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재벌(財閥, chaebol)이란 주로 가족이나 친족이 경영권을 주도하는 기업집단을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특히 그 경향이 강하다. 어원은 일본의 자이바츠(zaibatsu)에서 유래되었다.

재벌은 주로 창업자의 모기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방면으로 기업을 확장하며, 그렇게 확장한 기업들의 오너들을 일가친족으로 구성하는 방식을 취한다. 즉 기업집단의 경영권이 결국 일가친족을 대표하는 재벌집단 총수에게 집중되는 형태의 기업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소유권과 경영권이 분리되는 기업의 일반적인 지배구조에 비교할 때 기형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계열사가 많아지면 피라미드, 순환출자, 또는 지주회사 구조를 적용해 결국 재벌 총수나 그 일가가 일부의 소유 지분만으로도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편법을 취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일본의 성장 모델을 본받은 경제 개발 계획이 시작되면서 재벌이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 일어난 대한민국의 IMF 사태로 인해서 많은 재벌들이 없어졌다.

재벌의 탄생 배경 및 필요성[편집 | 원본 편집]

가장 먼저 서구의 자본주의는 단시간에 태어난 것이 아니며, 규제를 풀고 기술이 발달하자 갑자기 나타난 것 역시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17세기 르네상스에서부터 이어지는 장기간의 사회적,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다른 요소들과 함께 성장한 것이다. 이러한 토대가 있기에 경제 발전이라는 성과가 나타날 수 있었다. 요컨대, 일정한 사회적 역량이 전제되어 있었기에 근대 서구의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이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 등의 비 서구권의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는 자연스럽게 이런 요소들이 부재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20세기 중반을 전후로 하여 자국 내에 없던 서구식 자본주의를 이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없는 선행조건' 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서구적 관점에서는 비정통적인(unorthodox) 요소를 도입하여야만 했다.(Crafts, 1999).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평생고용, 주거래은행, 게이레츠, 관료주도형 경제개발이다. 한국 재벌의 탄생과 부침, 그 장단점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한국의 재벌구조는 박정희 군사정권 하에서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정책과 많은 관련을 가진다. 박정희의 정권은 군사 쿠데타를 기반으로 하여 탄생하였기에 권력의 당위성이 부족한 상태였다. 따라서 그들은 반공과 경제 발전을 국시로 삼아 국민들의 반발을 누그러트릴 필요가 있었다. 한편 그들에게는 좋은 경제 발전의 모델이 있었는데,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은 전후 패전의 상처를 딛고 눈부신 경제적 발전을 이루고 있었으며, 같은 동아시아의 유교 국가라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우수한 모델로 비춰졌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철저하게 관료 주도형 경제 발전 모델을 채용하였다. 한정된 자원은 관료에 의해 정책적으로 배분되었으며, 기업들은 이를 두고 경쟁해야 했다. 가장 먼저 1961년에 정부는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을 제정, 민간은행 대주주들의 의결권을 제한하였고 뒤이어 부정축재환수절차법을 의결, 조흥, 상업, 제일, 한일은행의 대주주 주식을 국고로 강제 귀속시킴으로써 사실상 국유화하였다. 따라서 기업에 투자자금을 공급하고 이자율을 결정하는 권한을 정부가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정부는 특정 산업 분야에 집중적으로 NIF와 은행을 통한 저리 대출, 세금 감면, 수입 쿼터 제한 등 직간접적 인센티브를 제공하였다. 민간을 대신하여 정부에서 자본 투자를 관리하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새로운 상품시장에 진입하는 것도 정부의 통제 하에 이루어졌다. 이렇게 선택된 기업들이 투자를 지맘대로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 각 기업마다 주거래은행을 선정하여 어떤 곳에 얼마나 자금을 투입할 지에 대한 감독 역할을 이들 주거래은행들이 맡게 되었다. 내수시장이 워낙 약하고 자원도 없는 당시 실정에서 정부는 한국이 비교우위를 가졌다고 보는 몇몇 산업들을 선정해서 기업들이 이들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상품을 외국에 수출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 명목 아래 많은 혜택을 받으면서, 동시에 정부의 관리 및 감독 하에서 이들 기업들은 다양한 분야들로 사업을 확장하였고, 이렇게 형성된 기업집단들이 현재 한국의 재벌이다.

