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두환
Jeondoohwan pic.jpg
공식 초상화
인물 정보
출생 1931년 1월 18일
조선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1]
사망 2021년 11월 23일 (90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국적 대한민국
학력 육군사관학교 학사
종교 천주교불교
배우자 이순자
가족 전상우, 母 김점문
아들 전재국, 전재용, 전재만
전효선
대한민국의 제11·12대 대통령
임기 1980년 9월 1일 ~ 1987년 6월 29일
국무총리 남덕우 (1980. 9. 22.~1982. 1. 3.)
유창순 (1982. 1. 23.~1982. 6. 24.)
김상협 (1982. 9. 21.~1983. 10. 14.)
진의종 (1983. 10. 17.~1985. 2. 18.)
노신영 (1985. 5. 16.~1987. 5. 25.)
전임 최규하 (제10대)
후임 노태우 (제13대)

대한민국의 제11·12대 대통령이자, 호는 일해(日海), 자는 용성(勇星)이며,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며, 내란범들의 수괴이다.(대법원 1997. 4. 17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2]) 현재는 전 대통령이 받는 경호를 제외한 모든 혜택이 박탈당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간선제로 당선되었다.

11대

12대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사면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병석에 누워있던 노태우와 다르게 고령임에도 상당히 정정한 모습으로 언론에 종종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한 과오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녔고, 조철현 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재판 등 말년에도 각종 송사에 연루되었다. 2021년 중반,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았다.

2021년 10월 26일 노태우가 오랜 투병끝에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서거했고, 이 자리에 본인은 건강상 이유로 직접 조문을 하기 어려워 부인 이순자가 대신 조문했다. 그러나 그 자신도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노태우가 사망한 지 1개월여 지난 2021년 11월 23일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3]

노태우 사망 당시 정부는 그간 노태우의 장남인 노재헌이 수차례 광주를 찾아 아버지의 과오에 대한 용서를 구한 모습, 가족친지들과 소송을 벌여가면서까지 추징금을 완납한 점을 참작하여 국가장으로 예우를 갖추었지만, 전두환은 노태우와 다르게 그 어떤 사과나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추징금조차 여전히 납부하지 않고 버텨왔다는 점에서 국가장과 같은 예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3S 정책[편집 | 원본 편집]

전두환은 박정희 시절과 달리 주민들의 생활에 대해 통제를 없애서 겉으로는 자유를 누리게 했다. 헌법을 개정하면서[4] 3S정책을 추진했는데 이는 정부에 대한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체제에 반대하는 자들은 감옥에 수감 했다.

범죄행위[편집 | 원본 편집]

12.12 군사반란[편집 | 원본 편집]

해당 문서 참조.

광주시민에 대한 내란목적살인[편집 | 원본 편집]

전두환은 광주에서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며 "저항하는 시위대를 무장 폭도로 규정하고 그 점을 모르는 계엄군으로 하여금 광주외곽을 봉쇄하고 자위권 발동이라는 명목으로 발포를 하게 하여 사상자가 발생하더라도 조속히 진압하기로 공모"했다.[5]

다음은 서울지방법원에서 인정한 피해자 목록이다.[6]

시간과 장소 피해자
1980. 5. 21. 22:00경 및 5. 22 01:11 경 효천역부근 강복원 (남, 20세)
1980. 5. 22. 00:40경및 09:00경 광주교도소 부근 서종덕 (남 17세), 이영진 (남. 36세), 이용충 (남. 26세)
1980. 5. 22. 08:30 경 효천역 부근 왕태경 (남. 26세)
1980. 5. 22. 17:00경 국군광주통합병원 부근 김영선 (남. 25세), 손광식 (남. 20세), 조규영 (남. 38세), 함광수 (남. 16세), 김재평 (남. 29세), 이매식 (여. 68세)
1980. 5. 23. 05:30경 및 10:00경 해남 우술재, 복평리 부근 박영청 (남. 27세), 김귀환 (남. 19세)
1980. 5. 23. 09:00경 주남마을 부근 박현숙(여. 16세), 고영자 (여, 22세), 김춘례 (여, 18세), 백대환 (남, 18세), 황호걸 (남, 27세) 그 외 성명불사
1980. 5. 24. 13:30경 효덕국민학교 부근 전재수 (남. 11세), 방광범 (남. 12세)
1980. 5. 24. 13:55경 효천역 부근 권근립 (남. 24세), 김승후 (남. 18세), 임병철 (남. 23세), 박연옥 (여, 49세)

인권 유린[편집 | 원본 편집]

전두환이 사회 부랑자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설립한 삼청교육대(1980년 8월~1981년 1월 5개월 넘는 기간 존속하였다), 유신 정권 시절이던 1975년부터 운영되고 있던형제복지원으로 인해 죄없는 불특정 소수의 인권이 유린되었다. 할당량을 채우라는 명령으로 조금만 사회에 적응 못하다고 판단되면 잡혀갔다. 거기에 사회부적응자, 우울증 환자, 폐인등의 사회적 소수자도 다수 포함되었다. 삼청교육대의 이름과는 다르게 많은 모순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전두환이 인권 유린, 5.18 민주화 운동에서 만행을 저질러 군사정권에 항거했던 또한 뜻을 같이했던 586세대들이 현재의 민주당의 중요한 지지 기반이 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소속정당[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현재 대한민국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2. 여담으로, 피고 측은 자신들이 '구법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하는 데에 성공하였으니 피고인들의 행위를 새로운 법질서 아래에서는 처벌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때문에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성공한 도둑질은 처벌할 수 없다' 는 개드립이 나왔다. 물론 법원은 민주적 절차가 아닌 군사반란을 통한 새로운 법질서 수립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다.
  3. 전두환 씨, 오늘 아침 자택서 사망, KBS, 2021년 11월 23일
  4. 사실 한국 헌법에 행복추구권은 이 때 생겨난 것이다.
  5. 서울지방법원, 서울지방법원 판결/1996.8.26, (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49권, 2008, 53쪽)
  6. 서울지방법원, 서울지방법원 판결/1996.8.26 (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49권, 2008, 249~250쪽)
  7. 성범죄자들 조차 사실상 비호당한 사건.
헌정체제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제4공화국
대선
(년도)
제1대
(1948)
제2대
(1952)
제3대
(1956)
3·15(1960)
제4대(1960)
제5대
(1963)
제6대
(1976)
제7대
(1971)
제8대
(1972)
제9대
(1978)
제10대
(1979)
당선자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헌정체제 제4공화국 제5공화국 제6공화국
대선
(년도)
제11대
(1980)
제12대
(1981)
제13대
(1987)
제14대
(1992)
제15대
(1997)
제16대
(2002)
제17대
(2007)
제18대
(2012)
제19대
(2017)
제20대
(2022)
당선자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취소선은 무효 선거, 탄핵, 기울임체는 간접 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