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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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정보
사용국 북한
기호 [1] (KP₩)[2]
지폐 ₩5, ₩10, ₩50, ₩100, ₩200, ₩500, ₩1000, ₩2000, ₩5000
동전 1전, 5전, 10전, 50전, 1원
인쇄처 (외주 추정)
조폐국 (외주 추정)
환율 약 6,500원/$ (2020.11.12 시장값)
1,050원/USD (2015년 공식값)

개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북한 원)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법정 통화이다.

남한에선 대개 "북한 원"이라 칭하지만, 북한이 스스로의 국호로 "북한"이라고 부르지는 않으므로, 공식적 약칭은 "조선 원"이다. 그러면 조선시대의 돈으로 혼동할 여지도 있겠으나, 일상적으로도 "내화 ○원"이나 "조선 ○원" 등으로 부르고 있으니 실제 혼란의 여지는 낮다. ("공화국 원"이나 "인민 원" 등으로 칭하지는 않는다.)

다만 본 문서에서는 아무래도 문화어 화자보다 표준어 화자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므로, "북한 원"으로 가급적 통일하여 서술한다.

환전 및 사용

베일에 싸인 국가라는 별명처럼, 발권은행인 조선민주주의인민중앙은행도 거의 비공개 상태인지라 북한 원화의 통계 자체를 잡을 수가 없다.

북한 원화는 당에서 북한식 사회주의 경제 특수성을 이용하는 목적으로 만든 통화라[3] 원칙적으로는 환전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외국인이 절대 쓸 수 없는 것은 아닌데, 장기 체류하는 신분이 아닌 이상은 근본적으로 구하기가 어렵다. 뭣보다도 환전을 하려면 옆을 계속 따라다니며 감시(?)하는 안내원부터 멀찍이 떼어놔야 한다(...)[4] 그렇다고 인근 국가에서 북한 원을 구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데, 이는 북한돈이 무역용 화폐로 쓰이질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예 안 퍼지는 것은 아니다. 주로 빳빳한 신권들은 그 자체를 상품(商品)으로서 중국 상인들의 수요가 조금은 있기에 자주 유출되었고, 이 경로를 통해 해외로 퍼져나갔다. 중국 베이징, 센양 등은 몰론, 국경도시인 단둥이나 지린과 같은 곳에서는 특히나 기념품으로 내놓은 것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중국 바깥에서 출몰하는 북한 원화는 주로 이런 경로를 타고 온 것이다. 이후 북한 당국에서도 외화벌이를 위해 작정하고 기념품이나 재판본을 찍어서 수출한 경력이 있기에, 생각보다 구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다만 한국에서 구하기는 조금 까다로운 편인데, 정말로 갖고 싶다면 이베이를 이용하거나 한국은행 인근의 화폐상 등지에 들러보자. 북한 돈도 위폐가 있을까 의문스럽겠지만, 은근히 중국산 위폐가 있기는 있기 때문에(!), 가급적 단둥 길거리 등지에 세트로 모아놓은 것 같은 건 구매하진 말자.

행여나 북한 돈을 소지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리지 않는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현행법상 단순 소지만으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용하게도 관봉을 구해다가 북에 도로 뿌리는 단체도 있는 마당에 전 국민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다만 인터넷등에 자료를 게재하면 다소 의혹을 받을수는 있고 (의도가 없다면 불법이 아니다.), 할 일 없는 담당과에서 소환을 요구하는 사례도 없지는 않으니 너무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긴 하다.

여튼 그리하여 외국인은 북한에서 주로 미국 달러, 중국 위안[5]을 사용한다. 기존에는 외화와 바꾼 돈이라 하여 태환권이 있었으나 2002년 7월의 상징적 고정환율제 폐기 이후로 서서히 사장되어, 현 시점에서는 사실상 폐지된 것이나 다름없다. 달러와 위안 외에도 일본 엔이나 유로, 영국 파운드같은 것이 쓰이기도 하는데, 2014년경 부터 적극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정책이 시작되면서 받아들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어째 점점 아프리카의 모 나라와 닮아가는 것 같다 다만 북한에 체류비자를 받아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멀쩡히 조선돈도 같이 사용하고 있다. 현지인과 마찬가지로 구매 장소나 목적에 따라 외화를 적절히 섞어서 쓴다.

