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이제 도킨스를 거치지 않고는 더 이상 현대진화생물학을 한다고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개요[편집 | 원본 편집]

한국어 전면 개정판 (2010년) 표지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는 리처드 도킨스가 출판한 과학대중서다. '이기적인 유전자'가 어떻게 살아남고 진화하는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대중들에게 읽히는 걸 목적으로 한 책이기 때문에 과학을 몰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대중들을 위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친절하게 예시를 들어서 이해시켜주기 때문. 그러면서도 논리 과정은 철저해 자신의 이론을 제대로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책을 읽기 두려워하는데, 일단 과학이 어렵다는 오해와 압도적인 분량 그리고 빽빽한 글에 의해 읽기도 전에 리타이어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진화설로 인정받던 집단선택설을 밀어내고, 유전자선택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데 시발점이 된 책이다. 그러나 최근 세계적안 진화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집단선택설로 등을 돌리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현재 에드워드 윌슨을 위시로 한 집단선택설 옹호론자들과 유전자선택설 옹호론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팝콘 가져와

주요 내용[편집 | 원본 편집]

이기적 유전자[편집 | 원본 편집]

여기서 '이기적'(selfish)이란 어휘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자신의 이익만 꾀한다" 정도의 어휘가 아니다. 영원히 자기 복제를 지속하여 여러 세대 동안 존속하려 한다는 의미의 어휘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이라는 어휘를 재해석한 것. 이로 인해 생겨난 오해가 어마어마했는데, 그로 인한 노이즈 마케팅도 엄청났다. 도킨스도 '이기적'이라는 말을 써야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사람들이 이기적 유전자를 반박할 때 '인간은 이타적이다'라는 논지를 세워 반박하고는 한다. 특히, 인간이 한 이타적인 행동을 구구절절 나열하며 '네 이론은 틀렸다, 도킨스.'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틀린 반박이다. 도킨스는 이타적인 행동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타적인 행동들도 자신의 유전자를 보전하는데 유리한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즉, 이타적인 행동은 잠정적으로 자신이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하는 거라는 이야기. 도킨스는 이를 근연도를 통해 설명한다.

근연도[편집 | 원본 편집]

근연도란 쉽게 얘기해 내가 특정유전자 H의 사본을 한 개 갖고 있을 경우 이것을 다른 사람이 갖고있을 확률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자식의 근연도는 1/2, 형제는 1/2, 사촌은 1/8 정도의 근연도를 가지게 된다.

이 근연도를 통해 자신이 이기적인(일반적인 의미의) 행동을 할 때의 이익과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의 이익을 계산하고 이익이 더 큰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가상의 예를 한번 보도록 하자. 만약 당신이 호빵 8개를 가지고 있고 호빵의 만족도가 각각 6이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당신 옆에 당신의 형제(근연도 1/2) 그리고 사촌(근연도 1/8)이 있고 아예 쌩판 남(근연도 0)인 사람이 있다. 당신은 최대 호빵을 3개까지 밖에 못 먹는다고 할 때, 혼자 먹는게 나을까? 아님 불러서 먹는 것이 나을까? 도킨스에 따르면 후자의 방식이 더 이익이다. 혼자 먹을 경우 만족도가 18이지만[1][2], 두 개씩 나눠먹을 경우 만족도는 19와 1/2로 더 크다.[3] 꽁쳐뒀다 나중에 먹는 수는 제외 이에 따라, 당신은 호빵을 나눠먹는 이타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게임이론과 ESS[편집 | 원본 편집]

[편집 | 원본 편집]

문화전달의 단위 정확히는 개별 유전자에 대한 가설적 유사어로, 문화 환경 내에서 자신의 생존과 복제에 대한 표현형적 결과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선택된다. 쉽게 말해, 어떤 사상이나 생각이, 이기적인 유전자처럼 살아남고 증식하고 진화해 간다는 개념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사상관이 집약된 어휘이다. 흔히 세간에서는 도킨스를 유전자 결정론자로 보고,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을 '히히 인간은 똥이야. 유전자 발사!'(...)정도의 내용이 담긴 책으로 보고 있지만 이는 완벽한 오해이다. 사실 도킨스는 인간예찬론자이며 본문에 이런 말까지 남겼다.

