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텔레비전

텔레비전(television)은 동영상 및 화상신호를 전송하는 대중 매체이다. 약칭은 TV.

흑백 또는 컬러로 된 정보를 전송하며 소리까지 포함하여 전달할 수 있다. 텔레비전은 원거리를 뜻하는 그리스어 τῆλε(텔레)와 보는 것을 뜻하는 라틴어인 visio(비시오)가 합쳐져 만들어진 말이다. 비슷한 것으로 tele+scope이나 tele+phone이 있다

역사와 발전방향[편집 | 원본 편집]

기계식 텔레비전[편집 | 원본 편집]

기계식 텔레비전.

1817년 스웨덴의 과학자 옌스 야코브 베르셀리우스가 셀렌을 발견하고, 56년 후인 1873년에 아일랜드의 전신 기사 조지프 메이가 셀렌의 광전 효과를 발견하고, 2년 후인 1875년에 미국의 조지 케리가 이를 이용하여 물체의 영상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케리의 텔레비전은 좋은 화상을 얻기 위하여 많은 전구와 전선이 필요하였고, 이러한 단점을 1884년 독일의 전기 기술자 파울 고틀리에 닙코프가 셀렌판 앞에 24개의 구멍이 뚫린 원판을 세우고 이를 순차적으로 전달하도록 하는 것으로 개선하였다. 그는 영화의 기술과 같이 빛이 순차적으로 이미지를 재현하더라도 사람들은 잔상 때문에 이를 전체 이미지로 기억한다는 것을 이용하였다. 닙코프의 장치는 닙코프 디스크라고 불렸고, 1925년, 영국의 사업가인 존 로지 베어드는 닙코프 디스크를 이용한 사업을 시작했다. 존 로지 베어드가 텔레바이저라고 이름 붙인 이 기계는 훗날 전자식 텔레비전과 구분하여 기계식 텔레비전이라고 부른다. 1929년 영국BBC가 기계식 텔레비전을 이용하여 세계 최초로 방송을 시작했다.

전자식 텔레비전[편집 | 원본 편집]

전자식 텔레비전. 모델명은 Hungarian ORION 1957!

1897년에 카를 페르디난드 브라운이 전자를 쏘아서 형광 물질을 때리게끔 하여 형상을 나타내게 하는 음극선관을 발명하였다. 이 음극선관은 발명가의 이름을 따 브라운관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 후 1921년, 미국의 팔로 판스워스가 완전한 전자식 텔레비전을 개발한다. 이후 1936년 BBC를 시작으로 여러 방송국에서 전자식 텔레비전을 택하면서 기계식 텔레비전은 3년 뒤인 1939년에 완전히 사라졌다.

컬러 텔레비전[편집 | 원본 편집]

컬러 텔레비전은 기계식 텔레비전에서부터 이미 시도되었다. 존 로지 베어드는 1928년 7월 3일, 삼원색을 이용한 세 개의 닙코프 디스크를 조합하여 컬러 영상을 송출하는 기계식 텔레비전을 만들었고, 1938년 2월 영국의 도미니언 극장에서 210개의 라인으로 된 최초의 컬러 텔레비전 방송을 하였다.

전자식 텔레비전 기술을 이용한 컬러 텔레비전 방송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미국의 연방 통신 위원회에서 추진하였다. 1950년 1월 12일, 콜럼비아 방송 시스템(cbs)이 워싱턴 D.C.에서 8대의 수상기를 통하여 시범 송출하였다. 1953년에는 RCA에서 흑백 텔레비전과도 호환이 가능한 컬러 텔레비전 기술 표준인 NTSC규격을 발표한다. 그러나 1950년대 당시에 미국에서는 컬러 TV의 가격이 비싸서 그다지 보급되지 않았다. 그러던 1960년 9월 3일, 아시아 최초로 일본NHK, 니혼테레비, TBS, 요미우리테레비, 아사히 방송에서 NTSC 기술을 받아들여 컬러 텔레비전 방송을 실시하고(본방송, 시험방송은 1957년 NHK도쿄와 니혼테레비가 시작), 뒤이어 1966년 필리핀이 컬러 방송을 시작하고, 1967년에 소련과 서독, 프랑스, 영국에서 컬러방송이 시작된 걸 기점으로 컬러방송을 시작한 국가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후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에 일본과 서유럽에서 컬러 TV가 널리 보급됨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컬러 TV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편집 | 원본 편집]

1969년 MBC TV 개국 전야제의 사진이다.