재벌 기업들을 탄생시킨 정부의 경제성장 전략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존재한다. 사실 정부의 간섭 없이 시장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사업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많은 투자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즉, 외부자본이 제대로 조달될 수 있어야 하는데, 많은 개발도상국들에서는 여러 가지로 이게 어려울 수 있다. 먼저 제도적인 장치가 부재함으로 인해 투자자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고, 사업가 입장에서도 내수시장이 약하고 별다른 사업 노하우도 없는 실정에서 외국기업과 경쟁할 만한 기업을 스스로 키워내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또한 현대와 같은 모습의 재벌이 탄생한 70년대의 경우 이들 기업이 대자본을 요구하는 중화학공업 등을 기반으로 성장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중화학공업은 거대 자본의 투자가 필요했으며, 자본의 배태 기간도 길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몇 몇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외국시장에서 경쟁할 만한 역량을 갖춘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성장시킨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재벌 구조개혁 (1980-1990년대)[편집 | 원본 편집]

정부 주도 및 수출 위주의 경제구조가 개발도상국 수준에서 일시적으로 빠른 성장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지만, 그 한계점도 명확하였다. 1980년대 들어서부터 정부는 국유화 상태였던 은행들을 민영화하여 시장경제 체제를 통한 성장정책으로의 전환을 꾀하였다. 또한 전두환 군사정권 하에서 재벌을 해체하려는 정치적인 압박을 가하는 시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개혁을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재벌 기업들은 여전히 과도하게 차입하여 별 전문성도 없는 산업에 투자하고 몸집을 불리는 데만 집중하였다. 그리고 은행들은 정부 보증만 믿고, 그리고 재벌이 워낙 크니 위기가 오면 정부가 다 알아서 하리란 생각으로 이들 재벌에게 마음껏 대출을 퍼주었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대외적인 변수와 맞물려서 한꺼번에 터진 것이 1997년 IMF 외환위기이다. 안그래도 별로였던 재벌 기업들의 수익성은 1990년대 후반들어 일본유럽에 불황이 오자 급격히 악화되었고, 아시아 전역에 전파된 신용경색으로 인해 기아그룹, 한보그룹을 포함한 많은 재벌 기업이 부도 사태에 빠졌다. 이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실직하였고, 재벌 기업들은 온갖 부패와 비리의 온상으로 인식되어 여론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정경유착은 이전부터 행해져왔던 재벌구조 하에서 행해져왔던 관습이었지만, IMF 위기를 통해서 그 폐해를 국민들이 뼈저리게 느끼게 된 셈이다. 한보철강의 경우 1997년 당시 부채비율이 1,000%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각종 로비를 통해서 자금난 당시 은행들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결국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과 국내 은행의 간부들이 거액의 뇌물을 받고 불법대출을 용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재벌기업들과 같이 어려움에 빠졌던 은행들에 많은 공적자금이 지원되었고, 물론 그 부담은 최종적으로 국민들의 몫이었다.

IMF의 요구에 기반하여 정부에서는 계열사간에 지급보증을 철폐하고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또한, 재벌기업들의 지나치게 다각화된 사업구조를 외국자본이나 다른 그룹에 매각하는 등의 방식으로 정리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그룹의 자동차 사업이다. 그리고 계열사들 간에 상호출자, 순환출자 등으로 지배구조가 지나치게 얽혀서 한 계열사의 도산이 그룹 전체로 번질 수 있었던 것을 지주회사 형태로 단순화시키는 등의 구조조정을 추진하였다. 늘 그렇듯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다. 제대로 고쳤는지도 장담못한다

재벌의 문제점[편집 | 원본 편집]

