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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는 대전격투 게임이 유행을 했지만 후반기에 침체되기 시작한다. 2000년대 들어서 리듬게임, 건슈팅 게임 등의 유행으로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나 싶었지만 이 역시 얼마가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1990년대에는 대전격투 게임이 유행을 했지만 후반기에 침체되기 시작한다. 2000년대 들어서 리듬게임, 건슈팅 게임 등의 유행으로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나 싶었지만 이 역시 얼마가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몰락의 길을 건게된건 다름아닌 게임시장의 변화인데 PC게임의 등장, 인터넷의 등장으로 시작된 네트워크 온라인 게임의 발달, 가정용 콘솔게임의 발달 등으로 더이상 오락실에 갈만한 메리트 요소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게임 에뮬레이터를 다운로드 할 수 있으며 스마트폰 앱으로도 오락실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청소년 게임장들은 2000년대 초반,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성인오락실로 전환하거나 청소년 게임기기를 줄이고 성인오락실 또는 PC방과 겸행하기도 했지만 이나마도 얼마 버티지 못했다.
 
몰락의 길을 걷게된건 다름아닌 게임시장의 변화인데 PC게임의 등장, 인터넷의 등장으로 시작된 네트워크 온라인 게임의 발달, 가정용 콘솔게임의 발달 등으로 더이상 오락실에 갈만한 메리트 요소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게임 에뮬레이터를 다운로드 할 수 있으며 스마트폰 앱으로도 오락실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동네 변두리에서도 여러곳 볼 수있던 오락실이 지금은 번화가나 유원지, 영화관, 터미널, 등의 부대시설 등지에 가야 볼 수있을 정도가 되었고 대형 체인이 아니면 운영이 어렵게 되었다.
이로 인해 동네 변두리에서도 여러곳 볼 수있던 오락실이 지금은 번화가나 유원지, 영화관, 터미널, 등의 부대시설 등지에 가야 볼 수있을 정도가 되었고 대형 체인이 아니면 운영이 어렵게 되었다.

2019년 12월 15일 (일) 13:58 판

동전을 넣고 플레이 하는 아케이드 게임기기들이 구비된 오락시설을 말한다. 영어로는 '아케이드'(arcade) '어뮤즈먼트 센터'(amusement center) 라고 부른다. 한국에는 주로 '오락실', '게임장', '컴퓨터 게임' 등의 명칭을 사용했고 현재는 오락실 이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한다.

상세

기기는 스틱형 기기, 건슈팅,리듬 체감기기, 경품게임[1] 건슈팅 기기나 체감형 기기, 경품게임 기기는 규모가 큰곳에 가야 볼 수있을 정도였고 199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동네 오락실엔 스틱형 게임기들이 대부분 이였다. 1970 - 80년대 까지는 슈팅게임이. 1990년대엔 격투게임. 2000년대엔 건슈팅, 리듬게임 등의 체감형 게임과 경품게임이 유행했다. 좀 큰곳들은 외부에 펀칭머신 기기가 구비되어 있었다.

한국의 역사

한국이 처음 오락실의 형태를 띄게된건 1970년대 중반기라고 한다. 그 이전에 게임기들은 전자적이 아닌 기계적인 것들로 지금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물건들 이었고 유원지에 가야 볼 수있었다. 초기에는 핀볼게임과 아타리에서 개발한 '퐁' 등의 게임이 들어왔었고 1977년 아타리의 브레이크 아웃(벽돌깨기)이 인기를 끌고 1978년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도입되어 인기를 끌면서 오락실이 늘기 시작한다. 다만 1975년 이후의 오락실들은 90% 이상이 불법으로 운영되는 곳이었는데 이는 당국에서 에너지 절약 및 청소년 생활지도 문제로 인해 신규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 또한 기판도 정품이 아닌 복제기판이나 해적판을 가져다 쓰는 경우도 많았다. 불법기판은 2000년대까지 사용되었고 이후 대형 체인이 들어서면서 거의 볼 수없게 되었다. 당시의 요금은 50원

1990년대에는 대전격투 게임이 유행을 했지만 후반기에 침체되기 시작한다. 2000년대 들어서 리듬게임, 건슈팅 게임 등의 유행으로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나 싶었지만 이 역시 얼마가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청소년 게임장들은 2000년대 초반,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성인오락실로 전환하거나 청소년 게임기기를 줄이고 성인오락실 또는 PC방과 겸행하기도 했지만 이나마도 얼마 버티지 못했다.

