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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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中華民國
Flag of the Republic of China.svg
청천백일만지홍기
National Emblem of the Republic of China.svg
국장
대만의 지도.png
중화민국의 지도 (실효지배 영역)
나라 정보
수도 타이베이
공용어 중국어 [1]
총통 차이잉원
기타 정보
화폐 대만 달러
국제전화 +886
이전 나라
중화민국 대륙시기
대만일치시기

중화민국(중국어: 中華民國, 영어: Republic of China ROC)은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건국된 나라로, 한때는 중국 대륙 대부분을 영유했으나 국공내전에서 패해 타이완섬(대만섬)의 타이베이수도를 옮겨 대만 섬과 그 부속도서 및 몇몇 타이완 섬에서 떨어진 섬들을 영유하는 미승인국이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으로 유엔의 창립 멤버이자 상임이사국으로 참여했으나, 4년 뒤 대륙을 중화인민공화국에 내주고 대만 섬으로 밀려났다[2]. 1971년 유엔에서 퇴출되었고[3], 이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과 외교 관계가 소멸되었다실질 정부가 있다는 점만 빼면, 우리나라가 을사조약 이후 받는 대접과 비슷. 다만 미국은 대만 관계법을 제정하였다. 대만의 실질적 주권을 인정하는 듯. 정치적으로 1949년부터 수십년 내내 국민당 일당제를 고수해오다가 1987년 야당을 공인하였다. 같은 해 계엄령도 해제하였다. 1994년부터는 총통도 직선제로 전환, 본성인 출신으로 간선총통을 맡고 있던 리덩후이가 첫 직선제 총통으로 중임에도 성공했고, 2002년에는 천수이볜민주진보당으로 첫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가 2010년 다시 국민당이 집권했다. 2015년 11월에는 마잉주 총통이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사상 첫 양안 정상회담을 가졌다. 2016년부터 차이잉원 총통이 재임 중이었다.그래도 중국보단 낫다

대만의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처음에 네덜란드가 지배, 1661년에 명나라 장군 정성공이 강제접수하고 명 왕조 재건 기지로 삼았으나 결국 1683년 청나라에 합병돼 200여 년 지배를 받았다.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청일전쟁의 마무리 조약)으로 일본에 할양되어 이후 50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중화민국에 반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외지인(하카인 등)이 들어왔지만, 그간에는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 뚜렷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화민국 정부가 들어오면서 소위 본성인(대만 출생자) 대 외성인(대륙 출신자) 갈등이 본격화되었으며, 이 와중에 본성인도 아닌 원주민의 목소리는 묻히고 말았다.[4] 국민당이 유화책으로 전환한 이후에는 원주민도 나름의 대접을 받고 있지만, 대만의 독자성과 주권을 둘러싼 논쟁[5]은 여전하다.

행정구역[편집 | 원본 편집]

  • 직할시
    • 타이베이시(臺北市)
    • 가오슝시(高雄市)
    • 신베이시(新北市)
    • 타이난시(臺南市)
    • 타이중시(臺中市)
    • 타오위안시(桃園市)
  • 타이완성(臺灣省/대만성)
    • 신주시(新竹市)
    • 자이시(嘉義市)
    • 지룽시(基隆市)
    • 난터우현(南投縣)
    • 먀오리현(苗栗縣)
    • 신주현(新竹縣)
    • 윈린현(雲林縣)
    • 이란현(宜蘭縣)
    • 자이현(嘉義縣)
    • 장화현(彰化縣)
    • 타이둥현(臺東縣)
    • 펑후현(澎湖縣)
    • 핑둥현(屛東縣)
    • 화롄현(花蓮縣)
  • 푸젠성(福建省/복건성)
    • 롄장현(連江縣)
    • 진먼현(金門縣)

정치[편집 | 원본 편집]

현대만은 동아시아권에서 대한민국. 몽골. 일본과 함께 민주주의가 잘자리잡은 국가중 하나로 민주주의 지수에서 세계 8위 아시아중에서는 1위를 차지하였다. 투표율이 높고 재외국민들이 선거만을 치르기 위해 대만을 방문하는 경우가 있을정도로 국민들의 정치적관심이 매우 높은 나라다.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해 대만이 un에 가입하지 못하고 국제대회에서도 중화타이베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하는등에 특유의 외교적 특성때문인다. 이때문에 국회 공성전도 자주 벌어진다.

