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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수형에는 사형선고 후 일정 기간 기다렸다 목을 베는 참대시와 사형선고와 동시에 형이 집행되는 참부대시가 있었다. 원칙적으로는 참대시의 형태를 취하였으나, 중죄를 지은 경우에는 참부대시를 하였다.
참수형에는 사형선고 후 일정 기간 기다렸다 목을 베는 참대시와 사형선고와 동시에 형이 집행되는 참부대시가 있었다. 원칙적으로는 참대시의 형태를 취하였으나, 중죄를 지은 경우에는 참부대시를 하였다.


참부대시이든, 부대시이든 사형 집행을 취할 때가 되면 죄수를 이송한다. 사형수는 포도청 앞에서 처형되기도 하였으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참부대시이든, 부대시이든 사형 집행을 취할 때가 되면 죄수를 이송한다. 다만 그 전에 [[조리돌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형수는 포도청 앞에서 처형되기도 하였으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소달구지 적재 칸에 사형수의 양팔과 머리칼을 매단 채<ref>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 등 천주교인들의 처형의 경우에는 수레 한가운데 세워진 십자가에 매달아서 이송하였다.</ref> 감옥에서 사형장으로 사형수를 압송한다. 사형장은 지금의 [[당고개]], 서소문 밖 네거리, 무교동 일대, 새남터, 절두산<ref>조선말 병인박해 당시 1만여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절두산에서 참수당했다.</ref> 등이었다.
포졸들은 소달구지 적재 칸에 사형수의 양팔과 머리칼을 매단 채<ref>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 등 천주교인들의 처형의 경우에는 수레 한가운데 세워진 십자가에 매달아서 이송하였다.</ref> 감옥에서 사형장으로 사형수를 압송하였다. 사형장은 지금의 [[당고개]], 서소문 밖 네거리, 무교동 일대, 새남터, 절두산<ref>조선말 병인박해 당시 1만여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절두산에서 참수당했다.</ref> 등이었다.


사형장에는 약 50보 내외의 넓이로 장막을 둘러치고 구경꾼이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였으나 이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효수의 목적이 일반인들에 대한 위하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굳이 지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사형장을 기준으로 약 50보 내외의 넓이로 장막을 둘러치고 구경꾼이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였으나 이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효수의 목적이 일반인들에 대한 위하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굳이 지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죄수가 형장에 도착하면 사형집행인, 즉 망나니는 죄수의 옷을 벗기고 죄인의 두 손을 뒤로 묶은 뒤 그의 턱 밑에 나무토막을 받쳐 놓는다. 이때 죄수의 귀를 뚫어 관이전(貫耳箭)이라는 화살 2개를 꽂아 목뒤로 교차시킨다. 얼굴에는 분칠을 하여 사형수임을 인식하기 쉽게 한다.
죄수가 형장에 도착하면 사형집행인, 즉 망나니는 죄수의 옷을 벗기고 죄인의 두 손을 뒤로 묶은 뒤 그의 턱 밑에 나무토막을 받쳐 놓는다. 이때 죄수의 귀를 뚫어 관이전(貫耳箭)이라는 화살 2개를 꽂아 목뒤로 교차시킨다. 얼굴에는 분칠을 하여 사형수임을 인식하기 쉽게 한다.


위 작업이 끝나면 사형집행인은 큰 칼로 사형수의 목을 자른다. 이때 상투에 줄을 매어 목을 베기도 하였는데, 이는 잘린 목을 나무에 매달아 효시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위 작업이 끝나면 사형집행인은 큰 칼로 사형수의 목을 자른다. 이때 상투에 줄을 매어 목을 베기도 하였는데, 이는 잘린 목을 나무에 매달아 효시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선교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칼이 뭉툭하여 참수가 한 번에 이루어지는 일은 드물었다고 한다.
 
참수가 끝나고, 사형수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면, 사형집행인은 사형수의 목을 들어 나무에 매단다. 때로는 성문이나 다리에 매다는 경우도 있었다.


