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정치 스펙트럼
극좌 좌파 중도좌파 중도주의 중도우파 우파 극우
미국의 네오나치가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벌인 시위

극우(Far-right, 極右)는 극단적으로 우파(우익)를 추구하는 사상을 이르는 말로, 극좌(極左)의 반대 개념이다.

특징[편집 | 원본 편집]

각자의 성향대로 조금씩 다르겠지만 우파는 자유주의적 시장경제 같이 국가가 국민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 작은 정부를 추구하거나 국민주의(내셔널리즘)처럼 국가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거나, 보수주의처럼 점진적 진보를 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을 폭력을 동원하거나 다른 정치사상과 타협하지 않을 경우 극우의 길로 빠지게 된다. 이들은 집단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정치적으로 일절 타협하지 않으며, 자기만의 우파 사상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우파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단지 극단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극우라고 지칭하기는 어렵다. 극우는 민족주의, 인종주의, 국수주의, 제노포비아, 권위주의 등을 놓고 복합적으로 봐야하기 때문.

대체로 극우파들은 계몽주의, 진보주의, 사회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을 혐오하고 보수적 가치와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추구하며,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혐오한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1930년대에는 세계 대공황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전쟁 피해로 인해 국민들의 삶이 어려워졌고, 이러한 불만을 가진 국민들은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가 나오기를 염원했다. 그래서 아돌프 히틀러, 베니토 무솔리니 같은 파시즘 사상가들은 이들의 불만을 양분삼아 중앙 무대로 진출하는 데 성공하였고, 파시즘 및 군국주의 사상가들이 집권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기존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연합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재편시키기 위해 삼국이 서로 추축국 동맹을 맺기에 이른다. 그러나 추축국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에게 패전하면서 이러한 극우 사상은 국제 사회로부터 멸시당하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후 극우 사상은 20세기 후반의 냉전 프레임에 갇혀 한 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소련 붕괴로 냉전이 끝나면서 혼란과 갈등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가 싶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극단주의자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자기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가 쉬워졌다.[1] 이로 인해 일본의 넷 우익이나 대한민국일간베스트 저장소 같은 극우 네티즌 연합체가 만들어지면서 사람들에게 극우 사상을 전파하고 있다. 극단주의 연구로 유명한 토마스 그룸케 교수는 2014년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한국을 방문하면서 주간경향 1094호에 있었던 중앙대학교 신진욱 사회학과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인터넷은 극단주의자에게 오직 장점만 있으며, 이 인터넷은 누구에게나 글로벌한 이슈를 만들 수 있다. 이들과의 논쟁은 오히려 이들을 더 주목받게 하고 강화시키며, 이들과 논쟁을 하는 순간, 이들이 짜놓은 프레임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능가하는 콘텐츠를 좋게, 그리고 많이 이쪽에서 더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만들어 제공하는 것만이 극우 사상을 억제하고 소수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라고 인터뷰하였다.[2]

각국의 현황[편집 | 원본 편집]

일본의 극우[편집 | 원본 편집]

미국인이 본 일본의 우경화(일본에서 우파민족주의 부상)

일본의 극우단체 재특회의 2010년 신주쿠 시위

이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일본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사상적 기원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의 발현을 위해 일본 자민당 내 보수 우익 세력은 1950년대 들어 일본의 재무장을 위한 평화헌법 개정을 당헌으로 내세워 역사교과서를 자기 입맛에 맞게 수정하려 하였다. 이들이 주도한 역사 교과서 기술을 통해 과거 일본이 일으켰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한반도와 중국을 재침략했던 1930년대의 일본을 재현하기 위해 주력했다.[3] 이들이 기술한 역사 교과서를 배우고 자란 사람들 중 일부는 21세기 들어 인터넷에서 극우적 발언을 쏟아내는 넷 우익 활동을 하기도 하며, 이러한 사상에 영향을 받은 일본의 문화예술 관계자들은 극우 미디어물을 만들어 대중들에게 유포하기도 한다.