중국과의 관계[편집 | 원본 편집]

중화민국과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는 양국 관계라고 하지 않고 특이하게도 양안관계라고 얘기한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개념 아래서 중화민국과 중국은 서로를 공식적인 국가로 인정할 수 없는 상황. 특히 중국 측에서 이러한 관점이 더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중국 입장에서 바라본 중화민국은 독립된 국가가 아니라 타이완성에 불과한 것이며, 중국 공산당의 지도를 따르지 않는 불법정치단체에 불과한 것.

독립문제[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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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과 외교 관계를 맺은 나라[편집 | 원본 편집]

문화[편집 | 원본 편집]

야시장[편집 | 원본 편집]

대만 관광 중에 볼거리를 하나 꼽는다면 야시장이 있다. 대만의 덥고 습한 기후로 낮에 나가서 활동하는게 힘들기 때문에 더위를 피하고자 늦은 오후에 시장을 여는 문화가 발달했다. 시장마다 특색이 다르고 대만인들의 생활상이 어떠한지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알려져 있는 곳은 관광지화가 된곳이 많아서 현지인이 주로 이용하는 야시장이 어디인지를 알아보고 방문해야 특색이 있는 시장에 가볼 수 있다. '야시장' 이라고 하면 한국의 동대문 시장과 같이 밤새 열것 같지만 보통은 오후 늦게 열고 밤 12시가 되면 문을 닫기 때문에 너무 늦게가면 안 된다.

식문화[편집 | 원본 편집]

대만의 덥고 습한 기후 때문에 외식문화가 발달된 편이다. 부엌이 없는 집이 많아서 도시가스 규모도 작은 편이다. 그래서 음식 값이 저렴한 편이다. 열대지방 인지라 과일도 풍부하고 야시장에 음식들도 발달해서 먹거리를 즐기러 대만을 방문하는 관광객도 있을 정도다. 다만 대만 음식들이 느끼하고 향신료가 들어가는 음식들이 많아 호불호가 갈려서 한국의 중장년 층들에겐 대만음식이 입맛에 안맞을 수도 있다.

과자 중엔 펑리수가 유명하다. 과자 속에 파인애플을 넣어서 구운 것으로 한국의 사과잼 쿠키에 파인애플이 들어갓 것과 식감이 비슷하다. 관광객이 대만을 방문할 때 누가크래커와 함께 기념품으로 사오는 1순위 과자다.

음악[편집 | 원본 편집]

게임[편집 | 원본 편집]

만화[편집 | 원본 편집]

만화를 통해 중화민국의 독자성을 알릴 수 있어서 중화민국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 역시 적극 사용중으로, 《가오슝 첩운 소녀[6]나 《지룽소녀》가 대표적.

문제점[편집 | 원본 편집]

기년법[편집 | 원본 편집]

대륙의 중화민국 건국일(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중화민국/민국(民國)이라는 기년법이 있다.

각주

  1. 중국어를 사용하긴 하나 본토와는 차이점이 있다. 문자는 중국 본토에선 간자체를 사용하는 반면, 대만에서는 번자체(대만에선 정체자로 부른다)를 사용하며 억양 또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서로간에 말이 통하긴 하는데 본토사람인지 대만사람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2. 실은 정부 수립 이래 중화민국이 중국 전역에 실질적인 행정권을 행사한 적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건국 직후에는 위안스카이하고 대립하느라, 그 다음엔 북양 군벌을 잡았더니 일본이 쳐들어오고 공산당이 세력을 확장... 그러나 이 주에 반론을 제기해본다면 오늘날의 지도를 그대로 역사적인 중국 전역이라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티베트의 경우 청의 직접 통치 시도가 실패했고 청의 강역을 중국 전역이라 본다면 몽골은 없다.
  3. 총회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대신 받아들이자는 논의가 나오자, 반발하다가 아예 유엔을 탈퇴했다.
  4. 대륙이 공산당 독재라면, 대만은 국민당 겸 대륙인 독재 체제로, 당시 대만의 언어와 문화를 무시하고 대륙식(베이징 방언 등)을 강요했다.
  5. 외성인 계열은 대륙을 미수복지구로 보아 '중화'를 강조하고, 본성인은 '대만'의 정체성, 더 나아가 '대만 공화국'을 주장한다. 영역이 동부 산간 지역으로 줄어들다시피 한 원주민은 어느 쪽인지 불명.
  6. 철도회사 마스코트 미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