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지브릴리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7월 15일 (수) 04:40 판

틀:종교

개요

기독교(그리스도교)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로, 예수하느님이자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이다. 예수의 뜻으로 예수의 제자들과 사도 바울로를 더불어 많은 선지자들이 전파하여 중동 지역에서 발원해서 서구를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유일신교라는 점에서는 다른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와 같은 특성을 공유하며 심지어 모시는 신도 같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로 인하여 유대교 및 이슬람교와는 다른 특성을 가진다. 전 세계에서 약 21억명의 신자들이 믿고 있으며, 세계의 주요 종교 중 가장 많은 신자수를 지니고 있다. 출처 21억명의 과반수인 약 12억명은 가톨릭 신자이며, 정교회가 그 뒤를 잇는다. 다만 개신교 종파들을 하나의 종파로 묶어서 본다면, 정교회보다는 개신교 신자의 숫자가 더 많다.

역사[1]

박해받는 종교에서 제국의 국교로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 취급되었으나, 할례 문제와 예수에 대한 교리 등으로 인해 1세기 후반에 이르면 이미 유대교와는 별개의 종교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유대교와는 달리 할례를 폐지하고, 사도 바울로를 중심으로 이방 선교에 힘써 그 교세는 중동, 소아시아, 그리스, 이탈리아 반도 등 로마 제국 전역에 퍼지게 된다.

초기 기독교는 제국 내에서 박해를 받았으나, 제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하고, 테오도시우스 1세는 391년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한다.[2] 다만 로마에서 국교로 공인된 반동인지, 페르시아에서는 기독교 박해가 급증했다(...)지배 종교가 된 기독교는 수 차례의 공의회를 통해 아리우스파, 네스토리우스[3], 유티케스의 단성론, 키릴로스의 합성론 등 수많은 분파를 이단으로 단죄하고 오늘날의 삼위일체 교리를 최종적으로 확립한다.

제1차 교회분열

교리가 확립된 이후로도 분파는 끊이지 않았다. 초기 기독교의 5대 교구로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이 있었는데, 이 중 제국의 서부를 대표하는 로마 총대주교구와 제국의 동부를 대표하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로 갈등을 빚는다.

1. 수위권

본래 5명의 총대주교 중에서는 로마 총대주교(오늘날의 가톨릭 교황)을 으뜸으로 대우하였다. 그러나 지도를 펼쳐놓고 다섯 총대주교구의 위치를 보면 특이한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로마를 제외한 4개 모두가 제국의 동부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공화정 시기때부터 로마시는 제국의 정치적 중심지였을 뿐, 경제적인 꿀땅은 엄연히 그리스-오리엔트였기 때문이다. 또한 애초에 그리스도교의 시작지부터가 오리엔트 지역이었기에 동부의 중요성이 훨씽 강조되었다. 따라서 동부에 무려 4개의 총대주교구가 설치되고 로마 총대주교 혼자서 나머지 4명의 총대주교에게 견제를 받는 상황에 도달했고 실질적인 권력은 제국의 새로운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 총대주교가 차지하였다. 당연히 로마 총대주교 입장에선 이런 상황이 불만이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측과 갈등을 겪게 된다. 이러면서 기존에 로마 총대주교에게 적용되던 것이 '명목상의 으뜸'인가 혹은 '실질적인 으뜸'인가로 해석에 있어서도 갈등을 겪게 된다.


