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성씨)

탁씨(卓氏)는 한국의 성씨이다. 한국에는 본관이 광산 탁씨 하나만 있다.

광산 탁씨[편집 | 원본 편집]

광산 탁씨(光山 卓氏)는 광주(光州)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탁지엽(卓之葉)은 고려 선종 때 한림학사가 되고 태사(太師)에 올라 광산군에 봉해졌다.

기원[편집 | 원본 편집]

광산탁씨 족보에 따르면 선계(先系)는 중국인으로 [[한나라|한()나라]] 때 포덕후(布德侯)에 봉해진 인물이라고 한다.

시조 이전에 고려사에 처음 등장하는 탁씨(卓氏) 성을 가진 인물은 고려 경종(景宗ㆍ976~981) 때의 중랑장(中郞將) 탁사정(卓思政)이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광산 탁씨(光山 卓氏)의 시조 탁지엽(卓之葉)은 고려 선종 때 학행으로 천거되어 한림학사가 되고 뒤에 태사(太師)에 이르러 광산군에 봉해졌으며, 문성(文成)이란 시호를 제수받았다. 탁지엽의 자는 옥립(玉立), 호는 학포(學圃)이다. 이후 광산 탁씨는 명문 세족으로 대를 이어 번영하였다.

탁지엽의 장남 탁도민(卓道敏)은 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보문각 대제학을 지낸 후 좌정승에 이르렀다. 차남 탁도집(卓道集)은 이부상서를 역임하여 크게 가문을 중흥시켰다.

탁도민의 아들 탁원광(卓元光)은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참지정사에 이르렀고, 선종의 부마가 되어 광성군(光城君)에 봉해졌다.

탁원광의 손자 탁종성(卓宗成)은 신종 때 보문각 대제학을 역임하고 해양군(海陽君)에 추봉되었다. 탁종성의 증손인 탁광무(卓光茂)는 공민왕 때 좌간의대부를 거쳐 예의판서에 올랐다.

탁광무의 아들 탁신(卓愼)은 조선 태종 때 지신사(知申事)와 이조참판 등을 지내고 예문관제학을 거쳐 의정부 참찬에 올랐다.

주요 인물[편집 | 원본 편집]

