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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등장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국정 개편을 통하여 제국의 생명을 어느 정도 생명을 연장시켰다. 그러나 원수정 체제에 내제한 모순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은퇴 후 다시 내전을 벌어지게 하였으며, 이 내전에서 승리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제국을 하나로 통합한다.  
후에 등장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국정 개편을 통하여 제국의 생명을 어느 정도 생명을 연장시켰다. 그러나 원수정 체제에 내제한 모순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은퇴 후 다시 내전을 벌어지게 하였으며, 이 내전에서 승리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제국을 하나로 통합한다.  


콘스탄티누스가 이룩한 군사, 종교 개혁은 나라의 정세를 안정시키나 제국은 하나의 황제가 다스리기에는 국경선의 길이가 지나치게 길었고, 이에 로마제국은 정제, 부제가 동방, 서방을 통치하는 방식으로 안보의 향상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제국은 둘로 갈라졌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이룩했던 행정 개편을 더 확고히 하였고, 군제를 개혁하였으며,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하고 [[기독교]]를 공인하는 등 사회 체계도 개조하였다. 이 황제들의 개혁을 통해 나라의 정세가 3세기에 비해 안정되었으나, 제국은 하나의 황제가 다스리기에는 국경선의 길이가 지나치게 길었고, 이에 정제, 부제가 동방, 서방을 통치하는 방식으로 안보의 향상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이를 이어받은 [[테오도시우스 1세]]의 치세가 끝나고 그의 두 아들인 [[호노리우스]]와 [[아르카디우스]]가 각각 제국 서방과 동방을 맡게 되면서 제국은 두 개로 분리되었다.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의 침략이 심했고 또한 경제력 역시 동로마에 비해 떨어졌다. 결국 [[스틸리코]]와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아에티우스]] 등 유능한 사령관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476년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공식적으로 제국 서부와 동부는 하나의 로마 제국이었으나 발렌티니아누스 왕조가 절멸하고 각각 다른 혈통의 황제가 즉위하면서 두 제국은 사실상 두 개의 제국으로 분열하였다.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의 침략이 심했고 또한 경제력 역시 동로마에 비해 떨어졌다. 서로마는 60년간 [[스틸리코]]와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아에티우스]] 등 유능한 사령관들의 활약 덕분에 버텼으나 그 이후는 이름뿐인 유명무실한 황제가 차례차례로 등극하면서 몰락해갔고, 476년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동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

2015년 7월 9일 (목) 06:10 판

로마 제국(라틴어: IMPERIUM ROMANUM, 그리스어: Βασιλεία των Ῥωμαίων)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출발하여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했던 국가이다.

역사

왕정, 공화정

전설상으로 기원전 753년에 건국되었다고 여겨지는 로마는 왕정 시대와 공화정 시대를 거치며 빠르게 세력을 키워나갔다.

이후 삼니움 전쟁, 피로스 전쟁을 거치면서 이탈리아의 패권을 장악한 로마는 시칠리아를 두고 카르타고와 충돌한 1차 포에니 전쟁, 이탈리아 전역과 스페인, 아프리카에 이르는 영토에서 벌어진 2차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지중해의 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이후 그리스와 시리아 일대의 왕조들의 내전에 개입하여 복속함으로서 지중해 전역의 패권국으로 떠오르게 된다.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지중해의 패권국으로 자리잡은 로마는 시민과 원로원계급의 심각한 내분을 겪게 되고 민중파의 일원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쟁을 승리하여 갈리아를 복속시켜 시민들의 지지를 얻게 된다.

이를 견제하고자 한 원로원은 카이사르를 반역자로 규정하였고, 이에 반발한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도하하여 카이사르의 내전을 발발시킨다. 카이사르는 내전에서는 승리하였으나 공화파에 의해 곧 암살당한다. 그러나 뒤이어 벌어진 내전에서 승리한 아우구스투스가 초대 황제가 되어 실현한 원수정 체제 아래에서 팍스 로마나를 일구었다.

군인 황제 시대

그러나 원수정 체제에 모순은 정세의 불안정을 낳았고, 3세기에 접어들어 세베루스 왕조의 알렉산데르 황제가 암살당한 뒤 군인이 추대하는 군인 황제들이 등장하여 정세의 불안정은 더 심해진다. 그 시기에 게르만족,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침략이 심해지고 국방 경비가 약화되면서 경제도 흔들리는 등 제국은 3세기의 위기를 겪는다.

제국의 분열, 서로마의 멸망

후에 등장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국정 개편을 통하여 제국의 생명을 어느 정도 생명을 연장시켰다. 그러나 원수정 체제에 내제한 모순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은퇴 후 다시 내전을 벌어지게 하였으며, 이 내전에서 승리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제국을 하나로 통합한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이룩했던 행정 개편을 더 확고히 하였고, 군제를 개혁하였으며,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하고 기독교를 공인하는 등 사회 체계도 개조하였다. 이 황제들의 개혁을 통해 나라의 정세가 3세기에 비해 안정되었으나, 제국은 하나의 황제가 다스리기에는 국경선의 길이가 지나치게 길었고, 이에 정제, 부제가 동방, 서방을 통치하는 방식으로 안보의 향상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이를 이어받은 테오도시우스 1세의 치세가 끝나고 그의 두 아들인 호노리우스아르카디우스가 각각 제국 서방과 동방을 맡게 되면서 제국은 두 개로 분리되었다.

공식적으로 제국 서부와 동부는 하나의 로마 제국이었으나 발렌티니아누스 왕조가 절멸하고 각각 다른 혈통의 황제가 즉위하면서 두 제국은 사실상 두 개의 제국으로 분열하였다.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의 침략이 심했고 또한 경제력 역시 동로마에 비해 떨어졌다. 서로마는 60년간 스틸리코아에티우스 등 유능한 사령관들의 활약 덕분에 버텼으나 그 이후는 이름뿐인 유명무실한 황제가 차례차례로 등극하면서 몰락해갔고, 476년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동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시기의 고토회복전쟁을 통해 과거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의 영토를 잠시 되찾았으나 얼마 가지 못했다. 그 후 마케도니아 왕조, 콤니노스 왕조 등의 시기에 부흥을 이루었으나 제4차 십자군 전쟁의 여파로 일시기 문을 닫게 된다.

1261년 십자군 국가인 라틴 제국으로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하여 제위를 회복하나, 풍파를 겪은 제국은 더 이상 과거의 제국이 아니었고 쇠퇴를 거듭하여 도시국가 수준으로 몰락했다가 이후 투르크인들이 세운 오스만 제국에 의해 1453년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마지막 황제은 콘스탄티노스 11세가 전사하면서 멸망당하고 말았다. 이후 모레아와 트레비존드의 최후의 잔존 세력이 남아 저항했으나 모두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 제국은 당대에는 로마 제국 그 자체로 여겨졌으나, 근대에 들어 서구권 역사가들에 의해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로마 제국과 분리된 역사로 여겨져왔다.

평가

기원전 753년이라는 건국 연도를 일단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이 제국은 약 2200년간 이어져왔다. 사실, 굳이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고 해도 가장 보편화된 위대하고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대제국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신성 로마 제국은 중세 서유럽에서 종교적 이유로 로마 황제위를 되살린 것이다. 일종의 설정놀음으로, 사실 로마 제국의 진정한 의의를 계승했던 것은 동로마 제국이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