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성씨)

(片, 扁)씨는 중국한국의 성씨이다.

조각 편 片[편집 | 원본 편집]

(片)씨는 중국 당나라 종실의 후손이다. 남송(南宋) 때 현유(賢儒) 이동(李?)의 8대손 이지(李址)가 명나라에서 태자태사를 역임했으며 임금에 대한 충정을 인정받아 일편단심의 (片)씨을 사성(賜姓)받았다.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서 14,675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00위이다. 본관은 절강 편씨 등 29본이 있다.

절강 편씨(浙江 片氏)의 시조 편갈송(片碣頌)은 자는 경수(景修) 호는 모헌(慕軒)이다. 명나라 신종 조에 어양총절사(漁陽摠節使)가 되었고, 임진왜란 때 유격장(遊擊將), 정유재란 때는 경략도독(經略都督)으로 조선의 구원군으로 출병하였다. 전란이 끝난 후 간신 정응태(丁應泰)의 무고로 귀국하지 못하고, 경주 금오산(金鰲山)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아들 편풍세(片豊世), 편풍원(片豊源), 편산보(片山甫) 3형제가 금오산으로 가서 아버지를 봉양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세상을 등진 후였다. 아버지를 안장한 후 편풍세와 편풍원은 전라도 나주(羅州)로, 편산보는 전라도 만경(萬頃)으로 가서 세거하였다. 시조 편갈송은 울산(蔚山) 서생포(西生浦) 창표당(蒼表堂)에 배향되었으며, 200여년이 지나 공적이 전해지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전라도 유림의 계청(啓請)으로 전라도 나주(羅州)에 감명사(感明祠)를 세워 공을 기렸다. 편갈송이 조선인과 의병들을 얼마나 애절하게 생각했는지는 {마자수(압록강의 옛말)의 별이 되어}라는 책과 유명한 언론 작가인 이병주의 길따라 발따라 편갈송과 편성대 편을 보면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에는 편갈송 〈평양성(平壤城)전주성(全州城)을 되찾고 울산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 탈환〉이 있었다. 정유재란은 직산(소사평)전투 승리로 종결됨. 충청도 직산면 소사평에 세워진 〈흠차 병부상서 총독 제독군문 편갈송 승첩비 1597년〉 조선에 있던 조명 연합군의 승첩비는 일제(日帝)가 모조리 뽑아 버렸다.[1]

인물[편집 | 원본 편집]

역사 인물로는 병자호란 때 의병으로 활약한 편성대(片成大), 편영표(片永標), 조선 고종 때 정평부사 편좌언(片佐彦), 유학자 편운태(片雲泰), 독립운동가 편강렬, 편무경이 있다.

우연히 처음으로 발디딘 이 땅, 해 돋는 동해가 바로 저긴데 끝없이 일렁이는 큰 물결 작은 파도 억겁의 세월에 밀려왔는가 서북쪽엔 산들이 줄을 이으니 하늘 끝이 여기인가 의심스럽고 동남으론 바닷물이 하도 높으니 땅덩이가 그 위에 떠있는 것 같으이
— 임진왜란, 정유재란에서 공을 세워 선조(宣祖)의 친서를 받고 조선에 머물며 쓴 편갈송의 시(詩)

현대 인물로는 아나운서 편상욱, 가수 편승엽, 만화가 편현아가 있다. 절강(浙江) 편(片)씨 후손들은 육사 14기생 소장으로, 17기생 대장으로 예편, 40기는 2011년 준장. 여성국회의원, 미국 원자력공학박사, 판검사, 의사, 교수, 한국은행, 부 감사원장, 삼성이사, 사회사업가, 언론, 문화, 방송계 등에서 활동.

작을 편 扁[편집 | 원본 편집]

편(扁)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서 603명으로 조사되었다. 본관은 자강도(평안남도) 희천시를 본관으로 하는 희천 편씨(熙川) 단본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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