지구에서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 할 수 있다.
— 《이기적 유전자》, 335p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을 특수한 존재로 볼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을까? 그 대답은 ‘예’일 것이다.
— 《이기적 유전자》, 320p

대부분의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에 굴복하지만 밈을 통해 교화가 가능하다고 말하며, 밈을 통해 유전자의 폭정으로부터 저항해야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서는 그 밈으로부터도 저항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밈이 반드시 유전자와 대립하지는 않는다. 유전자와 공생관계를 맺기도 하며 밈끼리 경쟁하는 경우도 있다.[4]

유전자(gene)에서 따 와서 (meme)이란 이름이 되었다. 그런데, 이 밈이라는 개념 또한 하나의 밈이다(...) 이 밈에서 나온 파생 용어가 있는데 자세한 사항은 인터넷 밈 참조.

확장된 표현형[편집 | 원본 편집]

표현형이란 유전자의 성질에 의해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다. 예를 들어 열성유전자를 가진 완두콩이 쭈글쭈글할 때, 열성유전자의 표현형은 쭈글쭈글한 표면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표현형 항목으로.

그러나 도킨스는 이에 그치지 않고 생물의 행동 심지어는 생각마저도 유전자의 표현형이다라고 주장한다. 도킨스는 이를 확장된 표현형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표현형이 나타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이런 방식이 자신의 유전자를 더 퍼트리기 유리하다는 것.

비버의 예를 보도록 하자. 댐을 짓는 비버의 경우, 댐을 통해 자연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든다. 결국 댐을 짓지 않는 비버보다 생존에 더 유리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유전자를 퍼트리기 더 유리해진다. 따라서 이런 행동이 유전자에 각인되었고 후세에 걸쳐 표현형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보다도 이 이론을 좀더 확대한 《확장된 표현형》이란 저서를 더 좋아했다. 책에서도 나오는 얘기지만 《이기적 유전자》는 안읽어도 좋으니 《확장된 표현형》만은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한국에 번역된 《확장된 표현형》은 번역이 개판이다(...). 이기적 유전자는 개정판이 나오면서 질이 좋아졌지만 이건 진짜 답이 없다... 그렇다고 원서를 읽으려고 해도 엄청난 언어의 압박과 살인적인 분량에 엄두도 안난다. 게다가 이 책은 대중서가 아니라서 어휘의 수준이 핵폭탄급이다...

의의[편집 | 원본 편집]

대중적인 진화론 교양서

상당히 맛깔나는 글솜씨로 진화론에 대해 설명했다는 그 자체로도 목적은 달성했다. 간혹 염세적인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리처드 도킨스는 이 해석에 상당히 분통을 터트리며 말할 기회가 되면 깠다. "우리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 상에서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유전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상기해보자.

비판[편집 | 원본 편집]

  • 유전자결정론
나는 선택의 단위, 즉 이기성의 기본 단위가 종도 집단도 아닌, 유전의 단위인 유전자라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 『이기적 유전자』, 52.p.
우리 모두는 같은 종류의 자기 복제자, 즉 DNA라고 불리는 분자를 위한 생존기계다.
— 『이기적 유전자』, 68~69.p.
여기서도 우리는 개체를, 유전자 모두에게 최선이라면 무엇이든지 실행하게 만들어진 이기적 기계라 간주할 것이다.
— 『이기적 유전자』, 134.p.

[5]

도킨스 스스로가 아무리 인간예찬론자라 주장할지라도, 모든 것을 유전자로 설명하려하는 ‘유전자결정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도킨스의 주장에 따르면, 선택의 기본 단위가 유전자이다. 그냥 단위도 아니고 ‘기본’ 단위가 유전자라는 건 모든 행동이 유전자와 관련되었음을 뜻한다. 또한 그는 본문에서 모든 생명 개체를 생존 기계라고 지칭했다. 그가 유전자선택론자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물론 도킨스는 의 존재를 통해 유전자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 조차도 생존하고 진화하는 유전자와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다. 즉, 사회인문학적인 개념을 억지로 유전자와 비슷한 것으로 견지하고 있다. 그는 유전자를 극복할 수 있는 요소가 유전자와 비슷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가 모든 것을 유전자와 엮고 있다는 의심을 걷어내기 어렵다. 또한, 생각 혹은 행동마저도 유전자가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게 사실이라면 받아들이겠지만, 이 이론을 증명도 못한 상황에서 이런 가정을 내놓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뇌에 들어 있는 이 유전자와 비슷하다면, 은 자기 복제를 하는 뇌 구조로, 이 뇌 저 뇌 속에서 뉴런의 연결이 어떻게 재조합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밖으로 내놓기를 늘 꺼려했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뇌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은 유전자보다 훨씬 적어 이러한 뇌 구조가 실제로 어떤 것일지에 대해서는 막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이기적 유전자』, 500.p.