== 현대의 참수형 ==
== 현대의 참수형 ==

2017년 7월 24일 (월) 23:45 판


폭력적 내용 주의 이 부분 아래에는 부적절한 내용(폭력성)을 포함하고 있어, 열람에 주의 및 보호자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개요

사형수의 목을 베는(자르는)형벌로, 세계적으로 많이 행하여졌던 처형 방식이다. 현대에서는 그 잔인성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시행하지 않지만, 일부 아랍 국가에서는 여전히 시행하고 있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에서는 포로를 참수[1]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유투브에 버젓이 올려 보여주어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집행 과정

  • 본 항목은 조선의 사형집행 과정을 기초로 작성함.

과거 인기리에 방송했던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 때문인건지 사람들은 망나니가 술을 마시고 춤을 덩실덩실 추다가 단칼에 사형수를 베어 죽이는 것을 상상하기 쉬운데, 현실은 이와 많이 달랐다.

대략적으로 구전되는 사형 집행 과정은 아래와 같다.

참수형에는 사형선고 후 일정 기간 기다렸다 목을 베는 참대시와 사형선고와 동시에 형이 집행되는 참부대시가 있었다. 원칙적으로는 참대시의 형태를 취하였으나, 중죄를 지은 경우에는 참부대시를 하였다.

참부대시이든, 부대시이든 사형 집행을 취할 때가 되면 죄수를 이송한다. 다만 그 전에 조리돌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형수는 포도청 앞에서 처형되기도 하였으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포졸들은 소달구지 적재 칸에 사형수의 양팔과 머리칼을 매단 채[2] 감옥에서 사형장으로 사형수를 압송하였다. 사형장은 지금의 당고개, 서소문 밖 네거리, 무교동 일대, 새남터, 절두산[3] 등이었다.

사형장을 기준으로 약 50보 내외의 넓이로 장막을 둘러치고 구경꾼이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였으나 이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효수의 목적이 일반인들에 대한 위하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굳이 지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죄수가 형장에 도착하면 사형집행인, 즉 망나니는 죄수의 옷을 벗기고 죄인의 두 손을 뒤로 묶은 뒤 그의 턱 밑에 나무토막을 받쳐 놓는다. 이때 죄수의 귀를 뚫어 관이전(貫耳箭)이라는 화살 2개를 꽂아 목뒤로 교차시킨다. 얼굴에는 분칠을 하여 사형수임을 인식하기 쉽게 한다.

위 작업이 끝나면 사형집행인은 큰 칼로 사형수의 목을 자른다. 이때 상투에 줄을 매어 목을 베기도 하였는데, 이는 잘린 목을 나무에 매달아 효시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선교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칼이 뭉툭하여 참수가 한 번에 이루어지는 일은 드물었다고 한다.

참수가 끝나고, 사형수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면, 사형집행인은 사형수의 목을 들어 나무에 매단다. 때로는 성문이나 다리에 매다는 경우도 있었다.

현대의 참수형

현대의 참수형은 2011년 기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만 시행되고 있다.[4] 물론 여기서 다에시는 (2011년에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지만)나라 취급을 하지 않은 것이다.

참수형을 당한 인물

가상

실제

사형집행인

기타

  • 인도네시아에서는 자위행위를 하면 참수형을 당한다는 소문은 거짓이라고 한다. 다만, 최대 2년 8개월의 징역형을 살 수 있다고........[5]

각주

  1. 국가가 집행하는 형벌이 아니기에 참수형이 아니다
  2.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 등 천주교인들의 처형의 경우에는 수레 한가운데 세워진 십자가에 매달아서 이송하였다.
  3. 조선말 병인박해 당시 1만여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절두산에서 참수당했다.
  4. 연례사형현황 보고서 2011 사형선고와 사형집행
  5. 자위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7가지, 위키트리, 2016.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