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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밥 (동음이의)}}
'''당신이 하루 세끼씩 맨날 먹는것.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사줘야 하는것.'''
'''{{위키러}}(가)이 맨날 먹는 것.''' <s>무슨 일이 있으면 꼭 사줘야 하는 것.</s><ref>"나중에 만나면 밥이나 같이 먹자" 혹은 "다음에 내가 밥 사줄게"는 그냥 다음을 기약한다는 관용적인 표현이다.</ref>
 
==개요==
==개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것이다.''' [[쌀]]로 만들어지며 [[압력밥솥]], [[가마솥]]등에서 만들수가 있다. <s>그리고 [[김준현]]이 좋아한다.</s> <s>근데 이걸 안 만들고 있었던거야?</s>
기본적으로 [[쌀]]로 만드는 음식을 가리킨다. 현대 한국에서는 [[압력밥솥]]에, 옛날 한반도에선 [[가마솥]]등에서 만들어왔다. 근본적으로 그저 삶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뚝배기]]나 일반 냄비, 솥, 압력솥으로도 충분히 지을 수 있다.
 
[[한국어]]에서는 관용적인 표현으로서 [[식사]](食事)를 가리키는 단어로 자주 쓰인다. 또한 식사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안부를 묻는 인사 등에도 자주 차용되어 쓰였다. 대표적인 예로 "밥 먹었어?"라는 질문이 정말로 ''을 먹었는가, 어떤 ''을 먹었는가 라던가 정말로 '식사'를 하고 왔는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고, 단순한 인삿말이기도 하다.
 
== 밥의 역사 ==
=== 선사시대 ===
[[File:탄화미.jpg|섬네일|왼쪽]]
한민족은 아주 옛날부터 밥을 먹고 살았다. 옆의 사진은 부여송국리유적에서 발견된 탄화미인데, 탄화미란 유적 출토 곡물의 하나로 불에 타거나 지층 안에서 자연 탄화되어 남아 있는 쌀을 말한다. 저 탄화미의 시간 연대는 약 기원전 6세기로 추측되며 한민족은 2600년전부터 이미 쌀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f>http://www.rice-museum.com/front/prod/all/allView.do?pageIndex=1&sflag=AL&skey=&skeyword=&sflag1=&board_seq=5</ref>
{{-}}
=== 삼국 시대 ===
삼국시대 때부터 한국인은 밥을 무서울 정도로 많이 먹기로 유명했는데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인용문|([[김춘추]]의) 식사는 하루에 쌀 세 말(斗)과 수꿩 아홉마리였는데, 경신년(660) [[백제]]를 멸망시킨 이후로는 점심을 먹지 않고 아침과 저녁만 먹었다. 그러나 이것들을 계산해보면 하루에 여섯 말,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였다.<ref>http://www.instiz.net/pt/236709</ref>|[[삼국유사]]}}
ㅎㄷㄷ;;;;;; 고도비만으로 안죽은 게 신기할 정도이다.
=== 조선 시대 ===
조선 시대에서도 다식 문화는 여전했는데
{{인용문|[[조선|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식에 힘쓰는 것은 천하에서 으뜸이다. 최근 표류되어 [[류큐]]에 간 자가 있었는데, [[류큐|그 나라]]의 백성들이 [[조선|너희]]의 풍속은 항상 그 주발에 쇠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실컷 먹으니 어찌 가난하지 않겠는가 하고 비웃었다고 한다. 대개 그들은 전에 이미 [[조선|우리나라]]에 표류되어 와서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다.<ref>[[이익]](李瀷), 성호사설(星湖僿說), 제17권, 한국고전종합DB</ref>|이익|조선후기의 실학자}}
라는 기록이 있다. 이미 조선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문제가 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다식과 관련된 일화가 있었는데, 한양을 점령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량을 조선군의 식사량으로 계산하니 1달치 정도였다. 당연히 조정에서는 1달만 버티면 왜군들이 물러가리라 생각했는데 고니시 부대의 식사량을 본 밀정이 왜군들의 식사량이 조선군의 1/3정도임을 보고하자, 조정에서는 왜군들이 승리를 위해 일부러 식사량을 줄인다고 생각했다고...근데 얘기가 더 쩌는 것이, 당시 명나라군의 군량은 조선군은 2/3이었다고 한다(!) 대식가로 유명한 그 중국이!
 