이 문장을 보고 우리는 그동안 도킨스가 에 대해 막연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뒷 문장에 유안 델리우스 교수가 모델을 만들어와 기뻐했다는 말을 했지만, 적어도 지금 현재로서는 정식 학설로 채택된 바 없다.

    • 환경과 본성

물론 인간에게 본성이라는 것이 있음은 여러 심리학계의 무수한 연구를 통해 밝혀진지 오래다. 얼굴의 표정을 보고 모든 인류가 거의 동일하게 반응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본성의 영향과 환경의 영향 중 무엇이 크냐고 묻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생각해보자, 인간은 모두 같은 본성을 가졌음에도 왜 서로 판이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가? 이는 환경적 요인이 크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서 인류 문명의 불평등을 환경적 요인으로 분석한 바 있다.

또한 인간이, 사회적 환경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세간에 알려져있다. 예를 들어, 죄수와 교도관 실험으로 알려진 루시퍼 이펙트는 매우 유명하다. 일반 대학생을 대상으로 죄수와 교도관으로 나누어 관리하게 했더니 교도관 역할의 피실험자들은 더욱 폭력적으로 변했다. 또한, 죄수 역할의 실험체들은 죄책감을 호소하고 정신발작까지 일으켰다. 그리고 범죄심리학계에서 통설로 인정되는 ‘낙인이론’도 환경적 요인이 큰 심리학 이론이다. 본성도 중요하지만 과연 환경적 요소가 작다고 볼 수 있을까? 그 리처드 도킨스도

자연 선택은 환경을 잘 이용하도록 자기의 생존 기계를 제어하는 유전자를 선호한다
— 134.p.

라 말한 바 있다. 물론 선천적인 유전자 결함으로 일어나는 질병은 본성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태어나서 주어지는 사회적 위치는 절대 유전자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건 환경적인 요인이다.

물론 이 주장을 인간의 심리형태로 국한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생물의 번식방법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례가 있다. 독립생활을 하는 벌 중에는 집이나 개별 방을 단 하나만 겨우 지을 수 있는 작은 공간에 두 벌의 함께 집어넣는 것만으로도 원시적인 진사회성 상태로 전환시킬수 있는 종들이 있다. 이 벌들은 원시적인 진사회성 형식인 쪼기 순서(pecking order)를 자동적으로 형성하며 진사회성으로 급격하게 바뀐다. 이렇듯 환경에 의해 신체구조나 생존방식이 바뀌는 걸 표현형 가소성이라 한다.

  • 근연도의 헛점

근연도 및 포괄 적합도가 가지는 기본적인 문제점 몇 가지가 있다.

먼저, 도킨스의 근연도는 설득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수로 대상의 근연도가 얼마인지 파악할 수 있는가? 무슨 스카우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호오 근연도가 올라가는 군요 근연도를 구별할 수 있는 매커니즘이 생물체에게 발견되지 않는 한 근연도의 논리는 쉽게 납득할 수 없다. 단순한 감으로 생물이 근연도를 판단한다는 건 초자연적인 능력이다. 이는 그 도킨스주의자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종교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둘째, 윌리엄 해밀턴이 내놓은 반수배수성 가설(haplodiploid hypothesis)이 실제 진사회성 개체와 맞지 않는다. 반수배수성 성 결정 매커니즘에 따르면 수정란이 암컷이 되고 미수정란이 수컷이 된다. 그결과 딸과 어미 사이(근친도 r=1/2, 공통혈통이기 때문에 유전자의 절반이 같음)보다 자매들 사이(근친도 r=3/4,공통 혈통이어서 유전자의 3/4가 같음)의 유연 관계가 더 가깝다. 이 반배수성 가설은 막시류의 성 결정 방법이다. 그래서 해밀턴은 진사회성이 막시류에게서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사회성 개체로 알려진 흰개미는 이 반수배수성 매커니즘과 한 번도 일치한 적이 없다. 게다가 오히려 이배수체 성 결정 매커니즘을 따르는 종에서 진사회성이 더 많이 발견되었다. 기는나무좀과의 암브로시아나무좀이나 시날페우스 속 딱총새우 중 몇 종, 그리고 벌거숭이 두더지쥐의 두 계통 등이 있다. 그 결과 사회성 곤충 연구자들은 더 이상 근연도를 믿지 않았다.

