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러더퍼드

Ernest Rutherford, 1st Baron Rutherford of Nelson
Ernest Rutherford LOC.jpg
이름 어니스트 러더퍼드
출생 1871.08.30
뉴질랜드 타스만 지방 브라이트워터(와이로아)
사망 1937.10.19(향년 66세)
영국 케임브리지셔주 케임브리지
국적 영국, 뉴질랜드
연구분야 물리학, 화학
지도교수 조지프 존 톰슨
제자 제임스 채드윅, 닐스 보어, 한스 가이거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년 8월 30일 ~ 1937년 10월 19일)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영국의 물리학자이다. 1908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여받았으며 마이클 패러데이 이후 가장 위대한 실험가이자 핵물리학의 아버지로 여겨진다.[1]

생애 및 업적[편집 | 원본 편집]

러더퍼드는 1889년에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캔터베리 대학교에 진학하였고 1894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으로 가서 조지프 존 톰슨의 지도를 받아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연구활동을 하였다.

1898년에 캐나다맥길 대학교의 교수직을 맡게 되는데, 주로 방사선에 대하여 연구하였고, 라돈의 동위원소를 발견하기도 하였으며, 방사선에 알파입자와 베타입자라는 서로 다른 종류가 있음을 밝혀내었다. 1907년에 영국으로 돌아와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물리학 교수를 맡게 되는데 한스 가이거와 함께 알파입자를 측정하는 방법에 대해여 연구하였다.[2] 그리고 알파입자가 헬륨의 원자핵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1908년부터 1913년에 걸쳐서 알파입자 산란 실험을 하게 되는데, 당시 널리 받아들여지던 톰슨원자모형에 따르면 금박에 들어간 알파입자는 매우 작은 각도로만 산란해야 하였다. 그러나 실제 실험 결과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140도 가까이 꺾여서 튕겨나오는 입자들도 있었고, 러더퍼드는 이에 대해 "이 현상은 화장지 조각에 15인치 포탄을 발사했는데 반사되어 돌아온 것만큼 놀라운 일이다." 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러더퍼드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대부분의 양전하한 곳에 모여있을 것으로 예상하여 새로운 원자모형을 제안하였고, 성공적으로 설명하게 되어 원자모형의 주류가 러더퍼드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은 원자의 안정성이나 원자의 선 스펙트럼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고 이는 그의 제자인 닐스 보어가 전자의 에너지 준위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하였고 또 다른 제자인 제임스 채드윅은 자신이 발견한 중성자의 개념을 넣어서 수정시켜서 보완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원자 모형을 발전시키는 과정은 양자역학의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이야기거리[편집 | 원본 편집]

  • 러더퍼드는 자연과학은 결국 물리로 귀결된다는 듯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All science is either physics or stamp collecting. (모든 과학은 물리학 아니면 우표수집이다)"라는 희대의 어록까지 남겼다.[3] 그러나 정작 자신이 받은 상은 노벨우취상 노벨화학상이었다.
  •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 자체는 더 발전된 모형들로 대체되었지만 여러모로 설명하기에는 좋기 때문에 교과서 등에 묘사된 원자 모형은 러더퍼드 모형에 기반하고 있다.
  • 뉴질랜드의 100달러 지폐에 얼굴이 들어가있다.

각주

  1.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Ernest-Rutherford
  2. 나중에 이것은 가이거 계수기가 된다.
  3. 단, 러더퍼드 사후 2년 후에 나온 존 버널(의 저서에서 러더퍼드를 언급할 때의 인용문에서 유래한다. 실험광으로 유명한 러더퍼드는 물리 이외의 과학은 실험 등을 통하여 자료를 모으는 "수집" 역할을 하고, 그것들이 끝내는 물리학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저 어록은 "물리 빼곤 다 쓰레기다!"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험이나 자료 없이 학설만 세우는 일부 이론물리학자들에 대한 일침으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