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Bob-R: 두 판 사이의 차이

잔글편집 요약 없음
12번째 줄: 12번째 줄:


1904년, 해군 본부 위원회 제1군사 위원인 존 피셔(John Fisher) 제독은 전장의 확대에 맞춘 무기 체계 변화 필요성을 느껴 몰타 기지창의 최고 조선기사 W.H.가드(W.H.Gard)와 새로운 전함을 설계하고 그 이후 포츠머스 사령관(Commander-in-Chief, Portsmouth)이 all-big-gun 개념에 맞춘 선체설계를 준비하였다.
1904년, 해군 본부 위원회 제1군사 위원인 존 피셔(John Fisher) 제독은 전장의 확대에 맞춘 무기 체계 변화 필요성을 느껴 몰타 기지창의 최고 조선기사 W.H.가드(W.H.Gard)와 새로운 전함을 설계하고 그 이후 포츠머스 사령관(Commander-in-Chief, Portsmouth)이 all-big-gun 개념에 맞춘 선체설계를 준비하였다.
한편 1902년 여름, 비커즈 암스트롱(Vickers Armstorng)사는 속사가 가능하고 기존의 12인치 함포보다 더 많이 적재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새로운 10인치 함포를 지지하였다. 비커즈 암스트롱사는 수많은 전함 설계를 하였고 그 중에서 1902년 10월에 제출된 설계안은 8문의 10인치 함포, 20문의 6인치 함포를 무장한, 최대 속도 20노트의 17000톤 전함이었다. 암스트롱사의 설계가 자신이 구상중인 전함 개념과 유사함에 흥미를 느낀 피셔는 해당 설계안을 검토한 뒤, 10인치 함포 16문을 장착시키기 위해 6인치 함포를 10문 장착하는 것으로 변경시켰다. 피셔 제독은 수정된 설계안을 ─드레드노트 설계 위원회(Design Committee)에 소속될─ 해군 장교 3명<ref>R.H.S.Bacon, H.B.Jackson, C.E.Madden</ref>에게 보여주었다. 설계안을 살펴본 해군 장교들은 10인치 함포 16문 대신 더 적은 수의 12인치 함포를 배치하는 것을 권유하였고 그 근거로 대구경 포탄에 의한 파괴력 증가와 보다 적은 수의 함포를 운용함으로 얻을 수 있는 화력 통제의 편의성을 들었다.


출처 : ''British Battleships of World War One: New Revised Edition'', p.20-
출처 : ''British Battleships of World War One: New Revised Edition'', p.20-

2018년 1월 18일 (목) 17:09 판

밥알입니다.

드레드노트급 전함 항목 작성연습장

건조배경 및 특징

1888년, 해군성 장관 윌리엄 화이트(William Henry White)은 그 이전의 전함들보다 커진 새로운 전함 설계를 제출하고 1889년 계획하에 승인되었는데 이 전함은 프리드레드노트(Pre-Dreadnought)급 전함의 시초인 로얄 소버린급 전함이었다. 로얄 소버린급 전함은 영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전함 설계의 기준이 되었다.

1902년, 해군성 장관 필립 와트(Philip Watts)는 새로운 전함 설계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이에 따라 최소한의 배수량과 비용에 맞춰 ─ 타국의 프리드레드노트급 전함들보다 우월한 ─ 무장과 방호력, 기동성에 변화를 준 다양한 설계들이 나왔다. 동시에 윌리엄 메이(William May) 제독과 함께 각 설계안들의 상대적 효율성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지시하였다. 그리고 이에 따르면

  1. 군함의 부무장은 주무장에 비해 그 효과가 적었다.[1]
  2. 주무장의 파괴력이 강력하여 부무장의 유효 사거리까지 함선이 이동하기 전에 목표물이 파괴된다.[2]
  3. 전보다 장갑의 두꺼운 부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3]

라는 결과를 얻었고 이를 1903년 계획(1903 Programme)에 반영시켜야 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프리드레드노트급인 킹 에드워드 7세급 전함 3척을 더 건조하고 다음해까지 설계안을 연기시키기로 결정하였다.

1904년, 해군 본부 위원회 제1군사 위원인 존 피셔(John Fisher) 제독은 전장의 확대에 맞춘 무기 체계 변화 필요성을 느껴 몰타 기지창의 최고 조선기사 W.H.가드(W.H.Gard)와 새로운 전함을 설계하고 그 이후 포츠머스 사령관(Commander-in-Chief, Portsmouth)이 all-big-gun 개념에 맞춘 선체설계를 준비하였다.

한편 1902년 여름, 비커즈 암스트롱(Vickers Armstorng)사는 속사가 가능하고 기존의 12인치 함포보다 더 많이 적재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새로운 10인치 함포를 지지하였다. 비커즈 암스트롱사는 수많은 전함 설계를 하였고 그 중에서 1902년 10월에 제출된 설계안은 8문의 10인치 함포, 20문의 6인치 함포를 무장한, 최대 속도 20노트의 17000톤 전함이었다. 암스트롱사의 설계가 자신이 구상중인 전함 개념과 유사함에 흥미를 느낀 피셔는 해당 설계안을 검토한 뒤, 10인치 함포 16문을 장착시키기 위해 6인치 함포를 10문 장착하는 것으로 변경시켰다. 피셔 제독은 수정된 설계안을 ─드레드노트 설계 위원회(Design Committee)에 소속될─ 해군 장교 3명[4]에게 보여주었다. 설계안을 살펴본 해군 장교들은 10인치 함포 16문 대신 더 적은 수의 12인치 함포를 배치하는 것을 권유하였고 그 근거로 대구경 포탄에 의한 파괴력 증가와 보다 적은 수의 함포를 운용함으로 얻을 수 있는 화력 통제의 편의성을 들었다.

출처 : British Battleships of World War One: New Revised Edition, p.20-

  1. The destructive effect of secondary guns was very small in relation to that of the main armament.
  2. Damage caused by heavy projectiles was so extensive that the more lightly protected secondery armament was likey to be destroyed before it got within its effective range.
  3. Heavier armour was required over a much larger area than had previously been customary.
  4. R.H.S.Bacon, H.B.Jackson, C.E.Mad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