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낙안읍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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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조선]]시대에 축성된 읍성.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기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본래는 흙으로 만든 [[토성]]이었지만, [[1424년]]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조선]]시대에 축성된 읍성.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기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본래는 흙으로 만든 [[토성]]이었지만, [[1424년]]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원래는 낙안군이라는, 순천과 독립된 고을의 읍치였다. 하지만 [[1908년]], 일제는 벌교 지역에서 일어난 안규홍의 의병 활동에 대한 보복으로 '''낙안군을 폐군해 버리고''' 각각 순천과 보성에 편입시켰다.
이 성에는 옛 낙안군 관아도 보존되어 있다. 낙안군은 순천과는 독립된 별개의 고을이었다. 하지만 [[1908년]], 일제는 벌교 지역에서 일어난 안규홍의 의병 활동에 대한 보복으로 '''낙안군을 폐군해 버리고''' 각각 순천과 보성에 편입시켰다.


[[파일:Boseong historical 1.png|섬네일|왼쪽|폐군 직전 낙안군의 영역.]]
[[파일:Boseong historical 1.png|섬네일|왼쪽|폐군 직전 낙안군의 영역.]]

2015년 7월 30일 (목) 21:16 판

틀:문화재

개요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조선시대에 축성된 읍성.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기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본래는 흙으로 만든 토성이었지만, 1424년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이 성에는 옛 낙안군 관아도 보존되어 있다. 낙안군은 순천과는 독립된 별개의 고을이었다. 하지만 1908년, 일제는 벌교 지역에서 일어난 안규홍의 의병 활동에 대한 보복으로 낙안군을 폐군해 버리고 각각 순천과 보성에 편입시켰다.

폐군 직전 낙안군의 영역.









제원

성둘레 : 약1.4km의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읍성이며, 중간에 야트막한 야산을 끼고 축성이 되어서 평산성의 형태를 가지고 있음. 성문은 3개소로 정문인 남문에는 옹성과 치(적대)가 존재하고 있다.

특성

조선시대 읍성 가운데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는 곳 중 하나이다. 여기에 낙안읍성 내부의 마을은 낙안민속마을이라고 하여서 전통마을의 형태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심지어 사람이 실제로 살고 있으면서 초가지붕은 매년 가을에 초가를 갈아주는 모습까지 나타난다.

찾아가는 법

  • 자동차 : 네비게이션에서 낙안읍성이나 낙안민속마을을 찍으면 쉽게 갈 수 있다. 만일 네비가 없다면 순천에서 58번 국가지원지방도나 보성의 벌교읍에서 지방도 857호선을 타고 표지판을 잘 따라가도록 하자. 정말로 내비가 없다면 티맵이나 올레내비라도 켜도록 하자
  • 대중교통 : 순천역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1시간 남짓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이외에도 보성군 벌교읍에서 낙안으로 가는 보성교통 버스가 있으므로 이를 이용하면 된다. 참고로 순천보다는 벌교가 거리가 훨씬 더 가깝고 버스도 많이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