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레짐

Sternradio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5월 4일 (월) 17:44 판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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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레짐(International Regime)은 1970년대 사회과학에서 도입된 개념이다. 국제 레짐 이론은 무정부 상태인 국제사회에서 각 국가들이 협력하는 원인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다.

개요

국제 레짐을 연구하는 이론을 레짐 이론이라고 하며, 주로 현실주의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연구된다.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에서 국제체제는 무정부 상태로 파악된다. 그럼에도 각 국가들이 일종의 '규칙을 따르는 경향', 혹은 국제 협력이 실제로 존재하는 원인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모 교수에 따르면 레짐 이론은 '현실주의와 자유주의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한다. 서로 많이 다른 이론임에도 레짐 이론에서는 '레짐'이라는 공통분모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 때문. 어려운 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현실주의 이론가들과 신자유주의[1] 이론가들은 공히 국가란 국제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이며, 무정부적 환경에서 자국의 이익추구를 위하여 행동한다는 점에 동의를 표한다." [2]

이하는, 특히 구성, 특성, 타 개념과의 비교 부분에서는 조경근(2001)을 많이 참고하였다.[3]

레짐의 정의

레짐(regime)은

  • 지배적인 사회적 체계 혹은 패턴 (a prevailing social system or pattern)
  • 통제되는 체계 (a regulated system)

으로 정의된다.[4]

좀 더 어려운 정의로는 "국제관계의 특정한 쟁점영역을 둘러싸고 행위자의 기대가 수렴되는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원칙, 규범, 규칙 및 정책 결정절차의 총체"라는 것이 있다.[5]

한편 '국제 레짐'이라는 용어는 1970년대부터 사용되었으며, 1982년 '합의적 정의'(consensus definition)가 만들어졌으나, 아직 구체적인 정의에 관해서는 논의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6] 오죽하면 국제 레짐 대신 '정책조정'(policy coordination)이라는 용어를 쓰는 학자도 있을 정도.

구성

레짐의 구성요소로는 원칙, 규범, 규칙, 정책결정절차가 있다.국제 레짐이론의 교과서와도 같은 「국제 레짐」(International Regimes)의 저자인 크래즈너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7]

  • 원칙(principles)
사실, 인과관계, 그리고 올바름에 대한 신념들.
  • 규범(norms)
권리와 의무로 규정된 행동의 기준들.
  • 규칙(rules)
행동의 특정한 지시 혹은 금지사항들. 규범보다 구체화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 정책결정절차(decision-making procedures)
공동의 선택을 수립하고 수행하기 위한 지배적 관행들. 용어가 정의보다 직관적이다.

특성

국제 레짐의 주요 특성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 국제 레짐은 모든 분야에 걸쳐 공통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이슈 영역에만 존재한다.
즉, 국제무역레짐과 같은 개념은 이론상 문제가 없지만, 국제군사경제환경레짐 짬뽕같은 것은 레짐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 상부 쟁점과 하부 쟁점에 별개의 레짐이 형성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제무역레짐이 이미 존재하더라도, 동아시아무역레짐이 또 존재할 수 있다.

타 개념과의 비교

  • 국제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국제기구와 국제 레짐을 혼동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실제로 국제 레짐과 국제기구가 긴밀한 관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기구는 인력, 사무실 등을 포함한 '물리적인 실체'를 가리키는 반면, 레짐은 그런 국제기구가 행사하는 '영향력'을 의미한다고 보면 얼추 비슷하다. 물론 국제 레짐이 국제기구로 한정되지는 않으므로 엄밀히 말해서 옳은 것은 아니다. 사회학의 사회실재론에서 '사회'와 비슷하다고 보면 적절하...려나?
  • 국제제도(international institution)
국제제도가 훨씬 넓은 개념이다. 제도주의적 국제정치학자들의 등장 이후 국제제도는 국제기구, 국제 레짐, 협약(convention)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국제 레짐은 그 외에 국제체제(international system), 국제질서(international order), 국제협정(international agreements)와도 구분되는 개념이다. 여기서 국제체제는 사상적, 사조적 배경이 아예 다른 개념이다. 국제질서는 국제 레짐의 결과물로서 형성되는, 일종의 혜택이라고 보면 된다.

