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해례)
Hunminjeongum.jpg
문화재 정보
종목 국보 제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구성 1책
위치 서울 성북구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1997년 (세계기록유산)
소유 전성우(개인)
관리 간송미술관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은 조선 시대에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세종의 명령으로 정인지를 비롯한 집현전의 학사들이 중심이 되어 세종 28년(1446년)에 만든 한문해설서이다.

책의 이름은 글의 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 하기도 하고, 해례(한문 해설서)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단,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본 적이 있을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하는 건 언해본으로, 해례본은 뜻은 같지만 '國之語音異乎中國'같이 한문으로만 쓰였다.

내용과 구성[편집 | 원본 편집]

구성을 보면 총 33장 3부로 나누어, 제1부는 훈민정음의 본문을 4장 7면으로 하여 면마다 7행 11자씩, 제2부는 훈민정음해례를 26장 51면 3행으로 하여 면마다 8행 13자씩, 제3부는 정인지의 서문을 3장 6면에 1자 내려싣고, 그 끝에 "정통 11년"(1446년)이라 명시하고 있다.

세종(世宗)의 어제 서문과 본문에 해당하는 〈예의(例義)〉 및 〈해례(解例)〉, 그리고 정인지가 쓴 〈서(序)〉로 구성되어 있다.

國之語音,異乎中國,與文字不相流通,故愚民,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予,為此憫然,新制二十八字,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矣

내가 이를 위해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다.

ㄱ。牙音。如君字初彂聲.....

ㄱ은 어금닛소리이니, 君 자의 처음 발하는 소리와 같다.....

今正音之作
이제 훈민정음을 만드는 것은
初非智營而力索
처음부터 슬기로 마련하고, 애써서 찾은 것이 아니라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다만 그 (원래에 있는)성음(의 원리)을 바탕으로 이치를 다한 것뿐이다.

理旣不二 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음양의)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니 어찌 천지 자연, (변화를 주관하는) 귀신과 그 사용을 같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

훈민정음 스물 여덟자는 각각 그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 《훈민정음 해례》(訓民正音解例), 〈제자해〉(制字解)

창제 원리[편집 | 원본 편집]

"세종실록"에 의하면 훈민정음은 세종 25년(1443년)에 왕이 직접 만들었으며, 세종 28년(1446년)에 반포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책에서 서문과 함께 정인지가 근작(謹作)하였다는 해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또한 한글의 제작원리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가. 모음음양의 원리를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 기본 모음'ㆍ, ㅡ, ㅣ'를 보면 'ㆍ'(아래 아)는 양(陽)인 하늘(天)을 본 떠 만들고, 'ㅡ'는 음(陰)인 땅(地)을 본 떠 만들었으며 'ㅣ'는 음과 양의 중간자인 인간(人)의 형상을 본 떠 만들었다. 천지인(天地人)은 우주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인 하늘(·)과 땅(ㅡ), 사람(ㅣ)을 나타낸다.
  • 훈민정음 해례본에 따르면 'ㅏ,ㅑ, ㅗ, ㅛ'는 'ㆍ'(아래 아) 계열의 글자이다.

'ㆍ'(아래 아)의 속성은 양이다. 양의 특성은 위로의 상승, 바깥으로의 확장이다. 따라서 점을 위, 바깥 쪽에다 찍은 것.

  • 'ㅓ, ㅕ, ㅜ, ㅠ'는 그 반대로 'ㅡ' 계열의 글자이기 때문에 음의 속성을 따라, 하강, 수축의 뜻으로 점을 안쪽, 아래로 찍은 것.

나. 자음오행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 훈민정음 해례본에선 각 방위와 발음기관을 연결시키고, 해당 발음기관에서 나는 소리 또한 방위와 연관시키고 있다. 방위는 또 계절과 연결이 되므로, 결국 소리는 계절과 연결된다.

(소리=방위=계절, 소리=계절) 계절은 봄, 여름, 늦여름, 가을 ,겨울 순이므로, 소리 역시 어금닛소리(ㄱ, 봄), 혓소리(ㄴ, 여름), 입술소리(ㅁ, 늦여름), 잇소리(ㅅ, 가을), 목소리(ㅇ,겨울) 순으로 배열한다.