대한민국의 텔레비전이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1954년, 보신각에 텔레비전 수상기가 1대 설치된 것이었다고 한다. 이후 1956년 5월, 미국 RCA사와 한국 대리점이 합작하여 KORCAD-TV를 만드나, 이는 1961년 채널 '9'번을 국영 TV(KBS)에 넘겨주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61년 12월에 KBS가 개국하고 뒤이어 1964년 12월에 TBC가 개국, 1969년 8월에 MBC가 개국하고, 1970년에 KBS는 공영방송이 된다. 텔레비전의 생산도 1966년 국산 TV 1호인 금성사의 19인치 진공관 텔레비전이 생산됨으로서 시작된다.

이후 1970년대 들면서 TV가 조금씩 보급이 된다(1976년 12월 31일 기준으로 TV 수상기 2,809,131대 보급). 그러면서 컬러 텔레비전 방송 시작 논의도 조금씩 일어나고, KBS에서도 조심조심 컬러 방송 시작을 대비한다. 1974년 CBS의 요청으로 포드 美 대통령의 방한 영상을 컬러로 중계하는 것을 시작으로, 1975년에는 9월 8일 동대문축구장에서 벌어진 한일축구를 NHK의 요청으로 컬러로 중계하는 등 컬러 영상의 제작도 조금씩 있더니, 1975년 12월 12일, 안양서국민학교에서 25인치 대형텔레비전으로 컬러 교육 방송을 수신하고, 1976년부터 컬러 교육 방송을 공식적으로 할 계획이었으나 시험 방송 결과가 좋지 못하여 무기한 연기되었고 문공부에서도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며 컬러 TV 시판과 컬러 방송을 불허한다. 그러나 부산에 살던 몇몇 사람들은 컬러로 나오는 일본 방송을 시청하기도 한다. 그러던 1977년, AFKN이 컬러 방송을 실시한다. 그 이유가 조금 웃기는데, 당시 갓 배치받은 주한미군 초병이 '아직도 TV가 흑백으로 나오는 후진국으로 왔다'며 쇼크를 먹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1978년이 되어, 미국에서 한국에 '컬러 방송도 실시하지 않는 나라가 컬러 TV를 수출한다'며 압박을 넣는다.

그리고 1980년이 되어,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컬러 방송 개시를 허락한다. 그리고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컬러 TV가 1980년대 초반 구입하지 않았던 민간으로까지 퍼지게 된다. 그 후,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가 되고, 2000년 8월 31일에 SBS가, 9월 3일에 KBS와 MBC가 HD 시험 방송을 실시하고, 2013년 1월 1일부터 지상파 전 채널이 HD 방송으로 송출이 되고 있다.

현재[편집 | 원본 편집]

1990년대에는 DVD라는 매체가 등장, 이후에는 HD와 함께 양방향 서비스를 지닌 TV가 등장하여 전화를 하지 않고 홈쇼핑 물건을 주문할 수 있는 기술까지 등장했다.

아래는 TV의 발전 방향을 간단하게 정리한 표이다.

구분 아날로그 텔레비전 디지털 텔레비전
SDTV HDTV
화면비율 4:3 4:3(16:9) 16:9
해상도 525 704(640) X 480 1920 X 1080

1280 X 720

음성다중 2 채널 5.1 채널 5.1 채널
부가서비스 자막, 음성다중 양방향 방송, 전자 프로그램
한국어 위키백과 텔레비전 항목 참조

텔레비전의 종류[편집 | 원본 편집]

현재의 티비는 매우 종류가 다양한데 HDTV부터 3DTV, 대형 TV, 스마트 TV(커다란 태블릿 컴퓨터, 즉 컴퓨터의 화면 역할과 스마트폰의 기능을 같이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TV는 매우 비싸기 때문에 보통 현재는 HDTV를 많이 구입한다. 그리고 21세기에는 아날로그보단 디지털을 사용하기 때문에 좀 더 화면이 선명해지고 좋아졌다.

3DTV는 말그 대로 3D다. 어떤TV는 스마트와 동시에 3D까지 있다니 그야말로 TV의 먼치킨. 특히 이 3DTV는 대형스크린인 경우가 매우 많아서 영화를 볼 때는 그야말로 집에 팝콘만 있으면 된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이 문서는 쉽게 알 수 있다 시리즈의 하나인 위키 작성, 당신도 할 수 있다! 문서와 그 역사를 같이 한다.

각주

Wikipedia-ico-48px.png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텔레비전 문서에서 분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