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

2015년 4월 8일 리그베다 위키의 대외업무 담당자인 '사채꾼'의 "속살 글"로 리그베다 위키의 여러 가지 문제가 밝혀지면서 사용자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이다. 그 결과, 리브레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디시위키 등 여러 위키가 생성된 대위키시대가 열렸다.

사건 진행[편집 | 원본 편집]

발단[편집 | 원본 편집]

사건의 원인 중 하나인 '저작권이 사이트에 기부된다'라는 약관의 무단 변경2013년부터 조금씩 제기되어 온 문제였다. 이후 2년 동안은 조용히 지나왔으나 2015년 3월 8일, 리그베다의 유저 Egoiswerk가 영어 위키백과의 네버랜드 문서를 무단으로 가져오면서 시작되었다.[1] 이러한 문제를 알게 된 위키백과 유저들은 3월 15일 사랑방에 한 유저가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저작권 침해라고 항의하였고, 추가적으로 저작자표시 의무 위반과 저작권 기부 등 약관의 문제를 지적하였다.[2]

이렇게 리그베다 위키에 대한 여러 문제가 제기되자, 관리자 청동은 4월 4일 오프라인 모임을 열자고 제안했다.[3] 이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평범한 저작권 논쟁으로 그칠 줄 알았다.

오프라인 모임 결과 발표 (4월 8일)[편집 | 원본 편집]

리그베다 위키의 외부 운영자 '사채꾼'은 오프라인 모임 결과를 발표했다.[4] 그런데 정작 중요한 저작권 문제나 개선 사항은 없고 미러와의 관계 문제, 수익 강탈 문제만을 언급했다. 초기에는 사람들이 미러가 수익을 가로챘다고 질타했으나, 이후 편집에 대한 저작권은 위키에 기부되어, 광고를 통한 수익은 위키가 얻고, 책임은 사용자가 지는 불공정한 약관에 대한 비판이 터져나왔다.

청동은 사건 초기, 관련 글들을 위키게시판에서 건의게시판으로 옮겼다. 문서 토론글 같은 일반적인 게시물이 묻히는 문제가 일어나서 위키방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게시판을 분리했지만, 이에 대하여 '보기 싫은 글들을 변방으로 격리수용하려는 것이냐' 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격리수용소가 된 건의게시판은 반말과 초성체가 난무하는 아비규환이 되었고[5] 운영에 대한 비판은 위키게와 건의게 양쪽에서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건의게시판은 건의 갤러리라 불릴 만큼 디씨화가 진행되었고, 변방에 있어 조회수가 떨어지자 갤러리 유저들 중 몇몇은 자유게시판까지 진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위키가 CCL 약관을 위반[6]했으니 자신이 위키에 쓴 글들을 삭제하겠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청동은 '본인이 쓴 것임을 입증해야 삭제 가능' 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고, 본인 입증은 어떻게 하는지나 공동 작성된 글은 지울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유저들 간에 본인 확인, 공동저작물의 저작권 행사 등에 관한 박터지는 토론이 있기도 했고, 법알못들이라 속시원한 결론이 나지 않아 유저들은 15일 자문서 게시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부분적인 법무법인의 자문서 공개 (4월 15일 ~ 16일)[편집 | 원본 편집]

청동은 4월 15일 전까지 '이때 법무법인의 자문서가 나올 것이며, 모든 질문이 해결될 것' 이라고 하면서 그 전까지 약관에 대한 자신의 입장, 기여 철회를 원하는 유저들에 대한 답변 등의 대답을 일절 회피해 왔다. 그러나 4월 15일 밤 11시가 넘어서 공개된 자문서는 달랑 A4용지 1장 분량의 단순 타이핑 문서에 불과했다. 이에 많은 유저들은 자문서 자체를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음날인 16일에 자문서에 대한 의혹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자, 관리자 청동은 도발적인 어투로 '못믿겠으면 고소해라, 3~4시간 뒤에 자문서 원본 공개하겠다'는 댓글을 작성하였다. 이는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7] 그 상황에서 처할 수 있는 대처로는 상당히 좋지 않은 것이었다. 당연히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반응이 폭발적으로 일어났고, 이내 청동은 자신의 댓글에 대해 사과하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그날 내로 법무법인측의 허락을 받아 자문서 원본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사람들은 자문서 원본 공개를 기다렸으나, 자정이 지나도록 자문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것이 공개된 것은 며칠이 지난 23일이 되어서였다. 공개된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자면, 청동은 자문서 원본을 그대로 공개하는 것이 쉽사리 허용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법무법인측에 문의하였으나, 법무법인측에서는 '그건 곤란하다'면서 거부하다가 23일이 되어서야 허용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이전부터 계속되었는데, 2013년에 비슷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청동이 섣불리 광고수익 관련 내용을 밝혔다가 고소미를 먹을 뻔했던 이후로 청동은 계약 내용 같은 것을 공개하는 것을 굉장히 꺼리게 되었다.

