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종석

염종석
염종석.jpg
인물 정보
출생 1997년 3월 20일 (27세)
부산광역시 동구
국적 대한민국
학력 부산고등학교
신체 192cm, 100kg
프로선수 경력
종목 야구
포지션 투수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2~2008)

염종석(廉鍾錫)은 대한민국의 전직 야구 선수이자 전직 야구 해설위원이다.

소개[편집 | 원본 편집]

염슬라

통산 성적은 93승 133패 3홀드 14세이브인데 승리보단 패전이 많은 이유는 아무래도 타격이.. 그리고 혹사로 인해 기량이 떨어진것이다.

선수 시절[편집 | 원본 편집]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에 롯데에 입단했다. 첫해에는 무려 17승 9패 6세이브 평자책 2.33을 기록했다.

사실 고려대학교를 진학을 생각하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한달전에 어머니가 큰 사고를 당해서 입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계약을 한 것.

고졸 데뷔 첫 17승보다 많은 선수는 류현진이나 박정현이 있다.[1]

그러나 데뷔 첫해부터 200이닝을 넘기는 투구를 했고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완전 노예처럼 굴려졌다.

강병철 감독은 1992년이 끝나고 재활을 주장을 했는데 구단은 2연패를 도전하기 위해서 무시를 했다.

아무래도 1993년 시즌도 마구 굴리고 방위 근무를 하면서 이때부터 하락기가 시작된거다.

1993년도 그다지 성적이 좋지는 않았는데 3승 7패의 성적을 기록했으나 후반에 7승을 추가해 10승을 기록했다.

1995년[편집 | 원본 편집]

1995년에는 시즌이 개막되기도 전에 팔꿈치가 매우 안 좋다고 언론이 공개했다. 결국 시즌 끝나고 수술을 받기로 했다. 지금이야 뭐 관리를 하면서 했으나 1990년대 야구는 그런 게 아니었다. 마구마구 굴렸다. 무려 127이닝이나 던지면서 7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무려 한국시리즈 1차전에도 등판해서 승리투수가 됐지만 그 이후부터는….

그 이후[편집 | 원본 편집]

사실 1993년 이후 10승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첫해부터 200이닝을 던지고 1995년에는 100이닝을 초과해서 이미 맛이 가버렸다.

2008년에 롯데에서 방출을 당하면서 은퇴를 했다. 여기서 영구결번을 원하는 팬들이 있었으나 여기서는 살짝 애매한게

이때는 선동열,최동원,송진우,김용수 등 대투수들이 활약하던 시절이였다. [2]

지도자 시절[편집 | 원본 편집]

2009년에 은퇴식을 치루고 일본에 있는 롯데 마린즈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아무래도 투수코치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오랜 재활로 인해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2군 재활코치로 했다.

양승호가 부임하고 나서는 2군 투수코치했다. 그러나 평가는 안 좋다.

2015년[편집 | 원본 편집]

뜬금없이 같은 세데에 던진 좌완 에이스인 주형광을 밀치고 1군 투수코치에 자리를 잡았는데 시범경기에는 평자책 1위를 기록했다.[3]

그러나 정규시즌이 시작되고 나서는 마무리가 게임을 말아먹고 평자책이 높고 결국 대차게 까였는데 안 까이는 이유 중에서 한 가지가 박세웅을 키운 것이다. 그러나 올스타전 이후 3군 투수 코치로 활약했다. 결국 시즌이 끝나고 이종운이 짤리고 조원우가 부임할때는 조용하다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그만뒀다.

해설자 시절[편집 | 원본 편집]

코치=해설

2016년 2월에 드디어 해설자로 입단했다. 방송은 SPOTV

그러나 말실수와 부산 사투리가 강하다는 이유로 대차게 까였다. 사실 염종석이 사직서를 낼때 대신 온사람이 진필중인데 진필중도 해설 평가는 매우 안좋았다.

그러나 정규시즌에는 대체가 까였다. 롯데편만 들고 흔히 편파해설이 강하다는 의견

결국 그렇게 대차게 까였다가 시즌후 짤렸는지 안보인다.

요즘은 뭐하고 사는지 모른다.

각주

  1. 류현진은 18승이고 박정현은 19승이다.
  2. 여담으로 4명 다 영구결번이다.
  3. 이유는 간단한데 롯데는 유독 시범경기에서는 우승을 할 정도로 1위를 해본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