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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에는 남북 군사접촉이 성사되어 천안함 사태, 5.24 조치 해제 등이 다루어졌지만 별다른 합의사항을 도출하지 못한 채 입장차만 확인하고 끝났다.<ref>장용훈 기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7187808 남북군사접촉 '천안함' 거론…5·24 해제 첫발 떼나], 연합뉴스, 2014년 10월 15일</ref><ref>[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100&key=20141015.99002180809 남북 군사당국 접촉…합의 사항 도출 실패, 입장차만 확인], 국제신문, 2014년 10월 15일</ref>
2014년 10월에는 남북 군사접촉이 성사되어 천안함 사태, 5.24 조치 해제 등이 다루어졌지만 별다른 합의사항을 도출하지 못한 채 입장차만 확인하고 끝났다.<ref>장용훈 기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7187808 남북군사접촉 '천안함' 거론…5·24 해제 첫발 떼나], 연합뉴스, 2014년 10월 15일</ref><ref>[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100&key=20141015.99002180809 남북 군사당국 접촉…합의 사항 도출 실패, 입장차만 확인], 국제신문, 2014년 10월 15일</ref>
[[2014년]] [[12월 29일]] 정부는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를 통해 북한에 고위급 대화를 요청하였지만 북한은 국회에서 결의한 남북대화 촉구 결의문조차 거부하며 대남 선전과 비방을 이어갔다.<ref>백민정 기자,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8989508&code=61111611&cp=nv &#91;정부, 북한에 고위급 대화 제의&#93; 새로운 대화채널로 남북관계 활로 모색], 국민일보, 2014년 12월 29일</ref><ref>문경근 기자,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0110004014 北, 남북대화 촉구 국회결의문 거부], 서울신문, 2015년 1월 10일</ref>
[[2015년]] [[6월 15일]]에 북한은 "남북 당국간 대화와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그 조건으로 남북관계의 자주적 해결,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남북 교류를 가로막는 법적 장치 철폐 등을 내걸었다. 하지만 정부는 [[통일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한은 부당한 전제조건을 내세우지 말고 대화의 장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북측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하였다.<ref>김외현 기자,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696127.html 북, 6·15 ‘정부 성명’ 발표…“남북대화 못할 이유 없다”], 한겨레, 2015년 6월 15일</ref>
같은해 [[8월 4일]] 군사분계선 근처에 매설되어 있던 목함지뢰가 폭발하여 부사관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사건 6일만에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을 내렸으나 북한은 4일 뒤인 [[8월 14일]]에 부인 성명을 발표하였다.<ref>하윤아 기자, [http://www.dailian.co.kr/news/view/521474/?sc=naver 북 나흘 만에 '지뢰 폭발' 부인…천안함 사건 때는...], 데일리안, 2015년 8월 15일</ref>
[[8월 15일]]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경축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여 "북한은  도발과 위협으로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밝히고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f>이상일 기자, [http://www.mediapen.com/news/view/88133 박 대통령 “우리 국민 위협하는 북한도발 단호히 대처할 것”], 미디어펜, 2015년 8월 15일</ref>
[[8월 20일]]에는 북한이 서부전선에 해당하는 연천, 파주 지역을 포격하였으며, 이로 인해 [[연천군]], [[파주시]], [[김포시]], [[강화군]]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고 군 최고 경계 태세인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었다.<ref>손현규·권숙희 기자,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8/20/0200000000AKR20150820150053060.HTML?input=1195m '北포격' 연천·파주·김포·강화 주민 2천명 대피(종합2보)], 연합뉴스, 2015년 8월 20일</ref><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8/20/20150820005261.html?OutUrl=naver 북한 사격, 진돗개 발령…연천 횡산리 삼곶리 대피], 세계일보, 2015년 8월 20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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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1일 (일) 13:39 판


박근혜 정부(朴槿惠政府, 2013년 2월 25일 ~ 2016년 12월 9일)는 대한민국 제6공화국의 6번째 정부이다. 2012년 12월 19일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박근혜를 국가 수반으로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 2월 25일부터 대통령 탄핵 표결이 가결된 2016년 12월 9일까지 존속하였다.

외교안보

미국

박 대통령 취임 후인 2013년 4월 13일 미국 존 케리 국무장관이 방한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으며 "비핵화 조건으로 북한과 대화를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1] 같은 해 7월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DC 내의 한국 전쟁 참전 기념공원에 방문해 한미동맹 강화를 약속하는 등 양국 정상은 돈독한 관계를 가져왔다.[2]

2014년 4월에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이 이루어져 북핵 문제 등을 논의하였으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등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3] 두 정상은 회담에 앞서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를 추모하는 묵념을 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4] 같은 해 11월 APEC 회담 때에도 정상회담을 가졌다.[5]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중국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대중국 외교에 적극적인 모습을 취함에 따라 미국 내에서는 이러한 박 대통령의 행보를 우려하는 입장을 보이기도 하였다.[6]

2015년 6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메르스 사태로 인하여 방미를 취소하였고 대신 20분간의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다.[7]

이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대한 양국간의 긴밀한 협의가 이루어져 2016년 7월 13일에 배치가 결정되었다.

