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센테 게레로

세계 최초의 황흑백 혼혈 대통령

멕시코 독립의 대영웅

비센테 게레로.png

비센테 라몬 게레로 살다냐 (Vicente Ramón Guerrero Saldaña, 1782년 8월 9일 ~ 1831년 2월 14일)는 멕시코의 전 독립운동가, 전 정치인, 전 군인이다. 멕시코의 위대한 독립 영웅이자 국부 중 하나로 메스티소와 흑인, 필리핀 혈통이 섞인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1810년 12월에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가 이끄는 남부 멕시코 독립군에 입대하여 두각을 드러냈다. 각종 게릴라 전술로 신 에스파냐 부왕령의 군대에 저항한 끝에 아카템판의 포옹 사건으로 남부 진압군 사령관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와 협상하여 이괄라 계획을 선언하고 독립을 이뤄 멕시코 합중국의 건국에 일조했다. 독립 이후에는 멕시코 내전을 진압하고 1829년 4월 1일에 제2대 멕시코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틱스틀라의 교구에서, 1782년 8월 10일, 나 D. 프란시스코 카바예로 학사는 돈 후안 페드로 게레로와 도냐 마리아 과달루페 살다냐의 아들 비센테 라몬에게 기름 부음으로서 엄숙히 세례를 내리노라.

1782년 8월 9일 신 에스파냐 부왕령 식민지 시기의 멕시코의 틱스틀라시 (오늘날의 게레로 주 틱스틀라시)의 빈농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인 마리아 과달루페 살다냐는 흑인이었고 아버지인 후안 페드로 게레로는 멕시코 현지 메스티소와 필리핀인의 핏줄이 섞여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혈통을 물려받은 덕에 외모가 매우 특이하고 강렬해서[1] 남들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특히 갈색 피부와 흑인인 어머니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검둥이라고 놀림을 많이 받았다.

그의 고향인 틱스틀라는 신 에스파냐 부왕령 멕시코 중 가장 인구가 많았는데, 특히 남부 지역 답게 원주민들의 비중이 제일 높아서 게레로 본인은 에스파냐어보단 원주민 언어에 더 능통했다. 그리고 무역량 또한 멕시코에서 제일 높아서 노새 운반업자인 아버지는 틱스틀라의 활발한 무역량에 편승하여 지주, 집주인, 농부, 상인, 민병대, 총기 및 대포 제조원 등의 다양한 계층들과 광범위한 비즈니스 관계를 맺었다. 게레로 또한 일찍이 아버지와 삼촌의 일을 도왔다. 부모 또한 게레로의 교육을 위해 뼈빠지게 일했다. 그에게 일과 정직함으로도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음을 가르쳤고, 사립 교사를 둬서 잠재적인 재능을 넓힐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의 아버지 후안 페드로 게레로는 친에스파냐 인사였으며 멕시코의 식민지배를 지지했다. 하지만 게레로 본인은 아버지와는 달리, 삼촌인 디에고 게레로처럼 대쪽같은 반에스파냐파였으며 독립을 간절히 원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에스파냐 총독에게 충성 맹세를 하려고 자신의 칼을 바치러 갈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의 뜻은 저에겐 신성하나, 아버지의 조국이 제겐 먼저입니다.

그러고는 1810년 12월, 멕시코의 위대한 독립 영웅인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와 이시도로 몬테스 데 오카가 이끄는 남부 멕시코 독립군에 입대했다.

멕시코 독립 전쟁[편집 | 원본 편집]

아카템판의 포옹[편집 | 원본 편집]

멕시코 합중국 수립[편집 | 원본 편집]

대통령 취임[편집 | 원본 편집]

사망[편집 | 원본 편집]

기타[편집 | 원본 편집]

멕시코의 주 중 하나이자 고향인 게레로 주는 게레로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 曰, 이 젊은이는 얼굴은 구릿빛에 체격은 튼실하고 매부리코, 선명한 눈과 커다란 구레나룻을 지녔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