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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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条  天皇は、日本国の象徴であり日本国民統合の象徴であつて、この地位は、主権の存する日本国民の総意に基く。

제1조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국민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지는 일본국민의 총의에 기반한다.
일본국 헌법
일본 황실의 문장인 국화문양

천황(天皇(てんのう), 영어: Emperor of Japan)은 일본군주이다.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영어로 엠퍼러(Emperor) 호칭을 쓰는 군주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는 일왕(日王)이라는 언론, 방송에서 합의된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만 민간에서의 표현은 천황, 덴노, 일왕 등 사회적으로 약속된 명칭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천황은 2019년에 즉위한 나루히토(徳仁) 천황. 현재에는 국정 전반에 관한 실권은 쥐지 않으며 일본 역사를 통틀어도 천황이 실권을 쥐었던 시절은 길지 않다. 다만 현 조정에 반기를 든다거나 전쟁시에는 신격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칭호 문제[편집 | 원본 편집]

일본에서 천황을 덴노라고 발음하는데 덴노라고 본격적으로 불리기 시작한 역사도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메이지유신 이후에나 정착되었다. 그 전에는 미카도(帝)라던가 스메라미코토(天皇, スメラミコト)라고 불렸다. 메이지유신 이후 비로소 天皇이라 쓰고 '덴노'라고 발음한다고 확정하기 전에는 덴노는 여러 명칭 중 하나였다.

대한민국에서는 대일감정의 악화로 자주 일왕으로 호칭되었으나, 국민의 정부 시절 한일 파트너십 선언으로 공식적으로는 천황만을 사용하게 되었다.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에서 이원복 교수는 짜르파라오와 같은 고유명사라는 측면에서 '덴노'라고 부르는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리그베다 위키나무위키에서는 덴노를 문서명으로 채택하고 있다.

천황이 맞다[편집 | 원본 편집]

  • 일본 고유 명사로 인정하자는 의견이다. 일본의 왕을 신처럼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일뽕이 주장하기도 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하거나 문화 상대주의에 입각하여 문화로써의 명칭을 존중하자며 주장하기도 한다.
  • <먼나라 이웃나라>에서처럼 정치 중립성을 고려하여 덴노로 하자는 의견도 있다.
  • 일왕이라는 호칭은 기존에 없던 조어법으로 만들어진 호칭인 것이다. 일개 나라인 일본의 왕을 지칭하기 위해 왜 규칙을 깨는 호칭을 만들어서 쓰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 천황을 고유 명사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천황'의 단어를 해석했을 때 중국 황제보다 높게 되어버리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다. 그저 고유 명사일 뿐이라고 인정하는 것 또한 천황의 신격화 등을 무시할 수 있다.
  • 고유 명사로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일본의 왕족을 황족이라고 지칭하는 편이 많다. 천황은 그저 파라오나 칸과 같은 고유 명사로 보게 된다면 왕족을 굳이 황족으로 부를 이유는 없다.

일왕이 맞다[편집 | 원본 편집]

  • 일왕이라는 호칭은 기존에 없던 조어법으로 만들어진 호칭은 아니고, 미국군을 '미군'이라고 줄여 부르는 등 '일본 국왕'의 약칭이고 딱히 규칙을 깨는 호칭은 아니다.

그냥 왕으로 하자[편집 | 원본 편집]

  • 완전히 정치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복잡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통상적인 국왕 호칭을 쓰자는 주장이다. 일왕, 천황, 덴노도 아닌 일본 국왕으로 하자는 것이다. 일본 황족을 왕족으로 수정하되 친왕, 내친왕 같이 왕족 내에서의 호칭은 그대로 쓰자와 왕가 내에서의 호칭도 전부 바꾸는 형태가 있다.
  • 일본 안에서도 자국의 천황을 가리켜서 '왕'이라고 부른 사례는 메이지 시대 직전까지 사례를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메이지 천황이 기존의 막부 체제를 전면 폐지하고 나서 천황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정부 수립을 선포할 때 내린 명령서는 '황정복고'나 '제정복고'가 아니라 왕정복고의 대호령이다.
  • 천황이 일본 국왕을 높여 부르는 것이라면 일왕이라는 것 또한 일본 국왕을 높여 부르는게 될 것이다.

