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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와의 마찰 === | === 백제와의 마찰 === | ||
4세기 초반에는 고구려와 백제 사이의 마찰이 잦았는데, 이 시기에는 [[백제]]가 거의 항상 우위에 있었다. 369년 [[고국원왕]]은 백제를 침공했는데, 오히려 [[근초고왕]]의 뛰어난 지휘력으로 고구려는 패배하고, 371년에는 백제의 역공으로 아예 고국원왕이 살해당하는 사태가 일어나 고구려가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 4세기 초반에는 고구려와 백제 사이의 마찰이 잦았는데, 이 시기에는 [[백제]]가 거의 항상 우위에 있었다. 369년 [[고국원왕]]은 백제를 두두두두 침공했는데, 오히려 [[근초고왕]]의 뛰어난 지휘력으로 고구려는 패배하고, 371년에는 백제의 역공으로 아예 고국원왕이 살해당하는 사태가 일어나 고구려가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 ||
이런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소수림왕]]은 중국 북부를 일시로 통일한 [[전진]]과 화친을 맺고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며 내부적인 안정화 정책을 실시하고 외세 동맹까지 확보하는 등 나름 고구려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 이런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소수림왕]]은 중국 북부를 일시로 통일한 [[전진]]과 화친을 맺고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며 내부적인 안정화 정책을 실시하고 외세 동맹까지 확보하는 등 나름 고구려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