환율 추이

공식적으로 조선중앙은행에서 발표하는 환율이 있지만, 실제로 이 가격을 신용하는 사람은 내국인을 포함하여 아무도 없고, 시장환율(장마당환율)을 절대 신뢰하고 있다. 덧붙여 동년도(2015년) 기준으로 9,000원(KP)/USD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별도로 조선무역은행에서 발표하는 무역환율이 존재하는데 2010년대 들어 무의미해지고 시장환율을 대체하는 경향이 있으며, 중국산 쌀 가격에 쉽게 좌우되는 편이다. 이 장마당환율은 데일리NK 홈페이지에 자주 업데이트 되고 있으니 관심있으면 참고하길.

2020년 세계적 유행병이 큰 위협으로 느낀 것인지 그간 적극적으로 달러를 갈취벌어오던 상황과는 반대로 완전한 쇄국[6]을 시행하였고, 내외국인 가리지 않고 북한 내의 모든 거래에서 외화 사용을 사실상 전면 중단시켰다. 그렇게 대내외 무역길이 완벽히 막혔으니 자연스레 생필품 물가는 폭등, 달러의 인기는 급감하여 환율도 동년도 10월 후반에 8,000원/$가 깨진 것을 시작으로 20% 가까이 크게 떨어졌다. 내화로 저축하다가 화폐개혁으로 망한 사례는 있어도 외화 저축이 되려 독이 되버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인지라 평양 민심마저 극도로 악화되어, 이에 분노한 김정은이 환전상을 본보기마냥 처형시키는 등으로 진화[7]에 나섰다.

특성

조선돈 속도 (급진적인 화폐개혁)

북한 원은 2017년 현 시점까지 2차례의 디자인 변경과 2차례의 통화개혁(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였다. 통상적으로 단위값이 변경되는 화폐개혁을 단행하면 ISO 4217 코드도 바뀌기 마련이나, 1차 개혁 당시는 50년대라서 그렇다 쳐도, 2차 개혁때(2009년) 조차도 북한 원의 코드가 바뀌지 않은게 의아하다. 시스템이 막장인데 바꿀 필요까지 있을리가.

또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신권을 내놓으면 짧아도 1~3년 정도는 교환을 위해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데[8] 반하여, 위대한 쑤령님께선 언제나 게릴라급으로 내놓고는 딱 1주일 가량의 여유만을 주셨다. 교환기간 이후에는 얄짤없이 완전 폐기크리.

보통 이렇게 빡빡한 규정을 들이미는 경우는 위폐가 급격히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나 은닉된 현금(지하경제)을 축출하기 위한 초강수인데, 그걸 한 번도 아니고 4차례나 똑같은 만행을 벌였다. 때문에 북한 원화의 신용도는 내국인들에게 조차도 외면당하는 신세이고, 외부기관에서는 더 이상 신용도의 측정 자체를 하지 않는 정도로 없는 것과 다름없는 것 취급을 하고있다.

애매한 통화 가치

앞서 언급한 신용도 문제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쓸모없는 통화에 자주 거론되는 것이 이 북한 원화이다. 이것보다 더 쓸모없기로 정평난 것이라곤 끽해야 소말리아 실링 뿐일 정도이다. (다만 이는 주변 국가들이 워낙 잘 나가는 것에 대비되는 작용도 들어가있긴 하다. 저명도가 희박한 통화들은 예외로 친다.) 심지어 이라크 디나르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 짐바브웨 달러조차도 북한 원보다는 원활히 유통되고 있고, 비슷한 사정인 쿠바 페소나 가치폭락으로 고생하는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이란 리알 조차도 북한 원에 비하면 가치가 명확하다.

이렇게까지 대우가 안 좋은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북한 원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인데, 북한 자체에서 엄격한 쇄국정책을 펴는 것도 그 이유이고, 그렇다고 딱히 북한산 상품의 수요가 많은 것도 아니고, 국제적 교류활동도 희박하기 그지없으며, 무엇보다도 나라 자체의 경제 및 정세가 불안정하고 정치성향 자체가 지나치게 호전적이라 이 나라에 무언가를 투자하기엔 불안감이 너무 큰 데다가 국제깡패 미국에게 심히 적대적인 문제까지, 온갖 투자 디메리트를 명절선물세트마냥 알차게 꾸려놓아서 외국인 그 누구도 안전한 통화라 여기지 않는 까닭에 있다. 본국 현지인들도 꺼려하는 마당에[9] 뭐... 당연한 결과지만.