물론 계약대상에게서 비밀을 요구받았으니 공개하고자 해도 공개할 수도 없고, 허가를 받자면 며칠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러한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당장 내가 알고 싶은 걸 알아야겠으니 비밀 엄수고 뭐고 토해 내라'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약관 개정 등 문제의 원인을 만든 운영자로서의 해명과 사과, 이후의 조치 방안 등은 법률 자문이 없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도, 법률 자문 핑계를 대며 무응답으로 일관한 점은 무책임하다고 보아야 하며, 이에 대해서 많은 유저들이 지적하고 비판하였다. 여하간 사람들이 요구하는 만큼 충분한 정보가 풀리지 않다보니 자연스럽게 온갖 음모론이 제기되면서 점점 상황은 카오스에 빠져들었다.

틀:영리 활동 달기 운동과 서버 해킹 (4월 17일)[편집 | 원본 편집]

틀:영리 활동 초기 버전
틀:영리 활동 후기 버전
수정 전쟁 중 건진 기적의 한 장[8]

4월 17일 오후 4시, 위키 게시판의 유저들이 리그베다 위키의 영리화를 알리기 위해 '틀:영리 활동'을 각 문서의 최상단에 수작업으로 달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관리자는 등장하지도 제지하지도 않자, 수많은 위키러들은 틀을 달거나, 이 위키에는 기여하고 싶지 않다며 자신의 기여분을 삭제하는 등의 행위로 영리화에 대해 극렬한 반대 의사를 피력하였다.

이후 관리자의 잠적이 지속되자, 반달꾼들이 몰려와서는 '틀:영리 활동' 문서를 공격하였다. 해당 틀이 더 많은 문서에 달릴수록, 수정만 하면 피해 범위가 넓어진다는 점을 파고든 것. 처음에는 틀에 헛소리 몇 문장 써놓고 마는 것이 다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반달 행위들은 지능적으로 변해 틀의 링크를 테러 사이트 링크로 바꿔버리는 등 낚시까지 이루어졌다. 결국 반달꾼들과 선의의 유저들 사이에 '틀:영리 활동' 문서를 사이에 두고 수정 전쟁이 발발하였으며, 당일 오후 10시 30분까지 무려 1300회의 편집과 롤백을 주고 받았다. 이 전쟁으로 인해 엔하위키 미러는 갱신을 멈추고 만다.

위키 게시판은 일간베스트디시인사이드에서 온 유저들에게 농락당했고[9] 오후 7시에 이르자 'FrontPage'는 물론이고 리그베다 위키의 웬만한 문서들이 엉뚱한 내용으로 바꿔치기하는 식으로 모조리 테러 당했다. 그리하여 난장판이 된 리그베다 위키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위키러들은 대안위키로 나무위키리브레 위키를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오후 11시 10분, 누군가 리그베다 위키를 해킹하였고, 위키를 접속하면 인코딩이 깨진[10] 다음 문구만 나타나게 되었다.

당시 화면 스크린샷
泥�룞�� �닿굔 �꾨땲二 . �뚯븘��꽌 �섍린瑜� �섏꽭��. (원본)
청동씨 이건 아니죠. 돌아와서 얘기를 하세요. (해석)
— Anonymous

서버 롤백 (4월 18일 ~ 22일)[편집 | 원본 편집]

서버가 해킹 된 다음 날 오전 10시부터, 사이트에 "위키 데이터 복구중입니다. 멀리 있던 백업본을 끌어오는 중이라 좀 시간이 걸리니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라는 문구가 나타났고, 오전 11시 10분에 서버를 4월 15일 새벽 백업본으로 복구되었다. 하지만 편집이나 소스 보기 등은 모두 막혔다.

위키 게시판의 경우, 저질 글들이 범람하여 전반적인 분위기가 디시인사이드에 가까워졌다. 4월 18일, 오후 10시 40분에는 위키 게시판이 막혀버린다. 이후 의외로 오래 가지 않고 2시간 만에 복구되었다.

