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성씨)

(薛, 偰)씨는 한국중국의 성씨다.

설 薛[편집 | 원본 편집]

한국 설(薛)씨의 기원은 신라 건국 설화의 고야촌(明活山 高耶村) 촌장 호진(虎珍)이다. 신라 유리 이사금 9년(32년)에 6촌이 6부로 개칭하고, 명활산 고야촌을 습비부로 고칠 때 성을 설(薛)씨로 하였다.[1]

역사상 유명했던 설씨는 신라 진평왕, 신문왕 대의 고승인 원효대사(元曉大師)이다. 설총은 원효와 태종무열왕의 딸 요석공주(瑤石公主) 사이에서 태어나 국학(國學)을 크게 진흥시키고 이두(吏讀)를 집대성하였다.

설(薛)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 조사에서 38,766명으로 조사되었다. 본관은 순창, 경주 등 10본이 있다.

중국 설(薛, 병음 Hsueh)씨는 중국 성씨 순위 76위로 세 가지 계통이 있다.

경주 설씨[편집 | 원본 편집]

경주 설씨의 시조는 신라의 촌장 설거백(薛居伯)이다. 시조 薛居伯(설거백)으로부터 元曉(원효)-설총(聡)으로 선대를 이어 후손 29세 설경(京)의 큰 아들 설시경(時景)으로 본관의 세계를 이어간다.

순창 설씨[편집 | 원본 편집]

순창 설씨(淳昌 薛氏)는 신라 명활산 고야촌 촌장 설거백(薛居伯)의 36세손 설자승(薛子升)이 고려 인종 때 호부시랑(戶部侍郞)으로 순화백(淳和伯)에 봉해짐으로써 경주 설씨에서 나누어졌다.

현재 한국의 설씨 중 가장 인구가 많은 성본이다.[2]

개성 설씨[편집 | 원본 편집]

개성 설씨의 시조는 설귀창(薛貴昌)이다. 경주 설씨의 파조이다.

맑을 설 偰[편집 | 원본 편집]

설(偰)씨의 시조는 원나라 태부 설극직(偰克直)의 6세손 설문질(偰文質)이다. 그의 손자 설손(偰遜)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고려에 귀화하였다. 설극직(偰克直) 선조는 원래 위구르 사람으로 몽골과 러시아 국경 지역에 있는 설련하(偰輦河, 셀렝가 강) 근처에서 살았으므로 (偰)씨가 되었다고 한다. 偰 대신 楔로 쓰기도 한다. 본관은 경주 설씨이다.

다른 위구르족 성본으로는 덕수 장씨, 임천 이씨가 있다.

중국[편집 | 원본 편집]

중국 설 (薛)씨는 규성으로 제나라에서 나온 성씨가 있다. 다른 설씨로는 송나라에서도 계출된 성씨도 있다. 또한 550년 북위 효문제, , 설씨로 고쳤다. 그리고 설연타 부족이 부족 이름을 따서 설씨가 되었다. 설인귀가 유명한 설씨 가운데 하나이다.

각주

  1. 삼국사기》(신라본기 제1권, 유리 이사금 條) 九年 春 改六部之名 仍賜姓 楊山部爲梁部 姓李 高墟部爲沙梁部 姓崔 大樹部爲漸梁部 一云牟梁 姓孫 干 珍部爲本彼部 姓鄭 加利部爲漢祇 部 姓裴 明活部爲習比部 姓薛
  2. 참고문헌:계림설씨등관록,궁원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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