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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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1919년~1948년)는 일제 강점기 당시 중국에 수립한 대한민국정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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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

1910년, 대한제국경술국치라 하여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해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에 병탄당하여 실질적 주권을 잃었다. 하지만 1910년대가 무단통치 시절인지라 일제는 강압적으로 삼엄하게 통치하였고, 그 때문에 105인 사건처럼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난을 당하거나 국내독립활동이 어려워져 만주로 가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 때, 1919년 3월, 3.1 운동이 발생하여 국내 독립활동의 불을 지폈다. 또한 일제에 대한 조직적인 항거가 필요함을 느꼈는지, 이동휘, 이승만, 김구 등의 독립운동가가 모여 1919년 4월 13일, 상하이에서 임시정부의 수립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임시정부가 등장하였다.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이 재편되고 체계화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훗날 평가받는다. 임시정부는 상해(상하이) 시기, 이동 시기, 충칭 시기로 구분된다.

상해 시기 (1919~1932)

상해 시기는 임시정부가 상해에 설립되어 운영되었던 시기를 말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1919년 4월 당시, 임시정부는 3개였다. 상하이-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한성 정부 블라디보스토크-대한국민의회가 그것이다. 하지만 서울과 블라디보스토크는 독립활동의 적합장소로 판단되지 않았는지 이내 상하이로 통합되었다. 또한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은 5년 단임의 이승만이 선출되었다.

이동시기 (1932~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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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시기 (1940~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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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의 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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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의 정부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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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정부의 외교 활동

초기의 외교 활동은 대미외교에 중점을 두었고, 종전기에는 대중외교가 주류를 이루었다. 1919년 4월 18일 김규식을 전권대사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였고, 7월에는 스위스에서 열리는 만국사회당대회에 조소앙을 파견하여 한국독립승인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928년까지 유럽과 미주의 외교업무를 맡은 구미위원부는 미국 국회에 한국 문제를 상정시키고 1921년 워싱턴에서 개막된 태평양회의에서 한국국민의 상황을 세계여론에 알렸다. 1920년 10월에는 신규식을 광둥의 쑨원이 세운 호법정부에 파견하였다.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이 정식으로 승인되자 1944년 프랑스·폴란드·소련 정부는 주중대사관을 통해 임시정부의 승인을 통고하였고 1945년 포츠담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은 다시 확인되었다.

임시정부에 대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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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