  •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기본 자음을 ㄱ,ㄴ,ㅁ,ㅅ,ㅇ,ㄹ 순으로 배열한 것은 오행 원리와 연관이 있다.
자음과 오행의 관계 정리표
속성 계절 방위 음성 음계
목(木, 나무) 춘(春, 봄) 동(東, 동녘) 어금닛소리(ㄱ,ㅋ,ㄲ) 각(角)
화(火, 불) 하(夏, 여름) 남, (南, 남녘) 혓소리(ㄴ,ㄷ,ㅌ,ㄸ) 치(徵)
토(土, 흙) 계하 (季夏, 늦여름) 중앙(中, 無定) 입술소리(ㅁ,ㅂ,ㅍ,ㅃ,) 궁(宮)
금(金, 쇠) 추(秋, 가을) 서(西, 서녘) 잇소리(ㅅ,ㅆ,ㅈ,ㅊ,ㅉ) 상(商)
수(水, 물) 동(冬, 겨울) 북(北, 북녘) 목소리(ㅇ, ㅎ) 우(羽)

번역 오류이다?[편집 | 원본 편집]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은 잘못 번역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훈민정음 연구자들이 구두 권점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현대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각종 해독상의 오류도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데 그중에 하나가 해례본 중 ‘전청지성응즉위전탁야(全淸之聲凝則爲全濁也)’라는 부분의 국역과 활용이 틀렸다는 지적이다. 정음파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전한다.

  • 해례본의 응(凝) 자를 ‘된소리’로 해석한 오류

훈민정음 해례본 전탁(全濁, ㄲ·ㄸ·ㅃ·ㅉ·ㅆ·ㆅ) 관련 문구 "전청지성응즉위전탁야(全淸之聲凝則爲全濁也)"에서의 응(凝)자가 '음조가 느리다'의 뜻이며, 전청=청성은 '탁성보다 그 음의 느리기가 절반, 곧 빠른 소리'의 뜻임을 나타내는 증빙자료로 내놓았다는 주장인데 훈민정음의 전통적 된소리 표기(ㅺ·ㅼ)가 1930년 조선총독부의 언문철자법 개정 시 강제 폐기되고, 대신 전탁음을 된소리 표기로 바꿔치기 한 것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어 ‘ㄲ·ㄸ·ㅉ·ㆅ’은 된소리가 아니라 장음이자 배음이며, 된소리 표기는 된시옷과 된비읍만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 해례본의 려(厲) 자를 ‘세차다’로 해석한 오류

1940년에 발견됐다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17쪽 뒷면~18쪽 앞면에 나오는 려(厲)를 살펴보면, 문장의 서두에서 ‘소리에는 느리고 빠름의 다름이 있다’고 운을 뗐으니 누구나 그 뒷부분을 보지 않고서도 소리의 느리고 빠름을 설명하는 대목임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이 문장과 직결된 종성해(終聲解)의 결왈(訣曰) 부분에 ‘전청·차청 및 전탁음을 종성에 쓰면 모두 입성이 돼 그 소리가 촉급(促急)하다’고 했으니 려(厲)는 ‘촉급하다=빠르다’의 뜻이 분명하다”고 강조한다.

려(厲)가 ‘빠르다=촉급하다’라는 사실은 중국의 ‘문선(文選)’에서 확인 가능하다. 고려 때부터 선비들의 필독서인 문선은 중국에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문총집이다. 문선의 주석인 이선주(李善注)는 ‘응(凝)’을 ‘음조가 느리다’, ‘려(厲)’를 ‘촉급하다=소리가 빠르다’로 주했다. 이처럼 훈민정음 해례본의 필로(筆路)와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고 증거자료로 내놓았고 단국대 동양학연구소2008년 말 완간한 세계 최대 규모 한자사전인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은 ‘세차다’와 ‘촉급하다, 소리가 높고 빠르다’ 등 려(厲)의 뜻으로 39가지를 싣고 있는데 당시에는 ‘세차다’라고만 해석했다는 주장이다. [1]

특히 ‘려(厲)’에 관련한 주장을 요약해보면 ‘려(厲)’는 훈민정음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 각 음의 가획 이유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글자인데 ㄴ에 획을 하나 더하면 ㄷ, ㄷ에 가획하면 ㅌ이 되는 까닭이 바로 ‘려(厲)’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한문으로 쓴 해례본에는 ‘려(厲)’자가 7회 등장한다. 이것을 한글학회국립국어원,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 관련의 단체들이 모두 ‘려(厲)’를 ‘세다, 거세다’로 번역하여 해석했다는 것, 이를 토대로 국립국어원은 2011년 영문판 ‘알기 쉽게 풀어 쓴 훈민정음’을 내면서 ‘려(厲)’를 ‘strong(스트롱)’이라고 옮겼다는 것이고 같은 맥락에서 한자 ‘최불려(最不厲)’를 ‘가장 약한 소리’로 국역한 후 영문으로는 ‘weakest sound(위키스트 사운드)’라고 적었지만 ‘려(厲)’는 ‘세다’, ‘세차다’가 아니고 해례본에 사용된 ‘려(厲)’는 모두 ‘빠르다’는 의미라는 주장이다. [2] [3]

하지만 주장일 뿐이므로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ㅺ, ㅼ 따위의 자음도 '스그', '스드'처럼 자음을 다 발음했다는 주장도 있으니 말이다.