 
 
[[File:pimg_701338186928615.jpg|섬네일|1890년대 프랑스에서 유통되던 한국 관련 사진 엽서, 사진 아래에 'COREE, Bon appetit!'라고 적혀 있다. 한국어로 옮기면 '한국, 많이 드십시오!'이다.<ref>주영하, 식탁 위의 한국사(http://aladin.kr/p/DIVy), 휴머니스트, 2013, p.61</ref><ref>[[:File:조선식사.jpg|컬러본]]도 있다.</ref>]]
조선 말기의 한국을 방문한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이 밥을 많이 쳐먹는 것을 무척 신기하게 생각했고, 한국인은 밥을 엄청나게 많이 먹는다는 식으로 기록을 많이 해놓았다. 당장 저 섬네일에도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한국인이 밥과 국을 들고 있는데 이 그릇의 크기가 가히 밥솥급이다.
{{-}}
 
== 일상 용어 ==
* 인사 : 밥을 먹었느냐, 챙겼느냐 등으로 물어본다.
* 작별인사 : 나중에 밥 사주겠다, 먹자는 식으로 "시간 되면 만나자"는 작별인사때도 사용한다.
* 체중 : 마른 사람에게는 "밥 좀 먹어라 ~", 뚱뚱한 사람에게는 "밥 좀 그만 먹어라 ~"는 식으로 사용한다.
* 비하 : "밥맛이다"라는 식으로 "재수없다"는 의미와 비슷하다.
* 비교 :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라는 말이 있다. A나 B나 특징이 똑같을 때 말한다. 주로 상대방을 깎아내릴때 쓴다.
* 과거의 힘든 상황 : "쌀밥에 고깃국" 이라는 옛 말이 있다. 1960,70년대에는 쌀 자체가 귀하여 보리밥을 지어 먹었고, 고기를 구매할 여력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말 뜻은 [[보릿고개]]와 비슷하다.
* 처량한 신세 : "찬밥 신세"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찬밥처럼 별 신경도 못 받고 치이는 신세라는 뜻.
 
== 주식 ==
사람은 [[탄수화물]]에서 대부분의 영양소를 공급 받는 만큼 "한국인은 밥심(힘)이다"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다. 과거 농사를 짓던 어른들은 상당히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는데, 밥 먹는 양도 그렇거니와 그 영양분을 모두 힘쓰는 일에 투자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 도시인들은 세계의 문화가 들어서게 되면서 주식이 구지 밥이 아닌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기본으로는 밥을 먹지만, 현대의 빠듯하고 빠른 행동력이 필요한 생활에서 밥 한끼를 제대로 챙겨 먹는 것은 어려움이 요할 때가 있다. 또는 환경적으로 밥을 기본으로 한 식사가 불가능 한 환경에서는 밥을 먹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 때문에 과거와 다르게 매 끼 식사를 밥을 먹기 보다는 빵이나 면 등 밥을 대체할 음식을 먹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어르신들이나 소화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의 경우 밥을 추천 받는데, 소화기관이 쌀을 잘 소화하게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쌀을 과거에서부터 계속 소비하다보니 소화기관이 쌀을 잘 소화하도록 발달되어진 것. 그래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다르게 밥을 기본으로 한 식문화가 발달하고 유지되어 왔다.


[[분류:음식]]
{{각주}}
[[분류:밥| ]]
[[분류:한 글자 문서]]

2019년 10월 11일 (금) 00:54 판

위키러(가)이 맨날 먹는 것.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사줘야 하는 것.[1]

개요

기본적으로 로 만드는 음식을 가리킨다. 현대 한국에서는 압력밥솥에, 옛날 한반도에선 가마솥등에서 만들어왔다. 근본적으로 그저 삶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뚝배기나 일반 냄비, 솥, 압력솥으로도 충분히 지을 수 있다.

한국어에서는 관용적인 표현으로서 식사(食事)를 가리키는 단어로 자주 쓰인다. 또한 식사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안부를 묻는 인사 등에도 자주 차용되어 쓰였다. 대표적인 예로 "밥 먹었어?"라는 질문이 정말로 '밥'을 먹었는가, 어떤 '밥'을 먹었는가 라던가 정말로 '식사'를 하고 왔는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고, 단순한 인삿말이기도 하다.

밥의 역사

선사시대

탄화미.jpg

한민족은 아주 옛날부터 밥을 먹고 살았다. 옆의 사진은 부여송국리유적에서 발견된 탄화미인데, 탄화미란 유적 출토 곡물의 하나로 불에 타거나 지층 안에서 자연 탄화되어 남아 있는 쌀을 말한다. 저 탄화미의 시간 연대는 약 기원전 6세기로 추측되며 한민족은 2600년전부터 이미 쌀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2]

삼국 시대

삼국시대 때부터 한국인은 밥을 무서울 정도로 많이 먹기로 유명했는데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김춘추의) 식사는 하루에 쌀 세 말(斗)과 수꿩 아홉마리였는데, 경신년(660) 백제를 멸망시킨 이후로는 점심을 먹지 않고 아침과 저녁만 먹었다. 그러나 이것들을 계산해보면 하루에 쌀 여섯 말,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였다.[3]
삼국유사

ㅎㄷㄷ;;;;;; 고도비만으로 안죽은 게 신기할 정도이다.