재벌의 권력핵심은 경영권을 쥐고 있는 오너 일가가 자신의 기득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온갖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 기형적인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며, 비판의 대상이 된다. 특히 거대기업들은 오너 일가의 소유인 자회사를 동원하여 일감 몰아주기, 순환출자 등 온갖 편법을 동원하여 막대한 부를 독점하는 어두운 면이 존재하며, 이는 2010년대 이후로도 여전히 지적되는 고질병이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되면서 삼성그룹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불법승계를 위하여 대통령과 그의 측근인 최서원에게 로비를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또한번 재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었고,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이재용은 특검의 수사도중 구속되어 형사재판이 진행중이다.

대한민국 재계서열 1위인 삼성그룹의 불법승계뿐만 아니라 상위권에 속하는 재벌들중 상당수가 오너 일가의 경영권 독점이 현실이다. 이는 오너 일가의 경영능력이 전문 경영인보다 월등하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지배구조상 아무리 경영능력이 뛰어난 외부인사가 있더라도 결국 오너의 의중을 따를 수밖에 없어 효율적이고 투명한 기업운영이 사실상 어렵다. 또한 오너 일가에게 실로 엄청난 부와 권력이 집중되므로 수직적이고 경직된 기업문화가 자리잡을 수밖에 없다.

또한 1960년대 경제 개발 당시 정권 실세와 이해관계가 성립된 창업주들은 이후로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경유착을 당연하듯 받아들였고, 이는 부정부패의 심각성이 희석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이런 정경유착의 폐해를 보여준 예가 노태우, 전두환 두 전직대통령이 조성한 수천억원의 비자금 사건이 대표적이다.

세대가 교체되면서 재벌 2, 3세들은 이른바 금수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부의 재분배나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고사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 비정상/비도덕적인 방식으로 자본을 축적하거나 심지어는 탈세같은 위법행위를 하는 등 사회적인 비판의 대상이다.

몰론 모든 재벌집단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언론에 노출된 재벌의 모습들은 시민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대한민국의 재벌 집단[편집 | 원본 편집]

