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열

金武烈.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87년생이며, 경상북도 대구부 명치정 2정목 출신이다. 1920년대 중반에 시베리아로 이동하였고, 1927년 11월 만주로 넘어가 독립군단을 조직하기 위해 군자금 모집 활동을 실시했다. 7연발 권총을 구입하여 사격 훈련을 수행한 뒤, 동지 1명과 함께 1928년 초 국내로 잠입하여 경기도 고양군 삼송리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펼치고 이를 방해하는 오천만이라는 자를 처단했다.

이후 간도의 근거지로 귀환하던 중 회령의 재산가들에게서 군자금을 모금하였으며, 간도로 돌아온 뒤 용정촌을 무대로 다수의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군자금이 모이자, 동지 방용신과 함께 대동단을 조직하고 단원 모집에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을 일본군에게 포착되었고, 간도로 파견된 일경들이 급습하면서 체포되었다.

그 후 서울로 압송된 그는 1929년 5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총포화햑취체령 위반, 주거침입, 강도, 살인미수, 살인 등의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조선일보 1929년 9월 15일자 기사에 따르면, 김무열은 1929년 9월 1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김무열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014년 5월 1일, 대구지방보훈청은 김무열의 외손자 이상배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전수했다.[1]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