셋째, 혈연관계를 무시하고 이타성을 통한 집단선택을 하도록 하는 선택압들이 존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개미인 포고노미르멕스 모키덴탈리스(pogonomyrmex occidentalis) 등과 같은 개미에서 나타나듯이 집단 선택이 유전자의 다양성을 채택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한 유전자의 다양성을 통해 둥지의 온도를 높이고 근친상간을 통한 부정적 요인을 최소하려는 움직임은 꿀벌과 불개미에게서도 보인다. 이런 혈연 선택을 상쇄하는 힘은 족벌주의 체제의 분열 효과, 근친도를 최대화하는 근친교배를 막는 등 대부분 집단선택에 의해 진화한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각 형질이 얻는 비용b 와 이익c로 치환해 위의 내용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포괄 적합도를 철저히 규명하고 이를 위해서는 연구실과 그 밖에서 측정값을 얻으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시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어떤 누가 이에 대한 실험을 한 적이 있는가? 예를 들어, 어떤 과학자가 무거운 짐을 들어준 힘의 값b와 할머니와 사회로부터 얻는 이익c값에 대한 실험같은 구체적인 연구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타적인 행동이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상식에 호소하고 있다. 그 양과 관계에 대한 연구없이.

게다가 근친도를 정하는 r값이 매우 애매모호 한 개념이다. 혈연 혹은 친족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한 대립 유전자를 가지면 혈연인지, 혹은 모든 유전자가 같아야 혈연인지 과학자들끼리 정의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게다가 이런식으로 근연도를 정확히 파악할 만한 상황은 실제 자연에서 없다 자연환경은 항상 급변하며 유동적이다. 즉, 항상 변수에 노출되어있다. 그런 상황에서 근연도를 계산해서 유전자가 움직인다는 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심지어 근연도를 계산하는 해밀턴 부등식은 일정한 정상 분포를 이룬다고 보기에 역동적인 진화과정을 서술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가진다.

, 혈연 선택설이 일종의 도그마로 굳어져 생물학의 발전을 막았다. 사회성 진화에서 혈연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믿음 때문에 생물학 연구의 순서를 망가트렸다. 대부분의 과학의 경우, 최고의 연구법은 경험적인 실험을 통해 나타난 현상을 파악하고 그걸 푸는 이론을 고안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유전자 선택설은 혈연관계 즉, 근연도가 진화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가정한 다음 그에 맞는 현상들을 끄집어왔다. 유사과학도 아니면서 과학적 방법론을 역행하고 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 끄집어온 혈연 선택의 증거조차 표준적인 자연선택이론으로 설명하지 못할 이유가 없음에도 다른 가설을 고려하지 못하게 한다. 예를 들어, 혈연 선택의 근거로 자주 주장되는 로얄젤리가 대표적이다. 로얄젤리를 먹는 애벌래는 여왕벌이 되고, 곤충사회에서는 통제를 위해 먹이 공급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혈연 선택과 포괄 적합도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는 집단선택을 바탕으로 불화가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해도 크게 문제될게 없다. 그래서 유전자 선택설을 반대하는 과학자들은 모든 사례를 다선택 이론과 혈연 선택설, 이 두 가지 이론으로 빗대보자고 주장한다. 표준적인 자연선택은 대부분의 현상을 분석할 수 있지만 혈연 선택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 집단선택설의 반발

리처드 도킨스의 말처럼 유전자의 선택에 의해 생물이 진화해 왔다면, 모든 개체는 가장 효울적인 방식으로 근연도를 올리는 진사회성[6]을 채택해야한다. 그러나 진사회성을 체택한 개체는 대부분 침을 가진 벌 혹은 개미같이 고도의 사회성을 가진 막시류인데, 5000종이 넘는 막시류에서도 진사회성을 구축한 종은 고작 7종밖에 되지 못한다. 그리고 포유류 중에서는 벌거숭이 두더지쥐 밖에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진사회성 개체수는 극단적으로 적다. 즉, 근친도를 높힌다고 해서 모두가 진사회성 혹은 이타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 개체들은 근연도를 포기하고 모두가 독립해 번식을 한다. 이는 집단을 위해 '이타적인'행동을 한 것임으로 집단선택설이 유전자 선택설보다 더 합당하다.