판본[편집 | 원본 편집]

해례본은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것과 2008년 상주에서 발견된 것 두 부가 존재한다.

간송본[편집 | 원본 편집]

간송본(안동본)은 1940년 무렵까지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의 이한걸 가문에 소장되어 있었다. 그의 선조 이천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세종이 하사했다고 한다. 표지 2장에 본체 33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로 20센티미터, 세로 32.3센티미터 크기이고, 처음 두 장이 망실되었는데 연산군의 기훼제서율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훗날 이것을 입수한 간송 전형필은 6.25전쟁 때 이 한권을 오동상자에 넣고 피란을 떠났으며, 잘 때도 베게삼아 잤다고 한다.

상주본[편집 | 원본 편집]

상주본은 2008년 8월 상주에 사는 배모씨가 집 수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고 공개했다. 세 장이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그러나 골동품상을 하는 조모씨가 도난당한 것이라며 주장하여 소송이 오갔다. 상주본은 낱장을 비닐에 넣어 보관하고 있는데 이는 서적을 오히려 훼손할 우려가 있어 서적 보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나 분쟁으로 인하여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민사 소송에서 대법원은 조씨의 손을 들어줬으며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배씨는 형사 재판에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 것이 안동 광흥사에서 복장유물이라는 논란이 제기되어 광흥사가 소속된 조계종이 반발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배씨에게 증거 부족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2심 과정에서 조씨가 주장하는 보관 과정과는 배치되고, 배씨와 일치되는 증거가 나왔다.

재판부는 골동품상 조모씨등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고 직접 본 사람과 다른 점, 절취하였다는 날 직후에 공개된 점이 의심스러운 점을 무죄 선고의 이유로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1년 5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유권자는 조씨라고 확정 판결했다.

배씨는 2012년 9월 무죄로 풀려났지만 재판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은 듯하여 조씨에게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돌려주지 않았고 오히려 배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증인들을 위증 및 교사 등 혐의로 고발하면서 외부와 연락을 끊은 상태였다. 그러나 경북 상주시는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을 상주박물관에 유치를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고 2013년 4월 9일에 밝혔다.

2015년 3월 26일 배씨의 자택이 전소되면서 상주본이 같이 불타버리지 않았는가 하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도난 가능성 역시 제기되었다. 한편 상주본이 살아남았다고 해도 배씨 혹은 도난해 간 인물이 일본 등에 판매를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만일 일본에 넘어간다면, 일본 극우파가 한글이 일본 고대문자(신대문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든가(...) 하는 개드립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할지도 모른다. 배모씨가 만일 아직도 상주본을 가지고 있다면, 밀매를 막기 위한 적극적인 감시가 필요할 것이다.[4] 어떻게 불타버렸다는 게 남아 있다는 시나리오보다 다행스럽게 느껴지냐

여담으로 이 사건은 한 개인의 재산권과 공공의 이익 사이의 분쟁으로 유명한 사례가 되고 있다. 뭐 웬만하면 모르지만...

각주

  1. ㄷ이 ㄴ보다 세다? 빠르다!…훈민정음 오역 2탄 문화편집자, 뉴시스(2009.09.09) 기사참조
  2. 훈민정음의 해례본은 어문규범의 근간이고 모든 문화사업의 기초인데 “된소리 표기가 일제 강점기 때 전탁으로 뒤바뀐 것을 바로잡지 못한 데다 잘못된 가획이론을 계속 방치한 상황에서 정부가 세종사업을 강행한다면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과 어문규범 등을 잘못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세종대왕을 모독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으로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이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부분적 중대 오역을 찾아냈다는 주장이다.
  3. ‘조선왕조실록’의 번역 손수호 논설위원, 국민일보(2012.01.10) 기사참조
  4. 국보급 '훈민정음 상주본' 불 탔나…소유자 주택 전소 연합뉴스 기사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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