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성씨)

()씨는 과거의 한국의 성씨이고, ()씨는 한국의 성씨이고, ()씨는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의 성씨다.

갖출 구 具[편집 | 원본 편집]

()씨는 2000년 통계청 조사에서 178,167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41위이다. 본관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 등에 33본까지 기록되어 있고, 현존하는 본관은 능성(綾城), 창원(昌原), 강릉 등 21본이 있으나, 능성(綾城)과 창원(昌原)을 제외한 나머지 본관은 시조와 유래를 알 수 없다.

능성 구씨[편집 | 원본 편집]

능성 구씨(綾城 具氏)는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을 본관으로 한다. 시조는 고려의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을 지낸 구존유(具存裕)이다.

구존유는 1224년(고려 고종 11년)에 금성(錦城: 나주의 옛 이름)으로 망명해 온 신안 주씨(新安朱氏)의 시조인 주잠(朱潛)의 사위라고 한다. 당시 도망 온 주잠이 고려 능성(綾城)현 구씨 집성촌에서 살며 2남 1녀를 두었는데 주잠의 딸이 구존유(存裕)에게 출가하여 능성에서 살게 되자 후손들이 능성을 관향으로 하였다고 한다. 구존유가 주잠과 동행하여 도망해 왔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에도 구씨(具氏)를 능성현(綾城縣)의 대표적인 토착 성씨로 기록하고 있다.

능성 구씨는 시조 구존유의 7대손에 이르러 판사파(判事派)·전서파(典書派)·시랑파(侍郞派)·좌정승파(左政丞派)·판안동파(判安東派)·도원수파(都元帥派)·재신파(宰臣派)·낭장파(郎將派)·감무파(監務派)·임천군사파(林川郡事派)·참판파(參判派)·문천군사파(文川郡事派)의 12개 파로 나뉜다. 이중 후손들이 이북 지역에 살고 있지만 남북 분단으로 전고를 알 수 없는 재신파(宰臣派), 후손이 없어 무후(无后)된 전서파(典書派)와 임천군사파(林川郡事派)의 3개 파를 제외한 9개파 후손들이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현재 좌정승파(左政丞派)·판안동파(判安東派)·도원수파(都元帥派)가 번창하여 주종(약 80%이상)을 이루고 있다.

능성 구씨는 고려조선에 걸쳐 유력가문이었다. 조선 제16대 국왕 인조의 어머니이자 원종의 비인 인헌왕후를 배출했으며, 영조대(英祖代)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조의 권력의 핵심에서 가문의 세를 떨치었다. 능성 구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54명을 배출하였다. 인물로는 구치관, 구인문, 구치홍, 구수영, 구봉령, 구사맹, 구의강, 구굉, 구인후, 구봉서 등이 있다. 현대 인물로는 LG그룹 회장 구자경, 구본무, 연예인 구혜선, 가수 구하라, 축구 선수 구자철 등이 있다. 2000년 인구는 145,987명이다.

유난히 구본~, 구자~로 시작하는 이름이 많아서 구본, 구자까지가 성씨인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그냥 능성 구씨의 돌림자다.

원수 구 仇[편집 | 원본 편집]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독자연구가 포함된 부분이 지적되었다. 추후 재정리할 예정.

구성(仇姓)은 신라왕족의 원성(源姓)이며, 진흥왕(眞興王)이 김성(金姓)으로 개성(改姓)하여 김진흥(金眞興)이다.

창원구씨 선원(璿源)은 구도(仇道), 구천(仇天), 구지포례(거칠부), 구사(仇史)로 이어지며, 구사(仇史) 公이 통일신라시대에 구사성제군사(仇史城諸軍事)로 현 창원지역에 입군(入郡)하게 되었다.

구사성은 조선시대에는 염산산성으로 개칭되고, 현재는 구룡산이라 칭한다. 구룡산 옆에는 천주산이 있다. 천주(天柱)는 진흥왕의 아들이다. 창원구씨 시조(始祖) 구성길은 고려에서 대광(大匡) 내의성(內議省) 내의령(內議令)을 역임했으며, 서기 945년 혜종(惠宗) 때에 서경(西京)에서 공()을 세우고 의안군(義安君)에 봉해지고 의안군(義安郡)을 식읍(食邑)으로 하사 받았다.

그런데 구성길 이후부터 고려 말 구설(仇雪)까지의 400여년의 세계(世系)가 불확실하며, 창원구씨 초보(初譜) ‘임오보(壬午譜)’에 따라 구설을 1세조로, 그의 아들 구종길(仇宗吉 영의정부사, 세종대왕의 王師, 國師 역임)을 중시조로 하고, 관향은 시조가 사적 받은 의안이 창원으로 개칭되었기 때문에 창원구씨(昌原仇氏 昌原具氏)라 한다. 구씨(仇氏)가 구씨(具氏)로 개성하게 된 것은 고려 서기 918년 구진(仇鎭 具鎭), 서기 940년 구족달(仇足達 具足達), 조선 서기 1791년(정조 15)에 구시창(仇始昌 具始昌) 등이 사성(賜姓)을 받아 현재로는 구성(具姓)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창원구씨와 능성구씨(능주구씨, LG家)는 뿌리가 다른 씨족이다. 인물로는 국회의원 구용현, 구종태, 구상찬 등이 있다. 2000년 인구는 14,035명이다.

구씨(仇氏)는 중국,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에 분포하고 있어며, 모두가 춘추시대 진나라의 군주 문후(文侯)의 후손이다. 문후는 소호김천씨의 후예(後裔)이다.

언덕 구 丘[편집 | 원본 편집]

한국[편집 | 원본 편집]

구()씨는 2000년 통계청 조사에서 13,241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03위이다. 본관은 평해 구씨 단본이다.

평해 구씨(平海丘氏)의 시조 구대림(丘大林)은 원래 당나라 사람으로 663년 사신으로 일본에 가다가 동해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평해(울진) 월송정(越松亭) 근처에 도착해 살았으며, 구대림이 살았다는 곳을 구미진(丘尾津)이라 부른다. 고구려 때 벼슬이 좌복야상서에 이르렀다. 그 후의 내력은 알 수 없다가 고려 공민왕 때 이방실(李芳實)과 함께 홍건적을 토벌하여 공신에 책훈되고 민부전서를 지낸 구선혁(丘宣赫)을 1세조로 삼는다. 평해 구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6명을 배출하였다.

구()씨 측에서는 구대림이 동래한 시기는 663년 당나라에서 일본으로 가는 도중이라고 하나, 황()씨의 기록은 황락(黃洛)과 구대림이 같이 서기 28년(중국 후한)에 교지국(베트남 하노이의 옛 지명)으로 가는 도중이라고 하여 기록이 다르다.

언덕 구 邱[편집 | 원본 편집]

구()씨의 본관은 은진(恩津) 단본이다. 시조와 유래는 알 수 없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에는 조사되지 않았으나, 1930년대 초 중추원(中樞院)에서 호적부를 중심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경상북도 김천군 농소면에서 처음으로 1가구가 나타났다. 1960년 조사에서 경북에 14명, 강원도에 2명 등 모두 16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1985년에는 27가구, 129명, 2000년에는 280가구, 875명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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