북한 5차 핵실험이 이루어진 2016년 9월에는 두 정상 간의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으며 오바마는 유사시 '핵우산'을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8]

한국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자 미 정부는 '탄핵 정국을 예의주시하겠다'면서도 '한미 동맹과 사드 배치는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9]

중국

박근혜는 2013년 6월 말 중국을 방문하여 '미래비전 공동성명'을 채택하였으며 한반도 문제 등 각종 현안에 대하여 논의하였다.[10]

이후 한국 전쟁 참전 중국군 유해송환이 이루어지는 등 한중 양국 관계는 급격히 발전하였다.[11]

2014년 7월에도 두 정상이 만나 공동성명을 채택하였으며,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반대 입장을 이전보다 더욱 명확히 표명하였다.[12]

이후에도 한중 국방부 간 핫라인이 개통되고 양국 총리 간의 회담도 성사되는 등 양국 간의 교류와 외교는 계속되었다.[13][14]

한편 방공식별구역과 사드 배치 등의 현안에 대해서는 갈등이 지속되었으며 특히 사드 배치에 관해서는 중국 측이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며 마찰음이 계속되었다.[15] 중국 측은 사드 배치 이후 경제적 보복 방침을 밝혔으며, 규제 대상에 K-POP 등 한류도 포함되면서 한국 드라마, 가요 등의 중국 수출도 고비를 맞았다.[16]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에는 중국 언론들이 관련 소식들을 쏟아내며 큰 관심을 보였다.[17]

북한

북한2013년 3월 개성공단의 폐쇄를 위협하며 "개성공단의 존폐는 남측 태도에 달렸다"는 입장을 밝혔다.[18] 급기야 4월 8일 북한에 의해 개성공단의 가동이 잠정 중단되었으며 4월 30일까지 7명을 제외한 모든 남측 근로자가 개성공단에서 철수하였다.[19][20]

2013년 5월에는 북한이 라오스로 탈북한 청소년을 강제 북송한 것에 대하여 새누리당, 북한 인권 단체 등이 "납치 사건"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21]

2013년 7월에는 북한 측에서 금강산 관광·이산가족 회담을 제의하였으며 8월에는 북한 노동신문이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등 남북간 화해의 물꼬가 트였지만 한미 간의 키 리졸브 훈련 직전인 2014년 2월 지속적인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며 남북관계는 다시 냉각의 길을 걸었다.[22][23][24] 3월 3일 경 탄도미사일 발사, 3월 16일 경 단거리 로켓 25발, 3월 22일 새벽 단거리 로켓 30발 발사, 3월 31일 NLL 근처 해안포 사격 등 북측의 도발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자 청와대는 NSC 상임위원회를 긴급 소집하였으며, 미 국방장관과의 통화에서 "북한 위협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25][26][27]

한편 2014년 9월 19일부터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에 북한이 150명의 선수단을 파견하여 11개의 금메달, 11개의 은메달, 14개의 동메달을 따냈다.

2014년 10월에는 남북 군사접촉이 성사되어 천안함 사태, 5.24 조치 해제 등이 다루어졌지만 별다른 합의사항을 도출하지 못한 채 입장차만 확인하고 끝났다.[28][29]

2014년 12월 29일 정부는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를 통해 북한에 고위급 대화를 요청하였지만 북한은 국회에서 결의한 남북대화 촉구 결의문조차 거부하며 대남 선전과 비방을 이어갔다.[30][31]

2015년 6월 15일에 북한은 "남북 당국간 대화와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그 조건으로 남북관계의 자주적 해결,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남북 교류를 가로막는 법적 장치 철폐 등을 내걸었다. 하지만 정부는 통일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한은 부당한 전제조건을 내세우지 말고 대화의 장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북측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하였다.[32]

같은해 8월 4일 군사분계선 근처에 매설되어 있던 목함지뢰가 폭발하여 부사관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사건 6일만에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을 내렸으나 북한은 4일 뒤인 8월 14일에 부인 성명을 발표하였다.[33]

8월 15일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경축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여 "북한은 도발과 위협으로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밝히고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34]

8월 20일에는 북한이 서부전선에 해당하는 연천, 파주 지역을 포격하였으며, 이로 인해 연천군, 파주시, 김포시, 강화군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고 군 최고 경계 태세인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었다.[35][36]