2. 필리오퀘 논쟁


AD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핵심이 된 신앙고백 기도문이 합의되었다. 이 기도문은 본래 그리스어로 작성되었는데, 이것을 로마측이 라틴어로 번역하는 와중에 논란이 발생했다. 문제가 된 것은 신앙고백 중 성령의 유출에 대한 고백 부분이다. 본래 그리스어 기도문에서는 '성령께서는 성부에게서 발하신다'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로마측에서 이것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신다'고 내용을 수정하였고, 이 때문에 신학적인 논란이 발생했다. 동방측에선 ⓐ성부와 성자에게서 성령이 발하신다면, 신성은 두 개의 근원을 가지는 거냐? ⓑ 설령 너희들 말이 맞다고 치더라도, 합의된 기도문에 자기 입맛대로 견해를 추가하는 건 트롤링 아니냐?라고 주장했으며, 서방측에선 ⓐ애초에 성부-성자-성령이 한 본체라서 신성의 근원은 둘이 되지 않으며 이게 더 삼위일체에 부합하는데?ⓑ우리가 한 짓은 트롤링이 아니라 신앙고백의 뜻을 강화시키는 일이고 ⓑ삼위일체의 당연한 귀결을 죽어도 못받아들이겠다는 너희가 오히려 트롤 아니냐?라고 받아친다. 이 논쟁을 필리오퀘 논쟁이라 한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라틴어 번역문에서 문제가 된 구절이 filioque(라틴어로 '그리고 아들에게서')라는 한 단어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

이 외에도 성상파괴 운동[4] 등의 원인으로 동서교회는 분열되었으며, 제4차 십자군 전쟁때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키는 희대의 막장플레이가 발생하면서 두 교회는 완전하게 갈라선다.

중세의 교회

서유럽에서는 교황이 프랑크왕 카를로스를 서로마제국 황제에 임명하고, 훗날 동프랑크왕 오토에게도 로마 황제의 관을 씌워주어서 신성로마제국을 건설하게 되는 등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다만 흔히 중세의 가톨릭교회가 암흑시대를 만든 만악의 근원이라는 인식이 있으나, 이러한 견해는 현대에 들어서 거의 부정되고 있다. 의외로 중세 서유럽에서는 가톨릭이 자연철학자[5]들의 가장 큰 후원자(...)였고, 오해와는 달리 갈릴레이의 학설에 반대한 건 '교회'가 아니라 '당시의 주류 과학계'였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 넘겨진 건 과학 떡밥 때문이 아니라, 프로테스탄트와의 연관성에 대한 의혹 때문이다.

제2차 교회분열

서방교회는 16세기에 이르러 다시 분열되어, 가톨릭에서 개신교(프로테스탄티즘)가 떨어져나가게 된다. 분열의 원인이 된 것은 대사(속칭 면벌부)에 대한 논쟁, 기존의 여러 신학에 대한 새로운 학풍의 대두 등이었다.

근현대의 교회

오랜 기간 서구 사회의 정신과 체제를 지배해온 기독교이나, 근대에 들어 그러한 위상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이에 가톨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어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을 재확인하는 한편 개혁을 이루려 하였다. 개신교에서는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등의 다양한 신학 노선이 등장하였다. 또한 현대에는 각 종파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일치를 이루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개신교의 에큐메니컬 운동이 있으며, 한편 가톨릭과 정교회는 21세기 들어 서로를 정당한 교회 공동체로 인정하였다.

한국에서의 기독교

한국에서는 기독교라고 하면 보통 개신교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으며 '기독교와 천주교는 다르다'고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개신교 교단과 신자, 각종 단체들은 본인들을 기독교예수교, 한국교회 등으로 부르는 반면 천주교에서는 천주교, 가톨릭 등의 명칭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개신교

통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한민국 인구의 약 20%가 신앙으로 믿고 있으며 이 숫자는 불교의 전체 신자수와 맞먹는다. 그러나 불교가 특성상 주일마다 절에 가거나 하지는 않다보니(...) 적어도 일반인의 눈에는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개신교 전래 이후로 특히 일제 시대미군정 시대를 거치며 민중들의 자발적 수용이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자발적 수용의 과정에서 기복신앙화 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었으며, 교계 내부에서는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비리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의 발달로 반개신교, 반종교 운동이 확산되면서 개신교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지 못하다. 사실상 한국의 반종교는 대부분 빈기독교와 겹치고, 이 반기독교인의 절대다수는 반개신교인이라 보면 된다.(...)

