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철학

틀:학술

위 그림은 바티칸 궁전의 라파엘로의 방에 있는 아테네학당이다. 화가는 당연히 라파엘로이다.

개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으로 서양철학의 원류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탄생하였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고대 그리스 세계는 노예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일찍부터 그리스인들은 생산활동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유와 논의를 할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이러한 여유 속에 등장한 것이 철학이다. 그리스 철학은 이오니아 지방에 위치한 밀로토스 시에서 먼저 시작되었다고 추정된다.

밀로토스 학파

밀로토스 학파는 처음으로 무엇이 실제적으로 자연을 구성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 새뮤엘 이녹 스럼프

밀로토스 시에 살았던 철학자들이기에 밀로토스 학파 또는 이오니아 학파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철학자는 탈레스(Thalse),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아낙시메네스(Anaximenes)가 있다. 이들은 사물의 실제란 무엇인가?, 사물은 왜 변하는가?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즉 이들은 사물의 제1실체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밀레토스 학파는 과학적인 관심으로 생각했지만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어떠한 실험 장치나 실험 방법을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이들은 인간 지식의 본성과 한계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았고, 정신과 육체의 관계를 설명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물의 근원인 제1실체에 대해 논의하고 그것에 대해 탐구를 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탈레스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 탈레스

탈레스는 저술을 남기지 않았기에 일화나 역사서에 나오는 단편적인 지식으로만 그에 대해서 알고 있다. 탈레스는 솔론과 동시대 인물이고 그는 주로 기원전 624년에서 기원전546년 사이에 활동하였다. 업적으로는 페르시아 전쟁 당시 할리스 강 옆에 수로를 파 강의 폭을 줄여서 군대를 넘어가게 했으며, 그림자를 통해 피라미드의 높이를 측정하는 방식을 고안하였다. 또한 그는 기원전 585년 5월 28일에 일식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였다. 또한 해상에 보이는 배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구와 작은곰자리가 북쪽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아냈다. 그리고 탈레스가 가난하게 생활하자 사람들이 그를 보고 철학자는 다 가난뱅이라 말하자. 내년에 올리브가 풍작임을 예측하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모아 올리브 짜는 기계를 선약했다. 여름이 되고 올리브가 풍작이 되었고 올리브 짜는 기계가 비싸지자 이때 기계를 풀어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그리스판 허생전

탈레스가 서양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그는 만물의 구성 근원에 대한 논의를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는 만물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는가? 그 만물을 구성하는 질료(재료)를 고민했다. 그가 제시한 것 질료는 물이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만물의 구성원이 물이라고 주장한 것보다는 그가 만물의 구성원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는 매우 중요한 철학자이다.

아낙시만드로스

우주 만물은 형태가 없으면서 무한한 그 어떤 것운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의 제자이다. 그는 만물의 시초가 물이라는 스승의 주장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만물의 구성원이 물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만물의 구성원은 물과 같이 구체적인 것이 아닌 우리가 볼 수 없는 그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제시한 것은 ‘’‘형태가 없으면서 무한한 그 어떤 것’‘’이다.

그는 이 형태가 없으면서 무한한 그 어떤 것운동하면서 냉기와 온기가 만들어지고 그 사이에서 습기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통해 땅과 공기가 만들어지고 여기서 만물이 창시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바다에서 모든 생명체가 등장하였고 이들이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육지로 올라서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형태가 없으면서 무한한 그 어떤 것인 제1실체가 움직이면서 만물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낙시메네스

만물은 공기의 움직임에 의해 이루어졌다.
— 아낙시메네스

아낙시메네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친구이다. 그는 친구인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 “형태가 없으면서 무한한 그 어떤 것이 제1실체이다.”라는 주장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다. 과연 우리 눈에 보이는 사물이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서 만들어졌을까? 하는 의문 속에 그는 이에 대한 새로운 답을 찾으려 하였다. 그래서 그는 공기가 모든 사물의 제1실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공기가 운동하면서 사물의 형태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즉 아낙시메네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에서 제1실체를 형태가 없으면서 무한한 그 어떤 것에서 공기로 전환시켰을 뿐이었다.

피타고라스 학파

만물은 피타고라스의 정리이다.