각주

  1. 이재철·김성훈 기자, 케리 "北과 대화 원해, 비핵화가 조건", 매일경제, 2013년 4월 12일
  2. 손균근 기자, 오바마 "6·25 한국의 승리"…박근혜 "북, 핵개발 포기해야", 국제신문, 2013년 7월 28일
  3. 최경식 기자, 오바마 박근혜 정상회담, 전작권 이양 시기 또 다시 재검토 하기로‥"전작권 전환 논란 거세질 듯", 한국경제TV, 2014년 4월 26일
  4. 박근혜 오바마 묵념, 정상회담 전 세월호 참사 애도, OSEN, 2014년 4월 26일
  5. 최용민 기자, 박근혜-오바마 "북 비핵화 공동 노력, 국제사회 공조 공감", 데일리안, 2014년 11월 11일
  6. 남지원 기자, [한·중 정상회담]미 언론 “박근혜는 오바마보다 시진핑을 좋아하나”, 경향신문, 2014년 7월 3일
  7. 박순표 기자, 박근혜 대통령, 오바마 대통령과 통화..."충분히 이해...빠른 시간 안에 방미", YTN, 2015년 6월 12일
  8. 이상배 기자, 한미 정상 '北 5차 핵실험' 통화…오바마, '핵우산' 약속, 머니투데이, 2016년 9월 9일
  9. 송은세 기자, 美 정부, 탄핵 정국 '예의주시'… "한미 동맹·사드 배치는 영향없다", 포커스뉴스, 2016년 12월 10일
  10. 안홍욱 기자, 시진핑과 신뢰 다졌지만 북핵 문제 등 ‘숙제’ 남겨, 경향신문, 2013년 6월 30일
  11. 김정욱 기자, 중국군 유해송환…발전된 한중관계 과시, 뉴스1, 2013년 12월 19일
  12. 강병철 기자, 한중, 북핵 반대…6자회담 재개조건 마련에 공감, 연합뉴스, 2014년 7월 3일
  13. 이영재 기자, 한중 국방부 핫라인 개통…"北 돌발사태에 긴밀공조", 연합뉴스, 2015년 12월 31일
  14. 홍근진 기자, 황교안 국무총리, 리커창 국무원 총리와 한중 총리회담, 아시아뉴스통신, 2016년 6월 29일
  15. 김효정 기자, 사드 갈등에 냉기 확인한 한중…시험대 오른 한국외교 연합뉴스, 2016년 7월 27일
  16. 신경진 특파원, [현지 리포트] 사드 후폭풍, 중국 내 혐한(嫌韓) 수위는?, 월간중앙, 2016년 9월 17일
  17. 정은지 기자, 中언론, 국정농단 검찰 발표 타전…"朴대통령 공범", 뉴스1, 2016년 11월 20일
  18. 전수진 기자, 北 “우리 존엄 훼손하면 개성공단 폐쇄”, 중앙SUNDAY, 2013년 3월 31일
  19. 北 "개성공단 가동 잠정 중단…북한 근로자 철수", 한국경제, 2013년 4월 8일
  20. 김연지·김지수 기자, 개성공단 43명 심야귀환…잔류 7명 귀환은 언제?, 노컷뉴스, 2013년 4월 30일
  21. 김희진 기자, 황우여, “라오스 탈북 청소년 강제 북송은 북한에 의한 우리 국민 납치사건”, 이투데이, 2013년 5월 31일
  22. 이광효 기자, 북한, 금강산 관광·이산가족 회담 제의, 아주경제, 2013년 7월 10일
  23. 북한 노동신문, ‘남북관계 개선’ 연일 강조, 경향신문, 2013년 8월 10일
  24. 이재호 기자, 북한 미사일 발사, 남한에 대한 엄중한 도발?, 프레시안, 2014년 2월 28일
  25. 북한 무력시위 계속 왜?…주말새벽 이틀연속 단거리로켓 발사, 한국경제, 2014년 3월 23일
  26. 이현수 기자, 청와대, 북한 포격 끝난 뒤 NSC ‘긴급’ 소집, 채널A, 2014년 3월 31일
  27. 김의중 기자, 한미 국방장관 전화통화… “북한 핵·미사일 개발 불용”, 이투데이, 2014년 4월 10일
  28. 장용훈 기자, 남북군사접촉 '천안함' 거론…5·24 해제 첫발 떼나, 연합뉴스, 2014년 10월 15일
  29. 남북 군사당국 접촉…합의 사항 도출 실패, 입장차만 확인, 국제신문, 2014년 10월 15일
  30. 백민정 기자, [정부, 북한에 고위급 대화 제의] 새로운 대화채널로 남북관계 활로 모색, 국민일보, 2014년 12월 29일
  31. 문경근 기자, 北, 남북대화 촉구 국회결의문 거부, 서울신문, 2015년 1월 10일
  32. 김외현 기자, 북, 6·15 ‘정부 성명’ 발표…“남북대화 못할 이유 없다”, 한겨레, 2015년 6월 15일
  33. 하윤아 기자, 북 나흘 만에 '지뢰 폭발' 부인…천안함 사건 때는..., 데일리안, 2015년 8월 15일
  34. 이상일 기자, 박 대통령 “우리 국민 위협하는 북한도발 단호히 대처할 것”, 미디어펜, 2015년 8월 15일
  35. 손현규·권숙희 기자, '北포격' 연천·파주·김포·강화 주민 2천명 대피(종합2보), 연합뉴스, 2015년 8월 20일
  36. 북한 사격, 진돗개 발령…연천 횡산리 삼곶리 대피, 세계일보, 2015년 8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