대개 북한 원 만큼이나 인플레가 불안정하거나 국제신용도가 바닥으로 떨어지면 아예 해당국 경제부서에서 자국통화를 임시로나마 폐지하는 방향[10]으로 노선을 잡는데, 북한 당국은 찰거머리처럼 그 존재를 내려놓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하지만 시장경제체계 자체를 거부하는 북한이 명목이라도 시장경제의 상징물을 채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배급제마저 중단한지라 돈을 만들지 않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고 만 것. 이런 현실은 사실상 개점휴업중인 국영상점의 공시물가와 장마당 물가의 괴리감에서부터 바로 드러난다. 예로 2010년 5차 통화개혁 직후 쌀 1kg가 국정가격은 44원, 장마당가격은 1,000원에 달했다. (양쪽 모두 신권 기준) 그 이후 장마당 쌀가격은 당연하듯 폭등하여 2015년에는 6~8천원선까지 상승한 상태.

또한 이 애매한 가치에 대해서는 김정은 시대부터 급격히 늘어난 외국인 도촬 촬영 영상에서 짐작할 수 있다. 2015년 평양 기준, 국영상점에 가까운 성격인 이딸리아 료리식당에서 전량 수입품으로 만드는 '삐쨔' 한 판에 700원~1,000원정도 하는 것에 반해[11] 길거리에서 사먹는 조선 김밥 한 줄이 2,000원에 달하는 비상식적인 물가를 보여준다. 조선제는 품질이 비상식적으로 좋은 모양이다. 그런데 더 괴상한 건, 공식 지급되는 로동자 월급도 1만 단위를 잘 넘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한의 통일부한국은행이 북한 원화의 가치평가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인데 통일이 이뤄진 이후 통일비용이 얼마나 될 것이며, 남한 원화와 어떻게 통합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시해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서독동독의 통일 과정에서도 자칫 통일이 도로 깨질뻔한 이유 또한 환율값이 고작 3:1의 차이에 불과했음에도 불구, 동독 마르크를 잘못 다뤄서 동독의 대규모 몰락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 북한 원의 끝없는 추락은 재앙에 가까운 난제라 할 수 있다. 혹자는 남한이 주도적으로 통일할테니 패배국 취급하듯 모두 무효로 처리하면 간단하지 않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남한이 북한 2천만 주민을 모두 식민지 주민으로서 수용하여, 그 관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과 사회적 책임을 진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면 그것 나름대로 대재앙이다.

의외로 산재한 위조지폐

기본적으로 북한 원화는 외부 반출이 허용되지 않은 돈이고, 북한 스스로가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지라 그 발권은행인 조선중앙은행이 예금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시행하는 한편, 행정부(조선로동당)의 간섭이 매우 심하여 신뢰도가 바닥을 치는 까닭에 그다지 공을 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정확히 어디서 조폐하고 있는지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기계를 수입하여 자체적으로 찍어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질이 판번호에 따라서도 차이점이 보일 정도로 균일하지 않고 들쑥날쑥한 편.

김정일 시대까지는 중국 단둥으로 유출되는 물량이 제법 되어서 '누가 이런 걸 위폐로 만드나'싶을 정도로 유통량이 많았는데, 2009년 개혁을 거쳐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부터는 새로운 외화벌이로 각광받은 것인지 조선중앙은행에서 직접 기념 첨쇄를 찍어다 수출하게 되어서 유통권은 거의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12] 이를 노리고 (주로)중국에서 자체 제작(?)한 짝퉁 조선돈이 관광객이나 대(對) 외국 판매용, 한국인 사업가에게 사기거래로 넘겨져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다만 그 규모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거의 파악되지 않고 있다. 특히나 북한 스스로가 정보제공에 매우 폐쇄적이고, 남한에서도 북한 원화 소지를 암묵적인 사회 룰로서 매우 금기시 하고 있기 때문에, 위폐구분방법 등의 정보를 거의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찰 시리즈

김정은 시대 : 5차 발행 (2009 ~ )

2009년 11월 30일에 도입되어 동년도 12월 6일에 대체가 완료(?)된 현행권. 교환 비율은 1/100 ~ 1/1000 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자금회수를 목적으로 한 탓에 너무 혁명적(?)으로 진행되어서 전 세계에 북한의 막장행보를 광고하는 꼴이 되었다.