추가로 설명하면, 진사회성의 성질을 가짐에도 진사회성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 개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독립 생활을 하도록 진화한 개체 중에서는 반수배수체나 클론인 것이 엄청나게 만다. 클론의 경우 근연도가 (r=1)이라는 엄청난 수치를 자랑한다. 그러나 어느 한 종도 진사회성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지구의 역사로 시간을 확장해도 진사회성 개체의 수는 극단적으로 적다.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까지 이르는 4억년의 시간동안 진사회성을 이룬 개체는 30여과가 체 안 된다. 심지어 고생대에는 발견되지도 못했다. 이 문제를 식량의 문제만으로 국한하기는 어렵다. 4억년의 시간동안 진사회성으로 나아가기에 충분한 식량을 얻은 개체가 정말로 이 정도 밖에 없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그럼 모든 생명체에게 적당한 식량과 환경을 제공하면 그 개체는 무조건 진사회성으로 진화하는가? 최상의 조건으로 근연도를 얻을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과 풍부한 식량이 있어도 개체들에게 선택압은 거의 없었다. 적어도 4억년의 시간동안의 생물들이 이를 증명한다. 애초에 근연도를 배제해버리고 생각하면 너무 쉽게 해석되는 문제다. 애초에 근연도따위가 필요없기에 먹이를 찾아 뿔뿔히 흩어지는 거고, 뭉치는 생물은 집단이란 개체가 진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집단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말이다. 이는 그 환경에 그 방식대로 적응한 표현형 가소성 덕이다.

  • 은유적인 표현 남용 기적의 언어마술사

도킨스의 이론보다는 도킨스 특유의 어휘사용 때문에 비판받는 점. 자신의 입맛대로 어휘를 사용하는 버릇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기적". 그 외에도 "기계적 운반자", "프로그램된" 등과 같이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어휘를 남발하면서 진흙탕 싸움에 일조했다. 거의 과학계의 자크 라캉급.

반박[편집 | 원본 편집]

근연도에 대한 이익을 얻는 생명체는 존재한다. 그들은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특정 개체만이 번식한다.

근연도가 무의미하다면 이런 종들은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극단적인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협력함으로 아주 약간의 이득이라도 얻는다면 생존에 유리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엄중함을 고려해볼 때 이러한 이득을 얻는 개체들 얻지 못한 친척들에 들에 비해 다수를 차지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상당히 많은 종이 필요한 음식의 양 때문에 일정이상, 혹은 집단화 자체에 피해를 보게 된다. 이런 종들에게 가해지는 집단화의 압력은 몹시 미미하다. 진사회화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이득이 크지 않다면 반드시 진사회화가 발생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논리는존재의 대사슬과도 같다.

어떤 종류의 진화도 완벽한 무언가를 장기적으로 추구하여 발생하지는 않는다. 만약 유전자가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선택한다면 왜 모든 동물이 크고 아름다운 두뇌를 발전시켜 문명을 건설하여 이득을 취하지 않았단 말인가?

또 집단이 이득을 얻는다고 해서 집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제빵사가 일하는 건 배고픈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인 것처럼 위해 희생하는 것으로 보여도 '이득을 얻기 위해' 행동하는 것들이다

  • 유전자 결정론?

도킨스는 모든 것이 유전자에 의해 돌아간다고 설명한 적이 없다. 전적으로 문화적인 영향이라는 주장 역시 유전자가 모든 결정을 한다. 만큼 해로운 발상이며 이러한 주장은 언어 심리학자 스티븐 핀커빈 서판에서 반박한 바 있다. 만약 환경에 의해서 전적으로 결정지어진다면 자페증환자는 냉담한 부모의 탓일 것이고 가난한 이들은 영원히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성애는 선천적이지 않으며 '치료'받을 수 있는 어떤 것일 것이다. 전적으로 유전자에 기인했다고 도킨스가 주장했다는 것은 일부분 유전자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도킨스의 주장을 고의로 왜곡한 것이다

여담[편집 | 원본 편집]

한국에 정발된 책들은 하나같이 번역이 영 좋지 않다. 분명 책 뒤표지에는 '이해하기 쉬운 설명' 운운하는 평가가 있지만, 번역본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그러니 원서를 읽자 그러나 2010년 전면개정판이 나오면서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편. 원래 옮긴이인 먹튀홍영남 교수뿐 아니라 이상임 교수도 번역에 참가하면서 퀄리티가 좋아졌다는 평이 대다수이다.

장대익 교수가 인터넷 강의를 냈다

한국 번역서[편집 | 원본 편집]

  • 《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2010년 8월 10일 발행, 홍영남·이상임 옮김, 을유문화사, ISBN 978-89-324-7163-1
  • 이기적인 유전자 이용철 옮김

각주

  1. (3x6=18)
  2. 포만감이 증가하면서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상황은 무시하자
  3. (1x2x6)+(1/2x2x6)+(1/8x2x6)+(0x2x6)=19와 ½
  4. 예를 들어, 기독교이슬람교간의 대립같은 종교갈등 등이 있다.
  5. 단, 여기서 세 번째 인용문의 경우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간주한다는 말을 뒷 문장에 남겼다.
  6. 집단 내에 계급이 있고 도시를 지어 살아가는 개체군. 개미나 벌이 이에 해당한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여왕이 있어 대신 번식하는 집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