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성씨)

(禹, 于)는 중국 및 한국의 성씨이다.

하우씨 우 禹[편집 | 원본 편집]

우(禹)씨는 하나라 공족의 성씨라고 한다. 우임금의 하우씨와 관련이 있으며, 하나라에서 계출된 모금도 유(류)씨와 범(판)씨와 종성이다.

우(禹)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76,682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42위이다. 대본은 단양 우씨이다. 본관은 단양 외에도 예안(禮安)·영천(榮川)·강주(剛州) 등 13본이 있다.

단양 우씨[편집 | 원본 편집]

단양 우씨(丹陽 禹氏)의 시조 우현(禹玄)은 1014년(고려 현종 5년) 진사에 급제하여 정조호장(正朝戶長)을 지냈고,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추증되었다. 우현의 9세손인 우현보(禹玄寶)가 단양부원군(丹陽府院君)에 봉해지면서 단양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병오보(丙午譜)』 세덕(世德)편에 따르면 6세손인 시중공(侍中公) 우중대(禹中大)가 단양을 본관으로 삼아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다고 한다. 단양 우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5명을 배출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원예육종학자 우장춘(禹長春)이 있다.

어조사 우 于[편집 | 원본 편집]

우(于)씨는 주요 네 가지 계통이 있다. 주나라 희성, 순우(淳于)씨 계통, 북위 효문제 계통, 소수 민족 회족(아랍인), 토가족, 기타 계통이 있다. 명나라 때 관리에게 사성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于)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3,359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40위이다. 본관은 목천(木川) 단본이다.

조선 성종 때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던 당시, 목천 지방의 백제 호족들이 백제 부흥을 도모하자 우(牛; 소), 상(象; 코끼리), 돈(豚; 돼지), 장(獐; 노루) 등의 성을 내렸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후손들이 뒷날 우(于), 돈(頓), 상(尙), 장(張)씨로 성을 회복하였다고 한다.

  • 목천 우씨(木川 于氏)의 시조 우방녕(于邦寧)은 고려 인종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냈다. 그의 아들 우학유(于學儒)가 1170년(의종 24) 정중부(鄭仲夫)로부터 난을 일으키고 거사에 가담하자는 권유를 받았으나 무신이 권력을 잡아 잘 된 일이 없다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거절했다. 정중부가 집권한 후 그는 신상이 위태로왔으나 집권층인 이의방(李義方)의 누이와 결혼한 인척관계로 무사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우술유(于述儒)가 고려 명종 때 형부시랑(刑部侍郞)으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금(金)나라에 다녀왔으며, 신종이 즉위하자 판형부사(判刑部事)를 거쳐 중서평장사(中書平章事)에 이르렀다.

기록[편집 | 원본 편집]

  • 고구려 고국천왕 때 우씨왕후는 우소(于素)의 딸이고, 서천왕 때 우씨왕후는 연나부의 대사자 우수(于漱)의 딸이다.
  •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왕이 우(羽)씨을 사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 고대에 는 지역에 따라 , 처럼 발음되는데 한국에서는 발음을 기초로 한자를 적는 사례가 있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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