조금 상세하게 쓰면 처음 교환시 세대당 구권 10만원의 제한이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예금해야 했었으나 이미 주민들이 4차 개혁(1992년)때 보기좋게 당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어서[13] 갖은 수를 써서라도 예금만은 피하려 했었다. 당국도 이런 현상을 재빨리 파악하곤 1인당 5만원 추가교환을 허가하였다. 이 정도면 잉여재산이 거의 없는 일반 가정에선 그래도 별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으나[14] 평소에 예금을 불신하던 일반 상인계층에겐 여전히 어림 반푼 없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북한 당국은 강제로 구권유통을 금지시켰고, 장마당을 불법으로 간주하여 모조리 폐쇄시키는 바람에 열심히 모은 재산이 모두 휴지가 되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어 수많은 장마당 상인계층이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결론은 북한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몰론 인간존엄이고 사회도덕이고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에 먹을 식량을 구할 수 없게 되었다는게 문제. 근본적으로 국영시장에 풀린 식량만으로는 도저히 모든 인민들을 먹여살릴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장마당 시장이 활성화 된 것인데[15] 강제로 장마당을 몰락시켰으니 말 그대로 진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 때문에 민심이 흉흉해지자 당국에선 부랴부랴 김대장하사금도 뿌리고 임금도 100배나 인상하여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였지만 그래도 민심이 사그라들지 않자 결국 1~2달만에 로동당이 직접 사과를 하고 통제를 푸는 등의 패배선언(실패선언)을 하고 만다.

Choseon 5th Series (2009)
5원 인민공돌이의 과거와 미래 과학자와 대학생 10원 조선인민군 3군 (공/해/육) 50원 인민 3대 로동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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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력발전소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공식명칭) 조선로동당 창건기념탑
100원 목련화 (목단)[16] 200원 천리마상 (평양) 500원 개선문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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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 도안없음)
1,000원 김정숙 생가 2,000원 백두산 비궁 (김정일 생가)[17] 5,000원(구권) 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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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연 백두산 천지 만경대(구권) / 국제친선관람관(신권)
5,000원(2021년 태환권) 5,000원(신권) 만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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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돌연 5천원권에서 김일성 초상을 빼버렸는가에 대해 추측만이 나돌고 있는데, 가장 유력한 설은 북한 원화의 가치하락으로 험하게 쓰여지면서, 덩달아 김일성 초상화가 찢기고 더렵혀진 채로 곳곳에 나뒹구는 꼴을 보기 불편해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이 시리즈에 각종 선전문구를 담은 도장이 찍힌 기념권이 존재하는데, 정말로 기념해서 발행했다기보다는, 중국발 수요를 맞추고자 불법유출 대신 수출시킨 통화로, 북한 국내에서 통용되지 않도록 식별의 목적으로 찍은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일반 일련번호 권종에 찍힌 '견양'도장 또한 그런 의도라는 것. 워낙 대량으로 유출된 탓인지 이쪽은 거의 염가로 팔려나가고 있다. 그 문구들의 종류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등장순)
    • 견본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탄생 100돐 (1912-2012) / 전 권종 (구형 5000원권 포함)
    • 조선로동당창건 70돐 기념 / 5000원권
    •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 탄생 100돐기념 (1917-2017) / 5000원권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70돐 (1948-2018) / 50, 200, 500, 1000, 2000원권
    • 조중외교관계설정 70돐 (1949-2019, 中朝建交70周年) / 5000원권
  • 2021년 9월 경에 새로운 태환권(외화와바꾼돈표) 5천원권[18]을 찍어낸 것이 밝혀졌다. 다만 기존에 있던 '외화'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단순히 "돈표"라고만 표기하고 있다. 대외무역환경이 매우 열악해지자 상대적으로 쓸모가 줄어든 외화들의 값이 반값으로 주저앉았고, 이 틈을 타 주민들의 외화보유량을 늘리게 될 것을 정부측이 우려한 것인지, 외적으론 외화가치의 안정을 국가가 보증하는 수단, 내적으로는 달러를 국고로 긁어오려는 목적으로 다시 찍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발권은행 정책에 따라 폐기되거나 시중에서 사용이 중단되어, 국내외 환전도 할 수 없는 통화입니다.
 해당 국가 방문시 현금거래 중 받지 않도록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김정일 시대 : 4차 발행 (1992~2009)