1982년과 1986년에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시도가 있었으나, 대한민국 인터넷상에서 맨 처음으로 알려진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은 1997년 1월에 결성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이 주도한 후쇼샤에서 편찬한 역사 교과서였다. 2000년 4월에 검정신청을 하여 2001년 4월 2일에 검정을 통과한 이 역사 교과서는 일본 위안부난징대학살 관련 기술을 삭제하거나 축소하는 등 일본 제국주의 면모를 감추려고 하였다. 이후 일본 자민당 보수세력 주도로 2006년 12월에 제정된 '교육기본법'을 통해 일본 청소년들에게 애국심을 심어주려고 하는 지속적인 역사교과서 왜곡 운동을 펼치고 있다.[3]

2012년 아베 신조 정권이 들어서면서 아베 신조는 본격적인 우경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2013년 12월에는 반대파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특정비밀보호법을 강행 처리하였으며, 2014년 7월에는 집단자위권 행사 용인 방침을 결정하는 등 침략전쟁에 대해 사과는 커녕 오히려 은근슬쩍 과거 잘못을 미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4] 또한, 이들은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의 만행을 축소하여 부끄러운 역사를 숨겨 민족주의, 일본이 피해자임을 강조, 또한 일본의 보통군대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우익사관이 반영된 교과서들의 비율을 올리려는 시도를 하였다.

우익 사관이 반영된 교과서들의 내용이다.

  •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 실종과 전쟁 미화
  • 자국중심 역사서술의 강화로 '근린제국조항'의 완벽한 사문화
  • 정부 입장의 기술 전면화로 교과서를 정치 도구화[5]

2015년에 출간되는 중학교 역사, 사회 교과서 중에 우익사관이 반영된 교과서들의 비율이 실제로 올라갔다. 2000년대는 0프로대를 기록했지만 2015년에는 6프로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아베의 입김이 들어간 교과서는 전체 사용 교과서 수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2022년 현재는 일본의 양심있는 사람들의 노력과 원래 우익 교과서는 민간에서는 잘 채택되진 않았다는 이유[6] 때문에 2015년에 비해서 급격히 낮아진 상태이다.[7]

아베의 친극우 행보가 지지율 등에서 효과를 보였고 아베 이후 총리들도 야스쿠니 참배 등의 친극우 행보를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코스프레[편집 | 원본 편집]

일본의 극우단체 일람[편집 | 원본 편집]

대한민국의 극우[편집 | 원본 편집]

과거 이승만 때 독재자 이승만을 옹호하고 보수주의, 반공산주의 성향이 있는 자유당이라는 극우 정당이 있었고, 과거 박정희 독재 시절 민주공화당이라는 극우 정당이 있었다.[9] 그 후 이에 대해 영향을 받아 과거 군사독재 시절을 미화하는 자칭 극우단체는 제법 있는 편이다.[10][11] 2016년에 박근혜정부를 비호하는 극우단체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박근혜 탄핵을 촛구하는 촛불집회에 맞서서 박근혜를 비호하는 집회를 여는 등 활개를 치기 시작했지만 결국 박근히는 탄핵을 하고 감옥에 가고 말았다.

게다가 옛 새누리당이 박근혜 탄핵 이후 친박 색채를 벗기 위해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면서 박근혜 탄핵 반대 세력 주도로 2017년 4월 5일새누리당이 창당되면서[12] 본격적으로 극우 단체들이 정치 세력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강성 친박으로 유명했던 조원진 의원이 2017년 4월 8일에 새누리당으로 입당했다.[13]

그 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인해 자한당이 대선에서 패배하자 기존의 독재 정권을 찬양하는 우파들은 국민들로부터 완전히 외면 받았지만, 그 동안 정치권과의 유착을 통해 벌어들였던 자금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태극기 집회를 벌이는 등 마지막 발악을 펼치고 있으며, 일간베스트 저장소와 포털 사이트 댓글을 중심으로 인터넷상에서의 여론전을 펼치며 젊은이들에게 극우 사상을 심어주고 있다.

또한, 기존 한국극우의 주류였던 비민주적 군부독재 기반 파시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호모포비아, 이슬라모포비아 성향을 보이는 개신교 우파가 등장하고 있으며,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대안우파가 생겨났다.

대한민국의 극우단체 일람[편집 | 원본 편집]

  • 대한민국어버이연합: 가장 잘 알려진 극우단체. 친박 성향이 강한 편이다.
  • 엄마부대: 세월호 유가족을 비판하거나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 사고 분향소에서 사진을 찍으려다 유족에게 제지당하자 “이모가 무슨 가족이냐. 고모가 가족이지”라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킨 극우단체이다. 또한, 2016년 11월 5일에 열린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에서 엄마부대의 대표를 맡고 있는 주옥순이 촛불집회에 참가한 한 여고생의 뺨을 피켓으로 때리기까지 했다.[14]
  • 안티페미협회: 이하 안폐협. 안티 페미니즘, 호모포비아 성향을 보이는 단체다.
  • 한국성과학연구협회: 호모포비아, 젠더 이분법적 사고, 차별 금지법을 반대하는 극우 단체다.
  • 에스더기도운동본부: 한국의 개신교 극우 단체로 호모포비아, 반이슬람 성향을 보인다.
  •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극우 커뮤니티 일람[편집 | 원본 편집]