역사

배경:패권안정론의 등장과 쇠퇴

레짐 이론의 등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레짐 이론이 대체한 패권안정론이 등장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하 패권안정론의 역서와 관련한 내용은 백창재(2003)의 논문을 기반으로 재가공한 것이다.[8]

상세한 내용은 후술하겠지만, 패권안정론은 국제사회에서 과소공급되는 '공공재'를 패권국이 타국에 압박을 넣음으로써 충분히 공급되게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패권국도 타국과 이익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유무역이 세계경제의 공공재라면, 각국은 자국으로서는 보호무역이 더 이득이므로 무정부 상태에서는 보호무역이 대세가 될 것이고, 전체적인 세계경제는 비효율의 늪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패권국은 자유무역이 자신의 이익이 되므로 타국에 시장 개방 압력을 넣을 것이고, 타국은 이에 굴복하여 세계는 자유무역이 되고, 비교우위에 따른 효율 상승으로 모두가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 해피엔딩이 된다.

패권안정론은 1970년대 초반에 대두되었는데, 이는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이 시기는 전후 국제경제질서가 흔들렸던 때이다. 무역질서에는 '성공할수록 붕괴의 위험이 커지는' 내재적 모순을 지니고 있었으며, 국제통화질서의 불안정이 심화되고, 국제금융질서는 혼란에 빠졌으며, 국제경제질서 내 힘의 분포도 또한 크게 변화했다. 특히 유럽의 전후 복구가 진행되면서 미국의 경제력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다.

요약하자면 전후 10년간 미국의 압도적인 경제력에 따라 안정되었던 국제경제질서가 60년대 후반 이후 미국 경제의 쇠퇴에 따라 불안정해진 것이다. '국제경제질서가 혼돈의 카오스에 빠지고 있는 상황인데, 마침 미국의 영향력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양자의 상관관계를 지적하는 이론이 패권안정론인 것이다.

1970년대 들어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약화되었고, 패권안정론에 따르면 기존의 세계경제질서는 보호무역이 득세하며 ㅈ망해야 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GATT와 초국적 기업의 영향력이 높아졌으며, 환경 문제 등의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면서 국제사회에는 '제도화된 협력'마저 생겨나기 시작했다.[9] 이는 패권안정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기 혼자만 잘먹고 잘살겠다고 보호무역을 추구해야 할 국가들이, 어느새 자기들 나름대로 자유무역의 '원칙', '규범', '규칙', '정책결정절차'를 만들더니 이걸 진짜로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대 중반에야 뒤늦게 멘붕한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를 설명할 이론적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의 득세와 국제 레짐 개념의 등장

이때 등장한 것이 신자유주의 이론이다.[10] 그리고 이 신자유주의에서 드디어 국제 레짐 개념이 등장한다.

당시 자유주의자들도 이론적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크라토히빌(Ktratochwil)과 러기(Ruggie)에 의하면, 70년대 초 자유주의자들은 자유주의의 핵심이었던, 국제 거버넌스(international governance)가 국제기구의 활동과 동의어라는 관념을 포기해야 했다.[11] 그 관념에 따르면, 당시 드러나기 시작했던 국제기구의 위기 상황은 곧 국제 거버넌스의 약화로 이어져야 하고, 이는 다시 30년대처럼 보호무역으로의 회귀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국제기구의 상황이 막장이 되었음에도 오히려 국제협력(무역)은 증대되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자유주의자들은 국제 레짐이라는 개념을 드디어! 도입했다.

신자유주의적 국제 레짐 이론은 "각 국가들로 하여금 공동이익을 자각하도록 하는 국제 레짐의 역할을 강조"함에 더불어, "국가를 단지 자신의 절대적 이득(absolute gains)만을 추구하는 합리적 이기주의자(rational egoists)로서 묘사"하며, 정보경제학적 이론, 게임이론 모델들을 활용한다.[12] 국제 레짐 개념은 국제협력의 과정과 구조뿐만 아니라, 국제협력 과정에서 국제기구가 수행한 역할 또한 연구할 수 있게 만들었다.[13]

각 이론별 관점

이하의 내용은 대부분 하센클레버(Hasenclever) 외(2000)의 논문에 바탕한 것이다.[14]

국제 레짐에 대한 논의는 주로 신자유주의, 현실주의, 인식론의 세 학파에 의해 진행되어왔다.

신자유주의적 관점

신자유주의에서는 국가들이 공동의 이익 추구를 촉진하는 국제 레짐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 관점에서 국가는 자국의 절대적 이익(absolute gain)을 추구하는 '이기적' 행위자로 간주된다. 이기적 행위자 가정은 현실주의와 같지만, 상대적 이익(relative gain)이 아니라 절대적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상호 이익에 기반한 자발적 국제 협력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다른 나라가 자기보다 잘살게 되더라도 자기도 잘살게 된다면 아무래도 됐다는 것.