상징성[편집 | 원본 편집]

일본 신화, 그중에서도 기기신화(記紀神話)[1]에 따르면 천계 다카마노하라(高天原)에서 주신의 명령을 받아[2] 아마테라스의 손자인 니니기가 하계로 내려왔으며, 니니기의 혈통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끊어진 적이 없는 만세일계(万世一系)라고 여겨진다.[3]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하고 히로히토(쇼와) 천황이 인간 선언을 하기 전까지는 정말 현인신(現人神)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신의 현신'이라는 공개적인 프로파간다를 믿지 않는다고 해도, 이를 표출하지는 않았다.[4]

일본 제국 시절에 교과서 등에서 강조하였고, 또 역사적으로도 자주 언급된 이른바 천양무궁의 신칙(天壤無窮の神勅)이 있다. 《일본서기》 권2 9-1에서, 아마테라스는 지상이 복속되었다는 소식과 손자(니니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아시하라노 치이호아키노 미즈호국(葦原千五百秋之瑞穗國)[5]은 나의 자손이 왕이 되어야 할 땅이다. 황손이여, 지금부터 가서 다스려라. 가거라, 왕통이 융성하여 천지와 함께 영원히 계속되어 다함이 없을 것이다.(葦原千五百秋之瑞穗國, 是吾子孫可王之地也. 宜爾皇孫, 就而治焉. 行矣. 寶祚之隆, 當與天壤無窮者矣.)
— 번역 인용 : 동북아역사재단, 『역주 일본서기』

하지만 일본 역사에서 실권을 쥔 적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무사정권이 시작된 가마쿠라 막부 이후엔 정말 상징뿐인 존재가 되었다. 헤이안 시대에는 천황에서 상황(上皇) 혹은 출가해 법황(法皇)이 되어야 실권을 가지는 등 한때는 황태자 비슷한 신분을 말하던 시기도 있었고, 남북조 시대에는 천황이 2명이 존재하기도 했다.

천황의 절대권력을 명시한 일본 제국 시절에도 정말 천황이 절대권력을 가졌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지만, 또 그렇다고 천황을 단순한 허수아비로 보기에도 의문이 남는다. 히로히토 천황이 전쟁 수행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한다.[6] 사실 일본 제국 시절이라고 과거 일본 귀족(화족)들이 모두 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수장[7]이라 볼 수 있는 천황은 단순한 허수아비[8]는 아니었다.

일본의 무가정권 시절 천황은 그저 상징으로 남았고 귀족 사회는 통치도 못하고 명맥만 잇는 수준이었고, 일본 국왕은 절차에 불과한 정이대장군(쇼군) 임명을 수행하는 수준이었다. 에도 시대만 해도 일본의 평민은 천황의 존재도 몰랐고 메이지 유신 이후에 천황의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한동안 천황의 통치가 이어지다 내부의 문제가 터지고 제동이 되지 않던 일본이 패망하게 되고 이후에는 미국의 주도 하에 평화헌법이 제정되고 제1조부터 천황을 그저 상징으로 못박았다. 또한 히로히토 천황의 인간 선언으로 신정 군국주의의 패망을 널리 알렸다.

각주

  1.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수록된 신화를 총칭하여 기기신화라 부른다. 기기신화의 특징은 노골적인 정치성이다. 기존에 있던 신화소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조립하고 일부 요소는 창작하기도 하였다.
  2. 명령을 내린 주체가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었다. 초기에는 다카미무스히였다가, 중기에는 다카미무스히와 아마테라스 공동명령이었다가, 후기에는 아마테라스 단독으로 바뀌었다. 《일본서기》에서는 이 전승을 모두 기록하되 '다카미무스히와 아마테라스' 공동명령을 본문으로 하였다. 하지만 일본 제국 시절에는 아마테라스의 단독명령이라는 전승을 표준으로 삼아 교과서로 가르쳤다.
  3. 1889년에 발표된 메이지 헌법에서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大日本帝国ハ万世一系ノ天皇之ヲ統治ス)라는 구절이 등장하기도 했다
  4. 히로히토 천황이 황태자 시절에 있었던 암살 시도에 대한 재판 때 일이다. 범인은 재판석에서 재판장에게 "당신은 정말로 천황이 현인신이라고 믿는가?"라고 물었으며 재판장은 대답하기를 거부했다. 범인은 이런 반응을 보고 재판을 비웃었다.
  5. 기기신화에서 일본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슷한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한다. 의미를 직역해본다면 '갈대밭의 천오백 년간 이어질 물이 풍부한 나라'라는 뜻이지만 적극적으로 풀이하면 '오랜 세월에 걸쳐 벼농사가 잘 되는 물이 풍부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갈대밭'(葦原)이라는 말은 기기신화에서 아직 천손의 덕화가 미치지 못한, 비문명적이고 원시적인 곳'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6. 허버트 빅스 『히로히토 평전: 근대 일본의 형성』 등
  7. 평민들이 떡상하자 그냥 무시하던 과거와 달리 귀족들끼리 뭉쳐서 밀어주는 게 있었다.
  8. 민간인 자살을 명하기도 했고, 일본군도 이것을 수행했다. 사이판 전투 3 (1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