4월 20일, 관리자 청동이 '공감버전업 프로젝트'에 대한 공지를 올렸다. 하지만 전반적인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용자들의 기여 철회 (4월 23일 ~ 24일)[편집 | 원본 편집]

4월 23일부터 수정 제한이 해제되었고, 수많은 위키러들이 기여 철회를 외치며 자신이 작성한 부분을 지우거나 문서를 삭제했다. 이 과정에서 아무 이유 없이 문서를 삭제하는 반달행위도 있었다. 문서의 숫자도 역주행을 달렸다. 여기에 편집 요약에 기여 철회 등을 적을 경우 바로 차단되거나 이유도 없이 차단되는 등 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 오후 2시경에는 기어이 28만 고지를 역달성했다.

또한, 이전 위키 게시판은 폐쇄되고 새로운 위키 게시판이 생겼다. 하지만 오후 2시경부터 게시판이 내려갔다. 따라서 유저들은 위키에 게시판을 만들거나[11] 디시인사이드 중계 갤러리에도 점령하여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스레딕에도 위키 관련 대피소가 만들어졌다.[12]

오후 8시경, 예전 리그베다 위키의 운영자이자 NTX의 운영자인 함장이 영리화 사태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공지를 NTX에 올렸다.[13] 예전부터 저작권을 가져가는 것이었고, 그것이 홍보 부족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시 폐쇄 (4월 25일 ~ 5월 16일)[편집 | 원본 편집]

4월 25일, 지속적인 기여 철회로 인해 서버가 버티지 못하여, 일부 문서와 로그가 증발하는 일이 발생하였고 결국 서버가 내려갔다.[14]

5월 14일, 엔하위키 미러와의 분쟁에 대한 가처분 결정이 있었다.(리그베다 위키-엔하위키 미러 가처분 신청 결정문) 이 사실은 5월 28일에 뒤늦게 알려졌다.

서버 재오픈 (5월 17일 ~)[편집 | 원본 편집]

함장NTX 공지에 청동의 근황을 올렸다. 개인사와 서류작업으로 힘들었다며 살아는 있다고 밝혔다.[15]

  1. 게시판 서버는 디도스 공격이 계속 들어와 열지 못하고 있다. 해명을 하고 싶어도 발언이 불가능
  2. 위키는 취약점 문제때문에 보안을 강화하는 중
  3. 사업자 등록은 세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며 사유화가 아니다.
  4. 크롤링 제한 부칙은 CCL 위반이 아니다
  5. 확실히 처리하기 위해 서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함장의 글이 NTX에 올라오자마자 서버가 되살아났다. 2015년 4월 15일 05:00 기준 데이터로 롤백되었고, 편집금지 상태로 열람만 가능했다.

문제가 제기된 부분[편집 | 원본 편집]

불공정 약관 및 저작권 문제[편집 | 원본 편집]

리그베다 위키의 약관에 포함되는 기본방침에 따라 모든 게시물은 작성 시 위키에 기부한 것으로 간주된다. 즉, 위키가 기부받은 게시물을 CCL로 배포하는 구조였다. 이러한 약관은 그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약관 개정이 제대로 공지된 적도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용자는 이 사실을 알 수 없었다는 것 또한 문제였다.

이 부분은 리그베다 위키가 엔하위키 미러에 제기한 가처분 신청 결정문에서도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약관으로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6조에 의하여 무효로 봄이 상당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영리화 문제[편집 | 원본 편집]

법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행위를 금지하는 비영리 법인이라고 하더라도, 비영리 법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운영 자금을 얻기 위한 수익활동을 허용한다. 또한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은 정당한 보수를 받을 권리가 있으므로, 수익활동을 벌여 보수를 지급하는 것 역시 허용된다.

관리자인 청동과 대외업무 담당인 사채꾼이 '광고의 목적은 적자상황을 타개하여 자신들이 최소한의 보수를 받으면서 리그베다 위키를 운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으므로, 광고를 부착하여 수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영리화 문제를 지적할 수는 없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태 초기에 리그베다 위키의 건의 게시판에서 여러 유저들이 주고받은 대화에서도 인정되었다.

그러나 비영리 단체가 수익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수익과 지출 내역의 투명한 공개가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리그베다 위키 게시판에서 여러 차례 서버비와 광고 수익 내용을 공개하라는 건의문이 올라왔으나 모두 무시당했다. 이 때문에 영리화 사태가 일어나는 그 날까지도 한 쪽에서는 적자운영이라고 주장하고, 반대편에서는 청동의 배만 불린다는 이야기가 계속 오고 갔다. 리그베다 위키에서 수익과 지출 내역을 투명히 밝혔다면 사용자들의 반감도 훨씬 덜했을 것이다.