만물은 숫자로 구성되어 있다.
— 피타고라스

사모스 섬에서 태어난 피타고라스(B.C. 570?-497?)는 폴리크라테스의 폭정 기간에 사모스 섬에서 탈출 남부 이탈리아의 크리톤 시에 정착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록에 의하면 <피타고라스학파는 수학에 몰두했고 그 연구를 최초로 발전시켰다. 또한 수학 속에서 그들은 수학의 원리야말로 만물의 원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1]

피타고라스학파는 수를 계산하고 기록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들의 교의를 발전시켜 나갔다. 특히 음악이 현의 길이에 따라 음정이 비례한다는 사실을 통해 음악이 만물이 숫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의 증명이라고 주장하였다.[2] 피타고라스학파는 세계는 정수의 비로 되어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히파소스가 직각 이등변 삼각형의 경우 직각을 낀 두 변과 빗변 사이의 관계가 정수비로 표현될 수 없다는 주장을 해 피타고라스학파에 의해 끔살당했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의의는 수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형상(form)의 개념을 확립한 것이었다. 밀로토스 학파가 만물의 구성물이 무엇인지 논의했다면 피타고라스학파는 만물의 구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설명하였다.

예를 들어보자, 빵은 밀로 구성되어 있는데, 밀로토스 학파는 빵이 무엇(밀)으로 구성되었는가를 논의하였던 것이고, 피타고라스 학파는 밀이 무엇(빵)이 될 것인지 고민하였다.

형상(form)의 개념은 이후 철학사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변화를 설명하려는 시도

헤라클레이토스

만물은 유전(流傳)한다.[3]
— 헤라클레이토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은 "불"과 같이 끝없이 변화하는 것이라 보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 "어떠한 것도 손실되는 것은 없으면 자신의 형상을 변화시킬 뿐"이라 보았다. 그렇다면 그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의 변화는 대립자들간의 충돌, 투쟁의 결과라 보았다. 예를 들어 냉기와 온기 간의 대립이 만물을 만들어 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보편이성(로고스 Logos)에 따라 진행된다고 보였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세상은 불처럼 끝없이 변화하는데 그 변화는 보편이성에 따라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많은 대립자 간의 충돌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엘레아 학파

세계는 "하나(the One)"이며, 이 "하나"는 나누어지지도, 변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다.
— 파르메니데스, 엘라아 시에서

파르메니데스(Parmenides)는 기원전 510년 이탈리아 남서부 엘라아 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와 동시대 인이며 엘레아 학파를 창시하였다. 그는 전 우주는 하나(The one)뒤집어 읽으면 neo라 보았다. 그리고 이 하나는 나누어지지도, 변하지도, 소멸되지도 않는다고 보았다.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은 즉, 세계는 하나로 이루어져있고, 그 하나는 어떠한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박은 왜 우리 눈 앞에 각자 다르게 보이고, 다른 동물이 있는가?이다. 이에 대해 파르메니데스는 그것이 전부다 허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나무를 예를 들면서 설명하면서 나무는 생성되고 자라나고 죽고 사라진다 즉 이를 개념화시킨다면

존재하지 않는다 -> 존재한다 -> 존재하지 않는다.

없다가 있고, 있다가 없으니 이것은 일반적인 사고에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해 안되도 넘어가자 2500년전의 주장이고 이미 후세의 학자들에 의해서 깨졌기에 우리는 이해가 안되는거다. 굳이 설명을 원한다면 파르메니데스는 무에서 유가 창출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파르메니데스는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이 모두 가상이라 보았다. 당연히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은 당시에도 많은 이해가 잘 안되었는지 그 제자인 제논은 파르메니데스 주장에 대한 반론을 해결하는데 총력을 다했다.

제논(Zenon)은 B.C. 489년생이다. 그는 파르메니데스의 제자로 파르메니데스 주장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먼저 감각을 부정했다. 우리가 느끼는 감각은 한정적이기에 실재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한 개의 씨앗을 떨구면 소리가 안나지만 한 포대기를 부으면 소리가 난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각으로는 실재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서 실재는 한 개의 씨앗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감각이 우리를 현혹하기에 감각을 넘어 이 세상은 "하나"라고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논의 역설
아무리 아킬레우스가 빨라도 거북이를 이길 수 없다!!?
— 제논의 역설

엘레아 학파와 비슷한 지역에 있는 피타고라스 학파는 시시껀껀 싸웠는데 이에 귀찮은 제논이 역설을을 제시해 피타고라스 학파를 버로우 시킨일이 있다. 이때 나온 역설을 제논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총 4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이다.

아킬레스는 거북이보다 1000배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이제 거북이와 아킬레스가 경주를 하는데 거북이가 느리므로 아킬레스보다 1000미터 앞에서 출발한다고 하자. 아킬레스가 거북이가 출발한 위치까지 오면, 그 동안 거북이는 1미터 앞으로 나아가 있을 것이다. 이 1미터를 아킬레스가 따라잡으면 그 동안 거북이는 1/1000미터 나아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이 1/1000미터를 아킬레스가 따라잡으면 그 동안 거북이는 1/1000000미터 나아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아킬레스가 앞서가는 거북이의 위치를 따라잡는 순간 거북이는 항상 앞서 나가 있다. 따라서 아킬레스는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4]

뭐 가속도 개념을 넣으면 쉽게 해결되지만 당시에는 가속도 개념이 없었기에 그리고 피타고라스 학파는 세상이 모두 정수로 되어있다고 보았기에 이런 주장에 버러우타게 된다.