조선 시대

조선 시대에서도 다식 문화는 여전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식에 힘쓰는 것은 천하에서 으뜸이다. 최근 표류되어 류큐에 간 자가 있었는데, 그 나라의 백성들이 너희의 풍속은 항상 그 주발에 쇠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실컷 먹으니 어찌 가난하지 않겠는가 하고 비웃었다고 한다. 대개 그들은 전에 이미 우리나라에 표류되어 와서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다.[4]
— 이익, 조선후기의 실학자

라는 기록이 있다. 이미 조선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문제가 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다식과 관련된 일화가 있었는데, 한양을 점령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량을 조선군의 식사량으로 계산하니 1달치 정도였다. 당연히 조정에서는 1달만 버티면 왜군들이 물러가리라 생각했는데 고니시 부대의 식사량을 본 밀정이 왜군들의 식사량이 조선군의 1/3정도임을 보고하자, 조정에서는 왜군들이 승리를 위해 일부러 식사량을 줄인다고 생각했다고...근데 이 얘기가 더 쩌는 것이, 당시 명나라군의 군량은 조선군은 2/3이었다고 한다(!) 대식가로 유명한 그 중국이!


1890년대 프랑스에서 유통되던 한국 관련 사진 엽서, 사진 아래에 'COREE, Bon appetit!'라고 적혀 있다. 한국어로 옮기면 '한국, 많이 드십시오!'이다.[5][6]

조선 말기의 한국을 방문한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이 밥을 많이 쳐먹는 것을 무척 신기하게 생각했고, 한국인은 밥을 엄청나게 많이 먹는다는 식으로 기록을 많이 해놓았다. 당장 저 섬네일에도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한국인이 밥과 국을 들고 있는데 이 그릇의 크기가 가히 밥솥급이다.

일상 용어

  • 인사 : 밥을 먹었느냐, 챙겼느냐 등으로 물어본다.
  • 작별인사 : 나중에 밥 사주겠다, 먹자는 식으로 "시간 되면 만나자"는 작별인사때도 사용한다.
  • 체중 : 마른 사람에게는 "밥 좀 먹어라 ~", 뚱뚱한 사람에게는 "밥 좀 그만 먹어라 ~"는 식으로 사용한다.
  • 비하 : "밥맛이다"라는 식으로 "재수없다"는 의미와 비슷하다.
  • 비교 :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라는 말이 있다. A나 B나 특징이 똑같을 때 말한다. 주로 상대방을 깎아내릴때 쓴다.
  • 과거의 힘든 상황 : "쌀밥에 고깃국" 이라는 옛 말이 있다. 1960,70년대에는 쌀 자체가 귀하여 보리밥을 지어 먹었고, 고기를 구매할 여력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말 뜻은 보릿고개와 비슷하다.
  • 처량한 신세 : "찬밥 신세"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찬밥처럼 별 신경도 못 받고 치이는 신세라는 뜻.

주식

사람은 탄수화물에서 대부분의 영양소를 공급 받는 만큼 "한국인은 밥심(힘)이다"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다. 과거 농사를 짓던 어른들은 상당히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는데, 밥 먹는 양도 그렇거니와 그 영양분을 모두 힘쓰는 일에 투자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 도시인들은 세계의 문화가 들어서게 되면서 주식이 구지 밥이 아닌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기본으로는 밥을 먹지만, 현대의 빠듯하고 빠른 행동력이 필요한 생활에서 밥 한끼를 제대로 챙겨 먹는 것은 어려움이 요할 때가 있다. 또는 환경적으로 밥을 기본으로 한 식사가 불가능 한 환경에서는 밥을 먹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 때문에 과거와 다르게 매 끼 식사를 밥을 먹기 보다는 빵이나 면 등 밥을 대체할 음식을 먹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어르신들이나 소화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의 경우 밥을 추천 받는데, 소화기관이 쌀을 잘 소화하게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쌀을 과거에서부터 계속 소비하다보니 소화기관이 쌀을 잘 소화하도록 발달되어진 것. 그래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다르게 밥을 기본으로 한 식문화가 발달하고 유지되어 왔다.

각주

  1. "나중에 만나면 밥이나 같이 먹자" 혹은 "다음에 내가 밥 사줄게"는 그냥 다음을 기약한다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2. http://www.rice-museum.com/front/prod/all/allView.do?pageIndex=1&sflag=AL&skey=&skeyword=&sflag1=&board_seq=5
  3. http://www.instiz.net/pt/236709
  4. 이익(李瀷), 성호사설(星湖僿說), 제17권, 한국고전종합DB
  5. 주영하, 식탁 위의 한국사(http://aladin.kr/p/DIVy), 휴머니스트, 2013, p.61
  6. 컬러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