Choseon 4th Series
1원
영화 "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 꽃분이 (홍영희)
5원
학생과 지구본평양의 모습에 시민
10원
로동자, 천리마동상,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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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과 선녀 인민대학습당 (평양)[19] 서해갑문
50원
3대 로동계층과 주체사상
200원
목련 (목단)
500원
금수산태양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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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의 풍경 (도안없음) 금릉 제 2 터널과 청류교
100원/1,000원/5,000원 - 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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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 (김일성 생가, 평양)

이 신권 교환 정책이 2009년 화폐개혁과 판박이에 가까울 정도로 닮았는데, 사실상 작정하고 재정회수를 위해 자행한 화폐개혁은 이때가 시초이다. 그 당시 구권과 교환비는 1:1이나, 교환 시 1인당 399원까지만 현금으로 주고 나머지는 모두 은행에 강제로 저금시켰다. 그리고 주민들은 그 돈을 다시는 구경할 수 없었다.

  • 1992년 최초 발행때는 100원권이 최고액면이었다. 500원권은 1998년에, 1000원권과 5000원권은 2002년 7월 1일 신 경제정책 개혁으로 거래량이 늘어날 것을 감안하여 찍어낸 권종이며, 중간액면인 200원화는 2005년에 새로 추가되었다.
  • 1998년에 5원권과 10원권은 신판본(위 표의 사진)으로 나왔다. 그러나 급하게 찍은 것이 드러날 정도로 구판(1992년)에 비해 인쇄질이 떨어진다. 다만 북한 조폐국의 기술 자체가 빈말로도 썩 좋다고 못할 수준이다보니, 직접 비교해보지 않는 이상은 눈치채기가 어렵다.

김일성 시대 : 2차/3차 발행 (1959~1992)

1959년 2월 13일부터 동월 17일까지 교체가 이뤄진 북한의 리즈시절에 해당한 건국 초창기의 화폐이다. 당시 남한은 기반산업시설이 하나도 없어서 그야말로 극도로 빈곤한 농업국가에 불과했다. 반면 이때 북한은 가장 풍족한 시기로 중국 접경지인 단둥, 지린에서도 먹을거나 생필품을 구하려고 북한에게 손 벌렸었다(!) 2000년대 들어서 북한이 조중 접경지역에서 아무리 막장을 저질러도 쉽게 내치지 못하는게 이때 도움받았던 기억 때문이 아니겠냐는 이야기도 있다. 1차와 교환비는 1/100.

완전히 내수용으로만 풀려있었고, 조중무역이 활발하던 시기도 아니여서 2015년 현재 잔존수량이 가장 적은 시리즈이다. 1차 권종은 북한 당국에서 아예 재판본을 찍어 판매한 전적이 있지만 이쪽은 건든 적이 한 번도 없다.

1979년 4월 7일부터 동월 12일까지 신권으로 교체가 이뤄졌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아무 이유 없는 신권 발행이다. 다만 전반적으로 천리마 운동이나 혁명등이 눈에 띄게 강조되어서 정권 홍보를 위해 바꾼 것이 아닌가, 정도로는 추측할 수 있다. 김일성의 초상화상판대기가 이때에 처음으로 지폐에 모습을 올렸다.

1988년 냉전이 끝나갈 무렵에 본격적으로 외국인을 맞이(?)하는 시기와 맞물려 외화태환권(외화와 바꾼 돈표)이 처음으로 도입되었기에 환율개념이 이때 생겼다. 미세조정이 가능한 고정환율이며 시작은 2.18원/USD. 세월에 따라 약간씩 변동되긴 했으나 크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로 값을 책정한 것이라 2002년 7월 개혁을 단행하기 전까진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고 불평이 많았다. 특이한 점은 사회주의 국가 화폐로 바꾼 돈표와 자본주의 국가 화폐로 바꾼 돈표가 서로 상이했다.

김일성 시대의 조선돈
2차 발행분 (1959 ~ 1978) 3차 발행분 (1979 ~ 1992)
50전 (도안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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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발행)

(도안없음)
1원 고기잡이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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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부는 소년, 꽃 든 소녀, 정복 입은 청년, 후프 든 체조선수, 평양거리, "세상에부럼없어라" (선전문구) 확실히 부럼이 없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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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없음)

혁명가극「한 자위단원의 운명」의 청년 & 혁명가극 「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 꽃분이 / 혁명가극「피바다」의 여성 & 평양거리
5원 김일성종합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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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도시의 학생과 농가처녀

(도안없음)

금강산
10원 대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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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마 동상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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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수확하는 아줌마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남포)
50원 대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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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그리고 인민 4대 계층 (군인/농부/노동/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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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수확하는 아줌마

개마고원 호수
100원 흥남비료연합기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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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혁명의 영재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 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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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혁명의 요람 만경대 고향집[20]
  • 동전은 1전, 5전, 10전 3종류가 발행되었다. 또한 이때부터 한자표기가 완전히 사라진다.
  • 저액권과 고액권의 크기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인데, 특히 2차 발행분의 100원권은 거의 A5크기와 맞먹는 정도로 큼지막하다.