유럽의 극우[편집 | 원본 편집]

유럽은 1929년 경제 대공황 이후 국민들의 삶이 어려워지면서 이를 타개하고자 국민들은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염원했다. 이것이 유럽에서 극우 정당이 발흥하게 된 계기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극우 정당들은 공산주의자나 소수인종 등을 국가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적으로 규정하여 이들을 대량으로 처벌하는 등 강력한 권력 행사를 내세웠다. 이러한 극우 정당들의 대표격이 바로 독일나치이다. 나치는 아돌프 히틀러를 중심으로 반유대주의와 게르만 민족주의를 내세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유럽 전체를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트려 넣었고, 이로 인해 유럽에서의 극우는 한 동안 금기시되어왔다.

그러다가, 2010년대 들어 중동 지역에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의 준동으로 인해 중동 지역의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IS의 횡포를 피해 유럽으로 이민온 이슬람 교도들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전 세계적으로 형성된 선진국의 저성장과 실업 현상과 겹쳐서 기존에 유럽에 살고 있던 백인들은 이슬람 이민자들은 '자기 일자리를 뺏어버리는 놈'이라고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그러면서 그 동안 숨죽여왔던 유럽 곳곳의 극우정당들은 반이민, 반유럽연합과 같은 포퓰리즘 공약을 내세워 지지율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유럽에서 등장한 우익 포퓰리스트들은 기존 유럽연합 아래에서 진행되어 왔던 정치·경제적 통합을 배격하는 유럽회의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16]

2010년대 들어 인기를 얻기 시작한 극우정당들은 프랑스국민전선, 독일독일을 위한 대안, 그리스황금새벽당 등이 있다.

유럽의 극우단체 일람[편집 | 원본 편집]

미국의 극우[편집 | 원본 편집]

미국은 워낙 민주당공화당의 양당 정치가 고착화되어 있어서 극우 정당이 낄 틈이 없지만, 극우적 사고방식을 가진 정치 운동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에 등장한 네오콘은 기독교 근본주의자와 연계해서 사이비 과학을 퍼뜨리고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정당화 했다. 2000년대는 티파티 운동이 일어나면서 관세를 줄이자고 주장 하기도 했다. 2010년대에는 대안우파라는 신흥 극우세력이 백인남성들 사이에서 급성장해 공화당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스티브 배넌은 극우 뉴스 사이트인 브레이브바트를 운영하다가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도와줘 미국의 우경화로 변화하는 데 기여했다.[17]

미국의 극우단체 일람[편집 | 원본 편집]

극우 커뮤니티 일람[편집 | 원본 편집]

인도의 극우[편집 | 원본 편집]

인도의 극우는 대체로 힌두트바에 영향을 받아 힌두교적 가치 외에는 모조리 거부하기 때문에 반이슬람, 반서구주의, 반다문화주의 성향을 지닌다. 인도의 독립 이후 극우 단체들은 정치 세력화 되었고 이에 따라 극우 단체에 대해 여러 규제가 있었다.

인도의 극우 단체[편집 | 원본 편집]

각국의 주요 극우 정당[편집 | 원본 편집]

집권중인 정당은 볼드체 처리.

중국공산당조선로동당도 본래는 극좌에서 시작했고 극좌의 외관을 띄고 있으나 현재는 전통적인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멀어졌으며 오히려 중상주의, 민족주의, 부성주의, 소수집단 혐오, 장애인 배척(북한) 등 극우 성향을 띠고 있다.

과격파 우파 = 극우?[편집 | 원본 편집]

우파 정당, 단체를 극성(과격파)으로 지지한다고 극우라고 볼 수는 없고[21] 극단적 우파를 지지해야 극우라고 할 수 있다. 강성 (우파 지지자)와 (강성 우파) 지지자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중의적 표현의 문제이다. 후자는 이념상 극우와 거의 일치하지만 전자는 이념상 온건 우파이거나 강성 우파일 수 있다. 온건한 우파가 우월하다는 엘리트 주의에 빠져 극성 지지자가 되기도 한다. 일부 극성 민주당/국민의힘 지지자가 문자 폭탄 등의 폭력을 행사하곤 하지만 이념으로 따지는게 더 정확하기 때문에 당장 극좌나 극우라고 볼 수는 없다.