하지만 어쨌든 다른 정치판처럼 국제정치판도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곳이므로 국가 스케일의 사기꾼도 있을 수 있다. 상호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협력도 힘든 법이므로 국가들은 레짐을 형성하여 국제 협력의 투명성을 제고하고자 하고 불확실성을 경감하고자 한다.

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경제학적인 설명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죄수의 딜레마 같은 게임이론 모델도 사용된다.

한편 신자유주의적 레짐 이론에서는 현실주의의 요소도 일부 도입했다. 현실주의처럼 국가를 이기적 행위자로 전제하지만, 결론은 딴판이다. 현실주의에서는 '국가들 다 이기적이니까 서로 싸우고 끝이다. 협력? 그런 거 없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서는 국가들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레짐을 형성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답이 없어서 캐리어 갔더니 마인드 컨트롤로 뺏긴 상황이다.

또한 이 관점에서는 국가를 기존의 이론들보다 좀 더 '똑똑한' 존재로 본다. 무슨 말이냐면, 국가는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그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만약 국제 규범을 어긴다면, 이는 단순히 규범을 어기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규범을 어겨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르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요, 국가의 신뢰도 자체가 떨어져버린다는 것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레짐은 만들기도 어렵고 유용하기 때문에 국가들은 기존 체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유인이 크다고 분석한다. 레짐이 곧 매몰비용(sunk cost)이라는 것이다. 어? 경제학 배워보니까 매몰비용을 고려하는건 합리적인 행위가 아니랬는데?

현실주의적 관점

패권안정론

역사 부분에서 잠깐 다루었지만, 패권안정론(hegemonic stability theory)은 신현실주의가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70년대 초 길핀(Gilpin) 등의 학자를 중심으로 태동하였던 이론이다.


인식론적 관점

관련 항목

각주

  1. (원주) 국제 레짐에 관한 신자유주의 이론들은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통합(a synthesis of realism and liberalism)적 양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즉,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특정한 현실주의적 교의들을 수용하면서도, 국가들은 협력을 통하여 공동이익(common interests)을 실현할 수 있으며, 제도들(institutions)은 그러한 협력을 용이하게 한다는 자유주의적 식견 역시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이 국제 레짐 연구를 위하여 설정한 개념적 구조틀은 현실주의 이론가들의 입장에서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2. 최위정. 2007. "현실주의 국제 레짐 이론에 관한 고찰." 사회과학연구 제13권 제2호, 2007.2, 175-202
  3. 조경근. 2001. "국제 레짐이론: 개념논쟁." 국제정치연구 제4집 1호 pp.1-16
  4. 출처는 2013년 이재승 교수의 '국제관계원론' 수업자료이다. 신뢰도는 알아서 판단하자.
  5. Krasner. Stephen D., ed. 1983. "Structural causes and regime consequences: regime as intervening variables." in Krasner, Stephen D., ed. 1983. International Regimes.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를 조경근. 2001. "국제 레짐이론: 개념논쟁." 국제정치연구 제4집 1호 pp.1-16에서 재인용. 아이고 길다
  6. 김태운. 2005.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국제정치관: 인식의 공유와 차이." 정치•정보연구 제8권 2호 pp.190-211
  7. Krasner. Stephen D., ed. 1983. "Structural causes and regime consequences: regime as intervening variables." in Krasner, Stephen D., ed. 1983. International Regimes.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를 조경근. 2001. "국제 레짐이론: 개념논쟁." 국제정치연구 제4집 1호 pp.1-16에서 재인용.
  8. 백창재. 2003. "패권과 국제정치경제 질서: 패권안정론의 비판적 평가." 국제•지역연구 12권1호. pp.1-20
  9. 김태운. 2005.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국제정치관: 인식의 공유와 차이." 정치•정보연구 제8권 2호 pp.190-211
  10. 신자유주의의 상세는 국제정치학, 국제정치학/자유주의를 참고.
  11. Kratochwil, F. and Ruggie, J. 1986. "International organisation: a state of the art on an art of the state." International Organization 40: 753-75., Gale, F. 1998. "Cave 'Cave! Hic dragones' : a neo-Gramscian deconstruction and reconstruction of international regime theory." Review of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pp.252-283에서 재인용
  12. 최위정. 2007. "현실주의 국제 레짐 이론에 관한 고찰." 사회과학연구 제13권 제2호, 2007.2, 175-202
  13. Gale, F. 1998. "Cave 'Cave! Hic dragones' : a neo-Gramscian deconstruction and reconstruction of international regime theory." Review of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pp.252-283
  14. Andreas Hasenclever, Peter Mayer, Volker Rittberger. 2000. "Integrating Theories of International Regimes." Review of International Studies, Vol. 26, No. 1, pp.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