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현

야마구치 현(山口県, Yamaguchi Prefecture)은 일본 혼슈(주고쿠 지방) 서쪽 끝에 자리하는 이다. 문화나 생활권은 대체로 혼슈(산인-산요)보다도 규슈권에 더 가깝다. 야마구치 현 자체가 상당히 큰 면적을 자랑하는데, 정작 중심이자 가장 발달한 도시가 규슈와 바로 마주하는 시모노세키이기 때문이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과거 나가토(長門, 산인 지방) 및 스오(周防, 산요 지방)에 해당하였고, 이 두 지역을 아울러 보초(防長) 지역이라 불렀다. 에도 시대 때 두 지역을 같이 통치하면서 나가토의 명칭을 이어와 조슈 번(長州番)으로 바뀌었었다. 이후 폐번치현으로 분할 통합을 반복한 끝에 야마구치가 되었다.

옛부터 해외 지역과 교류하는 혼슈의 관문 구실을 했는데, 헤이안 시대부터 중국(당나라)으로부터 많은 문물을 들여왔기에 그 영향을 받은 지명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또한 에도 시대 중후반기에는 나가사키(데지마)를 통해 들여온 오란다의 선진문물을 수도로 옮기는 대문 구실을 하다 보니 유럽의 발달된 공업기술에 감탄한 사람들이 훗날 메이지 유신을 이끌게 되는 배경이 있다.

현재 야마구치의 인상은 그야말로 서일본의 킹 오브 시골. 단, 시모노세키는 시골 이미지에서 제외하기도 한다. 거기는 큐슈니까

스오 지방 (산요)[편집 | 원본 편집]

야마구치시 (山口市, Yamaguchi City)[편집 | 원본 편집]

일단은 현청 소재지이자, 현 지명의 기원이 되는 도시이다. 그러나 야마구치 시내는[1] 산 속에 틀어박힌 지형 때문에 산요 본선 철도도 그렇고, 고속도로마저 남쪽 멀리로 뚫릴 정도로 교통권 확보가 어려워서, 같은 지명을 쓰는 현청소재지인 히로시마와는 아예 상대조차 안 되고, 시모노세키와 비교하자니 시모노세키가 굴욕일 정도로 발전이 더딘 편이다. 심지어 남부 연안 지방공업도시(우베, 호후 등)보다도 낙후되어있다.

그러나 역사 하나는 깊은 동네로, 무로마치 시대 직전 스오우 지방을 평정한 오오우치 가문이 서쪽의 교토를 표방하며 교토의 거리를 그대로 모사하듯 건립한 도시가 야마구치 시이다. (특히 루리코지 인근) 이런 상징성 때문에, 그리고 위치상으로 산요도 산인도 큐슈도 아닌 어중간한 곳에 위치했기에 발전가능성은 제껴두고 상징적인 의미로서 현청소재지로 삼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아이고 조상님, 왜 이런 곳에 터를 잡으셔서...

시모노세키시 (下関市, Shimonoseki City)[편집 | 원본 편집]

야마구치 현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이자 항구(해운)도시, 그리고 일본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큰 어항(漁港)이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부관페리(칸푸페리)가 이곳과 이어지기에 한국인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기타큐슈시의 모지항(門司港)이 육안으로도 보일 만큼 가깝고, 그 사이가 시코쿠와 긴키로 향하는 지름길 항로인 세토우치의 입구인지라 고금불문으로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지명 '시모노세키'가 아랫관문이라는 뜻이다. [2]

물류, 어업이 동시에 발전하다 보니 이곳은 그야말로 생선 천지이다. 특히 복어로 유명해서 마스코트로 선정한 것은 몰론, 시모노세키역이나 신시모노세키역으로 가면 잔뜩 장식을 넣었을 정도이다. 유명 관광지는 가라토 시장(唐戸市場)과 아카마 신궁(赤間神宮)으로, 특히 가라토 시장의 명물인 스시 시장은 금요일 포함한 주말과 공휴일에만 열리는데, 이때 인파가 말도 못할 정도로 몰린다.

역사적인 면에서도 야마구치에 꿇리지 않을 정도로 깊은데, 대표적으로 헤이케모노가타리의 모델인 겐페이 전쟁단노우라 전투가 이곳에서 벌여져 타이라 가문(平家, 헤이케)이 스러진 장소이다. 또한 조선통신사쓰시마섬에서 출발해 처음으로 머무르는 일본 본토가 시모노세키였고, 규슈에서 들여온 외래문물을 수도로 운반하는 육상 및 해상 관문이 정확히는 시모노세키였다.