제논의 역설이 지닌 의미는 이를 통해서 모든 운동은 가상이며, 다원성을 인정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즉 한마디로 세상은 다 헛것!!이라 주장한 것이다.

엠페도클레스

세상은 변화하지만 그 물체를 이루는 입자는 변화하지 않는다.
— 엠페도클레스

엠페도클레스(Empedokles, B.C. 490-430)는 시칠리아 아르겐툼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신화속에 남기고 싶어서 에트나 분화구에서 몸을 던졌다고 전해진다. 엠페도클레스는 파르메니데스의 학설과 헤라클레이토스 학설을 혼합해 새로운 학설을 만들었다. 그는 만물이 변화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와 만물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의견을 절충하기 위해서 "만물은 입자들의 변화로 이루어졌고, 그 입자는 영원불멸하다"라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만물은 혼합과 혼합된 것들의 교환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혼합을 일으키는 힘은 사랑과 증오라 보았다. 그는 세상을 구성하는 입자는 물, 불, 공기, 흙이고 이 4가지 요소들이 사랑과 증오에 의해 혼합되어 형성하고 다시 헤체된다고 보았다.

그는 사랑이 입자들을 끌어와 혼합시켜 물체를 만들고, 이후 증오가 침투하면서 조금씩 쇠퇴한다. 이후 중오가 우세하면서 금이 갈라지고 틈이 발생하며 결국에는 증오만 남고 부식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다시 사랑이 물체를 만드는 순환과정으로 세상이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아낙사고라스

세상의 변화는 Nous에 따라 이루어진다.
— 아낙사고라스

아낙사고라스는 터키 해안 클라포메나이 출신으로 이후 아테네로 이주해 정치인이 되었다. 그는 Nous 정신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그는 엠페도클레스의 주장대로 만물의 생성과 소멸은 기존 실체(입자)들의 결합과 분리라 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해서 이런 결합과 분리가 있는가였다. 즉, 엠페도클레스가 말한 사랑과 증오의 힘이 어떻게 왜 작용하는지를 해결하려고 하였고, 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정신nous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즉 누스nous가 입자들의 분리와 결합을 일으키는 요소인것이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스nous 즉, 정신은 입자를 만든 창조자가 아니라 입자와 같이 존재한 것이며, 동시에 이는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쉽게설명하면 설계도이지 설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원자론자

원자론자들은 공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 진공의 공간이 존재하며, 그 진공의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상태라 설명했다. 또한 사물은 무수히 많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세계는 진공의 공간에 원자로 구성된 사물로 채워진 것이라 설명했다. 쉽게 말하자면 흰 도화지 위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상태이다. 공백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다.

원자론의 가장 큰 의의는 기존에 있었던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질문을 종합화시켜 체계화하고 이를 인간의 사고에 접목시킨 점에 있다. 원자론자인 데모크리토스는 사고도 원자의 운동과 같다고 보았다. 우리가 사물을 본다는 것은 그 사물의 원자가 우리의 눈을 통해 뇌에 전달되기 때문이라 보았다. 그리고 이에 따라 대상에만 의존하는 지식을 적출이라 보았고, 감각에 의존한 지식을 서출이라 보았다.

예를 들어 하나의 사과를 두 사람이 먹는다고 하자. 이 둘은 모두 이 것이 사과임을 알고있다.(그러나 그 맛은 서로 다르다. 그래서 사과라는 존재임을 아는 것을 적출의 지식이라했고, 감각을 통해 알게된 미각은 서출의 지식이라 보았다. 왜냐면 적출의 지식은 변화가 없는 것이고, 서출의 지식은 수십가지로 변하기 때문이다.

원자론자를 마지막으로 세상에 대한 탐구는 막을 내렸다. 이제는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해야하는가?"라는 인간본연의 문제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더 읽을 거리

각주

  1. 새뮤얼 이녹 스럼프 · 제임스 피저 지음, 이광래 옮김,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파주: 열린책들, 2008, p.31
  2. 인과관계의 오류, 또는 잘못된 탓이다. 자세한 것은 쉬운 토론참조
  3. 만물은 자유롭게 변화한다.
  4. 네이버 제논의 역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2&contents_id=144, 검색일 2015.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