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수

Battlehistory2122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월 16일 (일) 15:08 판 (새 문서: 섬네일 郭潤秀.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 생애 == 1878년 6월 29일 한성부에서 출...)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곽윤수.jpg

郭潤秀.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

1878년 6월 29일 한성부에서 출생했다. 그는 중국에서 인삼 가게 등을 하여 상업 활동을 하다가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임시정부를 위해 3개월간 자신의 집을 사무실과 숙박소로 제공했다. 그해 11월 임시정부 서울지역 조사원을 맡아 국내에 들어와 유력자, 재산가, 학교, 종교 등을 조사하여 보고하였고, 1925년 인구세를 임시정부에 납부했다. 그러나 일제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중국으로 피신하였고, 1937년 11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곽윤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여담

2019년 4월 11일, KBS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획 '시사기획 창 - 밀정'을 보도했다. 방송에서는 임시정부 초기 인물 225명이 나온 단체 사진이 1919년 7월 9일 조선군참모장이 육군차관에 올린 보고서에 참부된 사실을 밝혀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단체사진은 "프랑스 조계 안장리(장안리의 오타) 상인 배일 조선인 곽윤수의 집에 걸려 있던 것"이며, "곽윤수 처의 남동생으로 하여금 은밀히 단시간 밀정에게 가져오게 해 복사한 것"이라고 쓰여 있다. 즉, 일제의 밀정이 곽윤수의 처남을 통해 사진을 몰래 받아 복사한 뒤 상부에 보고한 것이다.[1]

제작진으로부터 이소식을 들은 곽윤수의 외손자 김문렴 씨는 "오늘 이 얘기를 들으니 마음속 의문이 다 해결됐다"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는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 누군가 외할아버지를 배신해 (외할아버지가) 일본이 죽이러 온다며 도망갔다고"라면서,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속상할 필요가 없다. 어느 시대나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공존하기 마련이다. 영웅이 있으면 배신자가 있는 것"이라며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2]

외부 링크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