몰락의 길을 걷게된건 다름아닌 게임시장의 변화인데 PC게임의 등장, 인터넷의 등장으로 시작된 네트워크 온라인 게임의 발달, 가정용 콘솔게임의 발달 등으로 더이상 오락실에 갈만한 메리트 요소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게임 에뮬레이터를 다운로드 할 수 있으며 스마트폰 앱으로도 오락실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동네 변두리에서도 여러곳 볼 수있던 오락실이 지금은 번화가나 유원지, 영화관, 터미널, 등의 부대시설 등지에 가야 볼 수있을 정도가 되었고 대형 체인이 아니면 운영이 어렵게 되었다.

기타

  • 한국에는 기기에 동전을 올려놓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대기코인 이라는 룰이 있었다. 지금은 게임카드를 대기용으로 올려놓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199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이곳도 당구장 만큼이나 건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불량배들이 자기보다 만만하다 싶거나 학급이 낮은 애들에게 금품을 갈취하고 시비를 걸거나 대전액션 게임을 하다가 시비가 붙어 싸움이 벌어지고 담배를 꼬나물고 다녀서 안을 너구리굴로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문제 때문에 중, 고교에는 학생들이 오락실에 가지 못하도록 지도하고 학생부 선생들이 방과후에 오락실에 드나드는 학생이 없는지 감시하러 다니기도 했었다. 시험기간 이나 방학에도 오락실에 가는지 감시하러 다녔었는데 잔머리 굴리는 애들은 걸리지 않으려고 일부러 먼 곳에 원정을 나가서 게임을 즐겼다. 학교가 서로 가까운 곳들은 오락실에 드나드는 학생들의 정보를 공유했다고 한다. 이러한 인식은 오락실이 번화가 등지로 옮겨가고 체감형 게임기와, 경품 게임등이 등장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인식이 심어지게 되면서 개선되었다. 지금은 감시체계가 발달했으니 금품갈취나 행패를 부렸다간 따뜻한 콩밥이 반겨줄 것이다.
  • 감시체계가 미흡하고 기기에 방지장치가 없던 시기에는 공짜로 즐겨보려고 온갖 부정행위가 횡행했다. 버튼식 라이터나 가스렌지의 스파크 부품을 금속 투입구에 넣고 버튼을 눌러서 크레딧을 인식 시키거나, 10원 주화 태두리에 전기 테잎을 감아 100주화와 지름을 똑같이 만들어 100원으로 인식 시키거나, 동전에 구멍을 뚫어 실을 감는다거나, 우산살을 구부려 투입구에 넣는 방법 등 다양했다. 주로 돈 없는 애들이 이런 일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으며 기기에 영 좋지못한 영향을 끼치는데다가[2] 나쁜 짓이기 때문에 걸리면 영 좋지 못한 결말이 기다렸다.(...) 지금은 기기에 방지책과 감시카메라가 있으므로 절대로 하지 말것 편의시설 부정이용죄로 잡혀간다. 참고로 이 법률은 1995년 시행되었다. 군대에서는 PRC-999K 무전기에 숏 안테나를 결합해서 동전 투입구에 대고 송수화기 버튼을 눌러서 쓰기도 했는데 들어온 액수에 비해 게임 플레이 시간이 액수와 맞지 않아서 걸렸다. 게임용 기판에 북키핑 기능이 있고 서비스모드를 통해서 확인이 가능한데 북키핑 기록과 액수가 안맞으면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

각주

  1. 사행성 게임같은 것이 아니고 피규어, 장난감, 인형, 과자류 같은 물품을 획득할 수 있는 게임들을 말한다. 소위 말하는 주작확률이 높은 기기. 제 아무리 뽑아 봐야 시중에서 사는 것이 더 저렴하니 원하는게 있다거나 재미삼아 뽑을게 아니라면 죽어라 뽑지 않는게 좋다.
  2. 딱딱이는 전류가 기판에 영향을 주어 고장이 나고 투입구에 고장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기판이 애들 과자값 수준이 아니니 하다가 걸리면 그 돈을 변상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