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두 판 사이의 차이

28번째 줄: 28번째 줄:
=== [[트레이드 마크]] ===
=== [[트레이드 마크]] ===
[[파일:Ahn2.jpg|400px]]<br>
[[파일:Ahn2.jpg|400px]]<br>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할 때 입었던 [[트렌치 코트]], [[베레모]], [[콧수염]]과 FN M1900은 안중근 의사를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할 때 입었던 [[코트]], [[카스케트]], [[콧수염]]과 FN M1900은 안중근 의사를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 진정한 아시아주의자 ===
=== 진정한 아시아주의자 ===

2017년 5월 27일 (토) 19:54 판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아명이자 자는 응칠(應七). 세례명은 토마스.[1]

상세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교육 산업 등 민족의 계몽 사업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나, 일제의 침략이 사실상 국권을 뒤흔드는 수준으로 확대되자,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한 후 그곳에서 의군을 조직하였다. 곧이어 그는 무력단체의 참모중장으로서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전과는 안습했다(...)

이후 단지회를 조직하여 죽음을 결심하고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Ahnbullet.jpg
당시 안중근 의사는 자신이 쓸 총알 끝에 십자가를 그어서 일의 성사를 기원하였다.

여담

동학 농민 운동 탄압(?)

어린 시절 총을 들고 직접 동학 농민 운동 진압에 나선 적이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안창호와의 인연

도산 안창호 선생이 언젠가 광장에서 연단에 올라가 연설을 한 적이 있는데 내용이 대놓고 일제 헌병들을 도발하는 패기쩌는 연설이었고(...) 빡친 일제 헌병들은 허공에 총을 쏘고 개판 5분 전 상황이 되었다. 안창호 선생은 무슨 패기인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연단에 부동자세로 서있었으나 안중근 의사가 손을 잡아끌고 구해줬다고 한다.

먼치킨스러운 총솜씨

그는 사격의 명수였다. 놀랍게도, 그는 화승총을 쏘아 약 10미터나 되는 곳에 놓인 동전을 맞추었다고 한다.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과 친분이 있었던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안중근을 '안씨 집안의 총 잘쏘는 청년'으로 묘사하였다.

안중근 의사가 실제로 썼던 총.

또 한 조선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FN M1900을 보고 탐을 낸 적이 있는데 200보 밖에 있는 장작 패는 옹이에 꽃힌 도끼를 맞추라고 하자 한방에 정확하게 명중시켰고, 이 조선인은 안중근 의사에게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FN M1900을 주기로 결심했다는 카더라가 있다.

트레이드 마크

Ahn2.jpg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할 때 입었던 롱 코트, 카스케트, 콧수염과 FN M1900은 안중근 의사를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진정한 아시아주의자

말로만 범아시아주의를 외쳤던 일제와는 다르게(...) 진짜로 진정한 의미의 아시아주의를 제창한 인물이다. 실제로 아시아주의자 중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기록된다.

책벌레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
— 안중근

무시무시한 책벌레로 뤼순 감옥에 수감되고 나서도 책만 주구장창 읽었으며 사형 선고가 언도되고 나서 재판장이 마지막 유언을 묻자

5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다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다.

라고 하고 진짜로 5분의 시간을 주자 묵묵히 책을 끝까지 읽고 사형장에 향했다고....

이러한 책벌레 성향 때문에 그가 수감되어 있던 형무소의 보초 헌병들조차 그를 스승으로 삼고 따랐다고 한다(...).

각주

  1. 도마라고도 한다.