  • 탁사정(卓思政) : 고려 목종 12년(1009년) 왕이 병으로 정사를 보지 못하자 김치양(金致陽)이 난을 일으켰는데, 이 때 중랑장(中郞將)으로서 친종장군(親從將軍) 유방(庾方), 중랑장 유종(柳宗)ㆍ하공진(河拱辰)과 함께 근전문(近殿門)에 상직(常直)하고 있었다. 난을 진압한 강조(康兆) 일파가 정권을 잡게 되자 이에 적극 참여하여 급사중(給事中)이 된 듯하며, 현종 1년(1010년) 거란의 2차 침입시 동북계도순검사(東北界都巡檢使)가 되어 서경(西京)에서 중랑장 지채문(智蔡文)과 함께 적군 한기(韓杞)의 군사를 격파하였다. 계속해서 승(僧) 법언(法言)과 함께 군사 9,000여 명을 거느리고 임원역(林原驛) 남쪽에서 3,000여 명의 적을 살해하는 전과를 거두었으나, 법언은 전사하고 적이 대대적으로 서경을 공격해오자 서경을 버리고 도주하였다. 현종 2년(1011년) 3월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고 4월에는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가 되었으나, 8월에 강조(康兆ㆍ목종을 시해하고 거란과의 싸움에서 사로잡혀 죽임을 당했다)의 당파로 몰려 박승(朴昇)ㆍ최창(崔昌)ㆍ위종정(魏從政)ㆍ강은(康隱)과 함께 해도(海島)에 유배되었다.[1]
  • 탁지엽 : 시조, 고려 선종 때 한림학사를 거쳐 태사 역임, 광산군으로 봉해졌다.
  • 탁도민(卓道敏) : 고려 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보문각 대제학을 지낸 후 좌정승에 이르렀다.
  • 탁도집 : 이부상서
  • 탁원광 : 탁도민의 아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참지정사에 이르렀고, 선종의 부마가 되어 광성군(光城君)에 봉해졌다.
  • 탁종성(宗成): 탁원광의 손자. 고려 신종 때 보문각 대제학을 역임하고 해양군(海陽君)에 추봉되었다.
  • 탁광무(卓光茂, 1330년 ~ 1410년) : 고려 후기 문신. 자는 겸부(謙夫), 호는 경렴정(景濂亭). 시조의 7대손으로 평장사 탁영(卓英)의 손자이자 제학(提學) 탁문신(卓文信)의 아들이다. 1331년(충혜왕 1) 국자감시(國子監試)에 급제하였고, 1365년(공민왕 14) 내서사인(內書舍人)을 거쳐 이듬해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에 임명되었다. 이어 우사의대부로 있을 때 신돈의 심복인 홍영통(洪永通)이 별군을 시켜 좌사의대부 신덕린(申德隣)과 헌납 박진록(朴晉祿) 등의 간관을 구타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홍영통(洪永通)을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삼고 가산을 적몰하도록 탄핵하였으나, 오히려 신돈의 모함을 받아 파직되었다. 그 뒤 사면되어 중정우사간대부 진현관제학 지제교(中正右司諫大夫進賢館提學知製敎)와 예의판서(禮儀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이제현(李齊賢)·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로 《경렴정집》이 있다.[2]
  • 탁신(卓愼, 1367년 ∼ 1426년) :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자는 자기(子幾)·겸부(謙夫)·계위(係危), 호는 죽정(竹亭). 아버지는 좌간의대부 광무(光茂)이며, 어머니는 판종부시사 박지연(朴之衍)의 딸이다. 1389년(공양왕 1)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으나 부모가 연로하여 고향에 돌아와 감지(甘旨)를 지내고, 아버지가 병사한 뒤 1398년(정종 즉위년) 효행으로 천거되어 우습유(右拾遺)가 되었다. 용담현령을 거쳐 1404년(태종 4) 사간원좌정언에 임명되었고, 누천(累遷)하여 장령에 승진되었다. 1408년 집의를 거쳐 1410년 전농시정(典農寺正)·사성에 임용되었다. 1411년 동부대언(同副代言)에 제수되고, 1415년 좌대언으로서 병사(兵事)에 관한 6개조의 비사책(備事策)을 올려 병권의 정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1416년 지신사(知申事)·경승부윤(敬承府尹)·이조참판을 거쳐, 1418년(세종 즉위년) 예조참판·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에 올랐다. 1419년 예문관제학을 지냈고, 1423년 의정부참찬에 올랐다. 경학(經學)에 밝았고, 무예·음률에도 능하였다.[3]
  • 탁유진 : 조선 초기,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 탁영(英) : 고종 때의 평장사
  • 탁순창 : 임진왜란 때 왕을 호위, 훈련대장


문화재[편집 | 원본 편집]

  • 안동 세덕사(安東 世德祠) : 1982년 12월 1일 경상북도민속자료 제37호로 지정되었다. 1699년(숙종 25년)에 건립되었다. 임진왜란 때 훈련대장을 지낸 행정(杏亭) 탁순창(卓順昌)이 낙향하여 조상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 사당으로, 그의 6대조 경렴정(景濂亭) 탁광무(卓光茂)와 5대조 죽정공(竹亭公) 탁신(卓愼) 부자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정문인 입도문(入道門)을 들어서면 강당인 오계서당이 있고 뒤쪽에 사당인 세덕사 등 건물 3동이 있다. 정문격인 협문을 들어서면 세덕사가 있고 뒤쪽으로 추원당이 있다. 세덕사는 납도리 홑처마의 팔작지붕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一자형 집이며, 추원당은 一자형 맞배지붕의 민도리집의 겹처마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1986년 보수하여 부식된 목재와 풍화된 기와를 교체하였으며, 퇴락한 협문을 해체하고 양식상의 변화없이 한식기와로 보수하였다. 현재 광산탁씨(光山卓氏)의 후손 탁성균(卓成均)이 소유·관리하고 있다.[4]

인구[편집 | 원본 편집]

  • 1985년 광산 탁씨 (3,676가구 15,201명) + 광주 탁씨 (232가구 1,057명) = 16,258명
  • 2000년 광산 탁씨 (4,891가구 15,691명) + 광주 탁씨 (490가구 1,631명) = 17,322명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고려사(高麗史) 4권 세가(世家) 4권 현종 2년(1011년)
  2. 탁광무 - 두산백과
  3. 탁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4. 두산백과 - 안동 세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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