지금의 시모노세키 시는 헤이세이 대통합으로 인해 아예 혼슈 서쪽 끝을 모조리 틀어막듯 한 넓은 범위를 자랑하지만, 번화한 동네는 끄트머리의 시모노세키항(및 시모노세키역)이 있는 곳 정도고, 그 외는 여느 시골동네와 다를 게 없다.

산요 기타 지역[편집 | 원본 편집]

  • 산요오노다 시
  • 우베 시
  • 호후 시
  • 슈난 시
  • 구다마쓰 시
  • 히카리 시
  • 야나이 시
  • 다부세 초
  • 히라오 초
  • 가미노세키 초(上関町) : 시모노세키(下関)가 '아랫관문'인 것에 대하여, '윗관문'이라는 뜻으로 카미노세키(上関)라 명명된 곳이다. 하지만 시모노세키와는 달리 작은 섬에 육지와 연결된 다리 근방에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유명한 관광지나 스토리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 지리적 이유로 항구로서 기능도 거의 죽었고, 육로로 찾아가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아서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여러모로 안쓰러운 마을.
  • 스오오시마 초(周防大島町) : 한글 표기법으로는 혼동하기 쉬운데, 스오우(周防)+오오시마(大島)라서 실제 발음으로 들어보면 스오~(쉬고)오~시마 라고 읽는다. 카미노세키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매우 한적한 어촌인데, 서쪽의 시모노세키(에서 야나이 시 경유), 동쪽의 이와쿠니에서 바로 연결된 국도가 놓여 있으며, 야나이에서 선편으로도 접근이 가능하여 교통은 제법 편리한 편이다. 또한 에히메 현의 현청소재지이자 시코쿠 최대의 도시인 마츠야마까지 열도처럼 섬이 늘어져 있는 곳이라, 그 광경을 여유롭게 즐기려는 사람들이 찾고 있다.

이와쿠니시 (岩国市, Iwakuni City)[편집 | 원본 편집]

  • 와키 초

나가토 지방 (산인)[편집 | 원본 편집]

나가토시 (長門市, Nagato City)[편집 | 원본 편집]

산인 야마구치의 중심이 되는 도시이다. 북쪽 바다를 제외하고 사방으로 길이 나 있어서 교통의 중심으로 역할을 한다.

모토노스미이나리 신사가 제법 유명하고 그 외에도 다수의 관광지가 산재하는데, 퍼져도 너무 멀리 퍼져 있어서 렌터카 없이는 다닐 수 없다. 그나마 가장 편리한 축인 모토노스미조차 인근까지 하루 12~20편성의 벽을 넘어 어렵게 철도를 타고 와도, 내린 후부터 결국 택시에 의존해야 할 만큼 대중교통의 인프라가 매우 열악하다.

하기시 (萩市, Hagi City)[편집 | 원본 편집]

나가토의 동쪽, 강 하류의 삼각주 내에 자리한 소도시이다. 메이지 시대를 이끈 주역들 다수가 하기 출신 혹은 하기에 소재했던 메이린 학사 출신이라, 이를 이용한 관광을 적극 밀어 준다. 그러나 정작 그 학사는 원래 모습을 거의 잃었고[3], 성하마을이 힘겹게 유네스코 유산 등록으로 관심을 받은 정도인데다, 산인 지방 공통으로 거주민이 너무 없어서 마을이 사실상 정전상태에 빠졌다.

하물며 교통도 상대적으로 불편한 편이다. 적어도 시마네 서부급은 아니지만, 하기와 시마네의 오타 사이는 언제 폐선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열차가 다니질 않고[4], 버스도 딱히 운행하지 않는다. 그나마 히가시하기부터 나가토시 사이로 시간당 편도 1대 다니는 것이 가장 활발할 정도이다. 바다와 접해있으나 활발히 운영되는 항구도 딱히 없다. 나가토에서 열차로 서쪽이나 남쪽길 또한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는 수준.

야마구치 시의 신야마구치 방면으로는 JR주고쿠와 보초버스가 반씩 나눠서 왕복 16편을 운행한다. 중간중간 전파가 잡히지 않는 곳이 있는데, 그 정도로 깊은 곳임을 재차 나타낸다.

미네시 (美祢市, Mine City)[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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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 초 (阿武町, Abu Town)[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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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산요선이 통과하는 신야마구치가 아닌 로컬선 안쪽의 야마구치 역세권을 말한다.
  2. 후술하나, 윗관문이라는 의미의 가미노세키라는 지명도 있다. 말하자면 윗마을 아랫마을 같은 것.
  3. 간신히 소학교건물 하나가 제자리에, 나머지는 해체되거나 개조되거나, 이동되는 등의 수모를 당했다.
  4. JR패스 중 산인 오카야마 패스의 서쪽 범위가 하기까지인데, 실제로 써보면 이즈모가 한계임을 실감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