능이 불충분하고 난방차에서 먼 객실은 거의 난방효과가 들지 않아 겨울철에는 그야말로 냉장고 수준이었다. 좌석은 직각의 박스 시트 또는 전동차의 그것과 같은 롱 시트로, 기울어지지도 않고 방향에 따라 전환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화장실은 선로에 바로 쏟아내는 비산식으로 역 정차중에는 사용할 수 없었고, 대차 및 서스펜션 또한 구식의 판스프링 식으로 흔들림이 심하고 완충효과가 적어 안그대로 느린 열차가 승차감까지 나빴다.

투입되는 차량은 심지어 1971년 도입분 이후부터는 신조도입 차량 자체가 없다 보니 낡고 지저분하다는 불평을 달고 살았으며, 심지어 청소조차 부실해서 방송으로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였다[2].

최후

비둘기호 열차는 1980년대 이후 서서히 감축 추세가 이어졌으며, 특히 경부선의 수익원이 새마을호무궁화호로 옮겨가고, 통일호가 서서히 정차역을 늘리면서 도태가 진행되게 된다. 이후 통일호가 비둘기호의 역할을 이어받고 해당 노선의 비둘기호가 전부 폐지되는 경우가 늘었다.

비둘기호의 실질적인 퇴출은 1998년 12월 1일자로 단행된 시각표 개정으로 이루어졌었다. 잔존 51개 열차 중 30개 열차를 통일호로 승격하고, 13개 열차는 폐지하여 다른 열차편으로 대체한 것으로, 이 개정에 의해 정선선 8개 열차만이 남겨지게 되었다[3] 이후 정선선에서 1량 편성으로 근근히 운행되어 오다가 2000년 11월 14일 구절리역을 오후 7시 15분 출발하여 증산역에 8시 26분에 도착하는 것으로 최후의 운행을 마치게 되었다.[4]

각주

  1. '특급 비둘기 오늘 시운식'. 경향신문 1967년 9월 1일자.
  2. '천대 받는 비둘기호 열차'. MBC 뉴스데스크, 1988년 3월 14일 보도.[1]
  3. 한국철도공사(2010). "철도주요연표". P.295.
  4. '비둘기호 열차 "추억 속으로"... 정선線 34년 운행 마감'. 동아일보 2000년 11월 14일 보도[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