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

개구리밥 (토론 | 기여)님의 2016년 2월 21일 (일) 22:42 판 (역사 문단 내용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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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가
"Oj, svijetla majska zoro"
나라 정보
수도 포드고리차 (Podgorica)
공용어 몬테네그로어
인구 647,073 명
면적 13,812 km2
기타 정보
시간대 UTC+1

몬테네그로유럽나라이다.

지리

아드리아 해 동쪽에 위치하며, 대체로 산지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

몬테네그로의 역사는 저 멀리 로마 시대까지 올라가나, 대체로 슬라브인들이 대거 남하한 7세기부터 제대로 역사로 다룰 수 있다.

중세 시대

몬테네그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첫 국가는 두클랴(Duklja; Doclea) 왕국이었다. 원래 두클랴 왕국은 비잔틴 제국의 속국이었으나, 보이슬라블례비치(Vojislavljević) 왕조 아래 차츰 독립을 추구하여 1024년 바르(Bar) 전투에서 비잔틴 군에 맞서 이긴 뒤 독립을 얻어냈다. 그 뒤 두클랴 왕국은 미하일로(Mihailo; 1046~1081) 왕과 그의 아들 보딘(Bodin; 1081~1101) 왕 아래 전성기를 누린다.

그러나 왕국의 고질병인 후계 상속 문제로 인해 서로 치고박고 싸우다가 힘이 약해져 12세기 말 네마니치(Nemanjić) 왕국(나중에 세르비아 제국이 된다)이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다시 쇠퇴한다. 또한 당시 로마 가톨릭이 주류였던 두클랴 지방이 강제로 정교회로 개종당하는 등 많은 수난을 겪었다. 곧 네마니치 왕국이 두샨(Dušan) 왕의 사망(1355년)을 기점으로 쇠퇴하자 당시 두클랴 지방의 영주였던 발사 1세(Balsa I)가 두클랴 지방의 독립을 다시 주장하며 1360년 네마니치 왕국에서 떨어져 나와 발시치(Balsic) 왕조의 제타(Zeta) 공국을 세운다.

발사 1세의 둘째 아들이었던 주라지 1세(Djuradj; ? ~ 1378)는 발시치 왕조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원래 두클랴 왕국의 영토를 상당수 수복하고 체제 정비와 상업 진흥에 힘을 썼다. 그러나 두클랴 왕국의 옛 영토 일부가 다른 나라들의 일부가 된 탓에 주라지 1세는 이웃들과 그닥 평화적으로 지내지 못했다. 이후 주라지 1세가 사망한 뒤 발시치 왕조는 지방 호족들의 출현과 이웃 나라들과의 전쟁에 국력을 쏟아붓다(다만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세르비아를 돕기도 했다) 결국 발사 3세(1403 ~ 1421년)가 왕위를 다른 귀족에게 넘기면서 끝나버린다.

왕위가 이렇게 붕 뜨자 제타 공국에는 왕위를 놓고 귀족들의 치열한 싸움과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 혼란 끝에 승자가 된 사람은 바로 발시치 왕조의 분파였던 츠르노예비치(Crnojević) 왕조였다. 츠르노예비치 왕조를 연 스테판(Stefan; 1427 ~ 1465)은 세르비아와 보스니아가 오스만 튀르크의 무력으로 궤멸당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보고 베네치아 공화국과 속국 관계를 맺는 등 외교에 중점을 두었다. 스테판을 이은 이반(Ivan; 1465 ~ 1490)은 아버지와 달리 베네치아와 대립하며 해안가 일부를 정벌하였다. 그러나 오스만 튀르크가 더욱 더 가까이 다가오자 위협을 느끼고 다시 베네치아 밑으로 들어간 뒤 오스만 튀르크를 물리친다. 또한 수도를 좀 더 쉽게 방어하기 위해 1482년 스카다르(Skadar; Shköder) 호에 맞닿은 자블랴크(Žabljak)에서 로브첸(Lovcen) 산 밑턱의 체티녜(Cetinje)로 옮겼다. 이반의 뒤를 이은 주라지(1490 ~ 1496)는 학식이 깊은 사람이었고 그에 걸맞게 인쇄소를 들여와 책을 출판하는 등 문화 진흥을 이끌었다. 그러나 오스만 튀르크가 다시 쳐들어오자 그는 프랑스로 도망쳐버리고 츠르노예비치 왕조 또한 끝나버렸다.

오스만 치하기

그러나 몬테네그로 지방은 16세기에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자치를 획득하고, 1697년 다닐로 페트로비치(Danilo Petrović)가 페트로비치 왕조를 세운 뒤 몬테네그로 정교회의 수장이자 대공인 '블라디카(Vladika)'가 이끄는 신정 국가로 거듭난다.

1784년부터 1830년까지 집권한 페타르 1세(Vladika Petar I Petrović)는 몬테네그로 지방을 상당수 정복한 뒤 오스만 제국의 보복을 물리치면서 몬테네그로의 기초를 다진다. 그의 뒤를 이은 페타르 2세는 체제를 더 강화하고, 페타르 2세가 사망한 뒤 집권한 다닐로 대공(Danilo)은 공국을 세속화하고 중앙 집권화를 이뤄낸다.

끝내 오스만 제국의 계속된 정복 시도를 물리친 뒤 몬테네그로는 1871년 베를린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독립을 확인받게 된다. 1905년 당시 대공이었던 니콜라 1세(Nikola I)는 몬테네그로에 헌법을 도입하고 5년 뒤에는 왕국을 선포한다.

근현대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몬테네그로는 연합국 측에 서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 왕국에 맞선다. 그러나 1916년 오스트리아가 점령한 뒤 1918년 연합국 측이 이길 때까지 계속 오스트리아 치하에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몬테네그로는 독립 대신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로 합병되기로 결의한다. 그리하여 몬테네그로는 계속 유고슬라비아의 일부로 남아있다가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발발하자 1990년 세르비아와 함께 신유고 연방을 이룬다. 그러나 별 혜택을 못 본 몬테네그로 국민들은 주민투표를 거쳐 2006년 다시 독립하였다.

정치

행정구역

몬테네그로는 23개의 지방 자치제인 옵슈티나(Opština)로 나뉜다.

군사

경제

특이하게도, 몬테네그로는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았으나, 유로를 공식 화페로 쓰고 있다.

사회

문화

기타

[1] [2] [3]

각주

틀: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