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은 1894년 한 해 동안 조선에서 발생한 동학농민들의 사회 운동이자 반란이다.

배경[편집 | 원본 편집]

1892년과 1893년에 보은집회와 삼례집회가 발생하였는데, 이를 통해 동학은 세력을 키웠고, 반일적인 태도를 보였다.

1894년 1월, 고부에서 고부군수 조병갑의 횡포에 분개한 고부군민들이 전봉준을 중심으로 사발통문을 작성하고 고부민란을 일으켰다. 조정에서는 안핵사 이용태를 파견시켰으나 그의 무능한 행태로 군민들의 분노는 커져갔다. 이를 효시로 하여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사건의 전개[편집 | 원본 편집]

1894년 3월, 전봉준을 중심으로 동학세력들은 황토현 전투, 장성 전투 등을 치뤘고, 대부분 관군에게 승리하였다. 그 결과, 그해 6월에 전주성을 점령하여 거의 호남을 점령하였다. 이에 위기를 느낀 관군은 전주성에서 동학 세력과 화해 약속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전주화약이다. 그렇게 제1차 봉기는 막을 내렸지만, 7월에 발생한 청일전쟁이 동학 세력의 반일감정을 고조시켰다. 결국 반외세적인 제2차 봉기가 발생하고, 북접(충청도)의 최시형까지 가담해 남북접이 하나 되어 일본군을 물리쳤다. 하지만 신무기를 내세운 일본군을 이길 순 없었고, 결국에 그 해 12월,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 세력의 우두머리 전봉준은 처형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