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잔글편집 요약 없음
6번째 줄: 6번째 줄:


== 배경 ==
== 배경 ==
과거 히틀러는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전제군주제 특유의 강려크한 추진력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 이에 히틀러는 무솔리니의 쿠데타를 따라하기로 결심하였는데 이 때 저지른 짓이 바로 [[뮌헨]]의 맥주홀에서 벌인 [[뮌헨 맥주홀 폭동 사건]]이였다. 하지만 뭐든 깊게 생각하기 싫어하는 귀차니스트 히틀러의 엉성한 계획과 엉성한 추진력에 힘입어 계획은 장렬하게 실패했고 히틀러와 추종자들은 재판을 거쳐 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된다.
과거 히틀러는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전제군주제 특유의 강려크한 추진력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 이에 히틀러는 무솔리니의 쿠데타를 따라하기로 결심하였는데 이 때 저지른 짓이 바로 [[뮌헨]]의 맥주홀에서 벌인 [[뮌헨 폭동]]이였다. 하지만 뭐든 깊게 생각하기 싫어하는 귀차니스트 히틀러의 엉성한 계획과 엉성한 추진력에 힘입어 계획은 장렬하게 실패했고 히틀러와 추종자들은 재판을 거쳐 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된다.


문제는 당시 히틀러의 쿠데타는 당시 독일 민주 정부에게 질릴대로 질려있던 독일 대중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무솔리니처럼 하나의 강력한 지도자 아래 뭉쳐 발전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였고 이러한 여론의 힘에 재판부도 히틀러를 우대해주었다. 일례로 히틀러에겐 늘 전국 곳곳에서 날아온 응원 목적의 구호품들이 배달되어 호화로운 생활을 구사할 수 있었으며, 당시 폭동에 가담한 추종자들과 최대한 가까이 수감되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등 여러모로 혜택을 받았다.
문제는 당시 히틀러의 쿠데타는 당시 독일 민주 정부에게 질릴대로 질려있던 독일 대중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무솔리니처럼 하나의 강력한 지도자 아래 뭉쳐 발전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였고 이러한 여론의 힘에 재판부도 히틀러를 우대해주었다. 일례로 히틀러에겐 늘 전국 곳곳에서 날아온 응원 목적의 구호품들이 배달되어 호화로운 생활을 구사할 수 있었으며, 당시 폭동에 가담한 추종자들과 최대한 가까이 수감되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등 여러모로 혜택을 받았다.

2015년 12월 24일 (목) 17:13 판

아돌프 히틀러 나의투쟁.jpg

Mein Kampf

나의 투쟁아돌프 히틀러가 쓴 불쏘시개자서전 작품이다.

배경

과거 히틀러는 이탈리아베니토 무솔리니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전제군주제 특유의 강려크한 추진력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 이에 히틀러는 무솔리니의 쿠데타를 따라하기로 결심하였는데 이 때 저지른 짓이 바로 뮌헨의 맥주홀에서 벌인 뮌헨 폭동이였다. 하지만 뭐든 깊게 생각하기 싫어하는 귀차니스트 히틀러의 엉성한 계획과 엉성한 추진력에 힘입어 계획은 장렬하게 실패했고 히틀러와 추종자들은 재판을 거쳐 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된다.

문제는 당시 히틀러의 쿠데타는 당시 독일 민주 정부에게 질릴대로 질려있던 독일 대중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무솔리니처럼 하나의 강력한 지도자 아래 뭉쳐 발전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였고 이러한 여론의 힘에 재판부도 히틀러를 우대해주었다. 일례로 히틀러에겐 늘 전국 곳곳에서 날아온 응원 목적의 구호품들이 배달되어 호화로운 생활을 구사할 수 있었으며, 당시 폭동에 가담한 추종자들과 최대한 가까이 수감되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등 여러모로 혜택을 받았다.

이 시기 히틀러는 자신의 부재 동안 나치당이 붕괴하는것을 막을 겸,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널리 알릴 겸 해서 자신의 생각을 자서전으로 쓰려 했다. 이것이 나의 투쟁이 집필된 배경이였다.