반대로 극좌라는 말도 남용되기도 한다. 극성으로 지지한다고 극좌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과격파의 기준을 폭력으로 한다면 과격파 극좌와 온건파 극좌도 존재한다. 반대로 이념상의 과격파라고 한다면 과격파 우파가 극우가 된다. 결론으로 과격파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서 과격파 우파를 극우라고 할 수 있다. 소수자 배척, 국수주의적 사고 등 이념적으로 너무 과격하다 싶으면 그냥 극우라고 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

극우몰이[편집 | 원본 편집]

우파라는 개념 자체가 좌파로부터 구별짓고 비교하기위해 생겨났다보니 실제로는 좌파, 우파 모두를 거부하는 제3의 위치를 표방했더라도 좌파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극우딱지를 붙이는 등, 좌파 아닌 극단주의자들을 전부다 극우로 모는 극우몰이가 특히 대한민국에서 성행하고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극우몰이에 지친 여론도 점차 나타나고 있는 추세이다.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이러한 이유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폐해와 2008년 경제 공황도 한 몫한다.
  2. 극단주의 연구 권위자 토마스 그룸케 독일 교수 “사회적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저항하는게 극우”, 주간경향 1094호, 2014.09.30
  3. 3.0 3.1 역사바로알기> 알기쉬운 역사연한 > 역사교과서, 동북아역사재단
  4. 日 보수 민심도 '안보법 강행' 아베에 등 돌리나, 한국일보, 2015.07.27
  5. '역사왜곡' 일본 교과서, 제가 뜯어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2015.04.21
  6. 일본 정부의 방침과 정면 충돌하는 야마가와(山川) 출판사의 교과서 점유율이 60프로를 차지한다. https://hankookilbo.com/News/Read/A2021040516070000929 https://m.khan.co.kr/opinion/yeojeok/article/202112192025005
  7.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90190 2021학년도(2021년 4월∼2022년 3월)부터 4년간 사용될 일본 공립 중학교 교과서 선정 결과 이쿠호샤 교재의 채택률이 역사 1%, 공민(일반사회) 0.4%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15년의 역사 교과서 6.2%, 공민교과서 5.7 % 채택률에서 많이 감소한 것이다.
  8. 자민당 내에서 보수 본류와 보수 방류가 있다. 본류는 온건한 편이고 방류는 조금 더 급진적이다.이름이 방류이지만 비주류인 것은 아니다.
  9. 이승만은 과거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 하기 위해 개신교 우파를 지원 했다.
  10. 단, 이들 대부분 고령화되어 있다.
  11. 참고로 한국의 자칭 좌파 또한 극우와 다름 없이 민족주의를 신봉하는데 이로 인해 제대로 된 좌파와 우파가 없다.
  12. "언젠간 朴 전 대통령을 당수로" 친박단체, '새누리당' 창당…대선 후보에 변희재·정미홍·정광용 거론, 조선일보, 2017.04.05
  13. `친박` 조원진 한국당 탈당…`新 새누리당` 입당, 매일경제, 2017.04.08
  14. 박근혜 지지 시위 '엄마부대' 대표, 촛불집회 나온 여고생 폭행, 경향신문, 2016.11.06
  15. 워마드는 스스로를 페미가 아니라고 했지만 일부 페미가 워마드를 페미라고 하고 있다
  16. 프랑스 유권자들 ‘낡은 기성 정치는 가라’, 한겨레21, 2017.05.04
  17. [뉴스따라잡기]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고문, VOA, 2017.02.08
  18. 본래 중도우파 정당이였으나 90년대 정개개편을 거치며 온건파들이 줄줄히 탈당했고 2000년대 이후 점차 우경화를 거듭 반복해 극우 포퓰리즘적으로 변하고 있다. 유사 사례로 이스라엘의 리쿠드, 터키의 정의개발당, 통합 러시아, 네오콘 부상 이후 공화당, 헝가리의 피데스가 있다.
  19. 고이케 유리코 개인의 내치를 제외한 역사/외교/민족주의적 정치 시각은 아베보다 극우적인 면이 상당하며 2018년 총선 패배 이후 온건파들이 국민민주당으로 뻐져나가서 사실상 고이케 유리코의 사당이 된 현재는 실질적으로 우파~극우 정당이다.
  20. 당 자체는 중도우파~우파 성향의 주류 보수주의 정당이지만 자유당 친화적인 이들이 존재한다.
  21. 이 경우 스펙트럼 상 온건우파일지 몰라도 과격파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