1차 (1947 ~ 1958)

Choseon 1st Series
Nokwon100.jpg Nokwon101.jpg
15전 / 20전 / 50전 공통앞면 15전 / 20전 / 50전 공통뒷면
Nokwon102.jpg Nokwon103.jpg
1원 / 5원 / 10원 / 100원 공통앞면

원오 형제

1원 / 5원 / 10원 / 100원 공통뒷면

선조주민

0차 (1947, 소련군부임시통화)

1947년 소련군부(일병, 붉은군대 사령부)에서 발행한 임시통화로, 1, 5, 10, 100원의 4종류가 발행되었다.

각주

  1. 실생활에서는 생략하거나 '원'이라는 한글을 더 애용하는 편이다.
  2. 남한 원(KR₩)과의 구분을 위한 기호이다. 하지만 정작 북한 내에서 ₩기호를 거의 쓰지 않아서 유명무실하다.
  3. 본래 취지는 국영시장에서 배급 이외의 물건을 거래하기 위한 용도였다.
  4. 예외적으로 북한여행사를 통해 방문한 여행객의 경우엔 백화점 쇼핑 코스에서 북한 원화를 사용해야만 하는 까닭에 1회 한정으로 환전을 허용해주나, 시간이 끝나면 도로 달러로 환원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검사하진 않는 고로 그냥 도로 들고와도 무방한 모양.
  5. 본래 중국 위안이 통하는 지역은 북중접경지역 한정이었는데, 북한의 2번째 통화개혁(2009년)이 대실패로 끝나면서 대체화폐로 널리 보급되어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주류 화폐가 되었다. 약칭으로 인민폐(런민비)를 줄여서 '민폐(民幣)'라 부른다.
  6. 무역 거래량이 액수 기준으로 97% 가까이 감소하고, 하물며 중국에서 무상으로 지원해 주겠다는 쌀조차도 받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7. 억지로 추측하자면 환차익으로 인민의 재산을 독식한다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왜 뜬금없이 환전상을 처형시켰는지를 단정하기 어려운 탓에, 단순한 분풀이라는 의견도 있다.
  8. 설령 통용을 중지시켜도 신권으로 교환기간은 충분히 주는 것이 관례이다. 이는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통화의 신용도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9. 부유층은 향유할 소비거리가 없다는 것에서, 중산층은 언제 털릴지 모를 불안감에서.
  10. 에콰도르 수크레 등이 이와 같은 노선을 미리 밟은 바 있다.
  11. 실제로는 공식환율로 치환한 외화(달러)로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말로 그렇다면, 사실상 9~10배 정도 값인 8천원 가량에 달한다고 볼 수 있다.
  12. 그 영향인지, 기념권과 견양권들이 유통권보다 훨씬 염가에 팔리는 기현상이 일어날 정도이다.
  13. 하물며 그때는 '민족의 태양'이라 불리는 김일성이 살아있었을 때였다.
  14. 4인가족 기준 30만원까지 교환이 가능한 것인데 당시 가구당 잉여재산이 대략 이 수준이었다. 이 값은 당시 시장환율로 환산하면 대략 미국 50달러 정도였다.
  15. 당연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가격이 훨씬 싼 국영시장에 물건이 들어왔다면 그게 1순위다.
  16. 북한의 국화이다.
  17. 라고 홍보하는 곳. 사실 저곳은 백두혈통을 강조하기 위해 꾸며놓은 곳이고 실제 김정일은 러시아 출신이라 보는 시각이 절대적이다.
  18. 같은 시기 환율로 약 미화 1달러(US$1.00)에 해당한다.
  19. 대략 북한의 국립중앙도서관에 해당한다.
  20. 양쪽 모두 지폐에 '실제로' 쓰여있는 선전문구. 아무리 독재자가 그려진 화폐라 해도 이런 표기법을 쓰는 건 심히 드문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