현재 한국에서 개신교는 근본주의 베이스 위에 기복신앙을 받아들인 대다수의 주류 교회와, 신정통주의 또는 유럽형 복음주의 베이스 위에서 적극적 사회 참여를 통한 정의와 평화 실현을 강조하는 소수의 비주류 교회가 분명하게 나뉜다. 후자의 노선에 속하는 최형묵 목사는 아예 대놓고 한국 개신교는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개의 종교라고 하기도 한다. 실제로 전자와 후자는 신학적으로나 정치, 사회적으로 명백하게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북한 지역에서는 과거 평양을 중심으로 개신교가 융성하였으나, 북한 정권 수립 이후로 종교 활동이 억압되었다. 21세기 현재는 표면적으로는 성당, 교회 등의 종교 시설이 설립되고 조선그리스도교련맹(조그련)이라는 조직과 '신자 단체'가 결성되는 등 종교가 용인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북한 정권의 퍼포먼스이다. 남한 교회에서 누군가가 방북하면 5분 대기조를 투입하여 후다닥 불러모아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척 쇼를 벌이는 것에 불과하다고(...) 일부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당국의 눈을 피해 몰래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지하 교회가 운영되고 있으나 이러한 선교사들의 활동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상세한 내용은 한국의 개신교 참조

한국에서의 천주교

한국인의 약 10%가 신앙으로 믿고 있다. 인구수는 불교개신교에게 밀리지만, 가톨릭 자체가 하나의 단일 종파이기 때문에 매우 잘 뭉쳐 있고 조직이 체계화되어 있다.

한국에 가톨릭이 소개된 건 주변국인 중국일본보다 매우 늦었는데, 본래는 '성리학의 대안', '유학을 보충해줄 학문'으로써 조선후기에 들어왔다. 이후 이 학문을 신앙으로 믿는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출현하게 되고, 이것이 한국 천주교회의 시작이다. 그러나 당시 조선에서는 가톨릭을 혹세무민의 도라고 취급하였으며 신자들을 탄압하였다. 여기에 황사영 백서 사건이라는 초대형 사건이 터지면서, 가톨릭신자들은 혹세무민+나라 팔아먹을 놈들로 취급되어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리게 된다. 이러한 박해로 인해서, 가톨릭은 그리스도교 종파중에서 가장 먼저 한국에 상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교세 자체는 개신교에게 역전당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개신교가 인터넷의 젊은 층에게 거의 극딜에 가까운 디스를 당하는 데 반해서, 가톨릭은 굉장히 호의적인 평가를 듣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반개신교쪽에서 개신교를 비판할 때 이 중에 많은 것들이 가톨릭에도 해당하다보니, 본의아니게 같이 까이는 빈도가 굉장히 많다(...)

종파

관련항목

각주

  1. 역사 부분은 서방교회 위주로 작성되어 있습니다. 정교회의 역사에 대해서는 추후 적절히 추가바랍니다.
  2. 로마는 이 시기 정치 체제도 손 보고 수도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했다. 기독교 공인도 국가 개조의 일환이었다.
  3. 일명 경교라고도 한다. 네스토리우스파는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당한 후 동방선교에 힘써서 당나라까지 전파되었고, 나름 성공적인 로컬라이징으로 어느 정도 탄탄한 기반도 닦는다.
  4. 다만 오해와는 달리, 훗날 정교회에서도 성상파괴 및 부정은 이단이라고 결론났다(...)
  5. 당시엔 과학이라는 용어가 없었고, 자연철학이라 불렀다.
  6. 정교회 전체 조직을 그리스 정교, 러시아 정교 등으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천주교 조직에 비해 각 총대주교좌와 독립교회들이 수평적 구조를 이루기 때문에 일어난 착오로, 정교회나 동방 정교회로 부르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