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

일본사(日本史)는 일본 열도의 역사를 나타내는 말이다. 일본은 플라이스토세 당시 한반도아시아 대륙과 붙어 있어서 구석기 시대의 시작 시기는 비슷하며 1만 2천년 전부터 많은 양의 빙하가 녹아서 일본이 대륙과 분리되었다고 한다.

선사 시대와 고대 초기[편집 | 원본 편집]

선사 시대와 조몬 시대[편집 | 원본 편집]

일본에 사람이 유입된 시기는 한반도와 상당히 비슷하다. 이것은 한국과 일본이 당시 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이 때부터 약 10만 년 전까지 일본에 살던 원시 주민들은 아무런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그냥 자연 상태로 살았다고 보아도 된다. 일본의 구석기 시대는 10만년 전 정도에 시작되며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시기인 1만 2천년 전에 끝난다.

일본의 중석기 시대신석기 시대를 통틀어서 조몬 시대라고 부르는데 조몬 시대 때도 대한민국이나 아시아 대륙의 것과 비슷한 빗살무늬 토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위아래가 길쭉한 형태의 독자적인 토기인 "조몬 토기"도 만들어졌으며 이때를 즈음하여 일본의 4대 섬 경계가 확정되었다.

조몬 시대에 일본 열도로 이주한 사람들이 일본인의 주된 조상이라고 하는 떡밥이 있다. 오키나와 원주민과 일본인이 같은 민족이다는 근거로 조몬 시대를 예로 든다.[1] 아이누인, 류큐인은 조몬 혈통이 일본인보다 많이 섞여있다. 반대로 일본인은 한반도 도래인인 야요이인 혈통이 더 많다. 비율은 무려 87프로 이상

야요이 시대[편집 | 원본 편집]

야요이 시대(弥生時代) 일본어로는 미생시대미생시대라고 불리는 야요이 시대기원전 300년 정도에 시작되었는데 이 야요이 시대부터를 청동기 시대로 본다.[2] 이 때부터 청동기 시대의 특징인 계급 사회, 금속으로 만든 도구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벼농사도 시작되었다.[3]

고훈 시대[편집 | 원본 편집]

고분 시대

청동기가 꽤 빨리 지나가고 철기가 유입된 이후 250년고훈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고훈 시대 때는 작은 소국이 생기기 시작했고 혼슈(本州) 남부와 규슈(九州), 시코쿠(四国)를 지배하던 야마토 정권(大和)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체제도 나타난다.

이때 일본은 백제가야와 친하게 지내면서 신라와는 대립하였으며 한반도 나라들과 활발히 교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왜(倭)라는 명칭이 생긴 것도 이때이며 고구려와도 일정 부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대 후기[편집 | 원본 편집]

아스카 시대[편집 | 원본 편집]

나라의 모습이 조금씩 완성되어 가던 아스카 시대(538년~710년)에는 백제에 의해 불교가 전파되었으며 과 교류를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신라와는 사이가 나빠서 백제 성왕이 죽고 백제가 쇠퇴의 단계를 밟는 때에도 백제를 지원하여 신라를 공격한 기록들을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다.

이후 660년에 백제가 멸망하던 때까지 백제와 계속 교류하였으며 후에는 "한반도의 새로운 통일국가인 신라와 손을 잡지 않으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는지 차츰 신라와도 교류를 늘렸다.

나라 시대[편집 | 원본 편집]

아스카 시대가 끝나고 왜의 수도는 "나라"(奈良)로 옮겨졌는데 이때부터를 나라 시대(710년~794년)라고 한다. 이때 수도는 총 6번 옮겨졌다. 정권도 수차례 바뀌었는데 맨 마지막에는 결국 수도가 헤이안쿄로 옮겨지면서 나라 시대는 끝나게 된다. 이때 신라와의 교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중국과 교류하기도 했다.

헤이안 시대[편집 | 원본 편집]

수도가 헤이안쿄(平安京)로 천도되면서 헤이안시대가 개막했다.

각주

  1. 오키나와인이 곧 일본인이라는 논리인데 그럼 왜 같은 민족인 오키나와인을 차별하는지는 의문이다.
  2.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보다 꽤 늦다.
  3. 농사가 시작된 것이 아니고 농사가 시작된 것이니 오해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