또한 수익 관련 내용은 다른 방향의 비판으로 이어진다. 대외업무 담당자인 사채꾼의 글에서 뜬금없이 엔하위키 미러를 걸고 넘어진 것도 '쟤네들 때문에 우리 광고수익이 안올라가서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알고보니 몇 가지 실수로 리그베다 위키의 페이지뷰가 올라가는 것이 어렵도록 자승자박해둔 것을 모르고 미러탓만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영향[편집 | 원본 편집]

지금 보고 있는 리브레 위키나무위키, 디시위키를 탄생시킨 기폭제

이 사태로 인해 리그베다 위키는 사실상 풍비박산이 나게 되었고, 거의 모든 위키러들이 나무위키와 리브레 위키로 이주하였다. 덩달아 기존 중계 갤러리에서 팝콘을 먹고 있었던 디시 출신의 위키러들을 위해 김유식디시 위키 프로젝트 갤러리를 만들기까지 했다. 또한 한국어 위키백과, 리그베다 위키, 백괴사전의 3강 체제로 돌아가던 1차 3위키 시대는 끝나고, 수많은 위키들이 등장하는 대위키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16]

패러디[편집 | 원본 편집]

이 영리화 사태에 대해서 누군가 몰락 패러디 합성 동영상을 제작했다.

갤러리[편집 | 원본 편집]

참고[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당시 위키게시판 글
  2. 위키백과:위키백과:사랑방 (일반)/2015년 제11주#네버랜드
  3. 당시 청동의 위키게시판 문서
  4. 속살 글
  5. 물론 모든 글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고, 엄청난 공감을 받았던 '사과는 빨갛다' 토론 비유나 (해당 글의 디시 복사본), 약관을 분석해 많은 이들의 공분을 자아낸 글 등도 건의게시판에서 나왔다.
  6. 영리적으로 의심되는 운영, 크롤링 금지라는 추가적인 제한을 건 것 등.
  7. 청동 입장에선 밝힐 수 있는 건 다 밝혔다고 생각하는데도 막무가내식 요구나 음모론을 제기하는 상황일 테니
  8. 기적의 현장
  9. 단순 흥미 참전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일부는 지나치게 '그들만의 리그' 식으로 편집되던 문서들에 대한 반감이 바탕이 되기도 했다. 특히 게임 등의 항목은 일베나 디씨의 의견보다, 소위 다수라고 할 수 있는 다른 팬사이트의 시각에서 서술된 것이 많았기 때문. 물론 디시와 일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관전자 입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혼란스러워 어떤 네티즌들한테 농락당한 것인지 생각하지 못할 만큼 정신이 멍해지는 백괴사전스러움으로 보였다.
  10. UTF-8로 인코딩되어 있었기 때문.
  11. 위키 겔러리, 위키 겔러리2
  12. 스레딕 위키 스레드
  13. 리그베다 위키 영리화 사태 사죄문
  14. 모니위키 개발자 트위터의 트윗.
  15. 청동 씨의 지금 근황에 대해서 전해 들었습니다.
  16. 사실 1차 3위키 시대의 한국어 위키백과, 리그베다 위키, 백괴사전 3강 체제는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4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2013년 9월 16일 한 고등학교 교지에 백괴사전에 있던 지역 비하적 내용이 인용된 것을 계기로 백괴사전의 주요 유머를 책임지던 지역 관련 문서들이 삭제되고 이로 인해 유저들이 많이 빠져나간 백괴사전은 2013년에 등장했던 구스위키에게 3강 자리를 위협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다만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가 터진 2015년 4월 15일 당시에도 백괴사전의 문서 개수는 구스위키의 문서 개수보다 많았다.) 이렇게 백괴사전이 구스위키에게 3강 자리를 위협받는 상황에서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가 터지고 한국어 위키백과를 제외한 두 위키의 몰락으로 1차 3위키 시대의 3강 체제가 무너진 것이다.
  17. 조강래 ( Cho Gang-rae ), "정보의 사유화에 관한 법적 소고 - 2015년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와 웹사이트 무단 미러링에 대해", KHU 글로벌 기업법무 리뷰/9(2), 2016., 155-183, 경희대학교 법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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