  • 범 현대그룹
    정주영이 창업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자 재벌집단이다. IMF를 거치면서 이른바 왕자의 난이 발생하여 정주영의 아들중 정몽헌정몽구가 후계를 놓고 대립이 심화되었는데, 결국 현대그룹 본가는 정몽헌[1]이, 정몽구는 현대자동차를 위주로 후에 현대자동차그룹으로 갈라서게 된다. 그 외에도 여러 계열사가 정주영의 아들들을 중심으로 분리되었다. 현대그룹의 모체인 현대건설 소유권을 놓고 현정은과 정몽구가 파워게임을 벌였고, 그 결과 정몽구가 현대건설을 인수하게 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이 정통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외에도 다른 범현대가의 파워가 강력해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미미한 현대백화점그룹, 현대산업개발그룹도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기업집단이다. 그 와중에 버려진 현대전자 지못미
  • 범 삼성가
    • 삼성그룹
      이병철이 설립한 삼성상회가 그 뿌리로, 이후 3남 이건희가 그룹경영권을 승계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범현대그룹이 내분을 겪으면서 계열사가 흩어지는 사이, 전자사업 등 핵심사업에 주력한 삼성그룹은 현재 재계순위 1위를 장기간 유지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집단이지만 그 이면엔 재벌 경영권 불법 승계나 조세포탈, 순환출자 등 어두운 면도 보여줬다. 그룹총수인 이건희가 2014년 5월,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입원한 이후 사실상 이재용이 그룹총수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되면서 삼성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정경유착 및 뇌물 공여로 특검 수사를 받았고, 결국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수감되었다.
    • CJ그룹 : 故 이병철의 장남 이맹희 일가가 소유한 재벌. 2015년 8월, 이맹희가 사망한 이후에는 그 아들인 이재현이 이끌고 있다.
    • BGF그룹·중앙미디어그룹 : 이병철의 사돈 홍진기 일가가 소유한 기업집단. 원래 홍진기 일가가 소유한 보광이 따로, 나중에 이병철로부터 인수한 중앙일보가 따로이지만 2016년 유동성 위기로 중앙미디어그룹 밑으로 보광그룹이 들어가고, 보광그룹에서 떨어져나온 BGF리테일이 그 자리를 잇고 있다.
    • 새한그룹 : 제일합섬을 모체로 이병철의 차남 이창희가 소유했던 기업집단. 2000년에 해체되었다.
    • 신세계그룹 : 신세계백화점을 모체로 이병철의 5녀 이명희 일가가 소유한 기업집단. 현재 이명희의 아들인 정용진이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삼성에서 분리된 연유로 삼성그룹 SFC의 할인 백화점이기도 하다.
    • 한솔그룹 : 전주제지를 모체로 이병철의 장녀 이인희 일가가 소유한 기업집단. 재벌 치고는 네임밸류가 미미한 편이다.
  • 범 럭키금성
    사이좋은 동업자 집안인 구씨와 허씨네가 창업주 1세대의 사망 이후 서로 회사를 갈라 나가면서 지금의 범LG가 만들어졌다. 거의 완벽하게 분리되었지만, 희성쪽 몇몇 회사에 아직도 지분이 얽혀 있다고.
    • LG그룹 : 전자, 화학, 통신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집단.
    • GS그룹 : 유통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집단. 건설도 여기서 가지고 있다.
    • LS그룹 : 금속, 에너지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집단. 패션 쪽도 많이 건드리고 있어서, 대표적으로 몽벨프로스펙스를 가지고 있다.
    • LIG그룹 : 화재보험, 생명보험, 증권 등 금융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집단이었지만, 건설 살리려다가 그룹의 주력인 금융 계열사를 매각했다.
    • LF그룹
    • 아워홈그룹 : 아워홈을 중심으로 한 그룹. 캘리스코, 크린누리 등도 계열사로 두고 있다.
    • 희성그룹
  • SK그룹
    창업주 최종건이 적산인 선경직물을 인수하며 시작된 재벌. 이후 최종건의 동생 최종현이 지분을 받았으며 유공한국이동통신, 워커힐 호텔 등 국영사업체를 여럿 인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최종현 사망 이후 최종현의 장남 최태원이 구 유공(SK주식회사)과 대부분의 계열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최종건의 아들들은 구 선경합섬(SK케미칼) 계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사실상 한지붕 두가족 신세이다.
  • 동서그룹
    (주)동서를 중심으로 하는 재벌. 동서식품, 동서유지, 동서물산 등도 계열사로 두고 있다.
  • 부영그룹 : (주)부영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집단이다.
  • OCI그룹
  • 한진그룹
  • 한화그룹
  • 두산그룹
  • 금호아시아나그룹
  • 대우그룹
    1990년대 말엽 재계서열 2위까지 올라섰던 그룹. 하지만 IMF를 거치면서 무리한 사업확장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면서 부채가 심화되어 결국 워크아웃을 거쳐 주요 계열사가 매각되면서 사실상 해체되었다. 또한 그 과정중에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분식회계가 드러나 처벌받았다.
  • 한보그룹
    한때 재계서열 14위까지 올랐던 한보그룹은 1997년 외환 위기를 전후하여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과 연관된 정치권 거물들(계중에는 김영삼 전대통령의 아들 김현철도 연관되었다)이 줄소환되는 정경유착의 정점을 보여줬다. 또한 이런 부정부패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았다가 무려 5조 700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부도를 내면서 국가경제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 이후 정태수 회장은 구속되고, 한보그룹이 무리하게 추진했던 당진제철소와 연관된 수많은 투자자들이 빈깡통을 차게 되었고, 무리한 대출을 용인해준 시중 은행장들이 구속되는 등, 경제위기의 불씨를 당겼다.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김대중 정부 시절 불법 대북송금 의혹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던 와중인 2003년 8월 4일, 계동 사옥에서 투신자살하였고, 이후 그의 아내인 현정은이 회장직에 올라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