편찬 과정

참고로 나의 투쟁은 히틀러가 직접 쓴 것이 아니다. 히틀러는 주변 동료들에게 자기 생각을 주절주절 거리기만 했고 옆방에 있던 측근들이 그걸 받아 적어 다듬고 다듬어 책으로 편 것이다. 이는 히틀러가 원체 일자무식(...)인데다가 귀차니스트라 글 쓰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 이 받아쓰기 작업의 주도자는 바로 그 유명한 루돌프 헤스였는데 이는 헤스가 당시 수감된 히틀러 패거리들 중 그나마 성실했고 가방끈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참고로 히틀러가 주절주절 거린 내용을 받아 쓴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초판은 엉성하기 그지없었고 이에 수차례 수정 작업이 가해졌다. 제목도 처음에는 '거짓과 어리석음, 비겁함에 맞선 4년 반 동안의 투쟁(Viereinhalb Jahre des Kampfes gegen Lüge, Dummheit und Feigheit)'이라는 뭔가 쓸데없이 거창한 제목[1]이였지만 너무 길어서 출판사의 반대로 결국 지금의 '나의 투쟁'으로 줄어든 것이다.

당시 반응

막 출간되었을 당시에도 그럭저럭 인기를 끌었지만,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고 저자인 히틀러가 총통이 되면서 책 자체도 유명세를 얻어 많이 팔려나갔다. 사실 자원해서 산 사람도 있었지만, 너도나도 사니까 분위기에 휩쓸려 산 사람도 있었고, 게다가 히트럴 집권 후 모든 신혼부부는 반드시 이 책을 한권 사야 한다는 법이 제정되어서 팔린것도 있다.나무에 대한 테러

정작 당사자인 히틀러는 이 책이 쪽팔렸던건지 나중에 누가 자기 앞에서 나의 투쟁 이야기를 끄내면 그렇게 이야기를 피하려 했다고 한다. 물론 철 없던 시절이 인간이 언제는 철이 들었었냐만은 하여튼간에 그렇다는 이야기다에 마구잡이로 만들어서 지금 와서 다시 보면 좀 그런 부분이 있어 그런 것도 있고, 게다가 총통이 된 이후로는 꽤나 주변국을 민감하게 자극할만한 내용도 있어 그런 감도 있다.

게다가 지금 와서 나의 투쟁을 보면 알겠지만 히틀러가 총통으로서 한 일들을 죄다 까는, 본의아닌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한 책이기도 했다. 이 책을 쓸 당시엔 히틀러가 권위를 뭐같이 봐서 높으신 분들을 까는 말들을 여럿 적어넣었는데 정작 히틀러가 높으신 분들이 되고나니 오히려 자기 책이 자기를 반박하는 상황이 되어 난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나의 투쟁은 3부작으로 기획되었고 그 중 2부는 이미 집필이 완료된 상황이였으나 1부와 내용이 정면충돌하는 등 문제가 많아 끝내 출시하지는 않은 듯.

참고로 이렇게 많이 팔린만큼 당연히 저자인 히틀러에게 많은 인센티브가 넘어갔지만 히틀러는 단 한푼도 이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았다. 나름대로 비리이긴 하지만, 그의 부하인 헤르만 괴링이나 파울 괴벨스가 해먹은게 워낙 많아서 그다지 티가 안 날 뿐.

현재

히틀러가 사망하고 나치 독일이 패망하면서 저작권이 바이에른 주 정부에 몰수되었다. 때문에 본고장인 독일에서는 금서 취급이라 발간 되지 않았고 그나마 남은 것들은 반드시 허락 받고 열람해야 하고 그 기준은 '학술적 연구를 위한 것'이여야 하며 당연히 그 결과는 '히틀러의 광기를 비판'하는 것으로 나와야 했었다. 하지만 2015년 말 저작권이 풀려 퍼블릭 도메인이 되었고 결국은 독일 내에서도 재출간이 되었다. # 다만 새로 출간될 나의 투쟁은 100% 원본이 아닌 대량의 (내용에 대한 비판적인 논지의) 주석이 첨부되는 버전으로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편 독일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취급이 좀 달랐는데 바이에른 주 정부가 저작권을 몰수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여 출간한 국가도 있다. 다만 아무래도 독일 눈치가 보여서인지 바이에른 주 정부에게 양해 정도는 구하고 출간하는 경우가 대부분. 일례로 일본에서는 나의 투쟁을 만화로 재구성한 버전을 만들었으나 독일 측에서 '나의 투쟁을 설명하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해서 바로 출간을 포기한 바가 있다.

각주

  1. 히틀러는 원래 현실성이나 다른건 제껴두고 요즘말로 남자의 로망만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었다. 돌격소총이라는 이름이 탄생한 것도 새로 개발된 총기에 뭔가 깔쌈한 이름을 붙이고픈 히틀러의 열망이 반영된 것이며 티거 같은 괴물딱지 전차도 히틀러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